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98화 (498/599)

498회

vol.14 Oxygan the True Queen Of Ocean

남자라면 누구나 부처님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다. 바로 사정 직후 소위 현자타임이라 불리우는 시간을 가질때였다. 왼손으로 마스터베이션을 했든 오른손으로 슈퍼모델의 젖탱이를 주무르며 펠라치오를 받든간에 일단 한번 욕망의 찌꺼기를 배출하고 나면 아무런 참선 기간없이도 해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해탈의 경지란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만약 그랬다면 인류는 진즉에 멸종했을 것이다). 정력이 갈할 수 록 즉 성욕이 왕성할 수 록 금새 원기를 회복해서 여체를 다시 탐하게 되는 것일진데, 지금의 내 몸 상태는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했다.

현자타임 특유의 세상만사 덧없게 느껴지는 공허함과 무력감이 한참이 지나도록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선정성은 사라졌어도 폭력성은 남아있었던 덕분에 나는 내 감정을 흡수해서 볼이 빵빵해진 셰오 녀석의 멱살을 틀어쥐면서 소리쳤다.

"야 이 개자식아! 내 몸에 무슨 개지랄염병을 떨었길래 갑자기 여자보기를 돌처럼 생각하게 된거냐?"

'꺼어어어어어어억~ 아이코 죄송합니다. 오랜만의 포식이라 저도 모르게 트름이. 깊디 깊은 어둠의 왕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신 덕분에 제가 진화에 충분한 감정 에너지를 모은것 같습니다. 이정도라면 하급 어둠의 정령인 다크윙 아니아니 중급 어둠의 정령인 나이트울프까지도 넘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좆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너는 평생 최하급 어둠의 정령인 셰오가 딱이야. 내가 평생 진화 못하도록 막을거니까 꿈도 꾸지말고 어서 나한테서 훔쳐간 성욕 돌려내! 허기만 가시라고 이모션 링크를 해줬더니 하나의 감정을 싸그리 흡수해버리면 어떡하냐 이 씹어삼켜도 시원찮은 핫바리 새끼야!!!"

'죄, 죄송합니다. 깊디 깊은 어둠의 왕이시여 감정 에너지란건 흡수했다가 다시 토해낼 수 있는게 아닌지라 부디 선처를... 으아아아아악!!'

나는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솟아올라 셰오를 책상위로 내팽겨쳤다. 그러자 무슨 탱탱볼 마냥 이리저리 튕기며 새된 비명을 질러되는 녀석. 성욕이 사라졌을뿐이지 내가 무슨 벌레조차 죽이길 꺼려하는 스님이 된게 아니였기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이였다.

그렇게 사실상 정령가든 자체에 정나미가 떨어진 나는 책상위에 올려져 있었던 의문의 메시지따위는 머릿속에서 까맣게 잊어버린채 본래는 응접실 화장실 입구였었던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곳에는 웬지 모르게 고민 가득한 표정의 륭 사부와 함께 프랑케네뜨와 네크로필리아가 들뜬 표정으로 대기중이였다. 역시 피크닉이 중간에 끊겨서 아쉬웠던건 나뿐만이 아니였던 모양이군.

"아버지 갑자기 사라지셔서 정말 놀랐어요. 무사해 보이시니 다행이네요."

"아빠! 아빠때문에 정성들여 만들던 내 모래성을 미완성인채로 두고왔잖아, 어쩔거야!"

"미안하다, 미안해. 나도 고의로 그런건 아니니까 용서해줘라. 아무튼 기야스에 탑승해서 다시 그 무인도로 돌아갈테니까 모래성 만드는 것쯤이야 한손 거들어주지."

"연자여 그 피크닉건 말이다만 사실 연자가 준 수영복을 다시 입을 자신이 없어서 중간에 버리고 왔다네. 다소 민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연자가 준 선물인데 버려서 미안하군."

륭 사부가 평소답지 않게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해왔다. 만약 어둠의 최하급 정령인 셰오가 내 성욕 즉 리비도를 흡수하기 전이라면 전쟁준비로 한창 바쁜 샨코 공주를 닥달해서라도 새로 조개 수영복을 맞춰 입혔겠지만 지금은 웬지 만사가 귀찮게 느껴진다.

하여 나는 륭 사부에게 괜찮다는 느낌의 제스쳐로 엉덩이 대신 어깨를 두드리며 일행 셋을 이끌고 노틸러스 갑판에 주차중인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로 향했다. 타행성도 아닌 같은 육해공 내의 섬이였기에 이동시간은 극히 짧았다. 그렇게 천해의 관광명소로 다시 복귀했지만 섹스 욕구가 사라진 지금은 뭘해도 흥미가 떨어지는 기분이였다.

그렇다보니 무도복을 조금씩 말아올려서 수영복 비스무리하게 만든 륭 사부가 뻘쭘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올때도 밀어낼 수 밖에 없었고, 그녀 또한 조개 수영복을 버려서 내가 삐졌다고 생각했는지 얌전히 네크로필리아의 모래성 건설현장에 동참했다. 내가 거창하게 건설현장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한 이유는 네크로필리아가 모래성치고는 스케일을 아주 크게 잡았기 때문으로 주춧돌로 바위를 사용할 정도니 말 다했지.

나도 저렇게 모래성을 짓는것 만으로 행복했던 때가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여자 뒷꽁무니 쫓아 다니는 것 말고는 뭐 하나 재미를 붙이지 못하니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래도 귀룡탕을 먹었을때는 라라펠을 구조해야한다는 단기목표라도 있어서 이렇게까지 의욕이 떨어지진 않았는데 말이지.

어쩌면 귀룡탕과 같은 화학적 거세와 셰오의 폭식으로 인한 감정적 거세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는걸지도 모른다. 어찌됐든간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것 같았기에 나는 야자수 나무 열매 개수라도 세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여덟?'

그런데 그렇게 하염없이 야자수 열매 개수를 세고있던 내 시야에 묘한 그림이 포착됐다. 거북이 등껍질을 지고있는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맨들맨들한 머리를 제외하고 다리를 여덟개나 꺼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구와 수왕성의 생태계는 엄연히 다르다. 다리가 여덟개인 거북이가 있다고 한들 뭐가 대수냐 싶겠지만 그 움직임 자체에 웬지모를 위화감이 있었기에 나는 보는둥 마는둥 하면서 근처에 떨어진 야자수 열매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사사사삭! 소리를 내면서 팔족 거북이가 기어올때 녀석의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강속구를 날려주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어이쿠!' 소리를 내며 나자빠지는 거북이인척 하던 문어 대가리.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의도로 내게 접근했을것 같지가 않았기에 나는 성욕 대신 활활 타오르는 가학증을 충족시킬 심산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그래도 심심했는데 잘 걸렸다, 이 민머리 자식!

"넌 뭐하는 놈이길래 거북이도 아닌것이 거북이 등껍질을 지고다니는게야? 머리털 대신 성게 가시를 심어버리기 전에 어서 바른대로 말해."

"헤헤헤. 역시 소문대로 눈치가 빠르시군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레드 파이렛츠의 수석항해사를 맡고있는 무르갈이라고 합니다."

"레드 파이렛츠의 수석항해사? 그렇다면 샨코 공주의 부하라는 소리인데 한창 전쟁 준비로 바쁠때 이렇게 땡땡이를 쳐도 되는건가. 샨코 공주의 칠망경이면 외딴 섬이라고 해서 안전지대가 절대 아닐텐데."

"사실은 그래서 저도 거북이 등껍질로 위장했던건데 아무래도 무리수였던 모양이군요. 아무튼 이렇게 무사히 만나게 됐으니 동해귀왕 엑시아님의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어디보자 내가 편지를 여기 어디쯤에다 뒀을텐데."

손이 여덟개라 더 분주해 보이는 무르갈의 뒤적거림도 잠시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용어의 등장에 다급히 그를 제지했다.

"잠깐 방금 뭐라고 했지?"

"거북이 등껍질로 위장했던건데 아무래도 무리수였던 모양이라고..."

"아니 그 다음에!"

"동해귀왕 엑시아님의 메시지를 전하러 왔다고 했습니다만 뭐 문제라도?"

"뭐가 문제긴 뭐가 문제야! 너 니 입으로 샨코 공주 아니 선장의 휘하 해적단인 레드 파이렛츠의 수석항해사 무르갈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냐? 그런데 뜬금없이 동해귀왕 엑시아의 메시지를 들고왔다는게 무슨 개소리야?"

"쯧쯧쯧. 제 감쪽같은 거북이 위장도 눈치채신 분이 이런것도 바로 알아채지 못하십니까? 그말인즉슨 제가 엑시아님의 지시로 레드 파이렛츠에 잠입한 간자라는 소리지요.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으셔야지 배울만큼 배우신분이 이정도로 호들갑을 떨어서야. 어이쿠 그러고보니 편지를 거북이 등껍질에 나두고 왔구나.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저 문어대가리가 디파일러 퀸, 엑시아의 간자라고? 그렇게 놓고보면 확실히 모든 일이 말끔하게 설명이 된다. 하지만 수석항해사정도 되는 인물이 디파일러인데 전쟁이 코앞에 닥친 지금까지 샨코공주는 커녕 브루고뉴조차 눈치를 못채고 있었다고? 확실히 액면가로만 봤을땐 디파일러 로열나이트 쿠자르와 개과 수인족을 구분하기 어렵다지만 이건 너무한게 아닌가 싶었다.

"흠흠. 그럼 바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일단 엑시아님께서는 참으로 넓은 마음으로 옥사건님의 디파일러 4개 사단을 선불로 내놓으라는 얼토당토않는 제안을 허락하기로 하셨답니다. 그 대신 한달 뒤 있을 수왕성 침공에서 옥사건님이 선봉을 서주셨으면 한다는군요. 어떻습니까? 이정도면 제가 봐도 꽤나 괜찮은 제안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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