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29화 (529/599)

<-- -->

엑시아 여왕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사리카야가 지나치게 앞뒤 생각안하고 저돌적인 타입이라면 그녀는 반대로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신중한 타입인 모양이였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행성을 수십개나 집어삼켰다면 디파일러 간부들이 이렇게 강한 것도, 세명씩이나 존재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바는 아니였지만 거기서 또 따따블로 간부들이 불어난다는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

뭔가 약점이 있을것도 같은데 지금 상황에선 한가하게 탐색전이나 하고 있을 틈이 없었기에 나는 초조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물의 궁전쪽으로 피신한 용린은리 사저가 VOT(Vaccin Of Things) 단말기를 통해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야 옥사건! 네가 후퇴하라고 해서 일단 물러났는데 뭔가 작전은 있는거겠지?

"글쎄요. 이걸 작전이라고 해야할지 아닐지는 후세의 평가를 받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개소리야! 헛소리 작작하고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바로 말해.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 해도 저 많은 디파일러 간부들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어머어머 용린은리 사저 지금 저 걱정해주는..."

-나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 네가 혼자서 고독한 히어로 흉내를 내든 말든 내 알바 아니지만 차라리 싸우다 죽는게 낫지 전황이 불리하다고해서 사제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불명예를 안고 싶지는 않다. 그게 아무리 천방지축 사고뭉치에 사저의 가슴을 훔쳐보는걸 좋아하는 변태 사제라고 해도 말이야.

"사저도 참 히어로 놀이라니 제가 그런 타입이 아니라는거 아시잖아요. 뭐 그리 간단히 죽을 생각은 없으니 브루고뉴한테 물의 대결계나 다시 발동해 달라고 전해주세요. 눈이 멀정도로 화려한 불꽃놀이를 벌일 생각이니까."

수왕성을 점령하는 척 하다가 저승문으로 도망쳤을 무렵 엑시아 여왕(인줄 알았던 젤피)에게했던 대사를 떠올리며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상대는 압도적인 전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공격해 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뒤집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였으니 주문영창할 시간만 주어진다면 기적을 발할 수 있는게 바로 고위술사의 존재의의가 아니겠는가. 물론 내가 이번에 쏘아올릴 폭죽은 주문영창이라기 보다는 원초적인 마력공정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이매망량(魑魅魍魎) 제 3형 괴화정령(怪火精靈) 기간틱 레이스(Gigantic Wraith)

이매망량이라는 풍선에 어둠의 정령력을 한없이 불어넣는다. 언뜻보면 지극히 단순하기 짝이 없는 마력공정이라 별 위력이 없을것 같지만, 일전에 디파일러 킹 긴고를 그로기 상태까지 몰아간 위력적인 기술이였다. 거기다 현재 어둠의 정령왕관까지 갖춘 지금 괴화정령을 다루는 실력은 이전과 비할바가 아니였으니 처음엔 주먹만 하던 데스벌룬(임의로 붙인 기술명)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작은 동산만 해졌다.

뒤늦게 위험을 감지한 샤힌외 로열나이트 삼인방이 나를 견제하러 왔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시전자인 나조차 중단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뭘 어쩌겠는가. 결국 데스벌룬(Death Balloon)이 폭발하면서 막대한 음에너지의 파동이 근방 일대를 뒤덮었다. 졸지에 네크로필리아도 폭발에 휘말리게 됐지만 지옥불 구덩이에 홀로 떨어져도 살아남을 녀석이였기에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자 그럼 이번 그물에 물고기가 몇마리나 잡혔는지 한번 확인해볼까?'

자욱한 암운이 걷히고 처음 실험해 본 것치곤 꽤 톡톡한 성과를 이룬 데스벌룬의 잔해가 디파일러들의 동체와 함께 나뒹굴었다. 물론 그중에 내가 원하던 엑시아 여왕의 것은 없었으니 이미 꽃게여장군의 비호를 받아 버블 프리즌(Bubble Prison)안에서 차분하게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중이였다.

반면에 가장 전면에 나섰던 로열나이트들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있었는데 그나마 디파일러 특유의 재생력 덕분에 그럭저럭 버티고는 있었지만 본래 전력을 십분 발휘하긴 힘들듯 싶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가장 성격이 불같은 오르카니우스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오르카니우스 죽어도 싸우다 죽고 싶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거 싫다! 어서 오르카니우스한테 공격권 줘라!" x 3

"신 복어대장군 여왕님께 감히 아뢰옵니다. 꽃게여장군과 힘을 합하고도 저 강령술사를 당해내지 못한 신이 할 말은 아니겠으나 여기 있는 전력이라면 저 강령술사는 말할 것도 없고 스고우까지 처단할 수 있을터. 과감한 용단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x 3

"킥킥킥! 뭐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여왕님이 좋으실대로 하시지요. 하지만 다른 것과는 별개로 저 옥사건이란 자만큼은 제 샤크티스로 잘근잘근 씹어삼키고 싶었는데 참 아쉽군요." x 3

디파일러 로열나이트들의 각양각생의 의견을 내놓았지만 요는 더 이상 지지부진한 탐색전은 그만두고 제대로 한판 붙고 싶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엑시아 여왕의 신중함은 도를 넘어 강박증에 이르렀는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좋다,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자들은 수왕성에 남아도 좋다. 하지만 본 여왕은 앞서 말했듯이 최소한의 호위병력만을 이끌고 다른 행성으로 갈 것이다. 만약 너희들이 수왕성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겠지만 만약 실패한다고 해도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또 다시 부활시켜주마. 늘 그래왔던 것처럼."

"뭐라고? 아니 아무리 부활이 가능하다지만 그런 무책임한 발언이 어디 있..."

"오르카니우스 사냥의 시간이다!" x 3

빠아아악, 빠아아악, 빠아아아악!

엑시아 여왕이 대놓고 부하들을 버리겠다는 선언을 하자 당황한 내가 딴지를 거려는 것도 잠시 전투신호가 떨어지자 누구보다 재빠르게 오르카니우스가 선제공격을 해왔다. 그동안 숫적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변변찮은 공격 한번 해보지 못한 설움을 풀려는지 녀석은 마치 나를 당구공마냥 삼단쿠션을 때려버렸다.

그와중에 복어대장군과 샤힌까지도 서슬퍼런 눈빛으로 오르카니우스와 바턴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자 나는 사흉성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디파일러 폰같은 잡졸이 아닌 어느정도 준수한 전력을 갖춘 디파일러 로열나이트들에게 협공을 당했을때의 심리적 압박감이란 그만큼 이루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엑시아 여왕이 꽃게여장군과 몇몇 디파일러 분대를 이끌고 수왕성을 아예 뜨려고 작정했다는 점이였으니, 설마 계왕고래조차 버리고 행성이주를 강행할거라곤 꿈에서조차 생각못했다. 이래서야 아군을 물의 궁전으로 물린 의미(본래는 데스벌룬을 남발해 소모전을 펼친뒤 상대가 최대한 약해졌을때 아군을 다시 호출하려했다)가 없어진 셈이였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단단히 떨어진 셈이였다.

"오르카니우스 네이놈! 혼자서 공을 독차지할 셈이냐?"

"오르카니우스군 혼자서 날뛰는건 좋지만 다리 하나정도는 남겨주시라고요. 제가 잘근잘근 씹어먹으며 화를 삭힐 수 있게 말이죠."

"이것들이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 옥사건님을 상대로 그렇게 여유를 쳐부렸다간 강냉이가 전부 다 털리는 수 가 있어!"

얼티밋 언데드 폼 제 3형 삼위일체(三位一體) 아크네메시스(Arcnemesis)

나는 일단 오르카니우스만이라도 떨쳐내기 위해 아크네메시스 모드를 시전했다. 트리플암스 상태가 아닌 오르카니우스라면 아크네메시스 모드만으로도 충분히 힘싸움이 가능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저 다른 디파일러 로열나이트들을 상대로 피격면적이 늘어나기만한 꼴이였기에 나는 사령안의 영압을 끌어올렸다.

진'사령안 개안(開眼) ~카마이타치의 새벽~

그러자 내 손에 죽음을 당한 이들의 명부가 촤라락 넘겨지며 낯익지만 좀처럼 손이가지 않는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그 이름은 바로 디파일러 킹, 마애혈불 긴고. 같은 디파일러 퀸한테 스토킹 짓을 하다가 역으로 살해당한 비운의 사나이(?)가 수년이 지난 지금 수왕성에서 다시금 재림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최후의, 최후의 상황에서도 이녀석만큼은 불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녀석의 능력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군.'

'여, 여기는 어디지? 나는 분명 죽었을텐데...'

'죽음의 왕이자, 주인이자, 아버지인 나 옥사건의 이름으로 명한다. 죄인 긴고는 내 명을 따라 간악한 디파일러 무리를 섬멸할지니.'

'옥사건? 옥사건? 네 이놈 옥사건, 감히 사리카야를 현혹해 본왕을 죽음으로 몰고간 녀석이 죄인을 운운해?'

'이봐 긴고, 한가지는 짚고 넘어가자. 내가 널 죽음으로 몰고간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지만 말이야 사리카야를 현혹한건 아니지 임마! 오히려 같이 널 죽여달라고 도움을 요청한쪽이 누군데? 그리고 진짜로 사리카야를 현혹해서 그 몸까지 빼았은 디파일러 퀸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날 탓하는건 아니지.'

'다른 디파일러 퀸이 사리카야의 몸을 빼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상세히 말해봐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