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오빠. 오빠가 혹시 탄생석 능력 등급에 따라 보상을 준다는 그 오빠야?"
"앙? 뭐라고?"
내가 그렇게 한참 프록시마 주민들의 혼백의 핵을 추출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v딸기곤듀v와 비슷한 나이대에 둥그스름한 단발이 아주 매력적인 미소녀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v딸기곤듀v가 그냥 또래중에 조금 예쁘장한 아이란 느낌이라면 이 단발 미소녀는 거의 걸그룹 센터를 맡아도 될정도로 미모가 발군이였기에 내 머릿속은 지우개로 지운듯 새하얘졌다. 하여 혼백의 핵과 관련된 고민은 온데간데없고 어떻게 하면 그녀를 따먹을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으로 뇌가 풀회전하기 시작했다.
"예, 바로 제가 인근에서 모험가들의 탄생석을 조사하던 NPC입니다. 실례지만 우리 아리따운 레이디께선 어쩐일 저를 찾으시는지요?"
"흐으응... 그랬구나. 아니 나는 사실 보상같은건 관심없는데 과연 이 세계의 주민은 내 탄생석 능력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서 말이야. 시시한 알파벳 나열은 관심없으니까 내 탄생성 능력이 정확히 어느정도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해줄 수 있어?"
"아 물론 가능하지요. 하지만 그전에 이렇게 노상에서 떠드는 것도 뭐하니 흑마술사 길드에 있는 제 집무실로 가시겠습니까?"
"뭐 그러든가. 생각해보니 나도 그편이 탄생석 능력을 발휘하기 더 편하겠네."
내가 은근슬쩍 팔짱을 끼며 단발 미소녀의 가슴 사이즈 견적을 내고 있을때 그녀가 의외로 흔쾌히 초대를 수락했다. 게임속이라 경계심이 없는건지 원래 가랑이가 헐렁한년인지는 집무실을 방문하면 알게될일이였지만 새삼 호기심이 생긴 나는 NPC 패널을 통해 상대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IIIIIIIl의 상태창]
-이제 막 심연의 대륙에 입성한 풋내기 모험가입니다.
-초보자 보호 기간이므로 사망 패널티를 무시합니다.
무력: F(0/16)
마력: F(0/16)
스텟 포인트: 0
허나 자신만만한 어투와는 달리 단발 미소녀의 상태창은 텅텅비다 못해 아예 갓 캐릭터를 만든 모험가나 다름없었는데 심지어 닉네임조차 바코드 형태라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총제적 난국인 상황. 물론 탄생석 능력의 등급과 게임 캐릭터 레벨이 꼭 비례하리란 법은 없었지만 사기적인 탄생석 능력을 지니고 있을 수 록 치트에 가까운 성장력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탄생석 능력이 전투에 무쓸모인 모험가들과 비교했을때 그들은 유니크 스킬을 하나 더 가지고 플레이 하는 셈이니 시너지가 맞는 직업만 고른다면 호랑이에 날개를 단듯 치고 나가리라. 그러면에서 봤을때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 베타가 오픈한지도 한달째인 지금 단발 미소녀는 레벨업할 의지가 없거나 최근에 시작한게 분명했다. 그마저도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거나.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흑마술사의 탑에 도착한 나는 단발 미소녀를 이끌고 강령술사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본인이 자신의 탄생석 등급을 감정받기를 원한다고 했으니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자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한번 레이디의 능력을 한번 보여주시겠습니까? 아참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통성명도 제대로 못했군요. 제 이름은 NPC변태사ㅅ... 이 아니라 옥사건이라고 합니다만 우리 아리따우신 레이디의 존함을 알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흐으응. 내 이름 말이야? 하양수란이야. 어차피 말해줘도 금방 까먹을테지만. 자 그럼 탄생석 능력 시전한다. 두눈뜨고 잘 지켜보라고. 물론 그것조차 곧 까먹게되겠지만."
딱!
스스로를 하양수란(아마도 현실의 본명으로 추정되는)이라고 밝힌 단발 미소녀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안그래도 사령안을 발동시켜 그녀의 혼백의 핵을 관찰중이던 나는 갑자기 주위 시계가 거꾸로 뒤집히기 시작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주르륵.
일종의 환술인가 싶어 사령안에 영력을 주입한 순간 안압이 높아짐과 동시에 양쪽눈가에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환술이길래 사령안으로도 꿰뚫어보지 못하는건가라는 생각도 잠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시계가 익숙한 풍경을 비추기 시작했다.
"오빠. 오빠가 혹시 탄생석 능력 등급에 따라 보상을 준다는 그 오빠야?"
그리고 거기에 익숙한 목소리까지 더해지자 나는 묘한 기시감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예, 바로 제가 인근에서 모험가들의 탄생석을 조사하던 NPC입니다. 실례지만 우리 아리따운 레이디께선 설마 시간 되감기의 탄생석 능력을 지니고 계신건가요?"
"흐으응... 그랬구나. 아니 잠깐만 내가 시간 되감기 탄생석 능력을 사용한걸 어떻게 알았어?"
"그거야 흑마술사 길드의 강령술사 집무실에 있던 제가 갑자기 이 골목길로 돌아오게 만들 수 있는 수단이 그리 많치는 않으니까요. 환술아니면 공간이동정도인데 사실 제가 환술에 아주 강력한 마안을 지니고 있어서 남은건 공간이동뿐. 하지만 만약 단순한 공간이동이라면 그 특유의 파동을 제가 느끼지 못할리가 없고 결정적으로 제가 이곳을 떠날때와 동일한 해와 그림자의 위치를 설명할 길이 없죠. 그렇다면 남은 경우의 수는 다소 믿기 힘들지만 시간을 되돌렸다고 보는게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흥! 별것도 아닌 내용을 가지고 대단한 추리랍시고 떠들기는. 그래 나는 타임리와인드의 탄생석 능력을 지니고 있어. 지금까지 그 어떤 NPC도 눈치채지 못한 사실인데 오빠는 뭔가 좀 다른가봐?"
"예, 뭐. 제가 다른 NPC랑 비교했을때 조금 남다르기는 하죠. 아무튼 공간의 힘도 아니고 시간의 힘을 다루는 초능력이라니 왈가왈부할 것 없이 최고 등급의 탄생석이라고 칭할만 하군요. 앞서 퀘스트 상에서 약속한대로 고위넘버링의 장비와 스킬북 그리고 대량의 골드가 포함된 선물보따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딴 데이터 쪼가리는 필요없다고 분명 말했을텐데. 정말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군. 리더가 알면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날 죽이려 들텐데. 에라, 모르겠다!"
딱!
하양수란의 핑거스냅이 또 한번 빛을 발했다. 나는 이번에야 말로 모든 일련의 과정을 두눈에 담아두기 위해 피눈물이 흐르는 와중에도 두눈을 부릅떴다. 혼백의 핵안에서 회중시계를 든 모종의 꼬마신사가 태옆을 감기 시작하자 주위 풍경이 또 다시 소용돌이처럼 뒤집히며 날 다른 곳으로 인도했다.
"낡은 마늘창 싸게 처분해요."
"이리의 숲 같이 사냥하러 가실 힐러님 구합니다!
"현실돈 받고 게임머니 파실분? 100:5200 비율 원합니다."
이곳은 흑마술사 길드건물 앞쪽의 유저시장쪽인가? 나는 청각에만 의존해 이 장소가 어딘지 추측해냈다. 하양수란의 타임리와인드(Time Rewind) 탄생석 능력에 끝까지 저항하는 과정에서 이번엔 피눈물을 흘리다 못해 눈알이 아예 터져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사령안이 아닌 사령안의 투영체가 된 게임 캐릭터의 눈알이 터진거라 포션을 때려부으면 시신경도 재생이 가능하고, 최악의 경우 그냥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방법도 있었기에 큰 문제는 아니였다. 오히려 눈알이 터지기 직전 하양수란의 혼백의 핵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어 큰 단서를 얻게 되었다.
일단 프록시마 주민들의 혼백은 지구인의 혼백과 구조자체가 틀렸다. 혼백의 핵에 거주하는 수상한 동거인과는 별개로 애초에 혼백 자체가 영혼석을 중심으로 한 언데드 회로와 유사한 구조를 띄고 있었다면 믿겠는가? 단언컨대 이런 일이 가능한건 적어도 세트나 오시리스같은 고위신격뿐이였다.
게다가 하양수란 개인 이전에 프록시마 주민들의 혼백 전부가 이런식이고 그게 탄생석 능력이란 힘의 원천이라면 본래 염라가 주재하는 윤회전생의 시스템 자체를 누군가 해킹했을 가능성도 다분했다. 단순히 호기심에 시작했던 탄생석 연구의 스케일이 터무니없이 확장되자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였다.
'설마 엔도미야는 이 모든걸 알면서 프록시마를 새로운 VOT 온라인 베타의 시험지로 선택한건가?'
이 넓디넓은 우주를 쥐락펴락하는 초월 인터페이스 엔도미야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모르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겠지. 새삼 엔도미야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 인공지능인지 깨달은 나는 이번 사건을 한층 더 신중히 접근하기로 했다.
혼백의 핵을 추출하느니 마느니하는 선택지같은건 처음부터 없었던셈치고 무기한 관찰 모드에 들어갈 생각이였다. 시체가 아닌 혼백에 언데드 회로를 까는건 나조차 듣도보도 못한 수법이였기에 모험가들의 혼백을 좀 더 면밀히 살피면 큰 공부가 되리라. 물론 그때마다 눈알이 터져나간다면 포션값이 적잖이 들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