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13 Oxogan The Bony City Of Necropolis -->
"영력향상에 특효인 싱싱한 저승꽃이 단돈 엽전 닷냥!"
"황천의 풀코스 요리를 맛보실분은 저희 유황온천여관을 찾아주세요."
"거기 잘생긴 오빠 오늘 진짜 죽여주는 맛사지 코스 받고가!"
각양각색의 색동옷을 입은 호객꾼이 저마다 자기 업소가 최고라고 떠드는 이곳은 저승의 저잣거리. 설마설마 했지만 오아시스 하나없이 붉은 사막만 가득한 저승에 이런 번성한 도시가 있을줄은 몰랐기에 나는 눈이 휘둥그래해져서 주변을 살폈다.
"죽은 자는 산자와 달리 물이나 먹을게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원귀로부터 안전만 보장된다면 즉 치안만 좋다면 얼마든지 큰 도시가 생길 수 있답니다."
"그런것 치곤 술집이랑 식당이 엄청많은것 같은데."
"식수나 식량이 없어도 살 순 있지만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모르는건 아니니까요. 혹시나 싶어 말하지만 저치들이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술이나 음식을 사시면 안됩니다. 저승의 식재료는 대부분 이승 사람에겐 그 어떤 독보다 치명적인 성분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자칫 잘못 섭취했다간 저승의 손님이 아닌 주민이 되는 수 가 있습니다."
"딱히 구미가 당기는 음식도 아닌것 같다만. 그보다 쌔끈한 아가씨들이 즐비하다는 유곽부터 안내해봐."
나는 누가 저승 요리 아니랄까봐 정체를 알 수 없는 식재료들과 함께 부글부글 끓고있는 보라색 찌게를 흘깃 쳐다보며 초강시왕을 재촉했다. 세트가 지구를 정복하는데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유곽에서 흥청망청 놀다보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전에 저승관리국으로 가셔서 염라님을 먼저 찾아 뵙는건 어떨까요? 아마 저희가 도시 입구로 들어오기전부터 당신의 존재를 눈치채고 계셨을겁니다. 사장급 영력의 사신이 드문것도 있지만 당신의 영압은 굉장히 불길한 파동을 뿜어내고 있어서 말이죠."
"하아? 나보고 유곽에 들리기전에 높으신분한테 인사라도 하라는거냐? 이제보니 이게 진짜 목적이였던 모양이군."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신이 이 도시에 들어올때는 염라님을 한번 뵙고 가는게 관례라서요. 혹시나 나쁜 마음을 먹고 저승을 찾아온 영매술사들이 있을 수 도 있는지라."
"뭐 까짓것 못만날것도 없지만 내가 정중히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할거란 기대는 하지마라."
"후후후. 어차피 염라님은 그런 허례허식같은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걸 좋아하는 실속파이시지요. 그럼 이쪽으로."
초강시왕이 골목쪽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중앙도로로 나섰다. 도시의 입구와 직렬로 연결된 그 도로를 따라올라가자 길을 잃을 염려따윈 눈꼰만큼도 없을만큼 직관적인 구조의 궁궐이 등장했다.
낯선 손님의 방문으로 경계심 가득한 경비 사신들이 저마다의 낫을 집어들었지만 초강시왕 손짓 한번에 모두 꼬리를 말고 물러나길 수십여번. 마침내 염라가 거주하고 있는것으로 유추되는 알현전에 도착한 나는 예의 숨막히는 영압을 감지하고 애써 의연한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염라 회장님 저 초강시왕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아 들어와."
염라의 알현전에는 따로 경비 사신이 존재하지 않는지 초강시왕이 직접 창호지문을 여닫자 후끈한 열기가 안에서 전해져 온다. 난방이라도 틀어났나 싶었지만 사실은 염라가 웬 젓가락으로 족히 1톤은 넘어보이는 바위와 연결된 도르래 끈을 들었다 났다 하는 중이였다.
하드 트레이닝도 정도가 있지 아무리 봐도 손가락 근육만 아작날듯한 괴상한 운동. 만약 젓가락 연습이나 하려고 저 지랄을 하는거라면 염라도 보통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은 아닐게 분명했다.
"한참 고행중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예의 그 사령술사가 다시 저승을 찾아와서 염라님을 뵙고 싶다고 하기에."
"내가 언제 그랬어? 초강시왕 니가 외부이니 도시를 방문할땐 염라에게 인사를 하는게 관례라매."
"아하 제가 그랬었나요?"
"아니 이게 진짜 툭하면 입에 거짓말을..."
"그쯤해둬. 닭이 먼저건 알이 먼저건 지금 중요한건 옥사건 너와 내가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니까. 오시리스님께서는 여전히 잘 계시나."
지금껏 말이없던 오시리스는 염라가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자 기다렸다는듯이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를 통해 입을 열었다.
-나야 잘지내고 말것도 없는 신세지. 그보다 염라 혹시 최근들어 명이 다했음에도 저승으로 들어오지 않는 영혼들의 숫자가 많아지지 않았나?
"명부의 블랙리스트를 말씀하시는겁니까? 뭐 확실히 과거에 비하면 많아지긴 했지요. 옛날같으면 극도의 고행을 통해 필멸자의 굴레를 벗어던진 수도승들 정도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면 요즘은 개나 소나 편법으로 수명의 한계를 극복해버리니까요."
-아무리 좌도방문이라고 해도 자력으로 해낸 일이라면 그리 문제될건 없지. 허나 세트가 지금 하고 있는 만행은 조금 달라. 평범한 인간들조차 강제로 언데드로 만든 다음 영혼의 낙인을 박아 자신의 신도로 삼는일을 반복하고 있네. 처음에는 그 범위가 마을단위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교구확장이라는 명목으로 도시, 나라 그리고 행성까지 그 스케일을 넓혀가고 있지.
"하나의 행성이 통채로 언데드화된다면 그건 확실히 문제겠군요. 오시리스 당신과 재회했을때도 그런 일이 한번 하지만 보시다시피 저는 함부로 저승밖을 벗어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오시리스는 세트를 막을만한 묘안이 있습니까?"
-모든 힘을 잃고 육체란 그릇까지 깨져버린 내가 어떻게 세트를 당해낼 수 있겠나? 하지만 한가지 걸어볼만한 도박이 있다면 바로 지금 내가 영혼을 세들어 살고있는 집주인에게 모든걸 걸어보는거지.
오시리스가 말한 집주인이란 바로 나 옥사건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뜨끔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난 세트와 싸울 생각따위는 없었고 지구를 팔아치워 이득을 취할 생각뿐이였기 때문이였다. 염라도 나와 그리 생각이 다르지 않았는지 바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제 눈앞에 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걷는중인 이 친구가 보기드문 필멸자란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트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거대한 교구를 거느리며 막대한 신앙에너지를 축적한 상황. 저조차 승부를 쉽사리 장담하기 힘든 죽음의 불멸자를 그자가 이길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기에 도박인 것이지. 세트의 세력이 강대하다고해서 지금처럼 계속 방관했다간 정말 손쓸 수 없는 사태에 도달할지도 몰라. 세트가 지금까지 모은 신앙에너지로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허물면 세상은 지옥보다 더한 아귀틈바구니가 될걸세.
"후우우. 생각만해도 끔찍한 상황이로군요. 그런 일은 저 또한 바라는바가 아닙니다만... 그래서 오시리스가 제게 바라는 배팅액이란건 무엇입니까? 제가 가진 소울웨폰 삼신기를 전부 넘기면 되는겁니까?"
-그건 절대 안된다네.
"절대 안되긴 뭐가 절대 안되요, 오시리스. 저한테 쓸 수 있는 무기가 늘어나면 좋은거 아닙니까? 배팅이 어쩌구 저쩌구 하더만 째째하게 구시네."
-소울웨폰이라건 기본적으로 본주인의 영혼과 링크되어 있을때만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 염라 자네가 염왕저와 염왕곤을 넘긴다고 한들 세트를 상대로 승률이 올라갈 일은 없어. 실제로 옥사건 자네는 염왕채의 능력을 반의 반도 활용 못하고 있지 않나.
"활용못하긴요. 한번 시험해볼까요? 야 초강시왕 네가 가진 능력중 제일 강한걸로 날 한번 공격해봐라. 내가 염왕채로 모조리 반사해주지."
"후후훗. 재미있겠군요. 그렇다면 사양않고."
구십번대의 소울웨폰이 하나도 아니고 쌍으로 넘어올 수 있는 기회가 증발하려하자 나는 다급해져 무리수를 두었다. 아직 초강시왕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공격을 받아내는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였던 것이다.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였기에 염왕채를 소환한 나는 나름대로 기수식을 취해보이며 대비에 나섰다. 거기다 염라가 지금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은걸 보면 지금의 테스트를 암묵적으로 허락한 모양새였기에 나는 한층 더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초강시왕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입고리를 씩 올리더니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해쳤다. 역시 익히 예상했던대로 허리띠겸 연검이 그녀의 소울웨폰인 모양이였다.
"그럼 한번 가보겠습니다. 염라님의 안채에서 검을 휘두르는 무례를 용서하시길."
염왕편 시동기 발(發) 태양흑점[Black Sun Spot, 太陽黑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