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83화 (483/599)

483회

vol.13 Oxogan The Bony City Of Necropolis

"오, 옥사건님 저, 저쪽을 보십시오."

"뭐 어디?"

그렇게 내가 상온에서 24시간동안 방치한 뚜껑딴 콜라병같은 기분이 되어 있을때 누시아가 지금도 커스(커럽티드 스핑크스)가 낮잠을 자고 있을 종탑을 가리켰다. 혹시 상황이 모두 정리된 이제서야 커스녀석이 천역덕스럽게 기지개를 피고 하품이라도 하고 있는줄 알았으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자다가 악몽이라도 꿨는지 비명을 내지르며 종탑 창문을 뛰져나가는 커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캐슬거인 네크로폴리스ZX의 봉인이 풀렸다. 모두 도망쳐어어어!!

"야 커스 이 자식아 혼자 도망치지 말고 무슨 자초지종인지는 알려주고 가야할거 아니야."

-어라라 너 세트랑 싸워서 아직 살아있었어? 아니지, 아니지 싸워서 이겼으니까 네크로폴리스ZX의 봉인이 풀린거구나. 아무튼 지금은 길게 얘기할 시간 없으니까 일단 차원도약이나 항성도약이 가능한 아티팩트가 있으면 아끼지 말고 빨리 써버려. 요즘 우주 여행자들은 그런거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지 않나?

"말같지도않은 소리 하지마 이 자식아! 항성도약은 둘째치고 차원도약이 무슨 애들 장난인줄 알아?"

-아 몰라몰라몰라. 나는 먼저 가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봉인이 완전하게 풀릴때까지 시간이 있을때 최대한 도망치는게 좋을걸. 험한꼴 보기 싫으면. 그럼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고. 그때는 더 재미있고 난이도 있는 수수께끼를 준비해놓을테니까. 으흥흥흥흥흥흥!

캐슬거인 네크로폴리스ZX가 뭔지 제대로 설명도않고 호기심만 증폭시킨채 또 다시 줄행랑을 치는 커스. 그대로 날아서 고성 네크로폴리스를 벗어나는가 싶었으나 얼마안가 공간을 과자봉치처럼 찢어버리더니 그 안으로 쏙하고 사라져버렸다.

혼자만 살겠다는 그 얄미운 심보가 여간 약오르는게 아니였지만 그런 불평을 늘어놀 시간에 나 또한 살궁리를 해야했기에 서둘러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를 호출했다. 커스가 실없는 농담을 좋아하긴해도 거짓말을 할 타입으론 보이지 않았기에 전력으로 도망치라는 조언을 어느정도 귀담아 듣기로 한 것이다.

세트(덩달아 오시리스도 훅가긴 했지만)가 쓰러진 이상 네크로폴리스에 더 이상 볼일은 남아있지않았고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구를 버리고 떠나려는데 약빨(엘릭서0.0001%+맹물99%+가래침0.9999%)이 다했는지 지금까지 쥐죽은듯 아무말도 없던 올라운더가 딴지를 걸어왔다.

"쿨럭쿨럭. 아크리퍼공 어찌 도망칠 생각부터 한단 말이오. 절대 쓰러트릴 수 없을것 같았던 강적 세트까지 쓰러트려놓고 이제와서 도망치는건 정성스럽게 지은밥에 코를 빠트리는것과 마찬가지인 일이요. 주교들을 상대하느라 모든 총력을 쏟아부은 지구를 버리고 갈 순 없소이다."

"이 새끼가 세트랑 한창 싸울땐 가만히 있더니 무슨 개소리야! 내가 지구따위를 지키려고 세트랑 싸운줄 알아? 난 오로지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걸고 네크로폴리스 잠입계획까지 세웠던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내 자존심의 무게에 비한다면 지구는 깃털만큼 가볍단 말이다. 정 그렇게 지구를 구하고 싶으면 너나 여기 혼자 남아서 잘 비벼보라고. 난 슝하고 다른 행성으로 떠날테니까."

"그, 그 적어도 내려줄려면 지구엔 내려주면 안되겠소? 가능하면 사이킥 마스터공도 같이..."

"오냐, 그렇게 해주마. 다 죽어가는 빈사 커플끼리 어디한번 망해가는 행성에서 오순도순 잘 살아봐."

올라운더하고는 더 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나는 그를 강제로 기야스에 올라태운 다음 바로 지구로 향했다. 물의 수호정령 오르시나에게는 이미 수자원의 기운을 모아서 수어지교의 포탈을 열어두라고 지시한 상황이였기에 바로 떠나기면 하면 되는 상황이였다. 물론 앞서 선언했듯이 사이킥 마스터와 올라운더라는 귀찮은 짐은 떨궈버리고 갈 생각이지만.

이라는 생각도 잠시 나는 후방카메라를 통해 기이한 재건축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족보행 로봇의 형태를 띄기 시작한 고성 네크로폴리스의 모습을 확인하곤 조금도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되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설마 저게 캐슬거인 네크로폴리스ZX?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지구를 사과처럼 으스러트릴 수 있는 사이즈였기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나마 다행인건 덩치가 덩치다보니 변신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려 기야스가 지구에 도착하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기권을 돌파해 본래는 지구의 수질정화 프로젝트의 총본산이였던 아리수 본부에 착륙한 내가 오시리스와 영자통신을 시도하려는데 올라운더 놈이 또 귀찮게 말을 걸어온다.

"아, 아크리퍼공 저와 사이킥 마스터공은 지구에 내려주신다고 하지 않았소?"

"알았어, 알았어. 내려줄게 이 새끼야! 너는 그 말도 안되는 체급의 캐슬거인을 보고도 지구에 남고 싶냐? 참 대단한 고향별 사랑이다, 사랑이야."

"그, 그리고 혹시 가능하다면 갓핸드공의 곁까지 바래다주면 안될런지..."

"이런 시부럴 탱탱 부랄같은 새끼가 진짜! 아오오오오 복장 터져. 데려다 줄테니까 거기 얌전히 지끄러져 있어."

마음같아선 그냥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올라운더를 집어던지고 싶었으나 고성 네크로폴리스 빈집털이 작전에 그의 도움이 일부나마 있었던건 사실이였기에 나는 분을 삭이며 오르시나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이러다가 지구랑 같이 폭파엔딩을 맞이하면 너무 억울한데. 미리 저승문 개전의 술법이라도 써둘까? 아니 그전에 크림슨 메이든에서 싸이킥 마스터년이나 꺼내놔야겠군.

-뭐야 너 내가 없는 사이에 풍기는 기운이 좀 묘해진것 같은데? 내가 수자원을 모을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지금은 그런거 따질때가 아니니까 바로 수어지교 포탈이나 열어줘, 오르시나. 아 그리고 지금 일본 어딘가에 거대한 불상의 형태를 한 화신체가 하나 있을텐데 거기로도 수어지교 포탈을 하나 더 열어줄 수 있나? 같은 행성이니까 어차피 수자원을 많이 안먹을꺼 아니야."

-가능하고도 남지. 아이러니 하게도 그 세트라는 악신이 인위적으로 지구에 태풍을 불러온 덕분에 수질이 많이 깨끗해진 상황이거든. 전쟁통에 공장들이 거의 다 문닫은 영향도 있겠지만. 아무튼 난 언제든지 오케이니까 너나 빨리 챙길거 다 챙겨. 나중에 잊어버린게 있네 뭐네해도 반년동안 수어지교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니까.

"잊어 먹은거 없으니까 이 두년놈이나 아까말한 거대 불상 화신체가 있는쪽으로 보내줘. 그 후에 우리도 바로 용제성으로 떠난다."

-오케이. 그럼 바로 그 고철덩이를 출발시켜. 그 두사람은 내가 알아서 보낼테니까... 가 아니라 뭐 용제성? 너 수왕성으로 가는거 아니였어? 아케론강이 우주전역의 물길과 연결된건 맞지만 난 가본적 없는 행성의 물길은 못찾는다고.

"뭐!? 그런 중요한 사실을 왜 지금 말... 아니아니 됐다. 그럼 일단 수왕성으로가. 급한불부터 끈 다음에 느긋하게 용제성으로 찾아들어가면 되니까. 그곳 사람들하고 연락할 수단이 아예 없는것도 아니고."

오르시나의 돌발발언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나는 바로 기야스를 출발시켜 아리수 본부 근처에 생성된 소용돌이속으로 직행했다. 지금 이 순간도 캐슬거인 네크로폴리스ZX가 지구를 두쪽으로 쪼갤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였기에 일체의 망설임도 없는 선택이였다.

그렇게 해저속으로 잠수해 들어간 나는 주위 바닷물을 따라 물고기떼 대신 셀 수 없이 많은 망령들이 흘러가는 장면을 목격한 뒤에나 차원이 뒤바꼈음을 인지했다. 무슨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도 아니고 차원이동간에 아무 진동도 없다는게 말이돼? 기야스의 성능이 뛰어난건지 수어지교의 권능이 뛰어난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든 지구를 벗어났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으므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가면 갈 수 록 인외마경의 존재들만 적으로 등장해서 전투의 피로감이 급격히 증가하는 기분이랄까. 거기다 해치울때도 오롯이 내 힘으로 해치우는게 아니라서 찝찝한건 덤이고 말이지. 그러고보니 수어지교의 통로인 아케론 강에도 뱃사공 아론이라는 게이트키퍼가 존재한다고 했던가.

-조금 있으면 아론과 조우할꺼야. 내가 지금까지 모은 수자원의 결정을 뱃삯으로 지불할꺼니까 너는 아무말도 말고 가만히 있어. 안그래도 너는 언데드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정령도 아닌 이상한 존재라서 괜한 트집 잡힐 수 도 있으니까.

"예이예이, 그리하겠습니다."

망령들이 바닷속 플랑크톤만큼이나 많은 이 아케론 강이야말로 사령술사에게는 최적의 전투장소였지만, 굳이 세트도 한수 접어주는 초월적 존재를 상대로 뻗대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오르시나의 말대로 조용히 대기했다. 기야스의 외곽카메라를 통해 살점이 온전한것도 아니고 덕지덕지 붙은 좀비 한마리가 금방이라도 뒤집힐것 같은 나룻배에서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이 관찰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가는 잡몹A, B, C보다 못한 생김새였지만 종탑 3층의 가디언이였던 노산룡의 케이스를 생각하면 단순히 겉모습만 보고 전투력을 판단할 순 없는 노릇이였다. 그렇게 얌전히 기다리길 5분여. 어떻게 오르시나와 잘 얘기가 됐는지 순순히 기야스를 통과시켜주는 뱃사공 아론.

그럼 이대로 수왕성의 땅을 다시 밝게 되는건가? 물의 정령신이자 여신칼날단 서열 4위이기도 한 브루고뉴에게 패배해 디파일러 퀸 사리카야 마저 수왕성을 떠난 지금. 무주공산이 된 수왕성에서 나를 위협할 요소는 단 1도 없을터. 그렇다면 기왕 수왕성에 들린거 용제성을 찾아가전에 오랜만에 두 딸들과 함께 해변 피크닉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트와의 싸움(정확히는 아크리치EX를 격퇴하는 과정에서)에서 그 둘이 무척 고생하기도 했고 일단 무엇보다 나 자신이 너무 피곤했다. 그러고보니 유명 광고 프렌차이즈중에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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