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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건 더 디파일러-450화 (450/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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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없이 우중충한 목소리로 전략적 후퇴를 종용하는 오시리스. 허나 말이 좋아서 전략적 후퇴지 실은 60억 지구인을 고스란히 바치고 나는 개털 신세가 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반박하려던 나는 아야사가 바로 옆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관제탑실을 벗어나 복도로 향했다.

"오시리스 갑자기 그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에요. 전에는 무슨 운명력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오시리스하고 세트가 다시 만나는건 필연적인 일이라메요."

'그랬었지. 지금 그 생각은 동일하다네. 그렇지 않고서야 몇백광년 떨어진 저 멀리 우주에서 세트가 그 많은 행성중 지구를 찾아올리가 없을테니. 하지만 그와 내가 만나는는 것 까지가 필연적일뿐 그 이후의 상황은 무엇하나도 정해져 있지않다네. 이른바 아직 던져지지않은 주사위라고 해야할까.'

"그럼 주사위를 한번 던져봐야죠. 왜 판이 깔리기도전에 배팅에 쓸 칩까지 던져두고 도망을 쳐야하냐고요? 게다가 제가 세트랑 정면으로 부딪히겠다는것도 아니고 일종의 거래를 한셈인데. 흩어진 오시리스의 유해 수집은 오시리스가 가장 간절히 원하던 일 아니였어요?"

'바로 그점이 맹점인게야. 세트는 그 누구보다 나의 부활을 꺼려하는 불멸자중 한명일세. 처음 그대를 신성의 고리에서 조우했을땐 그저 필멸자중 조금 특출난 인간이 만용을 부린다 생각해 아무렇지않게 나의 유해를 넘긴다고 선언했을지 몰라도 직접 마주보고 나의 영혼이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목격한다면 어떻게 태도가 돌변할지 알 수 없네.'

"세트 녀석 말로는 60억 지구인들을 자신의 언데드 신도로 거두고 나면 오시리스의 유해가 담긴 호리병을 두고 미련없이 떠난다던데요?"

'자네는 그 말을 진짜 믿는건가? 입장을 바꿔서 자네가 세트였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보게. 불멸자는 함부로 거짓말을 해선 안된다는건 분명 사실이지만 그렇다고해서 진실을 꼭 말해야한다는 규칙이 있는건 아닐세.'

오시리스의 조언에 나는 머리를 관제탑실의 출입구에 기댄채로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내가 세트의 입장이였다면이라... 두말할 것 없이 모종의 개수작을 부려놨겠지. 세트 본인은 떠나되 부하들을 남겨놓는다거나 오시리스의 유해가 담긴 호리병에 강력한 저주를 걸어놓는다거나 자기가 한 약속은 지키면서 상대방을 엿먹일 수 있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비단 오시리시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나 또한 그러한 상황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은것은 아니였지만 문제는 이 대쪽같은 자존심때문이였다. 처음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 속 세계에서 수왕성으로 나왔을때 모든 스텟과 아이템이 증발할때만 하더라도 쫄보였던 나였지만, 지금까지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한 강자들을 연전연파하면서 하늘높은줄 모르고 콧대가 높아진 상황.

거기다 실제로 마신 루시페르를 격파한 경력도 있는 내가 쫄따구가 좀 많다고해서 악신 세트를 상대로 도망치는 것도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였다. 물론 앙그릿사와 오시리스가 입을 모아 피난을 종용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하는 기분이랄까.

'옥사건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대충 짐작은 가네. 모든 전력을 끌어모으면 그 상대가 무려 악신이라고 해도 해볼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거겠지. 확실히 그대는 필멸자로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강대한 힘을 축적했으니 그리 자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하지만 한가지 명심해야할 것은 불멸자라는 존재가 자신을 숭배하는 신도의 숫자에 따라 용수철처럼 극단적으로 힘이 강해질 수 도, 약해질 수 도 있다는 것일세.'

"뭐 그 이야기는 저도 귀가 닳도록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창세촉룡이란 이명을 지닌 선신 반고의 덩치가 그 세력이 흥할때는 산만하다가 쇠할때는 나무만 해졌다더군요."

'그와 같은 맥락으로 루시페르란 악신은 나처럼 봉인에서 풀려난지 얼마 안되었을뿐더러 인간

신도를 모은답시고 악마들에게 시종일관 채찍질을 시켰으니 실제로 모은 신앙 에너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을걸세.'

"제가 루시페르를 물리친건 순전히 운이었다고 말씀하고 싶은건가요, 오시리스?"

'꼭 그렇지는 않네.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불멸자는 불멸자. 천신 세라푸스처럼 모든 신도를 잃은 상황에서 치명적인 상처까지 입고 봉인당한 케이스도 아니고 운만으로 신을 때려잡을 순 없는거지.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건 나의 동생 세트가 얼마나 교묘히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쓰며 강대한 신도세력을 구축해왔는가야. 필시 세트의 직속수하인 1000명의 주교들 밑에는 그들이 따로 거느리고 있는 죽음의 사제들이 있을테니 세트가 축적한 신앙 에너지가 어느정도일지는 나로서도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네. 모르긴 몰라도 그대의 이매망량의 손아귀같은 기술로 지구를 사과처럼 으깨버릴 수 있을정도는 되겠지.'

"이매망량의 손아귀로 지구를 으깨버린다고요? 지금 저 겁줄려고 거짓말하는거죠, 오시리스."

'절대 거짓말이 아닐세. 물론 그만한 권능을 행할려면 세트로서도 막대한 신앙 에너지를 소모해야할테니 그런짓을 함부로 저지르지는 않겠지. 애초에 그럴 이유도 없고 말이야. 하지만 그 강력한 망령의 손아귀가 다름아닌 자네를 노린다면 어떻게 하겠나?'

꿀꺽.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오시리스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헤맸다. 얼티밋 언데드 폼의 재생력이라면 이내 몸이 속된말로 짜부가 된다고 해도 다시 재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부활이 가능하다해도 그런 막대한 행성파괴급 물리력 앞에선 구십번대 술법이고 나발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였다. 새삼 술법이 권능의 하위호환이란 사실을 피부로 실감하며 나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삼십육계? 흡성대법? 정면돌파?

"제가 세트와의 약속을 어기고 그냥 제 손으로 지구를 멸망시킨 다음 튀는건 어떻게 생각해요, 오시리스?"

'그렇게 할 경우 일시적으로 세트의 교구확장을 지연시킬 순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군. 왜냐하면 세트의 성격은 실로 집요해서 필멸자가 자신을 속였다는걸 알게될 경우 정말로 우주끝까지 쫓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세. 차라리 일순간 자존심을 굽히고 후퇴한 후 개인수련과 세력결집을 병행해서 훗날을 도모하는게...'

"오케이, 오케이. 대충 나와 세트 사이의 힘의 격차가 어느정도인지는 대충 알았으니 잔소리는 그쯤 해둬요, 오시리스."

'그럼 내 의견대로 지구를 두고 도주 아니 전략적 후퇴를 할텐가?'

"아뇨. 저는 원래 계획대로 세트와 거래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갈겁니다. 물론 교묘한 함정이 준비되어 있을테고 오시리스의 유해가 담긴 호리병 자체에 개수작을 부려놨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정도가 저라는 인간의 자존심이 굽힐 수 있는 최대한의 각도에요. 이 이상 구부리느니 그냥 죽고말래요. 거기다 제 경험상 인간이란 얄팍한 동물은 말이죠. 한번 굽히기 시작하면 계속 굽혀야 하는지라 나쁜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네요.

일단 색향천월관은 지금당장 용제성으로 보내고 저는 기야스를 타고 저승으로 넘어가서 세트가 올때까지 숨어있을랍니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군. 내 미약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해 그대를 돕겠네.'

오시리스가 더 이상 나를 설득하는건 무리라는걸 깨달았는지 채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또한 변덕어린 객기로 이런 주장을 하는게 아니였기 때문에 깊은 심호흡을 내쉰뒤 다시 관제탑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지체할것 없이 VOT 단말기를 통해 엔도미야에게 대권능으로 포탈을 열어줄 것을 종용한 뒤 색향천월관의 인공지능에게도 예약명령을 걸어두었다. 자 그럼 이제 어쩐다. 기야스를 타고 저승으로 떠나기 전에 아야사의 탱탱한 젖궁뎅이나 한번 더 만지고 가야겠군. 키히힠.

* * * *

"아빠 왜 우리만 따로 나온거야?"

"좋은곳으로 소풍갈려고."

"좋은곳? 좋은곳이 어딘데?"

"아아, 저승이라고 네크로필리아 너하고 딱어울리는 휴양지가 있어."

"에헤헤헤헤! 아빠랑 단둘이 소풍이라니 신난다, 신난다! 전아빠는 맨날 나를 골방에 쳐박아두기만 했는데 역시 새아빠가 최고야!!"

저승으로 소풍을 간다는게 그리도 좋은지 소소와 엘리자베스와 어깨동무까지 해가며 만세를 부르는 네크로필리아. 아무리 세상물정을 모른다지면 여전히 그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운 괴짜인형다운 행동이였다.

사실 소소는 그렇다치고 엘리자베스는 색향천월관에 태워 용제성으로 보내버리고 싶었으나 네크로필리아가 무조건 같이 있겠다고 박박 우겨되는통에 이런 저승행 멤버가 꾸려지고 말았다. 그밖에 유능한 나의 부하들이 에보니 메이든과 크림슨 메이든에 잠들어 있었으니 홀로 달에 남은 내 심정이 마냥 처량하지는 않았다.

자 그럼 슬슬 저승문개전의 술법을 펼쳐볼까. 기야스가 통채로 들어갈려면 제법 크게 만들어야겠지? 어찌됐든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셈이였고 그 결과는 저승에서 지구로 돌아왔을때 확인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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