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13 Oxogan The Bony City Of Necropolis -->
륭 사부에게는 중지와 검지로 충성 손동작까지 해가며 자신감을 표출한 나였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가 않았다. 기야스의 전방카메라를 통해 전송받은 정보에 따르면 죽음의 구도자, 세트는 현재 해골나비 형태의 화신모드로 그 어떤 우주선 보다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으니 오시리스의 유해를 선수치는건 둘째치고 어떻게 녀석을 상대할지를 고민해야 했던 것이다.
"오시리스 지금 당장 화신체에 관해서 아는게 있으면 전부 다 말해줘요."
-화신체란 본래 아스트랄계가 아닌 물질계에선 본모습으로 현신할 수 없는 불멸자들이 특정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오리지널 폼을 형상화하는 것이지. 상당한 신앙에너지를 실시간으로 소모하기 때문에 숭배자가 많은 신들도 보통은 잘 쓰지않는 기술인데 갓핸드라고 하는 불멸자가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던 모양이군.
"그런데 그렇게 강력한 불멸자인 갓핸드가 왜 세트가 도망치는걸 왜 그냥 내버려둔거죠?"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를 추합해보면 동상이나 건물처럼 움직일 수 없는 매개체로 화신체에 돌입했을 가능성이 있네. 아니면 처음부터 도망치는 상대까지 추적해서 제압할만큼의 전투의지가 없었을 수 도. 아무튼간에 지금 중요한건 어떻게 세트의 화신체를 상대하는가일세. 화신체는 일정 수준 이하의 물리력이나 술법공격은 전부 무시하는 성질이 있어 물량공세로는 절대 이길 수 가 없네. 그래서 먼 과거에는 화신체는 화신체로만 상대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있었지. 지금이야 불멸자끼리의 알력다툼 자체가 드물어서 그닥 의미없는 소리긴 하네만.
"혹시 그러면 오시리스가 화신체로 나 대신 동생 좀 혼내 주면 안돼요? 아 딱히 세트가 두렵다는건 아니고 오시리스한테 복수의 기회를 주는거에요. 겸사겸사 형의 위엄도 세우고. 어때요? 끌리지 않아요?"
-흐음. 몇가지 조건만 갖춰진다면 나 또한 화신체로 강림할 수 있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야. 과거 저승에서 레레라는 이매망량으로 정령견신의 술법을 사용하지 않았나? 그때의 매개체 보다 3단계 아니 4단계, 5단계는 높은 매개체가 있어야만 내가 온전한 화신체로 강림할 수 있을게야. 신앙 에너지가 없는 불멸자의 궁여지책인 셈이지.
"흐음. 일단 하던대로 오시리스의 유해부터 되찾아야겠군요. 암흑 친화력이 높을 수 록 높은 등급의 매개체를 만들 수 있을테니. 문제는 소소에게 덧씌우냐, 레레에게 덧씌우냐는건데."
-아니 배신이 싫다면 둘다 데려오지 말게. 누차 말했듯이 망령은 세트의 고유영역이야.
과거 이매망량은 절대 안되고 이매망량 군단장은 괜찮을 수 도 있다고 했던 오시리스가 태도를 바꿔 아예 망령의 운용 자체를 금지해버렸다. 그 누구보다 세트를 잘 알고있는 장본인이 오시리스였기에 나는 구태여 토를 달지않고 종탑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출구를 찾는데 집중했다.
종탑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갈때만 하더라도 그리 길지않았던 일자통로가 마치 미로처럼 느껴지는건 절대 기분탓이 아닐터. 물질계가 아닌 이공간의 특수한 성질이거니 하고 애써 자위해보지만 한참을 달려도 나타나지 않는 출구때문에 내 인내심은 슬슬 바닥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설상가상으로 앞이 가로막힌 지형에 도달하자 분노의 발길질을 하지않을 수 없었지만 그마저도 바닥이 미끄러워 3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넘어지고 말았다.
"이런 커스 씨부럴 새끼가 처음부터 날 골탕먹일려고 길을 꼬아논거 아니야?"
쿠울쿠울.
인줄 알았으나 숨을 죽이고 귀을 기울여본 결과 나는 이곳이 커스(커럽티드 스핑크스)의 입속이란걸 알 수 있었다. 방금 바닥이 미끄러웠던 것도 바로 커스의 혓바닥 위였기 때문이였고 출구가 막힌것도 그저 커스녀석이 때이른 낮잠을 자고 있는 탓이였다.
당장 웬만한 양탄자보다 넓은 커스의 혓바닥을 블랙탈론으로 찔러서라도 녀석을 깨우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실수로 식도 안쪽으로 삼켜지기라도 하면 여간 일이 꼬이는게 아니였기에 내가 고심을 하는 가운데 솜털 쭈뼛쭈뼛 설 정도의 영압이 느껴졌다. 고성 네크로폴리스의 주인인 세트가 돌아온 것이다.
날개짓 한번에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한게 아닌 이상에야 있을 수 없는 복귀속도 였지만 화신체라면 불가능의 영역도 아니리라. 그리하여 혹여나 커스가 내 존재를 감지하고 세트에게 고자질을 할까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귀청이 떨어져 나갈듯한 불호성이 들려온다.
"커럽티드 스핑크스여! 지금 네크로폴리스에 판데모니엄의 악마들로 득실거리고 있는데 한가하게 낮잠이나 자고 있을셈인가?"
-우으으으응. 악마들이 쳐들어왔다고? 어쩐지 시끄럽더라. 빨리 정리 좀 해. 나 낮잠 더 자야한단 말이야아.
"크윽! 그래 좋아. 고성 네크로폴리스를 지키는게 커럽티드 스핑크스 네 본래 의무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치자. 도대체 무슨 영문으로 내 개인 예배당으로 향하는 이공간 출구를 외부인에게 열어준것이냐? 그것도 하필이면 내가 타행성으로 원정을 떠났을때!!
-그거야 수수께끼를 풀어서 열어준게 당연하잖아. 설마 지혜의 대환수인 나보고 저급한 쌈박질이나 해서 침입자를 막으라는거야? 난 그런거 싫어. 안그래도 발바닥에 생채기가 생겨서 신경 예민하니까 볼일 없으면 어서 나가봐. 판데모니엄에서 악마들이 쳐들어 왔다메.
"으으으으으으으으!!! 처음부터 네녀석을 가디언으로 세우는게 아니였는데... 그러면 내가 맡긴 호리병 목걸이라도 내놓거라. 더 이상 네놈을 믿을 수 가 없구나."
-호리병 목걸이를 내놓으라고? 그러면 내가 낸 수수께끼를 맞춰야지. 자 문제들어간다. 아케론강에 달걀 하나가 흘러들어왔어. 자 그렇다면 이 달걀은 어디서 흘러들어왔을까?
"내가 맡긴 물건을 내가 되찾겠다는데 왜 그딴 시덥잖은 수수께끼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냐! 지금까지 네놈을 소환하는데 사용한 신앙 에너지가 아깝구나. 썩꺼져라! 앞으로 다시는 네놈과 계약하지 않으리."
-흥이다! 너말고도 나랑 계약하고 싶어하는 사람 많거든.
커스의 입천장에 달라붙어 상황을 관망하던 나는 세트의 부처못지 않은 자비심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만약 내 부하가 커스같은 짓거리를 했다면 계약을 물리는 수준에서 끝낼게 아니라 사지를 분해해 버린 다음 바베큐를 만들어버렸을텐데 뭐가 그를 저렇게 소극적으로 만든걸까.
사실 세트는 겉으로는 까칠한척 하지만 속으로는 부하에게 따듯한 남자였다던가? 라는 의심은 바로 직후 무너졌다. 고성 네크로폴리스 안의 전황을 알리러 달려온 리치 한명을 세트가 무참하게 토네이도 믹서기로 갈아버린 것이다.
-세트님 지금 이곳으로 판데모니엄의 군주 마몬이 이끄는 헬하운드 부대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래서 뭘 어쩌라는 것이냐! 내게 알릴게 아니라 언데드 병력을 끌고가서 네놈이 직접 막으란 말이다! 나 죽음의 구도자, 세트가 그런 잡병력을 일일히 상대해야하느냔 말이닷!!"
"그르르르르르르르륵!"
그리고 그런 세트의 지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듯 불타는 개인간 마몬이 헬하운드들중 가장 선두에서서 종탑 2층으로 튀어올라왔다. 판데모니엄의 군주들중 유일하게 부하들을 보내지 않고 직접 게이트를 통과해 네크로폴리스에 도착한 마몬은 마치 오늘만 사는 사람 아니 악마처럼 토네이도를 가로 질러 세트에게 돌진했다.
종탑의 크기에 맞게 세트의 화신체인 해골나비가 줄어든 상태였긴 하지만 그의 권능으로 추정되는 날개폭풍우는 전혀 풍압이 줄어든 기색이 아니였기에 그 돌진은 사뭇 무모해보였다. 실제로 마몬은 다수의 토네이도에 휘말려 얼마 나아가지도 못하고 종탑 외벽에 쳐박혔다.
콰과과과과과광!!!
그러나 조금도 움츠려드는 기색없이 다시 일어나서 세트에게 돌진하는 마몬.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수백, 수천의 헬하운드와 함께라는 점이였다. 하지만 오시리스도 언급했듯이 화신체에게는 일정 수준 이하의 데미지를 무시하는 성질이 있었기에 그런 소위 개떼식 물량공세가 의미 있을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세트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한 이벤트였기에 나는 지금이야말로 커스의 입밖으로 뛰쳐나갈 타이밍임을 직감했다. 다른건 제쳐두고 오시리스의 유해를 되찾을 속셈이였으나 커스는 은근슬쩍 자신의 목걸이를 가로채려는 나를 가볍게 앞발로 쳐냈다. 하긴 세트가 달랬는데도 거절했는데 나는 허락하는게 말이 안돼지.
-호리병 목걸이를 가져가고 싶으면 퀴즈를 풀어야 한다니까 그러네. 자 문제 들어간다.아케론강에 달걀 하나가 흘러들어왔어. 자 그렇다면 이 달걀은 어디서 흘러들어왔을까?
"달걀이 암탉한테서 나오지 어디서 흘러오긴 뭘 어디서 흘러와!!"
"딩동댕! 정답입니다. 전에도 그렇고 너 생각보다 수수께기 잘푸는구나. 자 여기 상품인 호리병 목걸이 가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