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먼저 간다. 마중은 필요 없어.'
'어라? 사저, 저도 살짝 허리가 뻐근할정돈데 멀쩡하게 제발로 일어나셨네요.'
'내가 기마자세 훈련만 이십년 넘게 해왔어. 고작 그런... 추잡한 일로 몸져 누울까.'
'아하 그 휼륭한 질조임의 원천이 바로 기마자세 훈련이였군요. 그런데 사저, 섹스는 추잡한 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행위에요.'
'하! 네가 한짓거리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아무튼 앞으로 똑같은 호사는 없을거다. 만약 내가 다시 너에게 생사결 내기를 건다면 그땐 정말로 옥사건 네놈을 죽일 오의를 완성한 뒤겠지.'
'설사 그렇다해도 저는 내기를 수락할거에요. 사저와의 하룻밤이 너무나 짜릿했거든요.'
용린은리 사저는 내 마지막 말에 대답하는 대신 코웃음을 치며 그대로 수상비를 사용해 무인도를 떠났다. 그렇게 홀로남은 나는 어젯밤 격렬했던 정사의 여파로 파헤쳐진 모래사장을 적당히 손으로 정돈한 뒤 VOT(Vaccine Of Thgins) 단말기를 이용해 피바다의 샨코 공주를 호출했다.
뜬금없이 왜 샨코공주를 부르는가 싶겠지만 본래는 좀 더 일찍 만날 예정이였던걸 용린은리 사저가 뜻밖의 내기를 제안해온 탓에 잠시 미뤄둔 것이였다. 누가 인어공주 아니랄까봐 디파일러 퀸, 엑시아 여왕의 사후 나와 브루고뉴 다음으로 가장 앞장서서 수왕성 정화에 매진하고 있는 그녀는 요즘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일단 첫번째로 내게서 언데드 기생충 샘플을 받아다가 다이빙비틀(Diving Beetle)로 수왕성 바다 깊숙한 곳까지 잠수해 들어가서 방생하는 일, 두번째로 디파일러 시체와 플랑크톤만을 먹는다는 조건으로 수왕성에서 살기로한 계왕고래를 감시하는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파일러 룩처럼 사체의 크기가 큰 경우에는 직접 함선에 실어 우주밖에 내보내는 일 모두 그녀 정확히는 레드 파이렛 해적단이 전담하고 있었다.
다른 일은 둘째치고 세번째 일은 비용도 비용인데다 바다 대신 우주를 더럽히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샨코 공주는 딱히 게의치 않는듯했다. 하긴 인공위성같은걸 쓰는게 아닌 이상에야 우주 쓰레기가 크게 문제될 일은 없을테니. 아무튼 그렇게 바쁘다 못해 손이 10개라도 모자른 샨코 공주를 내가 호출한 이유는 셰오 더 큐피트에게서 뜻밖의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였다.
'어둠의 왕이시여 간곡히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심각한척 굴어봤자 안속아. 그래봐야 또 어디사는 갑돌이의 첫사랑이 갑순이였습니다같은 별로 알고싶지도 않은 이야기만 신나게 떠벌릴거잖아.'
'오호호! 역시 어둠의 왕께서는 눈치가 빠르시군요. 뭐 번거롭게 여기실 수 도 있겠지만 고작 최하급 어둠의 정령에 불과했던 제가 갑자기 최상급 어둠의 정령으로 진화한 셈이니 이것저것 실험차 최대한 다양한 인간군상들에게 능력을 시험해보고 있습니다.'
'뭐 시험해보는거야 좋다 이거야. 왜 그런 사소한 일까지 나한테 일일히 보고하는거냐고. 그보다 아발란체쪽의 상태는 어때? 셰이드 크롤러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부화자체는 끝나다고 하던데.'
'흐으음. 아발란체양 말입니까. 확실히 출신성분부터가 남달라서인지 같은 어둠의 최상급정령이라도 저와는 남다른 기세를 지니고 있더군요. 물론 어둠의 속성과는 상극인 성검의 정령 출신인지라 적응기간이 조금 필요해 보이긴 했지만 완전히 각성할 경우 저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전투력을 뽐낼게 분명해요. 정말이지 질투나게시리. 아참 그러고보니 그 샨코라는 이름의 인어공주도 주인님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는거 아세요? 세상에나, 세상에나 그 여자의 첫사랑이 바로 주인님의 애첩리스트중 한명인 스와레 공주였던거 있죠. 동성간의 사랑임에도 플라토닉과 에로스의 비율이 반반이라서 놀랐답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랑의 형태도 다양한가봐요. 오호호!'
타인의 감정 그중에서도 희노애락의 애(愛)에 한정하여 특출난 감응 능력을 지니고 있는 셰오 더 큐프티가 전해온 놀라운 소식. 그 소식을 듣고 처음엔 그러려니 했던 나였지만 이내 내가 생각하고도 깜짝놀랄만한 계획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팔륜성에 있는 이솔다 공주와 스와레 공주를 불러 2인용도 아니고 3인용도 아닌 4인용 섹스 게임을 하는 것이였다. 3명의 인어공주와 동시에 동침한다. 이는 아마 수왕성에 인어라는 인류가 탄생한 이후 그 어떤 수컷도 이뤄내지 못했을 위대한 위업일터.
그러한 사실을 상기할때마다 용린은리 사저의 생보지에 잔뜩 좆물을 뿌린지 얼마나 됐다고 자지가 불끈거린다. 그리고 달아오른 자지가 채 식기도전에 무인도 근처의 해안에 잠망경이 떠오르더니 샨코 공주가 고무보트를 타고 상륙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왔군 그래. 설마 내가 용린은리 사저랑 응응하는 모습을 칠망경으로 훔쳐보고 있던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마침 근처에서 해초 정화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던 것 뿐입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아니 사실 나야 훔쳐봐도 딱히 상관없긴 하지만서도. 그래서 내가 이전에 했던 제안은 충분히 숙고해봤나?'
'예, 몇날며칠 고심해봤지만 역시 수왕성에 다시 동해빙궁과 북해빙궁의 세력을 들이는건 어려울것 같습니다. 수왕성은 이제 인어들의 행성이 아닌 레드 파이렛들의 것이다. 그게 바로 제가 그들을 해적단에 영입하면서 굳게 약속했던 것이였으니까요.'
'나는 디파일러들을 상대로 끝까지 투쟁했던 그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다고봐. 그럼 그건 그렇다치고 내가 했던 두번째 제안은? 설마 까먹었다고 할셈은 아니겠지?'
'물론 그 두번째 제안도 열심히 고민해 봤습니다만...'
'봤습니다만? 혹시나 싶어서 다시 한번 설명하지. 얼마 뒤면 이솔다 공주와 스와레 공주를 실은 구축함 한척이 수왕성에 도달할꺼야. 그때가 되면 샨코 공주는 그녀들과 같이 나랑 4P 섹스를 한다. 물론 그 섹스는 난잡한 난교가 아닌 수왕성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해낸 용사를 위로하는 숭고한 의식이 될거야. 당연히 성교 방식도 무작위가 아닌 정해진 시간마다 1:1 로테이션으로 돌아갈거고 남은 두명이 여자끼리만의 은밀한 즐거움을 맛볼지 말지는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겠지. 자 이만하면 복습은 충분하고 어서 결론을 내려야지?'
내가 음흉하기 짝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샨코 공주를 독촉했다.
'혹시나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제가 그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겁니까? 더 이상 수왕성의 정화 작업을 돕지않으실겁니까?'
'그럴리가. 수왕성 정화작업은 이미 너와의 약속을 넘어서 브루고뉴와의 협정이 되버렸다. 이제와서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꿀 수 는 없는 노릇이지.'
'그렇다면...'
'샨코 공주 네가 거절하면 딱히 별거없어. 그냥 4인용 섹스게임이 3인용 섹스 게임이 될뿐이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이미 나와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이솔다 공주와 스와레 공주가 내 제안을 거절할리는 없으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그 숭고한 의식에 서해빙궁의 인어공주로서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제가 남자혐오증이 있다곤 하나 수왕성을 구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않고 희생하신 옥사건님에게 일말의 은혜라도 갚을 수 만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후후후.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럼 그때가서 또 보자고. 한창 바쁠텐데 어여가봐.'
* * * *
거기까지 그간 있었던 사건사고들의 회상을 얼추 끝낸 나는 체스판이 더 이상 손쓸 수 없을정도로 불리한 형국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장기나 체스같은 게임에 이렇다할 소양이 없는 나였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건 괜시리 자존심이 상한다.
하여 어둠의 정령력을 빌어 검은 체스말의 형태를 투영해낸 나는 그 말을 뻔뻔하게도 화이트 킹의 바로 옆에 배치하며 체크메이트를 선언했다. 그러자 브루고뉴는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짓더니 너무나 깔끔하게 패배를 선언해 버렸다. 이 체스 게임의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있던건 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였다.
"시간 때우기도 이만하면 쏠쏠했던 것 같군. 그래서 옥사건 자네는 지금부터 뭘 할 생각인가?"
"나말이야? 아무래도 샨코공주와 함께 이제 곧 수왕성에 도착할 동해빙궁과 북해빙궁의 인어공주님들을 마중나가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
"흐음. 본래 이 수왕성의 토착민이였던 이들의 리더를 말하는건가? 한때는 인어공주였지만 지금은 레드 파이렛 해적단의 선장인 샨코 공주가 그들과 접촉한다면 영유권 문제 때문에 다소 껄끄러워지겠구만. 뭐 그런 사사로운 인간사는 옥사건 그대가 알아서 잘 처리하리라 믿고 나는 수왕성의 정화에만 힘쓰도록 하지."
"아아 맡겨만 달라고. 내가 어련히 잘 해결하지 않겠어? 키키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