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52화 (452/599)

<-- vol.13 Oxogan The Bony City Of Necropolis -->

"미, 미안하오. 하지만 아크리퍼고은 워낙 성정이 불같아서 그 당시 만류귀안 한짝을 내놓지 않으면 정말로 날 죽일것 같았소."

"그냥 아예 두짝 다 줘버리지 그랬냐? 이 머저리같은 새끼야!!"

나의 짜증섞인 외침에 올라운더가 꿀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현실에서야 말할것도 없고 특히 게임속에서 지독히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아크리퍼. 그런 그가 올라운더의 만류귀안(萬流歸眼)을 하나만 갈취한건 절대 자비를 베풀 목적이 아니였을거다.

밑천을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올라운더가 자살하는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토끼를 한마리는 놓아주고 한마리만 잡아두기로 한거겠지. 그만큼 만류귀안은 누구나 탐낼만한 독보적인 마안이였고 올라운더같은 쓰레기에게는 단 한짝이라도 아깝기 그지없는 물건이였다.

그래서 놈이 겁도없이 내게 덤벼들었을때 가차없이 빼았았지만 모든 밑천을 잃어버린 올라운더는 부끄러운줄 모르고 내게 목숨을 구걸했다. 만약 아크리퍼가 올라운더란 인간이 이런 구차한 남자라는걸 알았다면 진즉에 만류귀안을 두짝 다 빼았고 목숨까지 마저 걷어갔을 것이다. VOT 온라인에서 보여준 녀석의 인성이라면 그러고도 충분히 남지.

뭐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인성이 좋아서 올라운더를 살려둔 것은 아니였다. 내 주변에는 전부 정신지배를 받은 꼭두각시들밖에 없었으므로 일종의 화풀이용 샌드백으로 남겨둔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지구멸망 저지선의 부사령관같은 느낌으로 자리잡은 느낌이였지만, 내가 진실로 원하는건 아크리퍼나 아크데빌처럼 일인군단을 자처하는 소환사 유저였지 이런 민간인 보다 나을게 없는 떠벌이가 아니였던 것이다.

"이렇게 된바에 어쩔 수 없어. 하와이에 쏘기로했던 핵폭탄 천궁을 만주쪽에 쏴서 전선을 리셋하는 수 밖에."

"하,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무고한 민간인 피해가 대량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그럼 어쩌라고 이 개새끼야! 어차피 곧 있으면 그 무고한 민간인도 언데드 병사가 되서 베이징으로 진격할텐데 어쩌라고!! 중국땅이 하도 넓어서 내가 가진 싸이킥 안테나를 전부 설치하는 바람에 중국이 멸망하면 그걸로 다 끝이란 말이닷!!!"

내가 올라운더에게 만류귀안을 빼았아 익힌 기술인 싸이킥 안테나(Psychic Antenna)는 마치 전파탑처럼 사이킥 능력의 유효범위를 확장시켜주는 기술이였다. 단 한개만으로 일개 현(県)을 커버할 수 있을만큼 사기적인 능력이였지만 중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보니 내가 유지할 수 있는 한계치를 모두 써버린 상태.

물론 인간의 뇌를 직접 적출하는 브레인 서커(Brain Sucker)라는 수동 정신지배 방식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이런 전쟁통 중에는 쉽지않은 일이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미국 SSS소속 대원들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에게 브레인 서커 시술을 해놓는건데 같은 싸이킥 능력자들을 견제한답시고 괜히 설레발을 떨어서.

어쨌든 지난번 인페르노 소탕작전 이후 SSS 특수부대의 위상이 많이 올라간 상태였기에 미국내 주요현안들을 어느정도는 전해들을 수 있었다. 특히나 SSS의 초대국장인 가스킬 대령의 경우 국방성 팬타곤에서 미대통령이 주최하는 정기회의에서 작전참모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부분적인 간섭 또한 가능했다.

허나 미국의 경우 중국과 달리 어느정도 언데드 군단을 상대로 잘 맞서 싸우고 있다곤해도 다른 나라에 원군을 파견할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였다. 설사 여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평소 사이가 좋지않은 중국에 원군을 파견하는건 쉽지 않은 일일테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내 역할이 더 중요해져만 갔지만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았다.

"아, 알았으니 일단 진정하시오, 사이킥 마스터공."

"후우후우. 됐고 잠시 참새들하고 시야를 공유해서 실제 전황이 어떤 확인 좀 할거니까 올라운더 너는 전세계 라디오 뉴스나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어. 혹시나 싶어서 말하지만 내가 무방비한 상황이라고 개수작을 부렸다간... 말안해도 알지? 그 자리에서 염력으로 재활용 우유곽처럼 찌부러트려주마."

"소, 소인이 어찌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할 수 있겠소. 예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사이칵 마스터공이 지구의 유일한 희망이오."

"내가 지구의 유일한 희망이니 뭐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몇번을..."

비전모드 온(Visionmode On)

나는 올라운더 녀석에게 말을 걸어봤자 소귀에 경읽기란 생각에 말을 채 잇지도 않고 바로 비전 모드로 들어갔다. 사이킥 안테나 범위내에 있는 참새들을 정신지배하는 방식으로 시야공유를 하는 이 모드는 아무런 경계도 받지않은채 적을 정찰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짹짹짹, 뭐랄까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와중에 유유자적 방앗간의 곡식 낟알을 쪼아먹고 있는 참새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핵폭탄의 발사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정찰 작업은 필수적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방앗간을 벗어나자 마자 만주벌판을 빼곡히 매운 언데드 군단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로마시대로 돌아간듯 하나같이 냉병기로 무장한 그들은 전차위로 중화인민군의 시체를 챙겨넣으면서도 중공제 56식 AK소총은 헌신짝처럼 내다던지고 있었다. 뭐 아예 이해되지 못할 행동은 아니였다. 살점 하나없이 뼈만 남은 언데드 병사였기에 역설적으로 열병기인 돌격소총은 더 이상 무서운 대상이 아니였던 것이다.

총알 10발을 쏘면 십중팔구는 갈비뼈 사이로 스쳐지나가는데다 어쩌다 두개골의 미간이 뚫려도 스켈레톤 워리어들은 아무렇지않게 검을 휘두른다. 그렇기에 놈들에게는 대검이 달린 총검이라 해도 쓸데없는 장식이 달려 휘두르기 불편한 날붙이쯤으로 여겨지는 거겠지.

'사실 저 뼈다귀놈들보다 무서운건 따로 있었지만.'

무려 중화인민군을 인해전술로 앞도하는 스켈레톤 워리어였지만 언데드 군단의 병력제원이 저 놈들뿐이였다면 나도 핵폭탄을 사용하는 막장선택지까지는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현대전은 단순물량이 아닌 화력의 질로 하는 것.

수류탄, 유탄, 전차, 전투기등 스켈레톤 워리어를 허수아비처럼 쓸어버릴 열병기가 중국에도 분명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허나 문제는 언데드 군단의 데스나이트, 본 와이번 그리고 리치였다.

일단 데스나이트로 말할것 같으면 팬티 한장없는 스켈레톤 워리어와 달리 온몸을 풀 플레이트 아머로 감싸고 있었는데, 중요한건 그 방어구(사실 총알이 통하지 않는 방탄갑옷이라 이쪽도 까다로운건 마찬가지지만)가 아니라 전차를 두부처럼 썰어버리는 칠흑의 검기였다. 언데드 주제에 천외천 검사 랭커 유저 못지않게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놈들이 아니였다면 진즉에 전차부대가 스켈레톤 워리어들을 쓸어버렸으리라.

다음으로 본 와이번의 경우 단순스펙상으로 보자면 전투기쪽이 훨씬 더 뛰어났다. 문제는 이 본 와이번놈들의 숫자가 원체 많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였다. 거의 자살특공대처럼 본 와이번이 자신의 몸을 전투기의 동체에 갖다 박는 상황에서 공중지원을 받기란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리치는 병종들중 그 숫자는 가장 적었지만 죽은 아군을 다시 부활시킨다는 점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봐도 좋았다. 하여 나 또한 보이는 족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제거하려 노력하는 대상이긴 했지만, 리치는 그 자체로 천외천 랭커급의 술법사이다 보니 이래저래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와중이였다.

'저기도 리치가 한놈 보이는군. 조금 부하가 걸리더라도 염력을 써서 제거해볼까?'

사이킥 안테나가 사기적인 기술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였다. 정신지배같은 경우는 괜찮은데 염력이나 공간왜곡같은 기술을 원거리에서 쓰려고 하면 평소보다 수십, 수백배의 정신부하가 걸리기 때문에 나로서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리치 한놈을 공간왜곡으로 용암이 분출중인 활화산의 밑바닥에 쳐박았다가 코피가 터짐과 동시에 정신지배가 모두 풀려 군사지휘에 애를 먹은적도 있었으니 사이킥 안테나라고 해서 절대만능의 기술은 아니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 한명이 전황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 보니 나로서는 선택의 갈림길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염력을 쓸까 말까 고민하며 리치의 주위를 멤돌길 십여분. 갑자기 더러운 로브 속 안광이 번뜩이더니 참새와 시야공유중인 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순간 숨이 멎을듯한 긴장감이 찾아와 참새의 날개짓에 이상이 생겼고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뼈 재질의 창이 날라와 참새를 꿰뚫었다. 뭐야 씨발! 지금 내 존재를 눈치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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