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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건 더 디파일러-512화 (51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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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보면 복어대장군의 갑옷을 더럽힌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꽃게 괴인이 뻔뻔하게 세탁을 자처하자 나는 기가 차서 말이 안나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그런 잘잘못을 가리는 것 보다는 내가 왜 이 낯선 장소에 소환되었고 지금도 내 눈앞에 눈을 부라리고 있는 복어 괴인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였다.

"이봐 복어대가리, 피같은거야 나중에 씻어도 되는 일이니까 지금 여긴 어디고 넌 뭐하는 놈인지부터 밝혀."

"그건 내가 하고싶은 말이다. 이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인간놈아! 스고우가 들어갔던 방에서 난데없이 뛰쳐나온 주제에 감히 이 몸의 신상명세를 캐묻다니 그냥 이 자리에서 죽어라!! 네놈따위에게 알려줄만큼 녹록한 이름이 아닐지니 저 이무기 꼬맹이들을 처리하기전에 너부터 한줌 핏물로 만들어주마!!!"

"잠깐만요, 복어대장군! 스고우가 들어갔었던 방이라는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방금 너희 둘이 문을 박살내고 뛰쳐나온 방은 스고우가 들어간다음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이란 소리다. 내 눈앞에서 뱀 소환수를 소환해 부하 수십명을 산채로 집어삼켜 나를 도발해놓곤 꽁지가 빠질세라 도망치더니 정말로 고향별까지 버리고 도망칠줄은 몰랐군."

"스고우님은 등용성을 버리고 도망친게 아니야! 너같은건 한입에 집어삼킬 뱀을 데리고 돌아오실거라고!!"

"닥쳐라, 건방진 이무기 꼬맹이놈!"

얼굴 한가득 여드름도 아니고 녹색비늘이 돋아난 이무기 소년이 사춘기 반항아처럼 달려들자 사춘기 복어대장군이 가차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옆에 있던 쌍둥이로 추정되는 이무기 소년이 손을 합장해 술법을 펼쳐 충격을 완화시켜 보려했지만 진흙으로 만들어진 개들은 제대로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으깨져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물론 술법이 완성되지 않았다한들 중간과정만으로도 나는 그것이 스고우가 내게 가르쳐주었던 진토술 ~뱀의 형상편~과 같은 계열의 술법이라는걸 눈치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무기 자매도 아니고 시커먼 이무기 형제놈들을 도와줄 의무따위는 내게 없었기 때문이였다. 하여 동굴 외벽에 쳐박힌 이무기 형제는 마땅히 기댈곳도 없이 서로 어깨를 맞댄채로 부축할 수 밖에 없었다.

"이이이이익! 저, 저자식이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차라리 이렇게 된바에 이기든, 지든간에 본체로 돌아가서 죽을때까지 싸우는게 낫겠어."

"참아, 사토. 이런 비좁은 동굴에서 본체로 싸우는건 오히려 불리한데다 괜히 피격면적만 늘어날뿐이야. 복어대장군이 500살 넘은 이무기 형들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너도 똑똑히 봤잖아."

"그러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유토! 혹시나, 정말 혹시나 스고우님이 우리를 버리고 떠난거라면 우리로선 할 수 있는게 없잖아."

"스고우님이 아무 생각없이 복어대장군을 이곳으로 유인했을리가 없어. 아마 모든 해결의 열쇠는 등용문에서 빠져나온 저 남자와 꽃게 괴인에게 달려있겠지. 정확히 말하자면 꽃게 괴인은 복어대장군과 한패인듯하니까 남자쪽이 뭔가 스고우님께 언질받은 것이..."

유토란 이름의 이무기 꼬마가 나를 쳐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아마 동굴 외벽에 몸을 기댄채 코나 파고있는 내 모습에서 스고우와의 어떤 연결고리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파충류 꼬맹아 미안하지만 이 형이 불쌍하다고해서 아무나 막 도와줄만큼 인정많은 성격이 아니거든.

"오홍홍~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무기 도련님께서 참 똘똘하네요. 확신할 수 는 없지만 아무래도 뱀술사 스고우는 옥사건님과 자신의 위치를 뒤바꾸는 술법을 사용한 것 같아요. 발동조건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디파일러 아크비숍과의 신체접촉쯤 되겠죠. 그렇게 해서 수왕성에서 디파일러 간부급 전력을 그랜드 룩만 남김과 동시에 자신이 참전함으로써 전황을 반전시킨다. 확실히 술법이 뛰어날뿐만 아니라 수읽기에도 능한 스고우다운 전략입니다만..."

"설마하니 엑시아의 진영에는 디파일러 로열나이트, 아크비숍 그리고 그랜드 룩이 3마리씩 있을줄은 스고우도 몰랐다 이건가? 장기로 따지면 차포가 3개씩 있는셈이니 장기의 고수인 그도 이번엔 악수를 둔셈이군."

"바로 맞혔습니다, 옥사건님."

"잠깐! 꽃게여장군, 그 사실은 전쟁이 끝날때까지 절대 밝히지 않기로 한것 아니였나?"

"뭐 그거야 이제와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 아니겠어요, 호호호! 그러는 복어대장군이야 말로 절대 등용성을 침입하지 말고 포위만 하라는 명령을 보기좋게 어기셨군요."

"아, 아니 그건 스고우 녀석이 괴물뱀을 풀어 대놓고 내 부하들을 산채로 집어삼키는데 장수된 자로서 가만히 지켜볼 수 만 있을 수 가 없지 않소. 혹시 그것때문에 엑시아 여왕님의 대계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것이오?"

"그럴리가요. 아까 옥사건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뱀술사 스고우의 이번 전략은 명백히 악수였습니다. 저 하나 빠진다고 해서 수왕성의 전황이 뒤집힐리는 없지만 등용성의 경우 스고우 한명이 사라짐으로 인해 큰 공백이 생기는 셈이니까요. 정신적 지주로서나 실제 전투력으로 따지나 말이죠.

"그렇다면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스고우가 없는 틈을 타 등용성의 구백살 먹은 장로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내단은 엑시아 여왕님께 받치고 머리는 장대에 꽂아 수왕성으로 개선해 돌아갈때 들고가면 되겠군. 어차피 천살이 되면 늙어 죽을 것들이니 여왕님 보신이나 시켜드려야죠."

듣기만 해도 살벌한 화법에 유토, 사토 이무기 꼬마형제들의 표정이 헬쑥해졌다. 허나 내 입장에서는 이무기들을 구워먹든 회를 쳐먹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기에 강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자 생긴것 답지않게 퐁퐁이란 귀여운 이름을 지닌 꽃게괴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라고 복어대장군이 말합니다만 옥사건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글쎄. 뭐 그쪽이 하고싶은대로 마음껏 하지그래. 난 딱히 이무기들의 생사같은건 관심밖이라서 말이지."

"호호호, 그렇다면 옥사건님께서는 뱀술사 스고우와 모종의 밀약같은걸 맺으신건 아닌거군요?"

"당연하지. 따지고보면 나도 엄연한 피해자라고. 언젠가 도움이 될거라면서 장기말을 선물해놓곤 그런 개같은 트랩을 걸어놨을줄이야. 나중에 다시 만나면 이 장기말을 콧구멍에 쑤셔넣어 주던가 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이만 물러나겠으니 혹시 나중에 수왕성으로 돌아갈 교통편이 마땅치 않으면 찾아와주시길. 지금 한창 계왕고래가 등용성으로 열심히 헤엄쳐오고 있는중이거든요. 호호호!"

"잠깐! 아니 도대체 저 인간이 누구길래 계왕고래에 태운다는 것이야. 그리고 아까 듣자하니 스고우와 인연이 있는자 같은데 괜한 후환을 남길 필요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헤치우..."

"호호호! 안그래도 계왕고래에 자리도 많은데 한 사람 더 태울 수 도 있지 뭘 그러시나요. 괜히 벌집을 건드릴 필요는 없으니 복어대장군은 저와 같이 이 동굴을 빠져나가 아까 말했던 이무기 장로 사냥을 진행하도록 하죠. 하나같이 오늘내일 하는 자들이라 서둘러 내단을 빼내지 않으면 약효가 떨어질겁니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지 볼을 한껏 부풀린채 꽃게여장군에게 떠밀려 동굴바깥쪽으로 향하는 복어대장군. 첫인상만 보자면 그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들을것 같지않던 독불장군같아 보이던 그였지만 꽃게여장군의 말만큼은 마지못해 들어주는 모양새였다. 디파일러 로열나이트는 장수, 디파일러 아크비숍은 책사라고 생각하면 이해못할 구도는 아니였지만 뭔가 다른 사정이 있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이무기 꼬맹이 둘과 함께 남게된 나는 마치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쳤을때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것처럼 VOT(Vaccin Of Things) 단말기를 매만졌다. 디파일러놈들이 자신들의 그랜드 룩에 태워주겠다는 이야기를 고대로 믿을만큼 순진한 내가 아니였기에 혹시나 황룡선이 등용성으로 마중 나올 수 있는지 체크하기 위함이였다. 그런데 공간위상좌표 분석이 끝나갈때쯤 넋을 잃고 주저앉아 있던 이무기 꼬마 형제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진토술, 원숭이 형상의 술!"

"진토술, 개 형상의 술!"

뭐야 이것들이 설마 지금 나랑 싸우자는건가 싶었으나 진흙으로 만들어진 원숭이와 개는 내게 달려드는 대신 등용문의 양쪽에 자리했다. 그러자 완전히 산산조각 났던 목제문이 시간을 되감듯 다시 복구되으니 아무리봐도 통상적인 술법이라고 볼 수 없는 기현상이였다. 하여 내가 어안이 벙벙해서 VOT 단말기를 조작하다말고 멍을 때리는데 이무기 형제 유토와 사토가 양쪽에서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옥사건님 어서 진짜 등용문 안으로 입장하시지요. 곧 있으면 복어대장군이 이 동굴 주변에 쳐진 대결계를 눈치채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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