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49화 (549/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세비앙 네가 어떻게 여기에..."

"흐음? 그건 제가 할말입니다. 추가로 인력을 보내준다고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 구제불능의 변태사신이 새롭게 내정된 강령술사 전직 NPC였을줄이야. 여신칼날단 일이란 것도 참 한가한 모양입니다?"

"그러는 너야말로 엔도미야를 직속에서 보필하느라 바쁜거 아니였나?"

"바보같은 소리를 하시는군요. 저는 엄연히 최고급 인공지능이 탑재된 슈퍼로이드입니다. 엔도미야님만큼 스레드를 수천, 수만개씩 분할할 수 는 없어도 이중, 삼중의 겸업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죠. 물론 본체에 탑재된 각종 중화기까지 사용할 순 없겠지만 시스템 관리권한을 활용하면 지금의 당신 정도는 얼마든지 처리 가능하다는걸 일단 알아두시고 옆의 두분과 인사하세요. 당신과 같이 이 흑마술사 길드에서 전직 NPC로 활동할 린다씨와 미스터 리자드씨입니다."

슈퍼로이드 퀼레뮤츠의 동생이자 엔도미야의 직속 시종이기도 한 세비앙이 우아하게 양손을 펼쳐 두 사람을 소개했다. 린다라고 이름붙여진 이는 예쁜 이름과는 달리 동화속에서 종종 등장하는 쭈글쭈글한 매부리코의 마귀할멈이였고 미스터 리자드는 이름 그대로 리자드맨 종족의 중년 남성이였다.

"키히히히히히! 엔도미야님의 직할 친위대인 여신칼날단 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미력하나마 저주술법을 전담하고 있는 린다라고 합니다. 강령술에는 이전부터 많은 관심이 있었으니 잘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미스터 리자드. 악마소환술법 쓸 수 있다. 언데드는 부정한 존재. 그걸 수하로 부리는 강령술사 너무 무섭다. 그리고 너랑 친하게 지내면 조상신들이 노한다."

뭔 개소리야 이 도마뱀 새끼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려는걸 간신히 참아낸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악마소환술법 그러니까 아크데빌(북두십성 유저중 일인)의 앙그라마이뉴와 비슷한 종류의 술법을 사용하는 녀석이 강령술은 사악한 술법이니 멀리해야 한다고 지껄이는건 똥묻은개가 겨묻은개를 더럽다고 피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같은 흑마술사 길드 NPC라고 해서 이런 근본 없는 놈들과 친하게 지낼 생각따윈 없었던 나는 구태여 역정을 내기보다는 그냥 겉치례식 인사를 건넸을뿐이였다.

"예예. 저도 저주술법과 악마소환술법에 관해서는 평소부터 관심이 많았답니다. 비록 우리의 본분은 유저들을 전직시키는 것이지만 시간이 된다면 각자가 지닌 술법적 지식을 교류해 보도록 하죠."

"흥! 유저들을 전직시키는게 우리들의 본분이다라... 어떻게 유저들을 전직시킬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잘도 떠드시는군요."

"글쎄. 내가 NPC가 아닌 유저였을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그냥 대충 NPC가 유저 머리에 손을 얹고 휘리릭 뿅! 하니까 알아서 전직되어 있던데?"

"겉보기엔 그랬을지 몰라도 그 NPC는 아마 전직용 시스템 창을 통해서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바로 그 전직용 시스템 창 사용법을 알려드릴테니 잘 귀담아들으세요. 두번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세비앙이 다각도로 홀로그램 화면을 띄워가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런 종류의 시스템 창에 익숙한 나는 그리 어렵지 않게 NPC에게 허용된 패널 기능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엔도미야가 바깥 세상에서 공수(?)해온 듯한 린다와 미스터 리자드는 다소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였다.

마치 어르신들이 스마트폰을 처음 개통했을대 마냥 어버버거리는 것도 잠시 술법사라는 존재가 기본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족속들은 아니였기에 금새 적응기에 돌입. 세비앙은 이내 시스템 창 설명을 끝내고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이미 여러번 당부의 말씀을 드렸지만 노파심에 한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외는 있겠지만 여러분들은 아마도 엔도미야님에게 목숨의 빚을 지고 이 가상세계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당연히 은혜를 아는 인간이라면 엔도미야님께서 부여하신 NPC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눈에 띄는 돌발행동은 삼가야겠지요. 또한 의식주 전반을 자체적으로 해결주십사 하고 활동반경을 4km정도로 풀어놨습니다만 너무 자주 흑마술사 길드를 비우진 말아주세요. 기껏 전직을 위해 찾아온 유저들이 헛걸음을 하게된다면 여러모로 곤란하니까요."

"우리가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마을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건 너무한 처사 아닌가?"

"시끄럽습니다, 변태사신. 아예 흑마술사 길드 건물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지 않은걸 다행으로 여기세요. 게다가 당신은 다른 NPC랑 달리 로그아웃도 가능하면서 뭐가 불만입니까? 괜히 엄한데 싸돌아다니면서 불란 일으키지 말고 얌전히 흑마술사 길드에 쳐박혀 있으세요. 그럼 이만 저는 다른 직업길드 NPC의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러 가보겠습니다."

일말의 여지도 주지않겠다는듯 뒤돌아선 세비앙이 잠시 멈춰서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변태사신 당신은 아직 NPC용 아바타 설정을 하지 않았군요. 그대로 둬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괜히 마을 근처의 고블린에게 맞아죽기라도 하면 귀찮으니까 임의로 레벨업을 해드리지요."

-레벨이 500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최대 레벨이 500으로 제한되었습니다.

-영력이 A랭크로 제한되었습니다.

-NPC용 설정 패널이 개방되었습니다.

-닉네임이 'NPC변태사신'으로 변경되었습니다.

[NPC변태사신의 상태창]

-NPC용 설정 패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력 랭크 리미트로 영력 스텟을 올릴 수 가 없습니다.

-정령왕관의 영향으로 어둠의 친화력이 Ex랭크가 되었습니다.

무력: F(0/16)

마력: F(0/16)

영력: A(???/512)

친화력[暗]: Ex(0/???)

스텟포인트: 500

세비앙의 손짓 한번에 갑자기 각양각색의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을 뒤덮었다. 튜토리얼 룸에서 바로 워프되어온 까닭에 1레벨 유저나 다를바 없던 내 아바타를 강화 시킴과 동시에 레벨과 능력 제한을 걸어 함부로 죽지도, 날뛰지도 못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새삼 이 VOT 온라인에서만큼은 GM들이 신이나 다를바 없는 권능을 행사한다는걸 깨닫고 입꼬리를 씰룩였다. 지구때와 마찬가지로 만렙이 1000인 이 세계에서 만렙을 500으로 제한했으니 지금 당장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얼마안가 금방 유저들에게 따라잡히고 말리라.

하지만 그 잘난 세비앙도 예상치 못한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정령왕관때문에 내 어둠속성 친화력이 Ex랭크로 보정되어 있다는 사실이였다. 강령술사인 내 영력 랭크를 A로 고정시키면 성장동력을 완전히 묶어 둘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어둠의 정령왕으로서의 힘을 활용한다면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아무튼 세비앙이 떠나자 린다와 미스터 리자드는 각자 자신들에게 할당된 보금자리를 꾸미러 떠났고 나 또한 강령술사용 접견실로 향했지만 그냥 한번 쓱 둘러보고 바로 탑 밖으로 향했다. 이 마을은 아직 꼬꼬마 수준인 모험가들이 오기엔 제법 레벨대가 높은 지역인지 마치 폐광촌을 연상캐하는 한적함이 느껴졌다.

'일단 정말로 흑마술사 길드 기준으로 반경 4km 밖을 벗어날 수 없는지부터 체크해볼까.'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쥐새끼 한마리 찾아볼 수 없는 마을 대로변을 홀로 내달리길 수십여분. 나는 마을 경계선쯤에서 마치 발에 자석이라도 달린듯 꼼짝도 하지 않는걸 발견하고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하긴 엔도미야가 100%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해도 이런 기초적인 부분에서 실수를 할만큼 녹록한 인사는 절대 아니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꼼수와 버그를 찾아내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 한국형(?) 유저의 종특이였으니 나는 발걸음을 돌려 그늘진 가로수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전에 시도해 본 것은 아니지만 정령왕관의 힘을 빌어 스스로를 정령화하기 시작했으니 이내 나는 가로수 그림자에 녹아들어 형체가 불분명한 어둠의 존재가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그닥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잊고 지낸 사실이지만 상급 어둠의 정령인 쉐도우 크롤러도 가능한 일을 어둠의 정령왕인 내가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 상태에서 가로수 그림자를 타고 마을 울타리 밖에 자리한 느티나무 그림자까지 그림자 도약을 시도하니 아니나 다를까 어떤 재약도 받지 않은채 마을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대로 계속해서 나무 그림자를 징검다리마냥 건너뛰어 아예 다른 마을로도 이동할 수 있을것 같았지만 나는 반경 4km의 제약을 극복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다시 가로수 그림자쪽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정령화도 풀어버렸다. 스스로를 정령화 시키는 작업은 처음이였기에 약간 속이 울렁거렸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절호의 함성을 내지르는 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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