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47화 (447/599)

<-- vol.13 Oxogan The Bony City Of Necropolis -->

-데모닉 그리모어를 어디서 익힌거지? 혹시 어디서 찢어진 한페이지를 주워 익힌걸로 나를 속이려 한것... 일리가 없나. 그랬다면 데모닉 그리모어의 사본을 거절할리가 없지.

"왜 내가 데모닉 그리모어를 익혔다는게 그렇게 의심스럽나? 뭣하면 악령군세 말고 백귀야행도 보여줄까?"

-집어치워라, 필멸자놈! 대단치 않은 술법시연으로 금새 우쭐해져 가지곤. 그래 좋다. 원본도 아니고 마도서의 사본을 두개, 세개 갖고 있을필요는 없는법이지. 그렇다면...

세트가 잠시 말끝을 흐리며 고민하는 흔적을 내보이더니 가슴팍에서 목걸이를 하나 꺼내 보임과 동시에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가, 사건형제? 겉보기엔 그저 보통의 뼛가루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호리병 안에든 가루의 정체는 무려 불멸자의 유해일세.

"불멸자의 유해? 그것 참 역설적인 표현이로군. 죽을 수 없는자가 어떻게 시체를 남긴다는 말이지?"

-물론 불멸자는 인간처럼 쉽게 죽지 않네. 불타는 태양속으로 집어던져도, 10,000m 심해 밑바닥으로 쳐박아도 살놈들은 살지. 설사 어찌어찌 육체과 붕괴된다 해도 영혼은 저승이 아닌 아스트랄계로 흘러들어가 훗날 부활을 기약할 수 있어. 그러나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이 유해가 태초의 제사장이라 불리웠던 나의 형 오시리스의 것이라는 거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긴 하지만 만약 인간이 이 유해를 흡수한다면 단기간에 어둠의 정령을 부리는 재능을 얻을 수 있지. 어떤가? 사령사 주제에 다양한 기술을 문어발로 익히는 자네에게 딱 어울리는 물건이라 생각한다만?

"흐으음으음. 글쎄올시다..."

나는 오시리스의 유해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는척 일부러 뒷말을 질질 끌었다. 사실 저 호리병은 앞의 3가지 거래품목과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내게 필요한 물건이였지만, 그렇다고해서 티를 내면 세트가 다른 생각을 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탓이였다. 뒷꿈치로 소용돌이까지 그려가며 시간을 끌때까지 끈 나는 마지못해 허락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신이라고 해서 전설의 무구들을 잔뜩 패키지로 가지고 있을줄 알았더니 고작 화장하다 남은 뼛가루가 전부라면 그거라도 받는 수 밖에."

-잘 생각했네, 사건형제. 나도 형의 유일한 유품을 이런식으로 쓰고싶지는 않았네만 슬슬 놓아줄때도 됐다고 생각했거든. 의미없이 아케론강에 뿌리는 것 보다는 자네처럼 유능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사령술사가 연구에 사용하는걸 형도 좋아하겠지.

"신도 입바른 말을 할줄 아는지는 몰랐군. 아무튼 고맙게 받겠... 어라라?"

휘이익!

내가 목걸이와 연결된 호리병을 낚아채려는 순간 세트가 마치 숙련된 야바위꾼처럼 도로 호리병을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지금 이게 뭐하자는 플레이야?

"이봐 세트 양반 재미없는 장난은 한번이면 족하다고."

-사건 형제야말로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건가? 지금 이곳은 물질계가 아닌 신앙 네트워크속이네. 호리병속의 유해는 둘째치고 먼지한톨조차 사건 형제에게 건넬 수 가 없어.

"아하! 맞아, 그랬었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무조건 선제시에 선불주의인데."

-뭐 자네가 카론에게 뱃삯을 지불하고 아케론 강으로 직접 찾아온다면 말리진 않겠네. 하지만 세상에 그렇게 비효율적인 거래가 어디 있나? 차라리 이런식으로 하지. 사건 형제가 잠시 지구에 자리를 비우면 내가 알아서 60억 인구라는 대금을 받아가겠네. 그 후 누가봐도 확실히 알 수 있는 표식하에 오시리스 형의 유해를 두고 지구를 떠나주지.

"지금 우리가 알아서 뷔패 음식 싹쓸이하고 음식값도 두고 갈테니 음식점 주인장보고 자리 좀 비워달라고 하는거냐? 그 말을 내가 믿을것 같아?"

-물론 이런 거래방식이 다소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도 있다는 점 인정하네. 하지만 불멸자들은 자신의 입으로 한 약속을 함부로 어길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닐세.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언령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아무리 필멸자와의 약속이라도 함부로 여길 수 없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방식 말고 달리 안전하게 거래를 할 수 있는 방식이 없지 않은가. 뭐 앞서 말했듯이 사건형제가 한발앞서 네크로폴리스 마중을 나온다면 나로서도 환영이네만.

세트가 호리병을 내 눈앞에서 살살 흔들며 약올리듯 말했다. 확실히 지금처럼 특수한 상황에선 세트의 말대로 하는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을듯 했다. 지구의 남은 수자원을 모조리 끌어모아서 오르시나로 하여금 사자 역할을 맡기는 수도 있긴 했지만 다소 리스크가 있는데다가 거래 수수료치곤 너무 비쌌던 것이다.

"쓰으읍. 확실히 그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는것 같군. 좋아, 세트 네 거래방식을 받아들이겠다. 혹시나 싶어서 말하지만 만약 60억 인구만 먹튀하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내쪽에서 지구 끝가지 네크로폴리스를 추적해서 하는 일마다 전부 훼방을 나주마."

-그럴일은 없으니 걱정 놓으시게, 사건 형제. 언령의 제약이란건 신격이 높은 불멸자일 수 록 가혹하거든. 그러면 살펴가시게. 나는 못다했던 예배 미사를 마저 진행해야겠군.

"그래, 세트 양반. 나중에 또 볼 수 있으면 그 나비가면은 좀 벗..."

파앗!

뭐라 말을 채 잇기도 전에 가몸날 땅 갈라지듯 부서져 내리는 주변 시계. 그렇게 다시 색향천월관의 관제탑실로 돌아온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건 두개의 콧구멍과 귓구멍에서 쌍으로 코피를 흘리고 있는 엘리자베스 No.101이였다. 딱히 그녀에게 특별한 애정이 있는것은 아니였으나 용린은리 사저로 변신 시킨 뒤 강제로 범하는 시나리오가 무너질까봐 나는 황급히 응급처치를 했다.

"야 멀쩡히 잘만 숨쉬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거야. 언데드 주제에 갑자기 빈혈이라도 온거냐?"

"크우웁. 세, 세트가 나를 이교도로 가, 간주하고 혼백의 고리를 끊어버렷... 쿨럭쿨럭. 유, 육체가 붕괴중이다. 제발,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이미 한번 죽었지만. 끄억!"

"뭐라고? 몇백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어떻게 혼백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거야? 이런 제기랄! 도플갱어 언데드같은 귀중한 샘플을 이런곳에서 잃고 싶지 않은데."

많은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리따운 얼굴은 어디가고 시시각각 상태가 안좋아지는 엘리자베스를 지켜보며 나는 초조해질 수 밖에 없었다. 세상만사가 끊는건 쉬워도 붙이는건 어려운 법이기에 그녀의 말대로 혼백의 고리가 끊어졌다면 사실상 그걸 다시 붙이는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했다.

아니 잠깐 혹시 네크로필리아 그녀라면 그 불가사의한 바느질로 다시 혼백의 고리를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경험이 희망의 불씨를 피어올린 순간 나는 품안에 응급환자가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채 목놓아 소리쳤다.

"소소야! 어서 필리아 데리고 관제탑실로 튀어와!!"

* * * *

우주밖에서 지구를 바라본 우주비행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별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허나 이제 막 출국(出國) 아니 출성(出星) 준비를 마친 색향천월관의 관제탑실에서 둥근 지구를 바라보는 내 마음에는 그 어떠한 감상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감정이 메마른게 아니다. 단지 내 마음이 오직 색기 넘치는 뮤즈들의 둥근 젖가슴과 엉덩이를 보고만 반응하기 때문이였다. 그렇기에 고성 네크로폴리스가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24시간도 아니고 반나절도 채 남지않은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지구인들의 피난이 아닌 바로 섹스였다.

어차피 색향천월관의 주민들과 연이 있거나 추천을 받은 지구인들은 이미 피난(사실 피난보다는 납치에 가까웠지만)을 완료한 상황이였으니 남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순전히 내 의지에 달려 있는 셈. 포도주와 스테이크까지 세팅하고 지구의 최후를 지켜볼 섹스 파트너 후보를 고르고 있었으니 적지않은 얼굴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일단 엘리자베스는 네크로필리아의 신들린 바느질 솜씨(?)에 어찌어찌 목숨은 구했지만 아직 후유증이 심각한 상황이였기에 재끼고, 그 밖의 색형천월관 멤버들은 순도 100%의 민간인이다 보니 지구멸망의 이유를 설명하기 귀찮아서 처음부터 제외했다.

그렇다면 남은건 요정족의 히야신스 3, 4세, 튜리파나 십이지천회 출신인 왕루옌, 쿤메이, 샤오밍정도가 있었지만 웬지 이 친구들은 쓰리섬이 아니면 영 재미가 없단 말이지. 언데드 부하인 하희빈, 듀리스, 시스트린은 시스트린을 제외하면 고분고분하질 않고.

마치 크리스마스날 연인처럼 여자친구와 연말 분위기를 내보고 싶었던 나였기에 선택지는 급속도로 좁혀졌다. 그래, 사실상 나와 처음으로 배꼽을 맞춘것이나 마찬가지인 아야사 크로스데일과의 무드있는 섹스로 지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거다. 생각만해도 전립선이 짜릿짜릿한 기분이였기에 나는 절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언데드가 되어 세트의 노예가 될 60억 인구의 안위? 좆까! 그딴건 내 알바가 아니란 말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