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58화 (558/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에엥 내 탄생석 능력 등급이 이것밖에 안되요? 탄생석관리청에서는 숙달만되면 B+등급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게... 아무래도 제가 모험가님들의 탄생석 등급을 감정하는건 심연의 대마왕과 맞서싸우기 위함인지라 전투관련 능력이 아니면 송구스럽게도 하향보정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 진짜 탄생석 등급에 따라서 선물 보따리를 주는 NPC가 있다고해서 전사길드가 있는 마을에서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완전히 새됐네. 일단 그 C등급 보따리라도 줘봐요."

나는 맑은 생수를 자신이 기억하는 어떤 맛으로든 바꿀 수 있는 탄생석 능력 레인보우드링크(Rainbow Drink) 능력의 소유자에게 C등급 보따리를 건네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심연의 마왕은 개뿔 내가 전투와 상관없는 탄생석 능력을 하향보정하는건 순전히 조금이나마 더 예산을 아끼보기 위함이였다.

이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이란 게임은 NPC라고 해서 무한의 재화를 지니고 있는게 아니라 한달마다 흑마술사 길드에 내려오는 예산을 다른 전직 NPC들(그러니까 저주술법의 린다와 악마술법의 미스터 리자드)과 나눠먹어야 했기에 굉장히 쪼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나같은 경우 공방에서 스켈레톤 병사들을 만들어 언데드 사냥터에 공급하는 방식의 부업으로 추가수입을 올리고 있어 적자는 면하고 있다만 솔직히 말해 사람이 할짓이 아니였다.

무슨 인형눈깔 붙이기도 아니고 스켈레톤 병사하나당 1골드 밖에 쳐주지 않아 대량 생산하지 않으면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프로그래밍된 가상세계가 아닌 진짜세계를 어떻게 MMORPG처럼 꾸며놨나 싶었는데 이렇게 뒤에서 NPC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었다니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막힐 노릇이였다.

아무튼 뭔가 앙케이트를 한다고 쳐도 생수에 건빵정도는 있어야 눈길이라도 주는게 사람의 본성이였기에 당분간은 풀앵벌 모드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간의 노력으로 탄생석을 코어로한 다수의 스피릿 서킷(Spirit Circuit) 샘플을 모을 수 있었지만 아직 갈길이 멀어도 너무 멀었다. 언데드 서킷이라 해봤자 어짜피 마력회로 베이스인데 스피릿 서킷은 완전히 별개의 영역이라 아직도 갈피를 못잡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이렇게 샘플만 무진장 모으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끝나는건 아니겠지.'

사령안으로 핏줄이 터져라 혼백을 바라보면 스피릿 서킷의 설계구조 자체는 읽어낼 수 있다. 문제는 그 설계구조가 어떤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어떻게 하면 설계구조를 혼백에 새길 수 있는지를 도통 알 수 없다는 점이였다. 그래서 나름 생명공학과 시절때 배운 신약연구 프로토콜에 기반해서 일단 샘플만 무작정 수집하고 있었지만 웬지 이것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지금까지 모은 샘플군들을 비교하며 고뇌에 빠져 있을때 또 한명의 모험가가 강령술 집무실을 방문했다. 나는 한껏 찌푸러진 얼굴을 지우고 영업용 미소를 띄우며 상대방을 맞이했는데 놀랍게도 그 모험가는 익히 아는 얼굴이였다.

"빅보스님 정말 오래간만이군요. 그간 어떻게 지네셨습니까? 하도 방문하지 않으셔서 저는 다시 드루이드 직업으로 전직하신줄 알았습니다."

"...중간에 잠깐 그런 충동이 들긴 했지만 지금까지 키운 좀비가 아까워서 도저히 그럴 수 가 없더군. 우여곡절이 많긴 했지만 밤잠까지 줄여가며 사냥한 덕분에 네가 말했던 그 구울을 3체정도 육성할 수 있었다."

"그말인즉슨 재료나 스킬북을 따로 구입하지 않고 좀비 개체에게 일일히 경험치를 먹여가며 진화를 시켰다는건가요? 그렇게 할 경우 일반적인 구울 개체보다 보너스 스텟값이 더 높기는 하겠지만 좀비가 죽으면 말짱 황이라 쉽지않았을텐데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고생끝 행복 시작이겠군요."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지금까지 고생한게 얼만데. 확실히 진화한 구울은 일반 좀비와는 달리 공격력과 기동력이 우월할뿐만 아니라 상대 몬스터의 시체를 섭취해 HP를 회복할 수 있어 엄청난 사냥효율을 보여주더군. 조금 과장해서 좀비 300마리보다 구울 3마리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뭐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요. 그래서 구울 진화도 완료하셨겠다 한창 사냥하는 재미에 빠져사느라 바쁘실텐데 저를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네가 좀비의 최종 빌드는 슈퍼뮤턴트라고 했었지? 구울 진화 후 한동안 저 3마리에게만 경험치를 몰아주고 있는데도 진화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더군. 어떻게 하면 그 최종 빌드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알고싶어 찾아왔다."

BIG보스의 사뭇 진지한 요청에 나는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제 막 좀비들을 구울로 진화시킨 주제에 슈퍼 뮤턴트를 논하다니 이제 막 걸음마를 땐 갓난아기가 하늘을 날갰다며 날개뼈를 씰룩거리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나조차 슈퍼뮤턴트 베히모스를 완성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시간과 예산을 쏟아부어야 하지 않았던던가.

"슈퍼뮤턴트라... 실례지만 현재 빅보스님의 영력 스텟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내 영력 스텟이라면 현재 C랭크다. 사냥 기간은 길었지만 대부분 좀비들에게 경험치를 밀어주느라 정작 나는 레벨업을 별로 못한 결과지. 하지만 이정도만 되도 전체 모험가로 따졌을때 평균 이상은 된다고 생각한다."

"C랭크라 확실히 그정만 되도 선두권 모험가와 큰 차이는 없을겁니다. 하지만 슈퍼뮤턴트를 제작하기 위해선 최소한 A랭크의 영력 스텟을 확보하셔야 이야기가 성립합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 되는 언데드 하수인부터는 스스로의 자아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영력이 높아야만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슈퍼뮤턴트는 단순히 경험치를 넘어서서 상당한 고수준의 육체개조가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선 그냥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시는게 편할겁니다."

"최종 빌드의 언데드 하수인답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건가. 뭐 나도 그리 쉽게 슈퍼뮤턴트를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냥 대략적인 단서만 얻어갈셈이였는데 영력 랭크 A전까진 이야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정도인지는 몰랐군."

"구울정도만 돼도 당분간 몰이사냥이면 몰이사냥 보스레이드면 보스레이드 막힘없이 진행할 수 있을테니 당분간은 레벨업에만 전념해주세요. 뭐 혹시 PVP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편이긴 합니다만 궁수 캐릭터를 상대로는 다소 취약하다는 점 알아두시길."

처음에는 골려주려고 좀비를 추천했던 나였지만 나름 애정을 갖고 강령술사를 키우는 BIG보스를 보고 있자니 과거의 내가 떠올라 이런저런 팁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BIG보스는 인성마저 나를 닮았는지 금싸라기같은 내 꿀팁을 듣는둥 마는둥하며 자기 할만만 늘어놓았다.

"PVP를 하다가 기껏 육성한 구울이 죽기라도 하면 어쩌라는거냐! 그보다 듣자하니 너 모험가들의 탄생석 등급을 감정한 뒤 그에 따른 선물 보따리를 준다고 하던데 만약 감정불가 판정이 나오면 어떻게 되는거지?"

"감정불가요? 글쎄요... 지금까지 그런 경우가 없어서 따로 생각해본적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귀한시간을 뺐었으니 최소 D등급 보따리는 드리는게 도리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서 D등급 보따리를 내놔라. 어차피 네녀석이 내 탄생석 등급을 알아낼 수 있을리가 없을테니."

"예? 하하하!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런건 일단 감정 후에 결정하는게 순리일것 같습니다."

"괜한 시간낭비를 하는군. 그럼 빨리 그 잘난 감정스킬로 내 탄생석 등급이 뭔지 말해봐라."

이 새끼가 진짜!

나는 정을 붙여볼려고 해도 도저히 붙일 수 있는 BIG보스의 띠꺼운 말투에 어금니를 부서질세라 깨물었다. 빠득! 허나 스피릿 서킷 샘플은 많으면 많을 수 록 좋았기에 간신히 표정관리를 한뒤 사령안을 개안했다.

그런데 곧이어 무척이나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BIG보스의 혼백의 핵안에서 아무런 존재도 관찰되지 않았던 것이다. 탄생석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 혼백의 핵안의 존재가 휴식기에 들어간게 아니라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텅텅 비어 있었으니 그동안 적지 않은 샘플 데이터를 모았지만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였다.

하지만 당황하는 것도 잠시 탄생석 코어가 비어있는 이 스피릿 서킷이야말로 지금까지 지지부진하던 탄생성 능력 연구의 진척을 뚫어줄 특이점이란걸 깨달은 나는 쾌재를 불렀다. 자 이제 어떻게하지? 안그래도 마음에 안들었는데 위험을 무릎쓰고 BIG보스의 영혼을 통째로 강탈해 버릴까? 아냐아냐 그랬다가 엔도미야의 제지가 들어오면 모든게 끝이다.

그렇다면 여기선 차라리...

"이건 정말 대박이군요, 빅보스님! 빅보스님의 탄생석 등급은 감정결과 SSS급인걸로 밝혀졌습니다. S급도 본적이 없는데 이건 정말 놀랄 노자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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