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13 Oxogan The Bony City Of Necropolis -->
-이게 어떻게 된거야? 설마 정말로 고성 네크로폴리스가 점령당한건 아니겠지?
-말도 안되는 소리. 세트님이 자리를 비우셨다고 하지만 그곳에 주둔중인 병력이 지구로 출정나온 병력의 10배가 훨씬 넘는데 그런 일은 있을 수 가 없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야 어찌 갑자기 주교들중 몇명이 갑자기 신성의 고리에서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나는 눈앞에서 어떤 주교의 육체가 소리소문도 없이 붕괴되는걸 목격한적도 있네!
-허어 불경한 소리! 자네 세트님께서 듣는다면 큰일날 소리를 하고 있... 크아으윽!
-불경한 소리? 지금 네 대빵이 불가계 불멸자랑 싸우고 있는데 불경이라는 소리가 나와? 금칙어 말했으니까 너 아웃! 나무아미타불이다 이 씨벌새키야!!
미꾸라지 한마리가 웅덩이를 흐린다는 오랜 속설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단순히 그런 수준이 아니라 꼴뚜기 한마리가 바다 전체를 뒤숭숭하게 만드는 아주 심각할정도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를 일으키고 있는 중이였다.
방금처럼 불경이란 단어를 말했다고 주교 한명을 신앙의 고리에서 퇴출시키는건 예삿일이고 심지어는 연꽃의 구도자, 미륵과의 싸움에서 묵묵히 나를 보조하던 한 주교를 이름이 마음에 안든다고 치워버리기도 했다. 무슨 목적으로 이런 깽판을 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가지는 확실했다.
스스로를 오시리스의 사도라 밝힌 자는 고성 네크로폴리스를 점령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철통같은 경계를 뚫고 내 개인 예배실에 잠입한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성의 고리에 침입해들어온건 둘째치고 말만으로 주교들의 생사를 결정시킨다는게 말이 안됐다. 그건 오로지 죽음의 구도자인 나 세트만이 가능한 권능이였던 것이다.
사실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불멸자의 권능으로 이공간까지 창조해서 주교들의 라이프 베슬(Life Vessel)을 보호해왔던건데, 커럽티드 스핑크스(원래 나사가 하나 빠진 녀석이였으니까)야 그렇다치고 노산룡이 개인 예배당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건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노산룡은 필멸자로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 한계치인 심검(心劒)의 경지를 넘어 무형검(無形劒)의 경지에 도달한 선조인류로 나조차 무력이 아닌 영생이라는 미끼로 건져올린 그야말로 최강의 SSS급 가디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보니 충성심이 뛰어난건 아니더라도 타고난 천성탓에 자신이 맡은바 의무에 관해선 굉장히 책임감이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런 사단이 되다니...
"세상만사라는게 본래 뜻대로 흘러가기가 힘든법이지. 불멸자라고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법이야."
"닥쳐라, 미륵! 애초에 네녀석만 아니였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이 쓸모없는 행성에 뭐 먹을게 있다고 화신 상태까지 돌입해가면서 마지막까지 지키려 하는것이냐?"
"흐음... 글쎄. 아무래도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쌓은 추억때문이랄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VOT 온라인에서 쌓은 추억이라고 해야겠군. 어떤 계열의 불멸자건 전지전능한 힘으로 무한한 삶을 살다보면 권태기가 오는법이지. 한때는 필멸자였던 본좌또한 그건 마찬가지였어.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더 빨리찾아왔지. 그러던중 VOT 온라인이란 미지의 세계를 만나면서 많은게 바뀌었네. 자네는 아마 상상도 못할거야. 사슴조차 잡지못하는 레벨 1의 절망감을. 하지만 절망감이 날 다시 일으켜 세웠지."
"그러니까 지금 그딴 게임 나부랭이 좀 같이 즐겼다고 필멸자들을 구원하겠다는거냐? 이래서 출신이 미천한것들은 답도 없어. 애초에 신도 한명도 거느리지 못한 주제에 아무런 매개체 없이 화신상태를 유지하는것에는 한계가 있을터. 설마하니 스스로의 신격을 낮춰가면서까지 지구인들을 돕기라도 하겠다는거냐?"
"확실히 지구에는 제대로된 불자가 없지. 하지만 장인의 혼이 담긴 불상은 꽤 있어서 말이야. 날 걱정할 필요는 없네. 오히려 시간의 압박에 쫓기는건 자네가 아니던가?"
연꽃의 구도자, 미륵이 특유의 뭐든지 다 알고있다는 투의 재수없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주교들의 라이프 베슬을 보관한 개인 예배당이 외부인에게 넘어갔다는건 컨트롤 타워가 넘어간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였기에 내가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것 부정할 수
사실이였다.
물론 그동안 축적해온 신앙 에너지가 실로 막대했기에 내쪽의 화신(化神) 상태가 당장 풀릴리는 없겠지만, 주교들 사이에 도미노처럼 확산되고 있는 공포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데스스토커 교단의 위업이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몰랐다. 허나 문제는 이 빌어먹을 미륵 자식이 선제공격은 절대 하지 않은채 내가 하는 공격을 모조리 반격하고 있다는 점이였다.
필멸의 나비(Mortal Butterfly)로 화한 현재의 나는 날개짓 한번으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재해 제조기나 다름없는 상태였지만 미륵은 번번히 그 태풍을 천개의 손으로 부드럽게 흘려내 산들바람으로 만들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한두번도 아니고 열댓번씩 반복되다 보니 일단 후퇴에서 고성 네크로폴리스의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런 행동이 도망치는것처럼 비쳐질까 염려스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최측근 주교들과 함께 다시 한번 합심해서 미륵을 공격하려는데 어떤 주교가 내 신호를 받기도전에 화염술법을 시전하였다. 긴박한 전투상황이였기에 실수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갈 수 도 있었지만 그 화염술법의 타겟이 미륵이 아닌 바로 나였기에 나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날개끝이 살짝 그을리는 정도의 타격뿐이였지만 감히 주인에게 송곳니를 드러내는 사냥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게 무슨짓이지 캐달락 주교?"
-세, 세트 당신은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해고 우리는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했어. 그런데 지금 이게 뭐야! 별 시덥잖은 이유로 불특정 다수의 주교들이 개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육체가 붕괴된것 뿐이라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다시 부활할 수 있겠지만 신앙의 고리에서 빠졌다는건 영혼까지 소멸당했다는 거잖아! 난, 난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내가 뭘 위해서 마탑의 스승까지 배신하고 리치가 됐는데!!!
"이, 이 버러지같은 놈이 감히...!"
-오시리스의 사도라고 했지? 나 주교 캐달락은 세트를 공격했으니까 어서 날 살려줘! 설마 데미지를 줘야만 합격이라는 개소리를 하진 않겠지? 인간의 술법으로 화신체에 데미지를 주는건 불가능이나 마찬가지라고.
-예, 소원수리했습니다. 우리 캐달락씨는 라이프 베슬을 따로 빼놔서 나중에 부활시켜드리도록 할게요. 그러니 미련없이 육체는 버리셔도 됩니다. 뭐 평소에 세트한테 쌓인게 있으면 좀 더 저항하셔도 되고요.
-그래 어차피 버릴 육체라면 조금이라도 더 세트를 귀찮게... 으아아아아악!
"닥쳐라! 은혜라는걸 모르는 벌레 녀석에게 더 이상 볼일은 없다!!"
나는 내게 반기를 든 주교를 향해 날개짓을 했다. 그러자 맑은 하늘에 때아닌 허리케인이 피어오르더니 리치 캐달락의 육체를 흔적조차 없이 찢어발겼다. 죽기직전 배리어를 펼친것 같긴 하지만 화신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건 오로지 화신의 방어뿐이였다. 인간레벨의 잡기술로는 그 어떤 현란한 재주를 부려도 절대 저항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리치 캐달락을 한달음에 해치우고 주변을 돌아보자 움찔하는 주교들이 눈에 띈다. 가장 서열이 높은 즉 충성심이 높은 주교들만을 데리고 왔음에도 영멸의 기로앞에선 갈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내가 저들을 처리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주교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터.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도망친다는 오명을 감수하고 고성 네크로폴리스로 복귀해서 이 모든 사단의 원흉인 오시리스의 사도를 처치하는 것이였다. 겸사겸사 네크로폴리스의 병력들을 전부 차출해서 미륵 녀석을 다시 쳐부시는것도 괜찮겠지.
"전 주교들은 들어라.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미륵의 화신체를 저지하라. 나는 고성 네크로폴리스에 일어난 사건을 수습하고 언데드 군을 정비해서 다시 지구로 돌아오겠다."
-명을 받듭니다, 죽음의 구도자시여.
-고작 이런 일로 배신을 하는 자들이라면 차라리 이 참에 걸러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캐달락 전 주교의 일은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시길.
-부디 옥체가 상하는일 없이 무사복귀하시길.
뼛속까지 충성파인 주교들이 내게 위로의 말을 걸어온다. 그나마 저런자들이 있기에 아직 희망은 남아 있었지만 지구의 다른 대륙에서 정복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다른 주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떠올리면 마음이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빌어먹을 오시리스 자식 죽어서까지 내 발목을 잡을 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