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05화 (50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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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4 Oxygan the True Queen Of Ocean

세개의 문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조촐한 식사가 올려진 낡은 테이블. 내게는 익숙하다면 익숙한 장면이였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였다. 전생유적(前生遺跡), 그것은 천빙패가 인어의 눈물을 머금기도 전인 까마득한 옛날 선조 디파일러들을 막기 위해 어느 초월적 존재가 예비해 두었다는 기연 획득 장소였다.

이미 디파일러는 물론이거니와 인류까지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그 목적성이 불분명해진 곳이긴 했지만 여전히 숱한 이들이 고대의 유물을 얻고자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곳. 나 또한 고향별인 수왕성을 두고 떠난 시점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자 이미 한차례 전생유적에 방문한 적이 있지만 그 대가는 전투용으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아티팩트 칠망경(七望鏡)뿐이였다.

물론 어렵사리 비싼 비용을 치뤄 전생유적에 방문해도 허탕만 치는 이들도 있고 이 소울웨폰 칠망경이 아니였다면 지금 이 자리에 오지도 못했겠지만, 결국 수왕성이 또 한번 멸망의 위기에 쳐했음에도 지금처럼 몸을 사리고 있을 수 밖에 없다보니 그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자신을 위시한 레드 파이렛도 수왕성 수비전선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브루고뉴님에게 밝힌 순간 이 전생유적을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역제안이 돌아온 것이다. 명목상의 이유는 대지의 배꼽이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기 위한 첨병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였지만 실제론 그저 전투에 방해되니 찌그러져 있으란 소리나 다름없었다.

"제기랄! 이럴줄 알았으면 블랙D 그놈 꼬득임에 넘어가는게 아니였는데!!"

이 날을 대비해 그동안 모아온 현물성 재산을 모조리 처분해 무법자 집단인 블랙 해커(Black Hacker)로부터 점착식 폭탄인 아바타 클레이까지 구입했건만 그것도 이젠 모두 허사였다. 잘만 이용하면 살아움직이는 자살특공대처럼 목표에게 달려들게 할 수 있다고해서 구입했건만 외부공간과 완벽하게 차폐된 전생유적안에선 찰흙 놀이 재료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한가하게 수왕성의 명운이 경각에 달한 이때에 전생유적 탐험이나 하고 있을 수 도 없고 정말 미치겠... 아니 잠깐! 나는 전생유적 관리자는 따로 보이지 않지만 아직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쳐다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본래 한번 전생유적에 입장한 경력이 있는 자는 다른 행성의 전생유적이라고 해도 절대 다시 입장할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예외로 브루고뉴님께서 모종의 협의를 통해 날 수왕성의 전생유적안에 강제입장 시켜준 상황. 입장 제한은 있어도 기연 획득 제한은 없다는 전생유적의 규칙을 고려한다면 지금은 절호의 기회가 될 수 도 있었다.

그런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자 나는 급한 마음에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연타했다.

타닥타닥타닥!

-지덕체의 시험을 최소 1개 통과해야만 다음층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현재 전생유적에 입장하신 탐험가의 지(智) 테스트 레벨은 1Lv입니다.

-현재 전생유적에 입장하신 탐험가의 덕(德) 테스트 레벨은 1Lv입니다.

-현재 전생유적에 입장하신 탐험가의 체(體) 테스트 레벨은 1Lv입니다.

그러자 급할 수 록 돌아가라는 격언을 일깨우듯 내게 제동을 거는 시스템 메시지들. 그제서야 머리 한켠에 잊고 있었던 전생유적의 알고리즘을 떠올린 나는 투견처럼 달아오른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장 효율적으로 기연을 회득할 수 있는 루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앞선 시스템 메시지에도 나와 있듯이 지덕체의 시험중 최소 1개를 통과해야만 다음층으로 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전생유적의 엘리베이터. 그리고 그 중 하나라도 실패할 경우 모든 테스트 레벨이 한단계씩 자동으로 올라간다. 언뜻 생각해보면 지덕체중 자신에게 가장 자신있는 분야의 시험에만 도전하며 빠르게 출구가 있는 31층까지 주파해야 할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테스트 레벨은 곧 기연의 등급에도 영향을 끼치기에 자신이 높은 등급의 기연을 얻고싶다면 일부러 지덕체 시험에 실패를 거듭하며 테스트 레벨을 올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자신이 클리어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테스트 레벨을 조절해야지 지나치게 실패를 반복할 경우 31층에 도달하기도 전에 전생유적에 고립당할 수 있었다.

그 경우 기존에 획득한 기연이 있다고해도 전생유적 관리자에게 기연을 강탈 당할 수 있었기에 적절한 난이도 조절만이 전생유적의 필승전략이였다. 이전에 전생유적에 방문했을때는 그런것도 모르고 테스트 레벨 30대 언저리에서 탐색을 마무리지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리라. 그렇게 마음을 굳힌 나는 굳건한 마음가짐으로 체(體)의 문이 아닌 지(智)의 문으로 입장했다.

****

"여기는 여전히 삭막하기 그지 없구만. 이걸 어쩐다. 저승관리국에 방문하기에는 군식구가 너무 많은것 같은데."

붉은 모래가 끝도없이 펼쳐진 홍사해(紅沙海)의 풍경을 멀찍이서 지켜보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기서 말하는 군식구라함은 디파일러 퀸 에시아 여왕으로부터 친히 하사받은(?) 4개 사단의 디파일러 병력을 말하는 것으로 일종의 세뇌라도 걸려있는지 수왕성을 침공하기 직전 저승문 개전의 술법으로 도망쳤음에도 얌전히 내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분명 저승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반기를 들고 덤벼들것 같아서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의 주포 피스메이커I까지 예열해 놓고 있었거늘 막상 놈들이 순한 양처럼 굴자 어찌 처분해야할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지금 당장 생각나는건 놈들의 몸안에 지난 한달간의 연구성과인 기생충 좀비(Parasite Zombie)를 풀어 일종의 자살특공병으로 만드는 것.

허나 그말인즉슨 내가 수왕성의 전투에 간섭하겠다는걸 전제로 깔고 들어가는 것이였기에 지금 당장은 진짜 양떼처럼 모래밭위에 방목을 하고 있는 중이였다. 만약 진짜 해양아인종이였다면 이 물한점 없는 죽음의 공간속에서 얼마안가 고사하고 말았겠지만 과연 디파일러란 이름답게 크게 게의치않는듯 했다.

그건그렇고 이것들 진짜 더럽게도 생겼구나. 심해 10000m쯤에서나 돌아다닐법한 괴상한 물고기들이 꼴에 나이트랍시고 이족보행을 하고 있는걸 보고있자니 무르갈이 저치들중에선 제법 미남이였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 거기다 여성정장을 입고 전형적인 오피스 레이디의 모습을 하고 있는 디파일러 비숍이... 아닐텐데?

"옥사건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뭐야 오르시나였나. 뭐하고 있긴 뭘하고 있어. 그냥 수왕성의 전쟁이 끝날때까지 시간떼우고 있는거지."

"뭐!? 시간떼우기라고? 나는 네가 디파일러놈들이랑 대놓고 거래를 할때도 꾹 참고있었어. 왜냐하면 네 평소 성격상 이번에도 뭔가 더럽고 비열한 수작을 준비하고 있는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뜬금없이 저승으로 기어들어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헛짓거리야!! 지금 당장이라도 브루고뉴님을 도와서 디파일러로부터 수왕성을 지켜야할거 아니야!!!"

"내가 왜 그래야하지? 본인이 도와달라고 한것도 아니고 오히려 거치적거리니까 비켜주는게 도와주는거라던데."

"왜긴 왜야! 같은 여신칼날단의 동료로서 디파일러와 맞서싸울때 협력하는건 당연한거 아니야? 디파일러들조차 수왕성을 집어삼키겠다고 서로 협력하는 마당에 질서를 수호하는 여신칼날단이 서로 나몰라라하는게 어딨어?"

"오르시나야 나이를 헛먹었구나. 원론적으론 그럴지 몰라도 인생이란게 그렇게 만만하게 아니야. 가는게 있으면 오는게 있어야지 단순히 그런 지연만으로 오지랖을 부린다면 몸이 남아나질 않아요."

"뭐가 어째고 저째? 너 진짜 자꾸 그러면 엔도미야님한테 고자질해버린다!"

"그러시던가요."

나는 일부러 오르시나가 보란듯이 깍지낀 손으로 뒷목을 받친채로 모래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러자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는 오르시나. 허나 공기중에도 물한점 없는 이 저승땅에서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건 해양아인종뿐만 아니라 물의 정령도 마찬가지였다.

뭐 오르시나 입장에서는 옛 주인이자 옛 동료들이 있는 진영이 위험에 처한 모습을 마냥 지켜볼 수 없었던 거겠지만 나로서는 마땅히 싸울 이유가 없었다. 이솔다 공주나 스와레 공주는 수왕성이 아닌 팔륜성에 있었고 유일한 토착민 인어공주인 샨코 선장은 레즈비언이란다.

내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성욕을 자극시킬만한 요소가 없었기에 발가락 하나도 꼼짝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런 내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오르시나였기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정장 하의를 벗어던지고 하의 실종 상태로 내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럼 내가 니가 그렇제 좋아 죽는 섹스 잔뜩해주면 브루고뉴님을 도와줄거야? 도와줄거냐고!! 빨리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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