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46화 (446/599)

<-- vol.13 Oxogan The Bony City Of Necropolis -->

기분 나쁠정도로 올라갔던 세트의 입꼬리가 나의 강짜에 살포시 내려갔다. 아무리 영원한 삶을 사는 불멸자라고 해도 설마하니 자신의 고향별을 자기 손으로 멸망시키겠다는 또라이는 처음이겠지. 허나 이것으로 나름 한방 먹였다고 본 내 생각과 달리 세트는 비교적 평온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아 실로 흥미롭군, 흥미로워. 생각지도 못한 엘리자베스 프로젝트가 성과를 거두고 성과를 거둔 엘리자베스가 배신을 하고, 그 결과 자네와 같은 존재가 찾아와 거래를 제안하게 되다니 말이야. 좋아, 일단 이 무료하기 짝이없는 영생에 신선한 자극을 준 점에 대해서는 내 고마움을 표하겠네. 그리고 사건 형제는 나 세트의 영혼의 낙인에 저항함으로서 서로 동등한 거래자임을 증명하기까지 했지. 그도 그럴게 토끼가 생고기를 가지고 있다해서 사자와 거래를 할 수 있을리가 없지않은가. 사자는 힘으로 생고기를 뺴앗고 토끼까지 잡아먹으면 그만이니까.

"잡소리 작작하고 요점만 말해라. 뒷구멍으로 개수작 부리려다 실패했다는걸 그런식으로 포장하지 말고."

-후후훗. 자네 말투가 정말 예의바르다 못해 격식이 넘치는군. 주교들한테 묵언령을 내리지 않았으면 제법 시끌벅적 했겠어. 요약하자면 이거네. 자네가 지구를 멸망시킨다 한들 나는 이득을 보지 못하는거지 손해를 보는건 아니지 않나? 그냥 허탕친셈 치고 유유자적 지구 관광이나 하면 되는거지. 겸사겸사 자네의 뻔뻔하기 짝이없는 얼굴도 보고 말이야. 세상에 자기 고향별을 저당 잡다니 기도 안차서 원.

세트가 손가락을 깍지끼는 능청스런 제스쳐까지 겸해가며 나를 몰아붙이자 졸지에 나는 봉이 김선달보다도 못한 놈이 되고 말았다. 언뜻 들어보면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으나 나 또한 아무런 근거없이 이런 막장 거래를 제안하는게 아니였기에 바로 맞받아쳤다.

"그래? 지구가 멸망해도 손해가 없다고? 내가 아는거랑은 좀 다르군. 내가 알기로 현재 고성 네크로폴리스는 지저차원의 아케론강을 타고 지구로 이동중인데 그 과정에서 적지않은 뱃삯을 카론이란 게이트 키퍼에게 지불하고 있는걸로..."

-그대는 세계의 비밀을 너무 찌라시처럼 뿌려되는군.

촤르륵, 촤르륵, 촤르륵, 촤르륵!

물의 수호정령 오르시나가 수어지교(水魚之交)의 권능을 사용할때 대량의 수자원을 필요로 하는것도 바로 그런 맥락이였기에 내 주장은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수백명의 주교가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뼈다귀 재질의 벽을 소환해 동서남북을 차단하는 세트의 손길에도 거침이 없었다. 스스로 뭔가 쫄리는게 없다면 할 수 없는 행위에 나는 비꼬듯 말했다.

"뭐야 네크로폴리스의 주민이라면 다 알고있는 내용 아니였나. 눈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기왕 막는김에 천장도 같이 막지 그래."

-그럴필요는 없네. 어차피 신성 네트워크는 차단했으니까 지금부터 사건 형제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그 누구도 듣지 못할걸세. 그러니 우리 한번 허심탄회에게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자고 이 알량한 힘으로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는 건방진 필멸자 나부랭이야.

"크크킄. 이제야 본모습을 드러내는건가. 지금까지 부하들앞에서 체면 차리느라 고생이 많았겠어, 세트 양반. 사이비 교주도 마냥 쉬운 직업은 아니지?"

-사이비? 흥! 이 몸의 죽음의 권능도 진짜고 주교들에게 내려진 사령의 힘도 진짜일진데 사이비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뭐 됐고 나야말로 그대의 잡소리에 어울려줄 시간이 없으니 어서 원하는 바를 말해봐라. 혹시나 싶어서 말하지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거나 지구를 내놓겠다는 약속을 어길 경우 우주 끝까지 추적해 그대의 영혼을 아케론강 밑바닥에 떨구리라.

"오호라 그 말은 카론에게 건넨 뱃삯이 생각보다 비싸단걸 스스로 인정하는건가? 죽음의 신정도 되면 뱃사공정도는 프리패스일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군."

-같은 불멸자라고 해도 뱃사공 카론같은 게이트 키퍼는 규격외의 존재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나불거리지 마라.

"예이예이. 그러면 쥐뿔도 아는게 없는 필멸자인 내가 제안할 수 있는건 하나밖에 없겠군. 선.제.시.요!"

-뭣이라!?

"선제시라고, 선제시. 이런 기본적인 단어도 모르면서 필멸자와 거래를 하려고 했나? 선제시라 함은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가 판매물품의 가치를 정하는 선진거래법이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법이란 속담에 부합하기도 해서 지구에선 지금 이게 유행이라고."

나의 천연덕스런 말투에 세트의 얼굴이 일그러진게 나비가면 너머로도 훤히 보인다. 이제서야 거래의 주도권을 되찾았다는 생각에 나는 신나서 조건을 덧붙였다.

"그럼 어디 한번 우리 잘난 죽음의 신님께서 가지고 계신 귀한 물건들을 한번 읊어보실까. 혹시나 싶어서 말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품목이 없으면 그냥 지구 멸망시키고 튈거야. 이제와서 말하면 좀 그렇지만 지구를 멸망시키는 시나리오로 간다고해서 나한테 떨어지는게 없는건 아니거든."

-...하아! 이 개, 개인주의가 심한 필멸자같으니라구. 흐후훗, 그럼 이건 어떤가? 사건 형제를 나의 주교로 받아주는건. 세례명을 받음과 동시에 그대는 인간으로선 꿈꿔본적조차 없을 힘을 받게 될걸세. 거기다 이번엔 내가 특별히 선심을 써서 르 카드넬리의 미들네임 하사하도록 하지. 나에게 짧게는 100년 길게는 1000년 동안 봉사해온 주교들조차 받지 못한 사령의 진명 받고 싶지 않은가?

"좆까 이 새끼야! 어디서 약을 팔어. 미들네임을 하사하겠다면서 뒷구멍으로 개수작 부릴거 내가 모를줄 알아? 제버릇 개못준다고 이게 또 헛짓거리하네."

내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운채로 입에 침을 튀겨가며 반발을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미 야미도엔에게 더 디파일러(The Defiler)의 미들네임을 하사받은 경험이 있는 바. 미들네임이 지니는 초월적인 힘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미들네임을 새길때 영혼의 낙인이란 것을 같이 새겨버리면 나는 꼼짝없이 세트의 하수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였던 것이다.

-후후훗. 르 카드넬리의 미들네임을 위해서라면 영혼까지 팔아재낄 인간이 지천에 깔렸거늘 사건 형제는 취향이 참 까다롭군.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나의 초괴수급 언데드, 커럽티드 스핑크스를 하나 분양받아 가는건? 적군에겐 끔찍한 악몽이겠지만 아군에겐 천군만마보다 강력한 동료가 되어주겠지.

"그것도 패스. 남이 쓰던 중고를 재활용하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사건 형제가 나랑 거래를 하려는건지 아니면 나 세트의 인내심의 밑바닥이 어디까진지 시험해볼려는건지 모르겠군. 뭐 계속해서 이런식으로 나오면 내게도 다른 플랜이 있으니 어디 한번... 좆대로 해봐라 버러지같은 인간녀석아.

"그래서 그 잘난 죽음의 신 나부랭이께서 버러지같은 인간이 혹할만한 거래품목 하나 못내놔? 거래할 준비가 되있지 않은건 바로 너야, 이 줘도 안먹는 데리버거 세트같은 새끼야!"

-후우우우우. 좋아, 좋아. 그렇다면 이번건 어떤가. 사령술사라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아주 매력적인 품목이지. 사령의 정수를 담은 전설의 마도서, 그 이름하여 데모닉 그리모어. 네놈이 술법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풍문으로라도 그 이름을 들어봤을터다. 물론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지만 영혼에 관한 모든 진리를 담은 이 술법서라면 60억 지구인의 부조비로 충분하다고 본다만?

"싫어."

-이번에도 싫다고? 적당히 하거라 이 미천한 것아!! 데모닉 그리모어는 필멸자가 아닌 불멸자가 서술한 진리의 성서다. 네놈이 단칼에 이것을 거절한 합당한 이유를 대지않으면 이번에야 말로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네녀석을 우주끝까지 추적해 영혼을 나락밑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드리라!!!

"데모닉 그리모어라면 내 컴퓨터에 백업본만 수십개다 이 머저리야! 요즘이 무슨 책 하나 필사하면 붓으로 일일히 따라적어야 하는 시댄줄 아냐? 이딴 낡은 고성에 쳐박혀 사느라 시대의 흐름을 쫒지 못하는 모양인데 못믿겠으면 직접 눈으로 보여주지."

이매망량(魑魅魍魎) 제 2형 악령천인대(Expedition of the Evil Thousand)

말은 천인대였지만 세트의 영혼지배력이 공고한 이 콜로세움에서 내가 회유할 수 있었던건 보잘것 없는 망령 단 하나뿐이였다. 데모닉 그리모어의 육십번대 술법 악령군세의 힘을 받아 광폭화한 그 망령은 겁도 없이 세트에게 대들다가 옷깃도 스치지 못하고 영멸해 버렸지만 이정도면 내가 데모닉 그리모어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는 충분한 셈이였다.

그 사실을 세트도 모르지 않는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고 침묵을 고수했다. 짜식이 나한테 네크로노미콘과 귀혼강신법까지 있다는걸 알면 아주놀라 자빠지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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