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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카야의 목소리는 맞지만 어딘지 모르게 소름끼치는 말투가 오금을 간지럽힌다. 익히 우려했던 사태긴 했지만 설마 엑시아 여왕이 이토록 간단히 사리카야의 몸을 빼았을줄은 몰랐기에 나는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쿠자르의 몸에는 언제 기생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이매망량을 부려 일단 쿠자르부터 불러들였다. 목이 쉴새라 광소를 터트리던 사리카야 아니 엑시아 여왕은 예상밖의 상황전개에 벙찐 스고우와 브루고뉴를 뒤로하고 자기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으니 이미 단물 빠진 껌인 쿠자르에게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는듯 했다.
"쿨럭쿨럭!"
"야 임마 사리카야를 지켜달라느니 어쨌느니 입이 닳도록 떠들더니 이게 뭐야? 무슨 트로이 목마도 아니고 주인 한테 그런 끔찍한 기생충을 옳기면 어쩌자는거냐? 눈 한번 딱감고 혀깨물어서 자살하는게 그리 어렵디?"
"이, 이 빌어먹을 옥사건 녀석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정도가... 쿨럭쿨럭! 나도 수백, 수천번이나 그런 상상을 했다. 내가 지금껏 연마해온 종속마력기관으로 그 간악한 엑시아 여왕을 두토막 내는 상상을! 하지만 의식이 점거당한 상태에선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가 없었다. 그렇게 시한폭탄을 안은채로 주군의 곁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무력감을 네놈이 알기나 하냔 말이다!!"
"글쎄? 나는 주군같은건 없는데다 뒤통수를 맞을바에는 먼저 치자는 주의라서 그런 기분 잘 모르겠는데? 아, 됐고 도대체 언제 엑시아 여왕이 네놈의 혓바닥을 대신하고 있었는지나 말해봐. 설마 내가 샤힌 녀석을 처음 만났던 그때는 아니겠지?"
"쿨럭쿨럭! 그 설마가 바로 정답이다. 옥사건 네녀석이 난데없이 도그파이트 전함의 작전회의실에 등장했다가 또 난데없이 사라졌을때 샤힌 녀석이 나와 독대를 요청했다. 심히 의심스러운 행동이였지만 녀석이 야욕을 드러낸다면 차라리 나를 희생양으로 사리카야님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어 응했지. 바로 그때 샤힌 녀석이 뜬금포로 첫눈에 반했다며 내게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면 내가 경계할게 뻔하니 연막 작전을 펼친거겠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이였지만 그 당시에는 당황해서 제대로 대처할 겨를이 없었다. 결국 샤힌의 입에서 튀어나온 엑시아 여왕에게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지."
거기까지 설명을 끝낸 쿠자르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옥사건 네녀석이 지켜본 그대로다. 그리고 이전에도 했던 이야기지만 사리카야 여왕님을 구할 수 있는건 아무래도 너뿐인것 같군. 사나이대 사나이로 부탁하마! 부디 사리카야님을 엑시아 여왕의 마수에서 구해다오!"
"흐으음, 이제와서 사리카야를 구해달라고? 그녀의 몸에 엑시아 여왕이 침투한 순간 이미 게임오버 아닌가? 의식이 점거당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메."
"그건 내가 디파일러 로열나이트에 불과했기 때문이지. 같은 디파일러 퀸인 사리카야님이라면 지금 이 순간도 의식의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실거다."
"뭐 그건 그렇다치자. 저기 스고우 녀석이 뻔히 있는데 나한테 고개를 조아리는건데? 내 성격 뻔히 알면서 말이야."
"그건... 야미도엔님이 설치한 법칙결계때문이다. 동족상잔을 방지하기 위해 디파일러 퀸과 킹에게는 모종의 결계가 설치되어 있다는건 옥사건 너도 알겠지. 그 결계가 발동하는 조건에는 동족상잔 말고도 한가지가 더 있다. 바로 반신타락자가 디파일러 퀸과 킹을 공격할때다. 디파일러가 태어난지 얼마 안됐을때 약육강식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결계가 지금껏 남아 있는 셈이지."
"아하! 그래서 긴고를 토벌할때 스고우가 참전하지 않았던 거구만."
나는 어느샌가 다시 인간 형태로 돌아온 스고우가 들으라는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허나 스고우는 망연자실한 태도로 하늘을 올려다 볼뿐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번 작전의 실패를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고 크게 자책하고 있는 모양이였다.
"좋아, 이제 전후사정은 대충 알겠어. 하지만 설마하니 이 옥사건님께서 맨입으로 그런 위험한 임무를 도맡을거라 생각한건 아니겠지?"
"원하는게 있다면 뭐든지 말해봐라. 이 보잘것 없는 목숨까지 받칠 준비가 되어 있으니."
"하! 목숨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내게는 디파일러 로열나이트의 목숨값정도야 쿠자르 네말대로 보잘것 없기 그지 없다. 하지만 네 충성심에는 나같은 냉혈한조차 감동할 정도니 퍽 탐이 난단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모든 싸움이 끝났을때 너를 내 언데드 수하로 만들겠다 그 말이야. 안그래도 디파일러 간부급의 종속마력기관 샘플을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는데 아주 잘된 일이지."
"...수긍하겠다. 네가 사리카야님을 구해주기만 한다면 백년이고 천년이고 충성을 다받치겠다. 설사 그게 사리카야님에겐 배신으로 비친다 하더라도."
"뭐 좋아. 굳이 계약서까지 쓰지는 않겠지만 보고 듣는이가 많다는걸 알아둬라. 그리고 뒤늦게 말을 바꾼다 한들 내가 가만히 넘어갈 상대가 아니라는 것도. 그럼 이만 실례하지."
쿠자르에게서 확답 아닌 확답을 받아낸 나는 서둘러 엑시아 여왕이 향했던 곳으로 향했다. 가면서 뒤를 슬쩍 돌아보니 때마침 브루고뉴가 봉신진의 영향에서 벗어난 참이였다. 허나 대수검(大水劍)을 휘두르던 위엄 넘치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눈을 감은채로 명상에 잠긴 그는 딱히 스고우를 공격하기는 커녕 항의할 의사조차 없는듯했다.
이것이 바로 엔도미야의 질서, 야미도엔의 혼돈과는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정령신들의 중용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어떤면에선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저렇게 세상만사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모드로 살아간다면 식물이랑 다를바가 뭐가 있단 말인가. 거기다 이번 전쟁엔 물의 정령왕 이피로스의 안위까지 달려있는 마당에 말이다.
아무튼 브루고뉴가 더 이상 수왕성의 전쟁에 개입할 생각이 없다면 그건 그거대로 내가 날뛰기 좋은 환경이였기에 나는 더 이상 그를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이마쪽에 요슈아를 개안해서 물의 궁전 밖의 전황을 살피니 아군이 예상밖의 선전을 해준 덕분에 승기가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는 중이였다.
네크로필리아, 프랑케네뜨 그리고 륭 사부야 말할것도 없는 일이였고 폐관수련을 끝낸 용린은리 사저 또한 몰라보게 강해져 단신으로 복어대장군을 몰아붙이니 당분간 부하를 더 소환할 필요는 없으리라. 게다가 용린은리 사저의 사부인 천빙검후 여사태의 경우 무공뿐만 아니라 술법에도 조예가 있었는지 난생 처음보는 빙결술법으로 꽃게여장군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스고우가 구미첩을 여사태에게 보이지 말라던 이유가 저것과 관련이 있는건가?'
혹시 술법의 연원을 살피면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좀 더 자세히 살폈지만 이렇다할 수확은 없었다. 그저 여사태의 기술이 일반적인 빙결술법이 아닌 스고우의 진토술처럼 독자적인 술법체계를 갖추고 있다는걸 어렴풋이 짐직할뿐.
좌우지간 지금 중요한건 그런 사사로운 일보다 엑시아 여왕의 행방을 찾는 것이였기에 나는 요슈아의 동공을 한층 더 확장시켰다. 그러자 100m 상공위에서 팔짱을 낀채로 유유자적 전황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부하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와중에도 저렇게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다니 뭔가 심히 미심쩍은 상황이였으나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나는 바로 쉐도우 브레스(Shadow Breathe)를 일발 장전했다.
아직 사리카야의 몸을 빼았은지 얼마 안돼 적응과정을 거치고 있을 지금이야말로 기습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혹시나 이쪽의 마력반응을 눈치챌까 약간의 예열과정만을 거치고 쏘아낸 쉐도우 브레스는 시원찮은 오줌줄기마냥 평소보다 출력이 약하긴 했지만 공허충 알갱이를 몇십알 섞어 넣었으니 치명타를 입히기엔 충분할터.
내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엑시아 여왕의 향방을 살피는데 그녀가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수도우 브레스를 피해내더니 또 한번 미친듯이 광소를 터트렸다.
"으햐하하하하하하하! 이 거리에서 살기를 느끼고 몸이 먼저 반응하다니 사리카야 여왕의 육체능력에는 또 한번 놀라게 되는군. 디파일러 간부들을 키워네느라 디파일러 폰만도 못해진 내 본체와는 차원이 다르지 아니한가!! 그런데 그렇게 고생해가며 키워낸 부하들이 여신칼날단 소속도 아닌 찌끄레기들에게 밀린다는건 너무나 서글픈 일. 아아아!! 그러나 이해한다, 나의 아이들아. 연이은 전쟁에서 죽음과 부화를 반복하느라 재생력은 물론 몸도 많이 약해진 상태겠지. 이제 이 여왕님께서 새 육체를 얻었으니 너희들에게 새로운 몸을 하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