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76화 (476/599)

<-- vol.13 Oxogan The Bony City Of Necropolis -->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이프리트 13세. 대속성 정령신의 자리에 검증되지 않은 후보를 급하게 추대했다가 다원속성간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건그거대로 문제가 아닌가?"

"누가 땅의 정령신 아니랄까봐 고지식 하기는. 이봐 노아스 2세, 그냥 복잡하게 생각할것 없이 일단 신격의 고리를 내려줬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시 뺐으면 되잖아. 뭐가 그렇게 조심스러워."

"중속성 정령신이라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번건은 대속성 정령신을 뽑는 자리야. 임기가 100년이 될지 1000년이 될지 알 수 없는데 무작정 빛과 어둠의 균형을 맞추겠다고

신원미상의 필멸자를 뽑을 순 없어."

"그래서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면 도대체 어떻게 하자고. 새로운 어둠의 정령왕 후보가 나타날때까지도 100년이 걸릴지 100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건 모르는건가?"

"Hey Yo! 둘 다 싸우지 말고 내 얘길 들어봐. 실피르피르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신격의 고리가 아니라 그 보다 한단계 낮은 정령왕관을 내리는건 어때? 그정도면 빛과 어둠 속성간의 불균형도 해소하고 문제가 생겼을때 수습하기도 좋지 않을까?"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실피르 7세. 하지만 그전에 아직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은 물의 정령신, 브루고뉴 1세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군요. 어짜피 신격의 고리건 정령왕관이건 제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모든 것은 강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면 될뿐."

"흐으음. 조금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제가 빛의 대정령이라고 해서 다른이의 마음속까지 밝힐 수 는 없는 노릇인지라."

"......"

"Hey Yo! 실피르피르가 대신 번역해줄게. 저 말은 그냥 무기명 투표로 끝내자는거야."

나는 신격의 고리니 정령왕관이니 하는 생소한 용어들때문에 잠시 벙쪄있다가 브루고뉴라는 단어에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어 잠시 회상에 잠겼다. 이제는 그저 추억이 된 천익성의 성토전에서 같은 공격로에 섰었던 디파일러 퀸 사리카야의 심복이자 반신타락자 서열 7위인 사두용미(蛇頭龍尾) 스고우.

그가 분명 이렇게 말했었지. 사리카야는 남해용궁의 공주(피바다의 샨코라고 했었던가?)가 데리고온 여신칼날단 서열 4위 브루고뉴에게 패배해 수왕성에서 쫓겨 났었다고. 그런 그의 정체가 실은 물의 정령신이였다고 한다면 육지와 바다의 비율에 따라 승률이 결정된다는 개소리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물의 수호정령인 오르시나조차 물가에서는 그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데 물의 정령신의 홈 어드밴티지라는건 이루말할 수 없는 수준이겠지. 아무튼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여신칼날단과 물의 정령신의 투잡을 뛰고 있는 브루고뉴야말로 내 선배로서 조언을 구할 최적의 상대하는 점이였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리 말을 해도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올뿐 전달이 되지 않는 현상황. 더군다나 손목, 팔목, 진짜 목까지 해서 목이란 목은 전부 다 빛의 고리에 감싸여 몸을 옴짝달짝 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그 답답함은 더더욱 가중됐다. 뭐 사실 저렇게 선문답만 연발하는 자식에게 조언을 구해봤자 제대로된 답변이 나올 확률은 희박했지만, 적어도 엔도미야가 투잡을 허락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알면서도 영입을 한건지정도는 알아야할텐데.

"내가 맞네, 니가 맞네 할 필요없이. 바로 다수결 투표를 하자는건가. 나 또한 실익없는 탁상토론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에 동의를 표한다. 루, 어서 진행을."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도록 하죠. 일단 정령왕관을 내리는건을 투표하겠습니다. 그렇게해서 만장일치가 나오는 경우 신격의 고리를 부여하는 투표를 진행하고 그렇지 않다면 다수결일 경우 즉 3명 이상의 정령신이 찬성표를 던질때에만 정령완관을 부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모두 이의 없으시겠죠?"

"투표하는거에는 이의없어. 그런데 굳이 무기명 투표로 할 필요가 있나? 우리가 한두해 본 사이도 아니고 그냥 찬성하는 사람은 번쩍 손들어서 후딱 끝내버리자고."

"아무리 그래도 공정하게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위해서는 무기명으로 하는게 맞지않을까요, 이프리트 13세."

"소신투표란 말이지. 사실 나야 무기명이든 유기명이든 상관없긴 한데 투표전에 후보자에게 뭐라도 얘기를 들어보는건 어때? 정령왕이 됐을때의 공약같은거라든가."

"그건 한번 들어볼만하군요. 저 어둠의 정령왕 예비후보님, 하실말씀이 있으시다면 지금 짧게 부탁드립니다."

뒤늦게 내 목소리가 더 이상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나는 언제 발언권을 잃을지 알 수 없어 랩퍼라도 된양 빠르게 소리쳤다.

"만약제가어둠의정령왕이된다면물심양면으로빛과어둠속성뿐만아니라물불바람땅의속성의균형도맞추기위해서노력할것이며대속성정령이든중속성정령이든소속성정령이든가리지않고공평하게대우해서조화로운정령계를만들어나갈것을약속드리며당선기념으로여러분들에게뽀찌도섭섭치않게넣어들일것이고정령계에풍력발전소와수력발전소지력발전소화력발전소를세워서국가발전에이바지하는..."

"예, 좋습니다. 거기까지 들어보도록하죠. 렘, 모자 좀 가져와 줄래? 지금부터 모자를 탁자밑으로 돌릴텐데 찬성하시는 분은 자신의 정령석을 반대하시는 분은 그냥 돌멩이를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직 렘만이 확인할 것이고 투표가 부결되더라도 그 투표내용은 저 조차도 확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빛의 대정령, 루라고 밝힌 흰색 쫄쫄이가 가볍게 손짓하자 어디선가 흑백만화에서 나온듯한 요정 한마리가 자신이 쓰고 있던 꼬깔모자를 들고 원탁 테이블 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민주적인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구식인듯한 투표가 끝나고 나처럼 말을 할 수 없는지 손가락으로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흑백소녀. 오른쪽 손가락 4개, 왼쪽 손가락 1개인가.

"찬성 4표, 반대 1표이군요. 그렇다면 신격의 고리는 부여하지 않는걸로 하고 지체없이 바로 정령왕관 수여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뭐 박수라도 쳐야하는건가?"

"꼭 그럴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새로운 어둠의 정령왕이 된 후보자의 당선소감정도는 들어봐야겠군요. 누가 뭐라해도 몇천년간의 공백을 뚫고 탄생한 정령왕이니까요."

빛의 대정령 루가 그렇게 말하며 내 다섯 목을 조이고있던 빛의 고리를 풀어줬다. 그러곤 투표에 쓰였던 모자에서 웬 왕관을 꺼내더니 흰색, 빨강, 파랑, 초록, 갈색의 보석을 박아넣었는데 바로 그 왕관이 정령왕관인지 정력왕관인지 하는 물건인 모양이였다.

걷보기엔 딱히 특별하거 없는 평범한 왕관이였지만 정령신들의 힘을 빌어 만든 물건이니 일단 최소 구십번대 아이템쯤은 되겠지. 그렇게 조심스레 왕관수여를 끝낸 루가 마지막으로 내 입을 재갈처럼 봉인하고 있던 빛의 고리까지 풀어주더니 소감을 물어온다.

"갑작스럽게 초대되서 당황했겠지만 이로서 그대는 새로운 어둠의 정령왕이 됬습니다. 이제 막 첫 계단을 밟았을뿐이지만 언젠가 그대가 정령신이 될 자격까지 갖추어 정령왕관을 신격의 고리로 격상시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혹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아 그전에 혹시 이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당신이 원하다면 원래 쓰던 필멸자로서의 이름을 쓸 수 도 있지만 어둠의 정령왕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싶다면 둠 6세라는 이름을 쓰셔도 됩니다."

"그딴 촌티나는 이름 쓸 생각없고 내 이름은 옥사건이니까 이 세자를 똑똑히 기억해둬라. 앞으로 너희들의 바램대로 기울어진 빛과 어둠 속성간의 균형을 바로잡기는 개뿔! 균형이고 나발이고간에 그냥 내 좆꼴리는대로 행동할꺼니까 앞으로 간섭이나 훈계질 하는 새끼는 그냥 죽었다고 복창하는편이 좋을거다."

"오, 옥사건씨 뭔가 심기가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인수인계할 부분도 있으니 일단 진정하고 제 얘기를..."

"원래 화장실 들어갈때 나올때 다르다고 후보가 당선되고 나면 태도가 180도 바뀌는거 모르냐? 그리고 난 재능충이니까 정령왕의 힘은 실전에서 알아서 배운다. 그럼 만나서 드러웠고 또 만나지 말자 이것들아!!"

꿀꺽!

벙찐 표정의 정령신들에게 끝까지 막말을 퍼부운 나를 거머리를 닮은 공허충(空虛蟲)이 집어삼킨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을 간질이는 기분 나뿐 목소리.

'저는 어둠의 상급정령 셰이드크롤러라고 합니다. 나의 왕이시여 어디로 모실까요?'

'처음 내가 왔었던 곳으로! 주제를 모르고 까불었던 해골나비 녀석에게 참교육을 시키러 가야지.'

'왕의 의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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