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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4 Oxygan the True Queen Of Ocean
익숙하다면 익숙한 몽타쥬의 얼굴이 기괴한 문자가 새겨진 램프를 들이밀며 설명을 덧붙였다. 허나 내 시선을 잡아끈건 그 램프가 아니라 그자의 뒷배경에 자리한 지덕체(智德體) 문패쪽이였으니 각기 지혜, 도덕성 그리고 전투력을 테스트하는 방임을 의미하는 그 문패는 전생유적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심볼이였기에 못알아 볼 수 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브루고뉴가 북해빙궁의 샨코공주를 위시한 레드 파이렛 해적단들을 임시로 전생유적에 대피시켰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은 기억이 났다. 그 과정에서 일전에 전생유적에 입장한 기록이 있는 샨코 공주를 재입장시키기 위해 몇가지 금제를 무효화 시켰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것때문에 간자로 잠입해있던 디파일러 아크비숍 무르갈을 걸러내지 못한 모양이였다.
뭐 사실 엔도미야가 신에 한없이 가까운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한치의 빈틈도 허용치않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는건 진즉에 알고 있었기에 이런 해프닝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다만 머리숱 하나 없이 매끈한 민머리만큼이나 머리속도 텅텅 비어 있을줄 알았던 무르갈이 저렇게까지 높은 층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였다.
차원문 너머로는 엘리베이터가 보이질않아 층수를 확인할 순 없었지만 정령을 봉인할 수 있는 마법의 램프같은 물건은 결코 저층에서 나올 수 없는 희귀 아티팩트. 특히나 지금처럼 물의 정령들과 전쟁을 치루고 있는 상황에서 저만큼 유용한 아티팩트도 또 없으리라.
'그건 그렇고 아까 저 문어대가리 녀석이 젤피라고 호칭한 상대는 누굴까? 설마 저 호모삘 나는 상어대가리 녀석을 부르는 애칭같은건 아니겠지?'
생각만해도 토가 쏠리는 광경에 내가 몸서리치는 것도 잠시 디파일러 퀸 엑시아가 희색이 만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무르갈. 당신이 레드 파이렛 해적단에 잠입해 있었던 일은 전생유적이란 규격외의 대피소때문에 모두 허사가 됐지만 그 아티팩트 하나로 그간의 공을 충당하고도 남겠군요. 지금 당장 차원의 틈을 벌릴테니 그 마법의 램프를 넘기세요."
"예? 하, 하지만 제가 직접 물의 정령왕을 봉인해서 엑시아 여왕님께 진상하고 싶었는데요."
"그 전생유적이란 이차원을 지키고있는 차원막은 보기보다 견고해서 지금처럼 투과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부하를 줍니다. 사람은 커녕 아티팩트 하나 운반하는 것조차 지금의 제개는 벅찬 일이겠지요. 공을 쌓고싶어하는 귀공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나 물의 대결계때문에 전황이 답보상태를 이어가는 지금 이런 사소한 일로 아웅다웅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마법의 램프를 보낼테니 나중에 전쟁이 끝나면 제가 여기 갇혀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십쇼."
이전과 달리 관리자인 오르시나가 없어 음료수는 커녕 물 한모금 구하기도 힘든 전생유적이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는지 무르갈이 신신당부를 하며 마법의 램프를 넘겼다. 그러자 차원문이 마치 돌멩이를 떨어트린 웅덩이마냥 파문에 휩쌓이더니 곧이어 약간의 번갯불과 함께 마법의 램프를 토해냈다.
오르시나의 수어지교 능력이나 월영공(月詠公) 듀리스의 초월 그림자 도약 권능을 이용하면 몇백광년이나 떨어진 공간에서 물건을 운송할 수 있었지만, 전생유적과 같은 거리완 상관없이 특수한 차원막 결계로 보호받고있는 차원을 투과한 경험은 없었기에 나는 그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앞서 말한대로 그런 일련의 작업들은 굉장한 부하를 주는지 엑시아 여왕의 해파리 지느러미가 뇌전의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오우마이갓! 괜찮으십니까, 엑시아 여왕님? 힘드시면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게 어떨까요?"
"아뇨. 지금부터는 단 일분일초라도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물의 대결계의 균열, 수왕성 전체를 가득 메운 디파일러들의 시체 그리고 전장을 이탈한 물의 정령왕.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브루고뉴가 아닙니다. 그러니 샤힌은 지금 당장 이 마법의 램프를 들고 물의 정령왕을 생포해주세요."
"뭐 그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엑시아 여왕님께서 레프트 얼론 해버릴텐데요. 그것도 진짜 혼자남는 것도 아니고 옥사건씨와 단둘이라니 저는 물가에 어린애를 내놓은것마냥 널버스해서 마음놓고 싸우지 못할것 같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연이은 디파일러 출산에 강대한 권능까지 사용해 약해질대로 약해진 틈을 타 절 기습할 정도로 옥사건님이 비겁하신분일리가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옥사건님?"
라고 디파일러 퀸 엑시아가 의미심장한 어투로 내게 물어왔다. 나야 마음만 먹으면 기습은 옵션이고 엑시아 여왕을 역으로 인질로 삼아 디파일러들로 하여금 강제로 언데드 기생충들을 복용하게끔 할 수 도 있었지만 지금은 웬지 내키지가 않았다.
단순한 변덕이라 치부할 수 도 있겠지만 배신이란 악당에게 있어 최고의 별미인만큼 가장 맛있게 숙성됬을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마음이였다. 하여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표정중 가장 신뢰감(?) 넘치는 표정을 지은 뒤 샤힌에게 말했다.
"그래 엑시아 여왕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킬테니 샤힌 너는 어서 동료들한테 가봐."
"그렇게 믿음직스러운 대사를 한없이 디스트러스트한 느낌으로 하는것도 재주라면 재주겠군요. 알겠습니다. 여왕님께서 허락한 마당에 제가 반문하는 것도 우스운 일. 물의 정령왕을 마법의 램프에 봉인해 금방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옥사건님에게 한가지 워닝을 하고 가도록 하지요. 혹시나 싶어서 말합니다만 저희 여왕님의 털끝하나라도 건드렸다간 제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겁니다. 우주끝까지 쫓아가 마지막 뼛조각 하나까지 잘근잘근 씹어삼켜드리지요."
"어이쿠 그것참 무섭구만 그래. 알았으니까 얼른 가봐. 수세에 몰린줄 알았던 물의 정령왕의 역공때문에 디파일러 그랜드 룩들이 고생하고 있는거 안보여?"
"하!"
샤힌이 내 조언에 콧방귀를 끼더니 마법의 램프를 챙겨들고 쏜살같이 전장으로 튀어나갔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디파일러 퀸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지녔다는 평을 받는 디파일러 로열나이트인 그가 참전한다면 제 아무리 물의 정령왕이라고 해도 오래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얼음조각상마냥 고고하기 짝이 없었던 브루고뉴의 면상도 약간은 찌푸려 지겠지. 물론 내가 원하는건 전황이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되는게 아니라 어느정도는 균형을 유지하며 소모전을 펼치는 것이였기에 마냥 손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하여 내가 엑시아 여왕의 눈치를 살피며 전황에 개입할 건수를 물색하자 그녀쪽에서 먼저 반응을 해왔다.
"하고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시지요, 옥사건님."
"아하 너무 티가났나? 아니 뭐 별건 아니고 이 수왕성 전쟁 그냥 심심해서 벌이는게 아니잖아. 정확히는 또 다른 디파일러 퀸, 다비금강 사리카야의 수복전쟁의 성격이 강할텐데 정작 당사자인 사리카야는 코빼기도 안보여서 말이지. 그녀석 성격에 전쟁통이라고 몸을 사릴것 같진 않은데 도대체 지금 어디 있는거지?"
"사리카야님 말씀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녀는 현재 수왕성의 달에 도시형전함 도그파이트를 착륙시킨채 제 신호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라... 그 싸움이라면 물불안가리고 달려드는 투견같은 녀석을 잘도 구워삶았군."
"연이은 국지전 패배로 사리카야님 또한 무작정 병력을 돌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걸 피부로 체감하셨으니까요. 사리카야님은 전투초반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이쪽에선 브루고뉴와 1:1로 승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걸로 이미 서로간에 약속이 끝났습니다. 솔직히 말해 일대일 싸움이라고 해서 과연 브루고뉴를 제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단인전투력으로만 따진다면 디파일러 퀸뿐만 아니라 킹들중에서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라면 한번 도박수를 걸어볼만 하겠지요."
"호오 그래서 사리카야와 브루고뉴간의 일대일 대결을 성립시키기 위해 50사단에 가까운 디파일러 병력 대부분을 희생시켰다 이건가? 세간에선 그런걸 두고 도박수가 아니라 자충수라고 들 하지. 이쯤됐으면 그냥 솔직히 숨겨진 속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게 어때?"
"훗! 그러는 옥사건님이야말로 슬슬 숨겨진 속셈을 드러내는게 어떨까요? 전투개전 당시 4개사단에 해당하는 디파일러 병력을 이끌고 다른 차원으로 도망친 순간부터 당신에게 전투의지가 없다는건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협력하는 척이라니...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어설픈 지략으로 디파일러 진영과 물의 정령 진영간을 저울질하고 있는거라면 차라리 지금이라도 수왕성을 떠나세요. 괜히 험한꼴 보기 싫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