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7회
vol.14 Oxygan the True Queen Of Ocean
"륭 사부 잘 지내고 있었어요?"
"연자여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 그렇고 그런 일을 하다가 갑자기 사라지다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는가? 이번에도 연자가 무슨 장난을 치는가 싶어 본녀는 살심을 품었을 정도야."
"아 진짜 제가 불알 두짝 다걸고 맹세하건데 그 공간이동 사건은 제가 의도한게 아니였어요. 옛날에 잠깐 인연을 맺은 뱀술사가 장난질을 쳐논건데 저도 미치고 팔짝 뛸정도로 당황했다니깐요. 애초에 님도보고 뽕도따기 직전에 뜬금없이 고위술법으로 도망가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애초에 제가 쓸 수 없는 술법이기도 했지만."
"후우우. 나도 그 상황이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지않다는건 알고있네. 그렇다면 앞으론 어떻게할 생각인가? 듣자하니 곧 이 수왕성이란 행성에 전쟁이 일어날것 같다던데."
"아 그거라면 옛말에 이런 격언이 하나 있죠. 내일 세계가 멸망해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 저 또한 수왕성이 전쟁통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해변에 파라솔을 심겠습니다."
"이와중에 피크닉을 이어나가겠다는건가? 본녀는 괜찮을지 몰라도 연자의 양녀 둘은..."
륭 사부는 프랑케네뜨와 네크로필리아의 이미지를 잠시 떠올려 보더니 그 둘이 전쟁통이라고 해서 쉽사리 위험에 쳐할만큼 호락호락한 이들이 아니라는걸 깨닫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나 또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양아버지 당사자였기에 륭 사부의 탄탄한 엉벅지를 은근슬쩍 두들기며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이런 천해의 관광명소에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이대로 해변 피크닉을 끝내기엔 좀 아쉽지 않겠어요? 조금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기야스에 탑승해서 수왕성을 뜰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거기다 우리 못다한 응응도 마저 잔뜩 해야하니깐. 무슨 말인지 알죠, 륭 사부?"
"으흐음. 그건 그렇네만."
내가 이젠 아주 대놓고 륭 사부의 로켓가슴의 끝자락에 돋아난 젖꼭지를 매만지며 성희롱을 일삼자 그녀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시뻘게 진다. 항상 걸크러쉬를 넘어서 여포 뺨치는 여장부의 모습을 보여준 그녀였지만 이런쪽으론 전혀 내성이 없던 탓이다. 마지막으로 유두를 살짝 비틀자 고된 수련속에서도 싫은 소리 한번 내본적 없는 여무도가가 달뜬 신음을 내뱉는다.
"아흣!"
"그러면 륭 사부 조금 있다가 봐요. 제가 준 조개 수영복 설마 버린건 아니죠? 전 잠시 볼일이 있어서 이만."
비록 대답은 하지 않아도 륭 사부가 내가 준 물건을 함부로 버릴 사람은 아니라는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바로 노틸러스 선내 응접실의 화장실로 향했다. 피크닉을 재개할땐 하더라도 물의 정령신, 브루고뉴가 건네준 열쇠형 아티팩트를 한번 써보기 위해서였다.
절대 나만의 정령가든을 꾸밀 생각에 들떠서 이렇게 서두루는건 아니고 정령가든이라는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려면 일단 한번은 직접 봐야 될 것 같아서 말이지. 하여 잠겨있지도 않은 화장실 문의 열쇠구멍에 열쇠형 아티팩트를 꽂아넣고 90도로 돌리자 문너머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뭔가 이질적인 기운.
지체없이 화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진짜 고시원에나 볼법한 6평 남짓한 원룸에 낡아빠진 책생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책생위에 놓여진 의문의 편지에는 아마도 3수째 공시를 준비하다 공무원 합격에 실패한 공시생의 유언이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을 잠시 발휘해 봤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딴판이였다.
-빛의 정령신, 렘을 조심하라.
빛의 정령신, 렘을 조심하라고? 이건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빛의 정령신은 루 아니였나? 단 한번뿐인 만남이였지만 루는 고리타분한 뿔테안경을 제외하면 브루고뉴 못지않은 미남자였기에 잊을래야 잊을 수 가 없는 인상이였다.
거기다가 이름 뒤에 2, 3세같은 접미사가 붙지 않는다는건 빛의 정령신, 루가 중간계승과정없이 억겁의 세월동안 홀로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건데 뜬금없이 빛의 정령신 렘을 조심하라니? 혹시나 다른 숨겨진 메시지가 있는가 싶어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라질듯한 편지를 조심스레 돌려보던 나는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어 탄성을 내질렀다.
아! 그러고 보니 렘이라는 이름의 빛의 정령이 있었지. 워낙 존재감이 없는데다 생긴것도 무슨 흑백TV 시절 만화 캐릭터마냥 무채색이였기에 잠깐 까먹고 있었지만, 분명 빛의 정령신 루의 부름을 받아 다른 정령신들의 투표용지를 수거한 당사자가 바로 다름아닌 그녀였다. 무심결에 스이쿤처럼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최상급 빛의 정령이겠거니 하고 뇌리에서 지워버렸는데 이제보니 뭔가 수상하다.
정령신들의 투표결과를 오직 렘만이 알 수 있다는건 투표결과를 조작한다해도 렘밖에 그 사실관계를 알 수 없다는 소리아닌가? 흐으음. 물론 지금의 내 추리는 억측에 불과할 수 도 있다. 애시당초 이 출처도 불분명한 편지 하나때문에 의심암귀를 꽃 피우는 것도 우스운 일. 거기다 빛의 정령신이 루면 어떻고 렘이면 어떻단 말인가.
지금 내게 중요한건 륭 사부와 화끈하면서도 끈적한 한 여름밤의 추억을 만드는 것이지 때아닌 추리 게임이 아니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봄날 한창때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는 벚꽃처럼 의심암귀란 꽃이 사그라들었고 나는 미련없이 정령가든을 벗어나기로 했다. 의문의 편지를 넘어서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오오 어둠의 왕이시여. 마침내 돌아오셨군요. 실례가 안된다면 저 셰오가 어둠의 왕의 감정을 조금만 흡수해도 될까요? 너무 오랜 기간동안 굶주려 있었던 터라 이대론 령멸을 당할것 같아요.'
"너, 너 뭐하는 녀석이야?"
다시 노틸러스의 응접실로 돌아가려는 찰나 뭔가가 바짓춤을 잡아당기는 감촉에는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처음엔 고시원이란 정령가든 컨셉에 걸맞게 바퀴벌레라도 튀어나온줄 알았으나 그 목소리의 정체는 주먹만한 얼굴에 눈구멍인지, 콧구멍인지, 입구멍인지 분간이 안가는 구멍 세개가 박혀있는 쪼꼬미 정령이였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귀염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외모에 내가 밟아죽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찰나, 놈이 오랫동안 굶주렸다는 말과는 반대로 잽싼 움직임으로 내 바지 춤을 타고 어깨위까지 올라왔다.
'저로 말씀드릴것 같으면 어둠의 정령가든, 이클립스(Eclipse)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최하급 어둠의 정령인 셰오라고 합니다. 어둠의 왕께서 돌아오시길 오매불망 기다리느라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이 초췌한 모습을 한번 보십시오. 이런 저를 동정하신다면 부디 거룩한 왕의 감정의 일부를 공유할 영광을 나눠주시길.'
"내 눈에는 어디가 배고 등인지 구분자체가 가지 않는다만. 그것보다 딱 보아하니 꽤 오랜시간동안 이곳에 머물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아무것도 먹지않고 버틸 수 있었던거지?"
'그, 그게 붕괴된 정령가든에서 쪼개져나온 어둠의 속성력을 조금 흡수해가며 버텨왔달까. 하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저 정말로 령멸 당할지도. 흐극흐극.'
"오호라 그러니까 지금 주인이 빈 곳간의 쌀을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이거지? 이 쥐새끼 잘 걸렸다. 아주 요절을 내주지!!"
'딸꾹! 어찌 그리 야박하게 말씀하십니까, 깊디 깊은 어둠의 왕이시여. 그 곳간의 쌀을 모아온 주체가 바로 저 최하급정령인 셰오입니다. 절 다시 부활시켜 주시고 인계와의 계약라인을 복구시켜 주시기만 한다면 이 한몸 다 바쳐서 곳간의 쌀을 다시 채워넣겠습니다. 부디 선처를.'
고개를 땅밑으로 파고들어갈 정도로 조아리며 내게 자비를 구걸하는 어둠의 최하급 정령, 셰오. 그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괜시리 더 괴롭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오르시나와 달리 이 최하급 정령들은 속성력이란 곡기가 끊기면 정말로 죽을것 같았기에 나는 녀석의 머리 위로 손가락을 얹었다.
정확한 방법은 모르겠지만 브루고뉴가 유체화 상태인 오르시나에게 물의 속성력을 공급했던것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따라해 본건데 그 결과는 판이했다. 어둠의 속성력이 직접적으로 빠져나간게 아니라 나의 오염된 감정중 일부가 셰오에게 공유된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에 내가 급히 손가락을 때려고 했지만 이 셰오 자식이 찐드기 처럼 달라붙더니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브루고뉴에게 조금 더 정령가든에 관한 조언을 듣고 나오는건데 만사 귀찮다고 대부분의 설명을 스킵한게 패착이였다.
'아아 과연 어둠의 왕답게 스승, 유부녀, 후배, 부하, 용, 신 가리지않고 뿜어되는 이 왜곡된 색욕! 이 셰오 1000년치 곡기를 한번에 채우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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