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딸기곤듀님 이번 홍콩행 비행은 어떠셨습니까?"
"후우후우. 너무 좋았어."
"오호라 머리카락이 빨개질정도로요?"
"그, 그건 그냥 내 탄생석 능력이 발동한 것 뿐이야."
"탄생석 능력이라고요? 머리카락이 새빨간 색으로 변하는게 딸기곤듀님의 능력이라는겁니까?"
"아니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색으로 변하는건데 방금은 감정이 갑자기 치밀어서... 뭐야 무슨 그딴 탄생석 능력이 있냐는듯한 눈빛은. 별거 아닌것처럼 보여도 이 헤어컬러링의 탄생석이 얼마나 좋은 능력인데. 학교갈때 학생주임 선생님 앞에서는 갈색으로 해놨다가 교실 들어가면 금발로 바꾸고 완전 자유자재라고. 내 친구들이랑 아는 언니들은 염색값 굳어서 좋겠다고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게다가 밤에는 야광색으로 바꿀 수 도 있어서 완전 킹황짱!"
v딸기곤듀v가 애써 자신의 탄생석 능력을 포장해보려 애썼지만 애초에 현실의 무언가로 대체가 가능한 시점에서 그녀의 헤어컬러링의 탄생석은 그리 높은 랭크라고 할 수 없었다. 실제로 내가 튜토리얼 룸에서 만난 한 사회지리학 교사의 경우에도 자신의 지식을 A4용지만한 이미지 파일로 타인에게 전송할 수 있는 나름 엄청난 탄생석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가.
전투상황에서는 하등 쓸모없는 능력이라고 해도 강남8학군 1타강사의 뺨을 왕복으로 후려칠 수 도 있는 그 유니크함이야 말로 내가 프록시마의 탄생석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니 잠깐만요, 딸기곤듀님. 그런데 방금 감정의 격분때문에 우연히 탄생석 능력이 발동했다고 했습니까? 그러면 혹시 의식적으로 발동할 수 도 있어요?"
"응? 글쎄. 생각해본적 없는데 아마 되지 않을까?"
"뭔가 뜨뜨미지근한 반응인데 그거야말로 정말 대단한거 아닙니까? 현실의 능력을 게임속에서 사용하다니요. 이건 무슨 프로그래밍을 정교하게 한다고해서 가능한 문제가 아닌것 같은데."
"그런가?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탄생석관리청 데이터베이스에 사람들의 탄생석 능력이 등록되어 있으니까 딱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나. 그보다는 스킬북이랑 장비 아이템을 미끼로 여자 모험가를 유혹하는 너같은 난봉꾼 NPC의 존재 자체가 나는 더 의심스러운데? 솔직히 말해봐. 너 인공지능이 아니라 게임사에 고용된 알바생이지? 우리처럼 똑같이 VOT 접속 캡슐로 게임 로그인하면서 겉으로만 NPC인척 하는거지?"
"하.하.하! 그, 그건 그러니까... 아무튼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닙니다. 만약 이 심연의 대륙에서도 모험가님들이 탄생석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심연의 마왕을 처치하는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한번 시험삼아 머리색을 티한점 없는 백발로 바꿔보시죠."
"말돌리기는. 알았어, 사실 그건 나도 궁금하던 참이니까 한번 시도는 해볼게."
v딸기곤듀v가 눈을 감고 잠시 심호흡을 하는 사이 나는 재빨리 내 영혼과 동화된 사령안을 일깨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했다. 내가 우버리퍼의 눈깔을 후벼파서 사령안을 빼았은지도 언 10년. 중간중간 내가 한쪽 눈깔을 파먹었다가 다시 부활시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사령안과 내 영혼의 동화율은 특이점을 넘어설 수 있었다.
진'사령안 개안같은 경우야 사령안의 본체가 있는 아바타만 가능하다쳐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사령안의 본래 기능은 언제어디서든 사용 가능해진 것이다. 이른바 진짜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보아라라는 느낌이였는데 과연 v딸기곤듀v의 내면은 본인의 닉네임만큼이나 깜찍한 딸기공주 요정이...?
나는 v딸기곤듀v의 머리카락이 눈만큼이나 새하얀 백발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목격한 아주 특이한 장면에 두눈을 의심했다. 육체로 따지면 심장에 해당하는 혼백의 핵에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마술봉을 흔돌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탄생석 능력의 원천인듯 싶었다.
문제는 혼백의 핵조차 일반적인 영혼과는 궤를 달리하는데 그 안의 존재는 도저히 그 연원을 알 수 없다는 점이였다. 정령도 아니고 그렇다고 망령은 더더욱 아닌듯한 그 이질적인 존재는 백발 염색이 끝나자 까르르 웃으며 몸을 둥글게 말고 잠에 들었다. 그와 동시에 다시 눈을 뜬 v딸기곤듀v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어때? 그냥 백발도 아니고 완전 고급스런 느낌의 흰색이지? 미용실에서 아무리 탈색해도 이런 느낌은 절때 안나온다니까."
"예, 정말 예쁘네요. 그런데 혹시 머리색이 바뀌면 보지털도 같이 흰색으로 바뀌는겁니까?"
"에엥? 뭐라는거야 이 변태NPC가. 아 됐고 나는 창영 오빠랑 사냥 약속 있으니까 이만 가볼게. 요즘은 내가 훨씬 더 강해져서 거의 창영 오빠쪽에서 자꿀 나 부른다니까."
"아이고 조금만 더 놀다가시지."
내가 아쉽다는 말투로 v딸기곤듀v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쓸어내렸지만 그녀는 주섬주섬 다시 로브를 챙겨입으며 재빨리 자리를 떳다. 물론 나는 v딸기곤듀v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자 못내 아쉽다는 얼굴을 싹 지워버리고 고뇌에 빠져들었다.
오입질도 좋지만 탄생석에 관한 결정적 단서를 얻은 시점에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오는 모험가만 기다리는건 극히 비효율적인 행동이였다. 이미 모험가들의 커뮤니티 그러니까 프록시마 행성의 인터넷 상에서는 강령술사가 생각보다 그리 좋은 스타트 직업이 아니라는 것과 전직 NPC가 굉장히 음험(?)하다는 소문이 퍼져 생각보다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여 나는 임시로 '개인 사정으로 잠시 쉽니다' 문패를 걸어놓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일일히 모험가들의 탄생석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탄생석관리청 공무원도 아니고 낯선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서 당신의 탄생석 능력이 뭐냐고 캐묻는다면 경계할게 분명했지만 내게는 돌발 퀘스트라는 NPC만의 만능열쇠가 있었다.
유저들의 성향상 돌발 퀘스트라고 하면 자기만 뭔가 운이 좋은것 같고 보상도 혜자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기 때문에 아마 술술 불게 되리라. 그렇게 일련의 계획을 세우고 흑마술사 길드를 빠져나온 나는 이전과 달리 모험가들로 북적거리는 거리를 바라보며 타겟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낡은 마늘창 싸게 처분해요."
"이리의 숲 같이 사냥하러 가실 힐러님 구합니다!
"현실돈 받고 게임머니 파실분? 100:5200 비율 원합니다."
[돌발 퀘스트: 탄생석, 그것이 알고싶다]
-NPC변태사신 앞에서 탄생석의 능력을 발동하라!
-강령술사 전직교관 NPC변태사신은 모험가들의 본래 세계에서 사용하던 힘, 탄생석 능력에 관해 궁금해합니다. 심연의 대마왕을 무찌를 결정적인 첨병 역할을 할지도 모르는 당신의 탄생석 능력을 공개하고 푸짐한 보상을 받아가세요.
-위 퀘스트의 보상은 탄생석 능력의 등급이 높을 수 록 상향보정됩니다.
뭐 탄생석이란건 프록시마의 주민이라면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거니까 물색이라고 해봤자 한가해 보이는 모험가를 골라내는 것뿐이였지만 돌발 퀘스트를 작성할때는 다소 신중을 기했다. 왜냐하면 일단 퀘스트란 형태로 계약을 진행할 경우 유저야 퀘스트 포기라는 비상구가 있지만 NPC는 꼼짝없이 해당 계약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였다.
안그래도 v딸기곤듀v에게 아이템이랑 스킬북을 퍼주느라 재정상태가 형편없는데 괜히 덤터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튼 대충 퀘스트 일람 작성이 끝나자마자 지나가는 아무 모험가를 붙들고 앙케이트를 시작한 나는 프록시마엔 정말 별의별 탄생석 능력이 다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자신의 칼로리를 소모해 같은 칼로리의 쿠키를 만드는 쿠키쿡킹(Cookie Cooking)의 탄생석 능력서부터 자신이 직접 종이접기로 만든 조형물을 살아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리빙페이퍼(Living Paper) 능력까지! 어떤건 v딸기곤듀v의 헤어컬러링(Hair Coloring)보다 쓸모 없게 느껴지기도 했고, 어떤건 빼았을 수 만 있다면 빼았고 싶을정도로 대단한 탄생석 능력도 있었는데 한가지 공통점은 능력 사용시 사령안을 통해 이상현상이 목격됐다는 점이였다.
이 이상현상은 앞서 봤듯이 혼백의 핵안에서 모종의 존재가 기지개를 피듯 일어나 특정 액션을 취했다는 것. 아무래도 프록시마의 주민들이 말하는 탄생석이란 아무래도 혼백의 핵을 지칭하는듯 했고, 그 핵안의 존재야말로 탄생석 능력을 발하는 원천임이 분명했으니 심화연구를 위해선 핵(核)안의 령(靈)을 추출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짓을 엔도미야가 용납할까?'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에선 하찮은 산천초목조차 엔도미야의 눈과 귀가 될 수 있었으니 몰래 추출한다는 선택지는 불가했다. 지금까지야 그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탄생석 능력을 관찰하는 수준이였기에 아무런 제지가 없다손 쳐도 혼백의 핵을 건드리는건 목적이 어쨌건간에 대놓고 선을 넘는 행위였다. 그 즉시 캡슐 아이피가 차단되도 할말이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