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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4 Oxygan the True Queen Of Ocean
내 왼손의 흑염룡이 꿈틀거린다. 중2병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문구는 다소 상투적이긴 했지만 지금의 내게 이만큼 어울리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네크로필리아의 장난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시로 왼손에 붙여둔 기생수(寄生手)에는 실제로 마룡 쉐도우스틸의 영혼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였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네크로필리아가 완전히 고쳐진줄 알았던 내 왼손의 실밥을 다시 풀면서 시작되었다. 그걸 빌미로 나와 술래잡기 놀이를 시작한 그녀는 정도라는걸 모르고 나를 농락했다. 한번 자신을 잡을때마다 한 바늘씩 꿰매준다는 개소리를 하질 않나, 다 잡은걸 내 두 발목을 실로 묶어서 넘어트리게 만들질 않나 정말 열불이 뻗치는 일의 연속.
그럼에도 한쪽 손을 쓸 수 없다는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였기에 2, 3일 정도는 어울려줬지만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난 내 의지대로 움직이진 않지만 자의로 싸울 수 있는 기생수를 제작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언데드 기생충의 해부병리학' 연구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였기에 그 과정은 비교적 신속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기생수의 매개체가 된 쉐도우스틸 본인의 의사가 그닥 협조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랄까. 뭐 잘나가던 드래곤을 오체분시해다가 기생수로 만들었을때 좋아할 이가 누가 있겠냐만은 이제 슬슬 자기 처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일때가 되지 않았나?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말이야. 안그래, 마이 프렌드?"
'닥쳐라! 옥사건 이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지난번에는 팔타로스 녀석과 한몸을 쓰게 만들더니 이번엔 네놈의 왼손에 날 심어놓다니!! 한때 그림자용 일족의 수장이였던 나를 뒤치닥거리용으로 쓰기라도 할 셈이냐!!!'
"아이고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아무리 내가 못되먹었기로소니 우리의 딥다크 드래곤님에게 그런 자질구레한 일을 시킬까. 그저 전투 상황이 벌어지면 가볍게 보조를 해주길 바랄뿐이야. 나야 두손으로 수인을 맺는 타입의 술법사도 아니고 어차피 입만 나불거릴 수 있으면 전투력의 90% 이상은 발휘할 수 있거든. 다만 디파일러 폰, 나이트, 룩, 비숍같은 잡것들에게 일일히 술법을 쓰는건 너무 과한 마력 낭비니까 그때 신세를 좀 지자는거지. 아무리 드래곤 하트를 쪼개 만든 인공마력기관이라도 50개 사단에 해당하는 디파일러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려 했다간 과부하에 걸리지 않겠어?
그랬다가 어디사는 누구누구씨처럼 미쳐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하다고."
'그 드래곤 하트가 바로 내 것이지 않느냐, 이 빌어먹을 강령술사놈! 애초에 내가 그때 광룡병에 걸렸던건 마력 과부하때문이 아니라...'
"아빠, 나 요기있지롱!"
투둑투두둑.
내 전매특허중 하나인 비꼬는 말투때문에 화가 치밀었는지 기생수에서 기생용조(寄生龍爪)로 변이한 쉐도우스틸이 의문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다시 평범한 팔로 돌아갔다. 어느 점술가 왈, 이 세상을 암흑천지로 뒤덮을 삼룡중 한명이였던 자신이 지금은 고작 기생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그런가 싶었지만 애초에 쉐도우 스틸은 처음부터 네크로필리아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위대한 피조물인 드래곤조차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형하고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였다. 하긴 나도 반신타락자 서열 4위, 쟈크 더 피에게 입은 영혼의 상처만 아니였어도 저딴 버릇없는 딸은 그냥 콱!
"오구구 우리 귀염둥이 막내딸 왔어요? 이번에는 누구하고 놀고싶어서 그래요? 덜덜이, 눅눅이 그리고 칠칠이. 누구든지 말만해. 아빠가 다 불러줄테니까."
"아악! 개들은 나만 보면 자꾸 도망가서 재미없어! 나는 원래 술래하는거 싫어한단단 말이야!!"
"그럼 륭 사부라도 불러줄까?"
"아 싫어, 싫어! 그 못생긴 아줌마는 날 너무 빨리 잡아버린단 말이야!! 역시 아빠랑 술래잡기하는게 심장이 쫄깃쫄깃해서 제일 좋아."
심장이 쫄깃쫄깃해서 기분이 좋다고? 누구는 스트레스때문에 심장마비로 뒤질것 같은데? 라고 말하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입을 애써 꾹 다문 나는 프랑케네뜨를 호출해서 네크로필리아와 놀아줄 것을 주문했다. 결전의 날을 얼마 납두지 않은 상황에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는건 좋은 일이 아니였기에 일단 당분간은 기생수에 의존할 생각이였다.
애초에 언제까지 네크로필리아라고 하는 돌팔이 의사에 왼손의 치료를 맡길 순 없는 노릇이니 수왕성의 전쟁이 어느정도 진정되면 나 스스로 영혼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찾아봐야지. 명색이 나도 반신급(Ex랭크) 영력을 소유한 사신인데 그 정도는 자가수리(?) 할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지금 당장은 동해귀왕 엑시아의 병력을 맞이하는게 우선이였기에 나는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의 스텔스 모드를 발동시킨 뒤 수왕성의 대기권을 벗어났다. 괜스레 대놓고 나 지금 적군이랑 내통하러 가요라는 티를 낼 필요는 없었기에 은밀히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샨코 공주밑에서 디파일러 퀸 엑시아의 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디파일러 아크비숍 무르갈이 내게 수왕성 침공일을 귀뜸해주고 간지도 어느덧 한달째. 네크로필리아가 기생충 좀비 실험체를 기야스 바깥으로 유출하려했던 사건만 제외하면 나는 비교적 무사히 기생충 좀비 연구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50개 사단의 디파일러 병력과 마주할 예정임에도 딱히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기생충 좀비라고 하는 돌연변이종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빠르게 유기 생명체를 무너트릴 수 있는지 직접 이 두눈으로 확인한 탓이다. 탁월한 재생능력을 지니고 있는 디파일러라고 해도 파멸을 피할 순 없으리라.
그리하여 내가 한껏 여유만만한 태도로 수왕성의 위성 즉 지구로 따지면 달에 해당하는 행성 뒷편에서 대기중인데, 기야스의 외곽 카메라로 우주 저편의 공간이 일렁거리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우주에 파도가 치는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격렬한 공간왜곡에 내가 긴장한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니 거대하다라는 표현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미증유의 고래가 등장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저게 엑시아 진영의 디파일러 그랜드 룩, 계왕고래인가?'
디파일러 50개 사단에 해당하는 병력을 수송할려면 당연히 그 덩치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 익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목격하니 그 스케일에 턱이 빠질것 같다. 단순 부피로 따지자면 고성 네크로폴리스와 비슷할진 모르겠지만 저쪽은 단일신경체계로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였다.
아무리 공격 능력은 전무하다지만 그 존재감만으로 보통의 인간들은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말겠지. 그 왜 천문학자들중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도 우주의 거대함에 질려버려서 그런거라는 속설도 있지않은가. 물론 나는 보통 인간이 아니였기에 오히려 담대하게 기야스를 몰고 계왕고래의 정면으로 뛰쳐나갔다.
그 상태에서 갑자기 스텔스 모드를 풀어버리자 덩치값을 못하고 움찔하는 계왕고래. 공격 능력이 전무하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였는지 자신에 비하면 장난감 비행기나 다름없는 기야스를 앞에 두고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이였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계왕고래의 입이 살짝 벌려지더니 디파일러 룩으로 추정되는 비교적 크기가 작은 고래(그럼에도 지구상 가장 큰 포유류인 흰수염고래에 준하는 덩치였지만)가 4마리 삐져나온다.
그와 동시에 기야스의 계기판에 잡힌 정체불명의 도킹신호. 나는 디파일러 퀸 엑시아의 연락임을 직감하고 바로 그 신호를 수신했다. 허나 홀로그램 화면 위에 떠오른건 익숙하다면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디파일러 로열나이트 샤힌의 느끼한 미소였다. 아니 씨발 저 게이 자식이 저기서 왜 나와?
-오랜만이로군요, 옥사건님. 지난번 회담 이후로 한달쯤 지났던가요? 갑자기 나타났다가 또 갑자기 사라지셔서 정말 서프라이즈 했습니만 이렇게 다시 정식으로 동맹을 맺게 되어 실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기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여신칼날단 서열 4위 육각수의 초월령, 브루고뉴를 상대로 단순한 물량공세는 어려울 수 도 있겠다고 엑시아 여왕님이 걱정하셨거든요.
"말 한번 잘했다. 그렇게 나와의 동맹을 간절히 원했던 엑시아 여왕 본인은 어디가고 네놈이 원정군을 이끌고 있는거냐? 설마 샤힌 네놈 힘 좀 쓴다고 산후조리중인 엑시아 여왕을 상대로 반역이라도 벌인거 아니야?"
-왓 더 리벨리온!? 도대체 그게 무슨 끔찍한 말씀입니까, 옥사건님. 이 충성의 아이콘인 샤힌이 반역이라니요. 저는 네버 절대 그런 불경한 생각이라곤 꿈에서조차 해본적 없습니다. 혹시나 엑시아 여왕님의 귀에 들어갈까 무서우니 앞으로 그런 추측성 발언은 삼가주십시오.
"그러니까 그 엑시아 여왕 본인이 나타나면 이 오해도 전부 풀리는거 아니야. 설마 사람을 선봉장으로 내세우면서 정작 동맹을 제안했던 당사자는 뒷짐지고 구경만 할 심산인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만 여기엔 사정이 있어서... 잠시 웨잇 어 미닛 해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