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86화 (486/599)

486회

vol.14 Oxygan the True Queen Of Ocean

내 호출에 못마땅한 얼굴을 한 오르시나 어기적 어기적 수면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여성정장을 착용한 물의 정령 둘이 서로를 마주보게 되니 마치 노처녀 과장과 신입 대리가 마주본듯한 그림이 연출됐지만 물의 정령의 연배를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흐릿한 오르시나의 형체를 보자마자 존대가 튀어나온 노처녀 과장... 처럼 생긴 물의 정령.

"어머어머 오르시나 언니가 왜 거기서 나오는거에요?"

'그건 내가 하고싶은 말이야. 브루고뉴님을 보좌하고 있어야할 슈이쿤 네가 왜 여기 있는거야?'

"그게 이번에 수왕성이 새롭게 브루고뉴님의 케어 플래닛으로 선정됐거든. 그래서 수왕성의 본래 토착 주민인 여기 샨코 공주님과 브루고뉴님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달까. 으음 물론 그것도 디파일러들의 위협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판단되면 본래 업무로 돌아가야겠지만서도. 사실 내가 이곳에 같이 온것도 혹시나 디파일러들이 함선에 잔존 병력을 싣고 왔을까봐 검사하러 온거야. 그런데 설마하니 몇천년전에 해어진 오르시나 언니를 여기서 만날줄은 몰랐어. 그동안 어떻게 지낸거야? 특별임무때문에 차출된 후로 연락한번 없었잖아."

'으으음. 그게 말하자면 좀 긴데...'

"말하기 곤란하면 안해도 돼. 그것보다 저 사람 정령의 징표가 박혀있던데 언니의 새 계약자야?"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다른 물의 정령들의 계약에 관해서 왈가왈부하는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저 사람은 좀 그렇지 않아? 굉장히 음습하고 이질적인 분위기가 느껴져. 애초에 인간이 맞는지부터가 의심스러운데 물의 정령중 가장 엘리트라 꼽혔던 언니가 저런 사람하고 정령계약을 맺었다는게 이해가 안돼. 혹시 사악한 술법을 통해서 불공정 계약을 맺은건 아니지? 만약 그런거라면 왼쪽 눈을 두번 깜박여줘. 내가 브루고뉴님한테 말해서 도와줉테니까."

'그, 그런거 아니야. 그보다 브루고뉴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셔?"

오르시나가 내 눈치를 살살 보면서 대화주제를 은글슬쩍 바꿔버렸다. 내 성격이 읍습하고 분위기가 이질적인데다 사실상 인간과는 거리가 있는 존재인건 사실이였지만 바로 그 점때문에 자신의 옛 동료에게 마수가 뻗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였다.

실제로 만약 샨코 공주가 바로 곁에 있지않았다면 슈이쿤이라는 물의 정령이 육각수의 초월령, 브루고뉴의 수하가 아니였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영혼의 족쇄를 풀어 귀갑묶기를 시전했을 것이다. 그 후엔 어떻게 하냐고? 그거야 말할것도 없이 머리채를 고삐마냥 부여잡고 신나게 뒤치기를 하는거지.

물론 지금 내 타겟은 북해용궁의 공주인 샨코였기에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였지만 말이다. 마음같아선 슈이쿤이 무슨 아이돌 사생팬마냥 브루고뉴의 일거수 일투족을 떠벌릴동안 샨코 공주가 내게 시비라도 걸어줬으면 하는 심정이였지만, 한다리 걸쳐서나마 내가 브루고뉴와 인연이 있다는 판단이 서자 급격히 태도가 공손해지는 그녀.

"설마하니 브루고뉴님과 인연이 있으신 분인줄은 몰랐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아니 뭐 사돈에 팔촌만도 못한 인연이긴 하지만서도. 어쨋든 나는 마음이 관대한 남자니까 너무 신경쓰지마. 위수지역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들어온 내 잘못도 있으니까 말이야. 나름 변며을 해보자면 디파일러들을 수왕성에서 쫓아냈다길래 완전히 전투 위험이 종식될줄 알았지. 그런데 처음보는 함선에 다짜고짜 고압전류가 흐르는 작살을 집어던진걸 보면 그것도 아닌가봐?"

"최근에는 잠잠해 지긴 했지만 불과 한달전만 하더라도 디파일러 룩에 디파일러 나이트를 위시한 디파일러 폰 일개소대를 태워 툭하면 강하시키곤 했지요. 물론 그중 대부분은 브루고뉴님이 걸어주신 광역파도술법 덕분에 지상에 착륙하기도전에 수장되긴 했지만, 일부 개체가 운좋게 살아남아 게릴라전을 펼치면 여간 성가신게 아니기에 저희가 따로 감시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허나 그걸 감안해도 저희 부하들이 다소 거친 부분이 있었기에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부유능력도 없는 디파일러 룩에 병력을 실어 보내다니 사리카야 녀석다운 무식한 전법이로군."

"사리카야라면 디파일러 퀸, 다비금강 사리카야를 말씀하시는겁니까?"

브루고뉴와의 인연을 언급할때와는 달리 내 입에서 사리카야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눈에서 불을 키며 나를 노려보는 샨코 공주. 일찍이 내가 원했던 샨코 공주가 내게 시비를 걸어 역강간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 찬스였지만 내가 사리카야와 협력해 긴고를 물리친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비밀이였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질문을 맞받아쳤다.

"알다마다. 그쪽도 알지 모르겠는데 사실 난 이솔다 공주가 이끌고있는 동해용궁의 가디언 커뮤니티의 일원이였거든. 당연히 직간접적으로 사리카야와는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였지. 최종적으로는 사리카야때문에 수왕성에 쫓겨나기도 했고 말이야."

"아... 그러셨군요. 이솔다 공주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조차 수왕성을 포기하고 다른별로 피신했을때 끝까지 남아 인어족 난민들을 추스렸다죠. 하지만 그런 그녀의 최후의 선택은 결국 다른 행성에 기생하는 것이 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더군요."

"흐으음. 거기서 기생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둘째치고 팔륜성 이주건만 놓고 말하자면 이솔다 공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을거다. 그녀의 어깨에 걸린 수많은 인어족들의 목숨때문이라도 자존심보다는 생존을 우선시할 수 밖에 없었을테니."

"예, 저도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선택이라는건 아닙니다. 세상에 자기 고향별을 좋아서 떠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피식. 어디있긴 어딨어. 여기 바로 나 옥사건님이 불과 몇시간 전 지구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오는 길이란 말이지.

"허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했을때 같은 일개용궁의 계승자로서 그렇게 쉽게 투쟁의 길을 포기한건 고향별에 대한 애착이 부족한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고향별에 대한 애착인가... 그러면 이솔다 공주 일행을 다시 수왕성으로 불러들이는건 어때? 보아하니 어느정도는 디파일러들의 위협을 떨쳐낸것 같은데."

"그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비록 브루고뉴님의 도움이 아니였으면 불가능했을 수왕성 탈환이였지만 그 과정에서 저희 레드 파이렛츠의 희생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수왕성은 이제 인어족만이 아닌 고향별을 잃거나 무법자가 되어 우주 각지를 떠돌던 어류 아인종들의 새 삶의 터전이 되어야만 합니다. 아무리 동족이라고 해도 아무 희생도 치루지 않았던 그들에게 이 피묻은 바다를 공유할 수 는 없습니다."

샨코 공주의 단호한 어조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수왕성의 주인이 누군가는 내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였다. 중요한건 우리 쌔끄니 인어공주들의 보지의 주인이 누구냐였을 뿐이였기에 나는 이 문제에 관해서 달리 터치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오르시나와 슈이쿤의 열띤 수다도 슬슬 끝을 맺어가는듯 했기에 나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안을 하기로 했다.

"조금 늦은감이 없잖아 있지만 내가 수왕성을 방문한 목적을 밝히지. 믿고 안믿고는 우리 샨코 공주님 자유긴한데 나는 정말 순수하게 관광차 수왕성을 방문한 것 뿐이야. 옛날 추억도 좀 되새길겸 해서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혹시 아무런 방해도 받지않고 조용히 놀다갈 수 있는 무인도 같은게 있을까? 한 일주일정도 놀다갈 생각인데. 아 물론 VP는 제대로 지불할게. 겉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내가 꽤 부자거든."

"본래는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관광손님 같은걸 받지는 않습니다만 브루고뉴님과 인연이 있으신 분이니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단 VP는 필요없으나 약조해주신대로 정확히 일주일 후에 떠나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애들아 지금 당장 보급창고로 가서 술이랑 안주를 잔뜩 내와라. 그리고 이분을 sw186, ew398 좌표에 있는 섬으로 안내해드려."

"배려해주니 고맙군."

샨코 선장의 걸걸한 목소리에 내게 작살을 던졌던 해산물들이 일사분란하게 흩어진다. 사실 일주일의 시간은 드센 성격의 인어공주님을 꼬시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였지만 륭 사부와 애뜻한 시간을 보내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기간이였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빌미를 만들어서 샨코 공주를 자빠트리고 배꼽을 맞추려했던 나였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철옹성만큼이나 단단한 철벽녀의 기운을 감지하고 방향을 선회하기로 한 것이다. 애초에 이미 걸크러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륭 사부가 내 손안에 들어왔는데 굳이 다른 토끼를 쫓아 이 귀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기다려요, 륭 사부. 주먹 싸움에선 제가 밀릴지 몰라도 아랫도리 싸움에선 제가 한수 아니 다섯수는 위일겁니다. 아 그래 샨코 공주에게 조개 비키니가 남는게 있으면 하나 달라고 해야겠군. 으흐흐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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