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00화 (500/599)

500회

vol.14 Oxygan the True Queen Of Ocean

"고래회충 기반의 실험체 #3602 상태체크중, 바다표범회충 기반의 실험체 #142 상태체크중 그리고 물개회충 기반의 실험체 #29930 상태체크중. 흐으음. 이정도면 제법 양호하군."

쪼꼬미 벌레들이 한데 뒤엉켜서 지랄방광을 하고 있는 시험관들을 지켜보며 나는 그렇게 평가를 내렸다. '언데드 기생충의 해부병리학'을 주제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지도 벌써 보름째. 처음에는 소형화된 언데드 회로의 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나가거나 활동을 정지한 기생충들이 대부분이였지만 이제서야 제법 쓸만한 샘플들이 나오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언데드 회로를 소형화 하다보니 [이동][공격][수비] 같은 단순한 명령어조차 입력할 수 가 없다는 점이였다. 그렇다보니 목표 타겟은 설정하는건 둘째치고 지 주인조차 못알아보고 살을 파먹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안전한 용기에 보관했다가 적의 내장기관 안쪽으로 밀어넣는 방향으로 써먹으면 되는 일이지만, 과연 어떤 적이 이런 징그러운 기생충들이 득실거리는 용기들을 올타쿠나하고 먹어줄까. 즉 기생충 좀비 개개인의 장기 침투력은 어느정도 보장된 상황이였지만 그걸 활용할 방안에 관해서는 조금 더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였... 잠깐!

그런데 여기 있던 니베린 촌충 기반의 실험체 #23은 어디간거지? 기생충 좀비 실험체들의 상태를 일일히 체크하며 연구 결과 분석을 하고 있던 나는 문득 시험관 자리 하나가 비어있는걸 확인하곤 아연실색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제어불능의 작은 포식자들이 수왕성의 해양 생태계로 유출되기라도 했다간 디파일러 침공보다 더 끔찍한 참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였다.

"와아 아빠, 이 애완동물 완전 귀엽잖아! 내가 실에 하나씩 꿰어서 길러야지. 발버둥 치는 모습도 너무 깜찍해!!"

"네크로필리아, 아버지 물건에 그렇게 함부로 손대면 안돼... 꺄아아아아악! 이 벌레가 제 인피층을 침투하려고 해요!! 레이저 분사 개시!!!"

-입실론(E) 사출 준비중(6/100)

-입실론(E) 사출 준비중(23/100)

-입실론(E) 사출 준비중(51/100)

-입실론(E) 사출 준비중(88/100)

-입실론(E) 사출 완료(100/100)

치지지지지지지직!

나는 정말 앗차하는 사이에 개판이 된 간이 공방의 실험구역을 지켜보며 뒷목을 부여잡았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체내에 침입했을시 치사율이 70%를 넘어가는 기생충 좀비가 득실거리는 실험실에 자녀를 출입시키지는 않을테지만, 애초에 나부터 정상적인 부모가 아니였고 네크로필리아와 프랑케네뜨도 정상적인 자녀가 아니였다.

거기다가 저 두 자매가 지금처럼 사고만 치는게 아니라 나름 이번 연구 프로젝트에 각자 공여하는 바가 나름 있었기에 무작정 야단만 칠 수 도 없는 상황이랄까. 프랑케네트는 하이테크놀로지의 결정체인 초소형 위성으로 네크로필리아는 신사임당도 울고갈 바느질 솜씨로 몇미리미터 단위의 기생충 신체 내부에 언데드 회로를 까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이다.

당초 '언데드 기생충의 해부병리학' 연구 프로젝트의 가장 큰 숙제로 여겨졌던 언데드 회로의 소형화가 이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일이 빠르게 진척되진 않았으리라. 아무리 이론상으로 검토가 끝난 논문이라고 해도 그걸 실전에 적용하는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얼티밋 언데드 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혈관에 언데드 회로를 새기는 BVE(Blood Vessel Engrave) 기법의 전문가가 된 나라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마력전도율이 높으면서도 회로간 간섭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네크로필리아의 머리카락이 아니였다면 한달이 아니라 일년의 유예기간이 있었어도 이번 성과는 불가능 했었기에, 나는 비교적 온화한 표정으로 그녀를 달랬다.

"네크로필리아야 나중에 공격성이 없는 애들로다가 따로 만들어줄테니까 그거 가져와."

"싫어. 싫어. 아빠 전에도 모래성도 같이 만들자고 해놓곤 약속 안지켰잖아. 또 약속 안지킬게 뻔하니까 애들 내 머리카락속에다 넣어서 기를거야!"

"아니 정신나간년도 아니고 기생충을 왜 머리카락속에 넣고... 아니, 아니다. 네크로필리아야 모래성 같이 짓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건 아빠가 잘못한게 맞으니 사과하마. 하지만 어차피 나 없이도 베르사유 궁전 뺨치게 잘 지었잖니. 결국 파도때문에 쓸려나가긴 했지만. 아무튼 그 벌레들은 기야스 바깥으로 유출되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좋을 말로 할때 어서 가져 오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다고?"

"그래 죄없는 물고기들이 자기 생살이 파먹히는 고통을 느끼면서 죽어가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니?"

"물고기 떼죽음, 물고기 떼죽음, 물고기 떼죽음... 와아아아아아 그거 재밌겠다! 벌레들아 우리 같이 바다를 정복하러 가자!!"

"이런 씨발 소리가 안나올 수 없네. 프랑케네뜨야 네크로필리아가 기야스밖으로 못나가게 막아!"

"아, 아버지 제가 아까부터 초소형 인공위성 앱실론(E)으로 그 벌레들을 1:1 마크하고 있었는데 한마리가 안보여요. 혹시 제 몸에 들어갔으면 어떡하죠? 저도 생살을 파먹혀서 고통스러워하다 죽게 되는건가요? 하아 다른건 수리할 수 있다쳐도중요 메모리 부품에 손상이 가면 안되는데."

"걱정 안해도돼, 프랑케네뜨야. 그 기생충 좀비 놈들이 기계 부품을 씹어봤자 지들 이빨만 나갈테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정 걱정되면 공방 입구에 있는 극자외선 살균 소독기 안에서 10초 정도 있다 나오던가. 아빠는 네크로필리아를 잡는 일이 급해서 먼저 실례할게."

아무리 슈퍼로이드라고 해도 아직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기생충 좀비의 치악력을 과대평가하는 프랑케네뜨를 안심시키는 것도 잠시, 나는 네크로필리아가 진짜로 수왕성의 바다에 니베린 촌충 기반의 실험체 #23를 풀어버릴 기세였기에 재빨리 공방 밖으로 튀어나갔다.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의 한켠에 마련된 이 간이 공방은 비교적 격납고와 위치가 가까웠기에 서두르지 않으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뭐 디파일러 퀸 엑시아 입장에선 동맹군이 참 사전작업을 잘해놨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수왕성 전쟁따위에 관여따윈 하지 않고 먹튀만 할 생각이였단 말이닷!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가 격납고의 수동개폐장치까지 일분내로 주파해낸 나는 륭 사부의 품안에서 버둥거리는 네크로필리아를 발견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행히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륭 사부가 사고뭉치 말광량이를 자세한 사정을 묻기전에 일단 붙잡고 본 모양이였다.

"이거 놔 못생긴 아줌마야! 나 애완벌레들이랑 물고기 낚시하러 가야한다고!!"

"낚시도 좋지만 지금 이 비행물체는 지상에서 150m 이상 떨어진 상태네. 멋대로 뛰쳐나갔다간 그게 다칠 수 도 있으니 일단 연자가 올때까지 본녀는 그대를 붙잡아 둘 수 밖에."

"후욱후욱. 륭 사부 정말 잘 하셨어요. 네크로필리아를 그대로 바깥으로 내보냈다간 다른 의미에서 정말 대참사가 났을겁니다. 그런데 혹시 네크로필리아가 들고있던 보라색 머리카락같은거 못보셨어요? 아마 조그만 벌레들이 굴비처럼 꿰어져 있었을텐데."

"흐음. 그거라면 갑자기 본녀의 피부에 올라타려 하길래 영압을 이용한 사자후로 전부 터쳐 죽였네. 혹시 연자의 중요한 연구물이였다면 미안하군."

"아니에요, 아니에요. 잘하셨어요. 그게 바깥으로 유출되는 것 보다야 훨씬 낫죠. 기생충 좀비의 샘플이 그것만 있는것도 아니고. 네크로필리아야 바다낚시가 하고 싶었던 거였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내가 갯지렁이를 채취해다 줄테니까 그걸 머리카락에다 꿰어서 월척을 낚아 보렴."

"한마리씩 낚는건 시시해, 시시해, 시시해! 물고기 떼죽음 , 물고기 떼죽음, 물고기 떼죽음 보고 싶어!"

"아니 기생충 좀비를 미끼로 쓰면 떼죽음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해양 생태계 자체가 멸망해버리니까 그러지 이년아!!"

륭 사부의 앞이기도 했고 앞으로 네크로필리아의 머리카락을 쓸떼가 더 많아질지도 몰랐기에 점잖이 말하려고 했것만 끝까지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그녀때문에 나는 마침내 그동안 참아왔던 화를 폭발시키고 말았다. 이러면 보통 가족 드라마에선 자녀가 울음을 터트리고 부모는 그걸 감싸안으면서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게 보통이였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네크로필리아가 자신의 눈을 길게 찢으면서 메롱을 하더니 바늘로 내 왼손을 찔러버린 것이다. 그 결과 봉합된줄 알았던 영혼의 상처(반신타락자 서열 4위 쟈크 더 리퍼로부터 입은)가 벌어지더니 나는 한순간에 또 다시 외팔이가 되고 말았다.

설마하니 이런 사태가 생길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내가 당황하는 사이 네크로필리아가 륭 사부의 품에서 다람쥐처럼 빠져나와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 네크로필리아의 뒷모습에서 안좋은 예감을 받은 내가 뒤늦게 그녀의 뒷꽁무니를 쫓았지만 격납고엔 얄미운 메아리 소리만이 남아있을 뿐이였다.

"아빠 바보 멍청이 멍텅구리! 팔 다시 고치고 싶으면 나 잡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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