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32화 (432/599)

"지하명부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죄인들이여 대사신의 부름을 받고 어서 속죄의 길로 나아가라. 첫번째 피고인 독룡, 팔타로스. 위 피고인은 블루아주 회장을 현혹해 일가친척을 모두 콩가루 집안으로 만든 죄로 1000년 노예형에 처한다. 두번째 피고인 공허한 바다의 지배자, 레비아탄. 팔타로스와 마찬가지로 아크데빌을 현혹해 테러집단 인페르노를 결성한 죄로 1000년 노예형에 처한다!"00432 vol.12 Oxogan The Dragon Knight Saga ========================= 땅땅!

나는 두 사령안을 마치 현미경 렌즈처럼 교차시킨 덕분에 오직 스스로에게만 보이는 판결봉을 두드리며 그렇게 선언했다. 사실 내 의지로 그런게 아니라 판결봉과 마찬가지로 내 눈에만 보이는 판결문을 무의식적으로 읽어 내려갔을뿐이였다. 어디가서 나쁜짓이라면 절대 빠지지않는 천하의 아크리퍼가 이런 낯간지러운 판결문을 자의로 읽을리가 없지않은가.

아무튼 진'사령안은 나로하여금 ~카마이타치의 새벽~이란 상식초월의 기술뿐만 아니라 혼백(魂魄)이란 개념에 대해서 오시리스보다도 자세하게 알려줬지만, 지금 그런거나 공부하고 있을 시국이 아니였기에 일단 뽑았던 사령안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사실 알려줬다기 보다는 진짜 현미경처럼 관찰시켜줬다는 표현이 맞겠지만서도)

그러자 지금껏 얌전히 지켜보고 있던 괴룡왕 바하무트가 굉음을 내지르며 나를 닥달해왔다.

-무슨 잔재주를 부리나 계속해서 지켜봤더니 고작 하는게 눈알 저글링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도대체 저 눈먼 늙은이 한명이 참전한것만으로 어떻게 전황을 바꿀 수 있단 말이냐! 오랜만에 본체로 몸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올줄 알았건만 다 허사였어. 이 이상 네놈의 농간에 어울려주고 싶지 않으니 고룡의 영혼을 내놓고 싶지않다면 그냥 뒤져라!!

"맞는말이야. 전투의지를 상실한 장님 사신따위로는 조금도 전황을 뒤집을 수 없지. 하지만 창대한 꿈을 이루려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유령고래와 유령용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어이 너 드래곤에 한정해서 영혼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지. 그런데 지금 이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리지않는다는 말이냐?"

-시끄럽다! 해츌링이 됐든, 성체 드래곤이 됐든, 고룡이 됐든 결국 나 괴룡왕 바하무트의 먹이일 뿐이다. 네녀석은 식탁에 오른 칠면조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인간을 본적이 있느냐? 더 이상 자질구레한 언어도단으로 짐을 귀찮게 굴지말라!!!

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싹!!!!!

바하무트가 진심으로 신경질이 난다는듯 가열차게 자신의 꼬리를 휘둘렀다. 안그래도 덩치가 진짜 산만한게 꼬리는 또 어찌나 기다란지 그 꼬리 채찍질 한번에 바닷물에 소용돌이가 생기더니 그대로 용오름이 되어 주변을 휩쓴다.

체급이 깡패라고 괴룡왕의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가 자연재해가 되어 돌아오니 힘싸움을 하기가 마땅찮았다. 결국 아크네메시스 모드를 유지하는게 더 이상 득될게 없다는 판단을 내린 나는 분리된 하반신은 나중에 조립하기로 하고 쉐도우스틸의 뼈와 살을 다시 에보니 메이든에 쑤셔넣었다.

그리고 이매망량을 전개해 우버리퍼의 손에 들린 요슈아를 다시 회수한 후 이매망량을 마치 에어캡처럼 둘러 몸을 보호했다. 반면에 우버리퍼는 내가 진'사령안을 각성한게 그리도 배가 아픈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용오름을 관망하고 있었는데 딱히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지도 사장급 사신이면 알아서 자기 살길을 찾아야지.

그렇게 용오름의 급류에 휩쓸려 표류하게된 나는 우버리퍼따위는 까맣게 잊고 새롭게 영혼의 족쇄를 차게된 노예들과의 면담을 시작했다.

'자 우리 친구들 처음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지금 당장 내가 손이 모자라서 그런데 각자의 특기를 한번 읊어보실까.'

'죽어서도 우리를 편히 냅두지 않다니 아크리퍼 네녀석의 악독함에는 정말 두손 두발 다들었다. 내 모든걸 앗아가 놓고서 도대체 뭘 더 빼앗으려고 한단 말이냐?'

'나는 이미 한번 네녀석의 부하가 되지않겠다고 말했을터. 베히모스 녀석처럼 이지를 잃고 썩은고기를 탐하는 괴물이 되고 싶은 생각따위는 없다.'

'후후후. 우리 노예친구들이 뭔가 착각하는게 있는 모양인데 나는 너희들의 특기가 뭔지 몰라서 묻는게 아니에요. 진사령안을 각성한 대사신은 마음만 먹는다면 혼(魂)을 지우고 백(魄)만을 취할 수 도 있어. 보통의 인간이라면 혼을 지운 순간 인격이 소멸돼 백치가 되고 말겠지만 너희들은 다르지. 태어날때부터 가진게 많은 놈들이니 백치가 돼도 용언과 해수의 지배권은 유효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여기서 골라라. 노예가 될지 도구가 될지를. 차선따위는 없는 차악과 최악의 선택지지만 영원한 안식을 원하는 놈이라면 후자가 좀 더 나을 수 도 있겠군.'

'......' x2

'3초 준다. 늦게 굴복한 놈이 후임이야. 3, 2, 1!'

'구, 굴복하겠다. 우리의 특기를 빌려쓰고 싶다면 얼마든지 써라. 대신 인격을 제거하는 짓만은 제발...' x2

나는 쌍둥이도 아닐진데 똑같은 대사를 똑같은 타이밍에 치는 팔타로스와 레비아탄을 지켜보며 실소를 연신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세탁기에 들어간 배드민턴공처럼 이리저리 휘말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내가 이렇게 웃음을 잃지않을 수 있었던건 괴룡왕 바하무트를 처치할 좋은 묘수가 떠올랐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하지? 해수의 지배력을 발휘해 이 용오름을 멈춰야하나?'

'잠깐 먼저 짚고 넘아가야할게 있으니 기다려. 이봐 팔타로스 네녀석이 나한테 죽기직전 사용한 독령제철초라는 용언 혹시 영혼뿐만 아니라 마력입자도 태울 수 있나?'

'당연히 영혼을 태우는 것 보다는 마력입자를 태우는 편이 곱절로 쉽다. 지금 아크리퍼 네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춰볼까? 마력원천이 없는 지구의 환경적 특성을 이용해 괴룡왕 바하무트를 말려죽일 전략을 짜고 있는거겠지.'

'오호 과연 마도서 데모닉 그리모어의 전 소유주답게 머리가 제법 잘 돌아가는군. 마음만 먹으면 정면대결로 때려눕힐 수 도 있지만 말이야. 왠지 그런건 아크리퍼의 방식답지 않으니까 조금 꼼수를 써보려고.'

'나쁜 계획은 아니다. 내가 아는 저 바하무트란 자는 체내에만 수백마리의 드래곤 기생체를 품고 있어 그저 숨을 쉬는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들었다. 그건 이미 열량이 있는 음식물을 섭취해서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성체 드래곤을 산채로 잡아먹어줘야 한다더군. 우리 늪지용 일족은 다행히도 체내에 극독을 품고 있어 대참사를 피했지만 저 아귀놈에게 멸족당한 드래곤 일족만 열손가락을 넘을거다.'

'그래, 그래. 내가 사령안으로 직접 확인해본 결과도 마찬가지야. 저 바하무트놈의 마력기관 구조는 극단적으로 기형적이라 조금만 도발해서 힘을 빼주면 스스로 무너질 확률이 높지. 굳이 손을 더럽힐 이유가 없다 이거야.'

'그러나 한가지 기억해야될게 있다. 아무리 지구에 마력원천이 없다고 해도 바하무트의 심장 그러니까 드래곤하트는 녀석이 일개행성따위는 충분히 멸망시키고도 남을 에너지 공급원이 되어줄 것이다. 애초에 그 정도가 아니였다면 수백마리의 드래곤 기생체를 흡수하기도 전에 드래곤하트에 부하가 걸려 심장이 터져죽고 말았겠지.'

'그말인즉슨 힘을 빼는 대가로 지구 멸망을 감수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로군. 그럼 뭐 이번 기회에 아예 다른 별로 이주해버리면 되겠네.'

내가 무슨 옆동네로 이사가는 느낌으로 지구 이주를 선언하자 팔타로스의 영혼의 족쇄를 타고 당황스러운 감정이 전해져온다. 그러나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독령제절초의 제창에 필요한 용언무구를 조용히 되새기는 독룡. 나 또한 지구이주 준비를 위해 VOT 단말기로 색향천월관, 기야스 그리고 프랑케네트 모두에게 연락을 해두었다.

디아나 여신이 유성의 권능으로 지구를 멸망시키려 했을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번에는 내 의지로 진지하게 지구를 버릴 각오를 다진것이다. 한때 팔타로스가 지구정복을 꿈꿨지만 그건 지구에 희귀한 노블메탈이 매장되어 있거나 고대문명의 유산따위가 잠들어 있다거나 하는 이유때문이 아니였다.

그냥 우연히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 프로젝트가 지구에서 진행됐다는게 그 주된 이유였을뿐.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지라 내가 지구를 고향별이랍시고 집착할 이유따위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리수 프로젝트가 진행되다 만게 조금 아깝긴 했지만 어차피 지구전체의 물을 정화하려면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던 상황이였다. 진행율을 퍼센테이지로 따지만 10%조차 채 안될터. 그냥 깔끔하게 수왕성처럼 아예 물이 오염되지않은 별을 찾는편이 빠르리라.

'그러면 레비아탄 어서 바다의 지배력을 발휘해 용오름을 해제해라. 그리고 바하무트가 나를 바로 발견할 수 있도록 특수효과같은것도 좀 준비하고.'

'특수효과라고 말해도 뭘 어떻게 해야할런지...'

'분수쇼같은거 있잖아, 분수쇼. 고래들이 자주하는거. 스펙터클하게 막 100개씩 쏘아올리란 말이야. 그래야 바하무트를 도발하기도 더 쉬워지니까.'

'알았다.'

레비아탄이 수긍의 뜻을 밝히자 마자 용오름이 멎더니 바하무트의 꼬리힘만으로 작동되던 수동식 세타기는 마침내 그 기능이 정지되고 말았다. 바하무트가 행하는 자연재해는 자연과의 교감이 아닌 단순 거대 물리력의 발현일뿐이였기에 이런 상성의 우위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미리 준비했던대로 화려한 분수쇼와 함께 바하무트와 재회한 나는 혀를 끌끌차며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실망이로군. 반신타락자 서열 4위 필멸의 어릿광대, 쟈크 더 리퍼는 실로 오랜만에 전투의 흥분만으로 나를 기껍게 해주었거늘 고작 한단계 아래인 괴룡왕이란 자는 물장구나 치고 않아 있으니 말이야. 기대감으로 달아올랐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 정말이지 최악이야. 정말 이게 바하무트 네가 지닌 재주의 끝인가? 뭔가 더 신박한건 없어? 어린아이도 아니고 물장구나 치면서 득의양양해 하는 모습을 내가 계속해서 지켜봐야만 하느냔 말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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