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13 Oxogan The Bony City Of Necropolis -->
현재 나는 기야스에 올라 먹통이된 항법장치(저승에는 차원위상좌표가 없으므로) 대신 소혼녀의 조언에 따라 홍사해를 탐험하고 있는 중이였다. 홍사해에 보물이 있다는 그녀의 발언을 사령안으로 살펴본 결과 거짓이 아님이 밝혀졌기에 심심풀이 삼아 보물찾기를 떠나보기로 한것이다.
보아하니 주변의 원귀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길안내를 하는 모양인지라 나는 사령안을 발동해 소혼녀를 주기적으로 감시해야만 했다. 혹시나 원귀 사천왕이라는 별 거지같은 동맹놈들에게 연락을 해서 귀찮아질 수 도 있었기 때문이였다.
뭐 딱히 그놈들이 합심해서 공격해 온다고 해서 무서울건 없었지만 앞으로 륭 사부가 염무장에서 나올때까지 일주일 동안 쌈박질만 하다 끝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환락루에는 소혼녀 말고도 괜찮은 기녀가 많다고 하니 보물찾기 따윈 빨리 끝내고 어서 주지육림의 한복판에 내 몸을 맡기고 싶었다.
"옥공자님 보물이 있는 유적에 다와갑니다. 그런데 그전에 긴히 들일 말씀이."
"뭔데 이제와서 거짓말이였니 어쩌니하면 저승관리국에 넘길것 없이 내 손으로 영멸시킨다."
"거, 거짓말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다만 보물이라는게 보통 땅에 그냥 널부러져 있지는 않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가게될 유적에는 아뮤트라는 저승교란종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서 말이죠. 근데 여기서 아뮤트라는게 과장급 사신조차 단신으로 상대하기 벅찬 녀석인데다 저 같은 원귀에게는 천적에 가까운 녀석인지라. 물론 옥공자님에게는 한주먹감이란걸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조심하는 차원에서..."
"알았으니까 거기까지. 아뮤트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소혼녀 너는 위치만 안내하고 손때."
일전에 데모닉 그리모어의 비밀을 풀겠답시고 생선 찌꺼기를 들고 저승을 방문했을때 나는 아뮤트라는 이종보행의 악어와 조우하는 것은 물론 녀석의 목걸이에서 오시리스의 유해를 갈취한적이 있었다. 그 당시 토벌과의 까투리팀이란 곳에서 과장급 사신이 부하 사신들을 다수 이끌고도 꽤 고전했던걸 보면 소혼녀의 말에도 분명 신빙성이 있었다. 허나 지금의 내게 위협이 될정도는 절대 아니였기에 아뮤트가 몇명이 포진하고 있든 정면돌파할 생각이였다.
"옥공자님 다와갑니다. 저곳입니다, 저곳!"
"뭔소리야. 저기는 휑한 사막뿐이구만. 지금 나랑 장난하냐?"
"그, 그게 홍사해는 모래바람때문에 시시때때로 지형이 변하는지라 아무래도 유적이 땅에 묻힌것 같습니다."
"뭐라고? 그럼 아뮤트들도 같이 모래바닥속에 파묻혔다는거냐?"
"아뇨 아뮤트들은 모래속을 물처럼 헤엄칠 수 있는 종인지라. 다 살아있을겁니다."
"하아 성가시게 됐군. 피스메이커를 쏴버릴 수 도 없고 미쳐버리겠네."
"하,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설프게나마 아뮤트로 변장을 하는겁니다. 아뮤트들은 천리밖의 시체썪는 냄새도 맡을 수 있을정도로 후각이 뛰어나지만 시각은 형편없어서 대충 겉모습만 닮기만하면 동료인줄 알고 옥공자님을 데리러 올지도 모릅니다."
"아뮤트의 시력이 그렇게 형편없다고? 어쩐지 눈알이 단추구멍만 하더라니."
나는 유적이 잠들어 있는것으로 유추되는 장소의 상공위에서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지구 멸망을 대비해 각종 물자 비축한 색향천월관이라면 이종보행을 하는 악어 인형탈 정도야 간단히 만들 수 있겠지만 기야스에는 그 정도 시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다시 저승의 도심지로 돌아가는것도 애매한지라 고민하던 나는 문득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 손뼉을 쳤다. 퀼레뮤츠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기갑교룡(機甲蛟龍) 아쳐에 올라타 아뮤트들의 눈을 속이는 것이다.
물론 기갑교룡 아쳐는 아뮤트와 달리 4족보행을 하는 악어인데다 트롤왕 리쿤다운의 손을 거치면서 잡다한 무장이 장착되긴 했지만, 소혼녀가 말하길 아뮤트들은 다 눈뜬 장님이라고 하니 시도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리고 정안되면 기갑교룡 아쳐에 달린 무장들로 무력시위를 하는 방법도 있었기에 나는 망설임없이 격납고로 경로설정을 했다. 아 잠깐 그전에.
"필리아야 여기 새로운 소혼녀 언니가 외롭지 않게 절대 혼자 두면 안된다. 무슨 말인지 알지?"
"히히히히. 안그래도 소혼녀 언니 손톱이랑 내 손톱을 실로 묶어났어. 오늘 하루종일 실뜨기 놀이 할려고."
"오구구 내 새끼, 그래 잘했다. 소소 너도 필리아랑 같이 잘 감시하고 있어."
멈칫!
네크로필리아에게 새로운 놀이 상대가 생기자 은근슬쩍 내 뒤를 따라붙으려는 소소를 제지한 나는 선장석의 출발 버튼을 눌러 바로 격납고로 직행했다. 그렇게 마치 로못물 TV 애니메이션처럼 기갑교룡 아쳐의 바로 위에 떨어진 나는 새 무장을 살펴볼새도 없이 바로 파일럿석에 탑승했다.
본래는 리쿤다룬이 탑승하려고 만들었는지 잡다한 조종옵션이 내 눈앞을 가득 매웠지만 나는 모든 팝업을 무시하고 기야스의 격납고를 오픈시켰다. 쉐에에에에에에엥! 매서운 모래바람이 입구로 새어들어오는 가운데 나는 어설프게나마 기갑교룡 아쳐로 이종보행을 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조종옵션을 만져주지 않아서 그런지 갓난아기 걸음마 마냥 착지하자마자 넘어지고 말았지만 어차피 기갑교룡 아쳐에 탑승한채로 싸울 것도 아니였기에 나는 여전히 팝업을 무시했다. 그렇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모래바닥에 손발을 박은채 기다리길 삼십여분.
설마설마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모래바닥이 들석들석하는가 싶더니 익숙하다면 익숙한 단추구멍 눈과 길다란 주둥이가 쌍으로 떠오른 것이다. 나는 무력행사를 해서 바로 녀석을 사로잡고 싶다는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상대방쪽에서 다가오기를 침착하게 기다렸다.
"뭐야 이녀석 생긴게 뭔가 이상한데? 우리랑 같은 아뮤트 맞아?"
"위대한자의 유해의 기운은 분명 느껴지는데 목걸이 보이지않는군.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어쩌지. 유해 쟁탈전의 날에 위대한자의 무덤을 찾아온걸 보면 이 녀석도 목걸이를 걸고 싸우러 온것 같긴 한데. 입구를 코앞에 두고 쓰러진걸 보면 사신놈들에게 당한걸지도."
"일단 무덤 안으로 데려가보자. 어차피 문제가 생겨도 크로커가일이 알아서 해주겠지."
"그래 그렇게 하자. 그건 그렇고 올해도 역시 크로커가일이 쟁탈전에서 목걸이를 싹쓸이하려나?"
"아무래도 그렇겠... 우에에에에엑? 잠깐만 이녀석 덩치만 큰게 아니라 완전 무거운데. 무슨 쇳덩이를 드는것 같잖아. 다른 아뮤트들에게 지원요청이라도 해야하나?"
"어차피 모래늪으로 끌어당기는 것 뿐인데 뭐. 그냥 가자."
스르르르르륵.
기갑교룡 아쳐의 거대한 동체가 모래안쪽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간다. 처음부터 이럴계획이였던건 아니고 단지 조작미숙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을뿐인데 아뮤트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본거지로 날 끌고데려가다니. 내가 볼때 이녀석들은 눈이 안좋은게 아니라 머리가 좋지 않은게 분명하리라.
예의 무덤이란게 생각이상으로 깊은곳에 묻혀있는지 모래속 잠수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나는 그 사이 마땅히 할것도 없었기에 이번엔 진지하게 조종옵션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공학기계 덕후이자 밀리터리 덕후인 리쿤다룬이 지구의 현대문명을 접한 이후로 뭔가 필을 받았는지 별으별 장비가 다 달려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날씨나 지형에따라 기갑교룡 아쳐의 보행모드를 시시각각 바꾸는 인공지능까지 달려있었는데, 리쿤다룬의 솜씨는 아니고 천재공학자 우르사티가 미리 프로그래밍 해둔 소프트웨어인듯 했다.
정확히는 우르사티의 지시를 받은 프랑케네뜨가 내장 프로그램을 인스톨한듯 싶었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내가 따로 조종술을 배우지 않아도 오토모드로 기갑교룡 아쳐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조종옵션을 설정하는 사이 어느샌가 모래늪을 전부 통과했는지 주위의 시계가 밝아진다.
"어이 다 도착했다. 네녀석은 너무 무거워서 링 안까지는 못데려다 주니까 목걸이 쟁탈전에 참가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정신차려라."
-아... 가, 감사합니다. 초강시왕이라는 사신에게 당한 상처때문에 잠시 정신을 잃고 있었어요.
"역시 사신녀석에게 당한거였나. 그건 그렇고 초강시왕이라면 악명높기로 소문난 사장급 사신으로 알고 있는데 용캐 살아남았군. 제법 한가닥 하는 구석이 있는 모양인데?"
-우, 운이 좋았습니다.
"흐음. 그 운이 목걸이 쟁탈전에서도 통할지 지켜봐야겠군. 단 크로커가일에게는 함부로 도전하지마라. 녀석은 운이 통할만한 상대도 아니거니와 상대가 상처를 입었다고해서 봐줄 아뮤트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