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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이렇게 출입절차가 복잡한거야?"
-그대의 도시형전함 색향천월관의 주민들은 이미 모두 겪은 절차입니다. 조금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셨으면 좋겠군요. 용제성은 행성 자체가 광역결계에 둘러싸여 있는만큼 엄격한 출입통제가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옥사건 당신은 용제성으로 피난을 온 것 아닙니까? 당신 성격에 공손한것까지 바라지도 않지만 너무 오만방자한 것은 용납하기 힘들군요. 특히 장로 드래곤님들 앞에서도 그랬다가 기껏 정착한 지구 주민들이 쫒겨날지도 모릅니다.
"하! 이 우주에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이 용제성만 있는것도 아닌데 더럽게 비싸게구네. 해츌링을 구해주고 괴룡왕 바하무트를 무찌른 용사를 좀 더 성대하게 환영해줄 순 없는거냐고."
세 인어공주와의 뜨겁다 못해 타버릴듯한 밤이 엇그제 같은데 나는 벌써 수왕성을 떠나 긴 항해 끝에 용제성에 도착해 있었다. 수왕성의 바다 정화작업은 1, 2년으로 끝날 작업이 아니였지만 이미 10년치 언데드 기생충 샘플을 샨코 공주에게 넘겨준 뒤였으니 굳이 내가 이 황망한 바다에 머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솔다 공주와 스와레 공주가 다시 팔륜성으로 돌아간 뒤라면 더더욱. 하여 색향천월관의 이쁜이들을 다시 만날겸 용제성으로 향한 것인데 대기권에 진입하기도 전에 비취드래곤 앙그릿사가 별의별 딴지를 걸어오는게 아닌가. 역시 화장실 들어갈때 나올때 다른 것은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용도 마찬가지였는지 내가 그간 배푼 은혜는 모두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였다.
허나 현재의 태도가 어떻든간에 과거 앙그릿사가 내게 했던 약속은 드래곤의 언령 즉 용언으로 이루어진 구두계약. 그것은 인간으로 따지면 변호사 공증에 인감도장 100개로 도배를 한 정식 계약서보다 훨씬 더 구속력이 강한 맹약이였으니 사실상 확정된 미래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침대위에서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 이 파충류년아! 그때도 지금처럼 건방지게 굴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
그밖에 드래곤 나이트, 최용제가 끌고다니던 성룡(정신연령은 해츌링급)들중 암컷 개체에 해당하는 이지하다카와 세류도 내 버킷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사실 큰 관심은 없었다. 애초에 폴리모프조차 할 수 없는 녀석들인데다 설사 폴리모프가 가능하다한들 나이만 수백살이지 인간으로 치면 젖비린내 나는 꼬맹이나 다를바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렇게 앙그릿사가 모종의 술법으로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를 정밀 스캔하는걸 기다리길 수시간여 마침내 선미를 둘러싼 녹색빛을 끝으로 모든 비취보석이 그녀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제서야 용제성에 들어갈 수 있게 됐나 싶어 내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썩이는데 앙그릿사가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를 통해 말했다.
-과연 아케인족의 고대유산답게 명불허전이군요. 제 전매특허인 보석마법을 사용했는데도 엔진과 주포의 핵심 설계부분은 탐색이 불가능했습니다. 혹시나 그럴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 핵심설계 부위에 아직 어린 해츌링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세균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기야스를 타고 직접 용제성에 상륙하는건 힘들겠군요.
"뭐야 그래서 시간만 잔뜩 끌어놓고 이제와서 들여보내주지 않겠다는거야?"
-그럴리가요. 기야스는 용제성의 위성인 용의 꼬리에 주차시켜놓고 옥사건 당신만 들어오시면 됩니다. 기야스 자체의 보안시설도 있겠지만 용의 꼬리에도 용제성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견고한 광역결계가 설치되어 있으니 누가 훔쳐갈 걱정은 하지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러면 나보고 용제성에서 또 다른 교통 수단을 구하란 말이야? 안그래도 지구보다 반지름이 2배에 면적은 그보다 곱절은 더 넓은 곳에서? 아 정말 귀찮게시리 진짜."
-당신이 망령을 부려 자유자재로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다는걸 압니다. 그러니 어린아이처럼 투정부리지 마세요. 아 맞다. 그리고...
"아 또 무슨 절차가 더 있는건데!!"
-이건 본래 정식절차는 아닙니다만 용제성을 다스리시는 최고위급 장로인 엘더 드래곤 세분께서 당신을 보고싶어하십니다. 그러니 용의 꼬리 위성에 기야스를 주차할겸해서 그곳에 건축된 신전으로 찾아와주세요. 몇가지 질문대답이 오고간 후에 바로 용제성 내륙으로 워프시켜 드리겠습니다.
"뭐라고? 용제성을 다스리는 엘더 드래곤? 용제성의 주인은 앙그릿사 너 아니였어?"
-그럴리가요. 저는 그저 엔도미야님에게 용제성을 수호할 의무를 건네받았을뿐 용제성을 관리하시는분들은 따로 있습니다. 하나같이 만살은 우습게 넘으신 분들이니 부디 무례를 범하지 마시길 다시 한번 당부드립니다. 그럼 이만.
라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앙그릿사와의 영상통화가 끝이 났다. 만약 그녀의 말대로 지구로 따지면 달에 해당하는 위성 용의 꼬리에 신전이 존재한다면 무중력+무산소 상태일게 분명한데 참으로 불친절한 안내가 아닐 수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라도 빨리 아야사를 필두로한 색향천월관의 애첩들이 보고싶었던 나는 재빨리 기야스를 출발시켰다. 과연 용제성을 둘러싼 기다란 성운 고리 위에 유독 도드라진 소행성 하나가 미끄럼틀을 타듯 천천히 공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외곽 카메라를 확대해 살피니 확실히 내가 달에 지었던 신전과 양식은 다르지만 분명 인간 아니 용의 손길이 닿은듯한 건축물이 보였다.
아마 저곳에서 로마의 삼두정치도 아니고 세명이서 용제성의 제반사항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는 엘더 드래곤 3마리와 접선시킬 모양인데, 만살이나 쳐먹은 주제에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나를 원격으로 만나 면접까지 보겠다는건지 모를 일이였다. 마 자신 있으면 직접 얼굴까고 이렇다 저렇다 하던지 말이야.
어쨌든 기야스를 주차시키기 위해서라도 용의 꼬리로 향해야 했으므로 나는 서둘러 항로 시스템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용제성의 크기도 질량도 지구의 곱절이였으므로 당연히 중력도 강했지만 기야스는 어렵지 않게 운항 항로를 조절해가며 스무스하게 용의 꼬리 위성에 안착했다.
'오호라 신전 주위로 제법 재밌는 결계가 쳐져있군.'
그런데 멀리서 외곽카메라로 볼때는 보이지 않았던 무지개빛깔의 반구형 결계가 신전 주위 반경 250m에 걸쳐 펼쳐져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기야스를 해당 결계 근처에 배치시킨 후 격납고를 통해 결계안으로 뛰어드니 신기하게도 그 결계안쪽만큼은 산소 및 중력이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신전 외벽에 그 흔한 크랙하나 없는걸 보면 혹시 모를 외부 소행성 충돌까지 막아주고 있는게 분명했다. 아무튼 무기호흡이 불가능한 방문객을 위한 나름의 친절한 배려가 안배되어 있음을 확인한 나는 포부도 당당하게 신전안으로 입성했다.
보통 신전이라함은 모종의 신을 숭배하기 위한 상징적 건축물이였지만 이 신전에는 신과 관련된 물건은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그 흔한 조각상 하나 없이 용머리 문양만 가득했는데 어쩌면 드래곤들은 자기 종족이야말로 신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서 자가 숭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신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술법원진에 도착했다. 아마도 이 술법원진이 용제성 내륙으로 워프를 시켜줌과 동시에 엘더 드래곤 3인방과 원격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리라. 굳이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뻔한 일이였기에 나는 의심없이 그 술법원진 위로 올라섰다. 아니나 다를까 전면에 떠오르는 파충류 특유의 세로로 째진눈 세쌍.
-그대가 여신칼날단원 서열 27위 아크리퍼 옥사건인가?
"이봐 미안한데 그거 완전 옛날 순위니까 갱신 좀 해줄래? 최신정보에 민감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뒤쳐지지는 말아야지. 누가 뒷방 늙은이들 아니랄까봐 말이야.
-앙그릿사가 말했던대로 꽤나 오만방자한 성격이로군. 감히 우리 엘더 드래곤 3인방에게 뒷방 늙은이라는 칭호를 사용할줄이야.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니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 하지만 나 골드 드래곤의 수장 하르마게돈의 이름으로 부탁 아니 명하건대 그대가 용제성에 들어왔을때 우리를 욕보일지언정 절대로 건드려선 안되는 상대가 있네.
"절대로 건드려선 안되는 상대? 설마 그쪽 뒷방 늙은이들보다 더 나이많은 드래곤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건 아니겠지? 미안한데 나는 나이가 만살이든 이만살이든 딱히 신경 안쓰거든."
-우리 엘더 드래곤 3인방보다 나이가 많은 드래곤이라니 쉽게도 말하는군. 그런 고룡은 끽해봐야 현룡 메기도 정도밖에 없는데다 심지어 현재는 행방불명상태라네. 내가 말하는 대상은 그게 아니라 태어난지 얼마안되는 해츌링들을 말하는 것일세. 이제 살날이 얼마남지 않은 우리와 달리 용제성과 드래곤 종족의 운명을 이끌고 나갈 미래의 씨앗들. 그 아이들을 건드는 것만큼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소리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