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99화 (499/599)

499회

vol.14 Oxygan the True Queen Of Ocean

누가 봐도 괜찮은 제안? 지랄하고 자빠졌네. 누가 봐도 괜찮은 제안이 아니라 누가봐도 화살받이로 쓰고 버리려는 좇같은 제안이구만. 뭐 사실 디파일러 4개 사단을 선불로 내놓으라는 내 제안도 정상은 아니였지만, 디파일러 퀸 엑시아년이 아티팩트를 담보로 내놓으라니 수왕성 침공의 선봉을 서달라니 하는 비정상적 제안에는 넌덜머리가 날 정도였다.

그리하여 내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걸로 대답을 대신하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여기서 내가 거절해봤자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이라는걸.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여기서 허락의 뜻을 내비치고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을 하는편이 더 일을 스무스하게 만들어주리라. 그렇게 마음 속으로 결정을 내린 나는 가운데 손가락 대신 엄지와 검지를 말아올려 OK 사인을 보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이런 중요한 전쟁에 날 선봉으로 세우겠다니 동해귀왕 엑시아가 사람 보는 눈이 있구만. 그래서 정확히 수왕성 침공일이 언제라고? 대충 한달뒤라고만 해서는 나도 전쟁준비하기가 애매한데."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디파일러 엑시아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시는 날 수왕성의 이 푸른 하늘이 새까맣게 디파일러들로 물들테니까요. 날짜를 착각할 일따윈 없을겁니다. 그러면 저도 이만 슬슬 물러나 보겠습니다. 샨코 공주에게 지금처럼 농땡이를 치고 있다는걸 걸리기라도 하면 큰 사단이 나서 말이죠."

"오호라 천하의 디파일러들도 그 상여자 인어공주님이 무섭긴 한 모양이지?"

"후후훗! 그럴리가요. 이래뵈도 제 계급이 디파일러 아크비숍인지라 단신으로 레드 파이렛츠 전체를 몰살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엑시아 여왕님께서 절대 정체를 들켜선 안된다고 신신당부 하셔서 말이죠. 괜히 이런 일로 미움을 샀다가 눈먼 작살에 맞고 디파일러라는걸 들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아크비숍의 급속재생력은 너무 인위적이라 티가 바로 난다고요."

"뭐!? 네가 디파일러 아크비숍이라고?"

나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잡몹A, B, C중 하나로 보이는 무르갈이 아크비숍이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모름지기 아크비숍이라고 하면 디파일러 트라이브의 참모 역할을 겸함과 동시에 고위 술법사 뺨치는 이능력을 자랑하는 지성의 아이콘이거늘 이 횟집 안주상에나 올라갈법한 문어 대가리가 그 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단 말인가?

거기다 디파일러 로열나이트를 맡고 있는 샤힌이란 녀석도 그닥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으니 새삼 디파일러 퀸 엑시아의 진영에도 참으로 인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러니 디파일러 부대를 50개 사단이나 동원해서 물량공세를 펼치려는 거겠지. 아크비숍이 아예 없는 사리카야 진영보다야 형편이 나을지 모르겠으나 보면 볼 수 록 무르갈의 동태 눈깔은 어벙해 보일 따름이였다.

"우히힛! 그렇게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디파일러 아크비숍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옥토퍼두스 일족의 해적단원처럼 보이는 이 위장능력. 일찍이 엑시아님께도 상당한 고평가를 받은적이 있으니 말이죠."

"아니 내가 놀란건 그 부분이 아니라... 아 뭐 됐다. 그럼 얼른 가봐. 너랑 얘기하고 있는걸 샨코 공주에게 들키면 너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곤란해지니까. 아참 그 디파일러 4개 사단은 수왕성 침공일 당일날 지불할 생각인가?"

"예, 아무래도 디파일러 그랜드 룩 계왕고래 말고는 그런 대규모 병력을 운송할 수단이 전혀 없으니 말이죠. 뭐 그 자리에서 죽여서 VP를 취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다른 디파일러 병력이 보는 앞에서 동족의 처형식을 진행하는건 사기를 떨어트리니 다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처리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아 그 정도 배려는 해줘야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혹시나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이제는 정말로 떠나는가 싶었던 무르갈이 녀석답지않게 초점이 뚜렷한 동태눈깔을 번들거리며 다음과 같은 엄중 경고를 해왔다.

"디파일러 4개 사단만 공짜로 받아놓고 막상 수왕성에서의 전쟁에서는 도망친다던가 싸우는둥 마는둥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엑시아 여왕님께서 옥사건님을 절대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옥사건님께서는 아직 엑시아님을 직접 알현한적이 없어 모르실 수 도 있겠지만 정말 무서운 분이라구요, 우리 여왕님은. 운좋게 도망친다고 해도 우주끝까지 쫓아가서 대가를 치루게 만들겠죠."

"아이고 이 양반이 속고만 살았나. 전쟁 시작하기도 전에 배신할 걱정부터 하고 있어. 애초에 만에 하나라도 내가 배신을 때릴 경우 비단 엑시아뿐만 아니라 사리카야까지 적으로 돌리게 된다고. 내가 아무리 미친놈이라지만 디파일러 퀸을 한명도 아니고 두명에게 원한을 사는 짓을 하겠냐 말이지."

"우히힛! 하긴 그렇군요. 엑시아 여왕님도 그렇지만 사리카야님도 꽤 한 성깔하시는분이니까요. 옥사건님 말씀대로 제가 정말 괜한 걱정을 한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해서 빨리 헤엄쳐 노틸러스로 돌아가야할 것 같군요."

다시 동태눈깔의 초점이 사시처럼 풀린 무르갈이 헤실헤실 웃어재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거북이 등껍질을 챙겨 입더니 굳이 엉금엉금 기어서 반대편 해변쩍으로 사라져 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디파일러 아크비숍 보다는 횟집 서빙알바(손이 여러개니까 접시를 운반하기도 편하니)가 더 어울리는 녀석이였으나 자기 입으로 아크비숍이라는데 내가 뭐 별 수 있나.

직접 죽인 다음 획득 VP량을 측정하는 방법 말고는 딱히 계급 체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그냥 믿을 수 밖에. 아무튼간에 지금 내게 주어진 과제는 앞으로 남은 한달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였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끈적한 비치 피크닉 라이프를 신나게 즐기는게 답이겠지만 성욕이 사라진 지금은 웬지 내키지가 않는다.

마치 시험기간때문에 공부빼고는 뭐든지 심지어 방청소조차 재미있는 것처럼 섹스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들자 역으로 공부가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부라는건 무공, 술법 그리고 생명공학에 관련된 것들이였지만 한달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성과를 내기 위해선 연구주제를 효율적으로 선택해야만 했다.

괜히 전과목 다 100점 맞겠답시고 어설프게 수박 겉햛기식 공부를 했다간 죽도 밥도 안되는 결과가 나오기 쉽상이였던 것이다. 그러면에서 일단 무공은 아웃! 륭 사부라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무예 스승이 있다고 해도 나라는 제자가 너무 폐급이였다. 그렇다면 남은건 강령술법과 생명공학에 관련된 것인데 꽤 괜찮은 주제가 있긴 했다.

'바로 버려진 공방에서 주워온 연구파일중 하나인 언데드 기생충의 해부병리학.'

개노답 어보미네이션 삼형제인 눅눅이, 칠칠이, 덜덜이의 콤비네이션으로 되찾을 수 있었던 그 파일은 내가 한창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속에서의 박사 놀이에 심취해 있었을때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던 연구 프로젝트중 하나였다. 결국 실효성 문제때문에 중간에 엎어버리긴 했지만 그 골자 자체는 제법 나쁘지 않았다.

그 내용이 뭔고 하니 거대하고 강대한 몬스터, 예를 들면 드래곤같은 적을 상대할때 1000마리의 거인족 좀비 보다 1000마리의 기생충 좀비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였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전제긴 하지만 일단 드래곤의 신체내부에 기생충 좀비가 잠입해 들어갈 수 만 있다면 그 강력한 브레스나 용언도 사용하기 애매하진다.

아무리 그 잘난 드래곤도 미리미터 단위의 기생충 좀비만을 골라서 타격하는 재주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마룡(魔龍) 쉐도우스틸의 레이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꽤 진지하게 연구를 했었던 분야였지만, 언데드 회로의 초소형화와 숙주가 될 기생충 개체(VOT 온라인의 세계에서는 기생충, 바이러스, 세균같은 개념자체가 없었기에)를 구할 수 없다는 난관에 부딛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정도의 강령술 노하우를 축적한 지금이라면 한번쯤 시도해볼만한 과제이리라. 심지어 수왕성처럼 해양생태계가 버라이어티한 곳이라면 기생충을 채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그렇게 신종 언데드에 관한 영감을 터득한 나는 성욕만큼이나 활활 타오르는 연구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나란 인간도 한때는 이렇게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해나가면서 성취욕을 얻던 때가 있었지. 좋아 그러면 이번엔 진짜 제대로 한번 해보자. 언제까지고 새로운 보지털 둔덕이나 개간하는걸 낙으로 삼으며 살 수 는 없잖아? 적어도 성욕이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만이라도 내가 무르갈 녀석과는 비교도 안되는 지성의 아이콘임을 증명해내보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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