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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저 두년놈이 살아 있는거지? 아직도 이 두 손에 심장을 꿰뚫은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음에도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는 복어대장군과 꽃게여장군을 보고 있자니 나는 마치 등용성에서 있었던 일이 모두 꿈쳐럼 느껴졌다. 설마 스고우 녀석이 뭔가 신묘한 환술을 설치했다거나? 아니야 등용성을 지켜야만하는 스고우 입장에서 그런 개 뻘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
금새 잡념을 떨쳐버린 나는 일단 지금의 전황 자체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용린은리 사저가 꽃게여장군을 그녀의 새스승인 천빙검후 여사태가 복어대장군을 맡아 혈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바다쪽에서 연신 어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는걸 보아하니 샨코 공주가 그랜드 룩 2마리를 상대로 예상밖의 분전을 하고 있는듯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아케인 일족의 유산인 다이빙비틀(Divingbeetle)이 황금장수풍뎅이 기아스 못지않은 오버테크놀로지 잠수함이라고 해도 홀로 그랜드 룩 2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었다. 하여 나는 에보니 메이든에서 트롤왕 리쿤다룬과 고래사냥꾼 던클레오를 소환하기로 했다.
본래는 발버둥치기 말고는 할줄 아는게 없는 덩치만 큰 언데드 하수인이였지만 비교적 클래식한 제식무장에서 시작해서 리쿤다룬이 개조에 개조를 거듭한 결과, 내가 지향하는 네크로 메카닉(Necro Mechanic)에 그나마 근접한 하수인이 탄생했으니 디파일러 그랜드 룩과 능히 대적이 가능하리라.
'허어 이제 막 신형 반동제어기관의 스트레스 테스트중이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불러내면 어쩌자는건가, 아크리퍼?'
"시끄럽고 테스트라면 실전에서 직접해봐. 아케인족이 만들었는다는 고대 잠수함도 구경할겸."
'뭐, 뭐라고?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 말고 다른 아케인족 일족의 유산이 발견됐단 말인가?'
전역을 얼마 남기지않은 말년 행보관같은 모습을 보이던 트롤왕 리쿤다룬이 아케인족의 유산이란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는 던클레오와 함께 바다밑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잠수함도 언데드고, 탑승자도 언데드이기 때문에 이렇다할 수압처리 과정이 필요 없다는 것도 네크로 메카닉의 장점이라면 장점일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어느정도 싸움의 균형을 맞춘 나는 시선을 돌려 전황의 공백을 찾아헤맸다. 아직 사지멀쩡하게 살아 있는 디파일러 간부급이 많은데다 복어대장군과 꽃게여장군이 부활했다면 오르카니우스까지 되살아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였다.
다행히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지근거리에서 디파일러 아크비숍 젤피가 자신의 촉수를 안테나처럼 넓게 펼쳐 괴상한 전파통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서 디파일러 로열나이트 샤힌이 호법을 서고 있었는데 나와 딱 눈이 마주쳤을때 톱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는 모양새가 뭔가 일이 잘풀리고 있는듯 보였다.
당연히 그럴 경우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게 바로 내 역할이였기에 나는 이매망량의 물결을 타고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샤힌이 품안에서 예의 정령 램프를 꺼내더니 내가 보란듯이 명령을 내렸다.
"물의 정령왕이시여 두번째 커맨드입니다. 저 옥사건이란 자를 최선을 다해서 킬링해주시길. 뭐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건 아니까 시간만 끌어주셔도 베리 땡큐할 것 같군요."
'크으으으윽! 빌어먹을 디파일러 자식같으니라고. 정령 램프의 속박이 풀리는 순간 우주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네놈을 갈기갈기 썰어릴 것이다!'
"어이쿠 이거야 원 무서워서 세번째 램프의 위쉬는 두고두고 아껴서 써야겠군요."
촤아아아아악!
금방이라도 샤힌을 공격할듯 험악한 기세를 뿜어내는 물의 정령왕, 이피로스였지만 정작 그녀의 물의 칼날 향한건 바로 내쪽이였다. 이매망량의 물결을 타고가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나는 고압의 물줄기가 만드어낸 쌍수검(雙水劍)이 그 어떤 전설의 보검못지 않은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걸 깨닫고 급히 본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정제되지 않고 이것저것 잡몹들의 뼈를 마력이란 본드로 강제로 얼기설기 이어붙인 본쉴드는 약간의 시간만 벌어줬을뿐 곧 속절없이 갈려나갔다. 그 시점에서 방어 자체를 포기한 나는 얼티밋 언데드 폼의 재생력을 믿고 반격에 나섰다.
사이즈 더 에테르(Sythe The Aether) 착(着)
일반적인 물리공격이 통하지 않으리란건 굳이 시험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였기에 마샬아츠 더 에테르를 휘두른 나. 그러나 물의 정령왕 이피로스는 영력으로 형상화된 거무튀튀한 낫이 자신의 하반신에 닿을것 같자 기가막힌 타이밍에 수체화를 시전해 이슬 방울이 되어 흩어졌다.
그런 와중에 상체는 그대로 남아 쌍수검을 휘둘러오니 왜 샤힌이 이피로스를 상대로 고전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였다. 사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공허충(空虛蟲)을 활용한다거나 이매망량에 어둠의 기운을 주입해 임시로 어둠의 정령으로 만들어 부리는 방식으로 정령체에 데미지를 입힐 수 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녀가 오르시나의 지인이라는 것.
'거기다 육각수의 초월령, 브루고뉴의 직속부하이기도 한 이피로스를 괜히 건들였다가 의도치않게 어그로가 튀는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야. 까짓것 한대 맞아주면 그만이지.'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곧이어 다가올 충격을 대비하는데 갑자기 내 그림자 속에서 정체불명의 인영이 나타나 물의 칼날을 막아섰다. 그새 힘을 회복한 셰이드 크롤러가 나를 돕기위해 나타난건가 싶어 그 충성심에 감동하는 것도 잠시, 보지둔덕과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외설적인 비키니 아머에 아야사와 유독 닮은 상대의 외모에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는 도대체 누구야?"
"어머 제가 누군지 모르시겠어요? 정령가든에 있던 굶주린 셰오에요. 지금부터는 셰오 더 큐피트라고 불러주시면 좋겠네요. 어둠의 정령왕님의 어둠의 마력과 감정 에너지를 흡수해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했으니 당연히 새로운 이름도 필요하겠죠?"
"아 설마 그때 내 성욕을 모조리 빨아먹었던 최하급 어둠의 정령 셰오? 셰이드크롤러한테 한참 진화중이라는 얘기를 언뜻 듣긴 했는데 아발란체보다도 먼저 고치를 깨고 나올줄은 몰랐군. 그런데 옷차림이랑 생김새가 그게 뭐냐. 완전 내 취향저격이긴한데 어째 내가 아는 누구랑 닮은것 같다?"
"호호호! 그거야 이 셰오 더 큐피트가 지닌 능력이 상대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첫사랑을 복제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 에너지를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니까요. 어디보자 어둠의 왕께서 사모하시는 이 여자에 대한 감정은 1%의 플라토닉과 99%의 에로스로 구성되어 있군요. 이런 경우 한방은 강력해도 지속능력은 떨어지겠어요."
영문모를 소리를 찌껄이던 셰오 더 큐피트가 가슴골에서 아이들이나 갖고 놀법한 장난감 활을 꺼내들더니 이피로스를 향해 쏘아냈다. 그러자 이피로스는 방심할법도 하건만 바닷물을 반구형태로 끌고와 물의 결계를 펼쳤으니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아주 옳은 것이였다.
퍼어어어엉!!
장난감 활에서 쏘아진 하트모양 화살촉이 물의 결계에 닿자마자 피부로 압력이 느껴질정도의 강력한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당연히 물의 결계는 파훼되어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는 가운데 셰오 더 큐피트가 영 아쉽다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역시 에로스 비율이 큰 큐피트 화살은 한방의 위력은 크지만 한발밖에 쏠 수 없다는 단점이 명확하군요. 물론 어둠의 왕께서 한창 오매불망 첫사랑만을 그리던 때라면 그 한방만으로 저 물의 정령왕을 격추시킬 수 있었겠지만요. 그렇지 않나요, 나의 왕이시여?"
"시끄러워. 그런 사사로운 애정사는 너랑 관계 없잖아. 아니 그보다 너는 어둠의 정령이 맞긴 한거야? 어쩌다가 그런 괴상망측한 능력을 갖게된건데."
"후후후. 베이스는 최하급 어둠의 정령 셰오였으니 일단은 어둠의 정령계열이 맞긴 하겠지요. 다만 진화과정에서 왕의 왜곡된 성욕 에너지때문에 변이가 일어났으니 솔직히 말해 저도 어디가서 자신 있게 어둠의 정령이라고 하고 다닐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사랑의 정령이라기엔 너무나 사악하니 적당히 흑심의 정령이라고 타협을 보는게 어떨까요?"
"그런 명칭같은건 아무래도 좋으니 진화를 끝냈으면 그동안 밀린 밥값이나 해!"
"예이예이, 나의 왕의 명을 받듭니다. 그러면 이번엔 저 물의 정령왕의 첫사랑을 한번 복제해볼까요?"
라고 말한 셰오 더 큐피드가 중국의 가면 경극마냥 얼굴을 뒤바꾸더니 이번엔 오르시나와 똑 닮은 모습으로 화했다. 그러자 이피로스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으나 이내 냉정을 되찾고 이전보다 공격적인 태세를 갖췄다.
"오호라 이쪽은 어둠의 왕과는 완전히 정반대로군요. 에로스 성분은 일체없이 순수하게 100% 플라토닉 러브로 가득찬 큐피트 화살이라니... 아아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한의 화살을 써볼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