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건 이중계약이 아니라 처음부터 괴룡왕 너한테 보상을 제공하기 위한 하청계약이였던 것 뿐이야."00426 vol.12 Oxogan The Dragon Knight Saga ========================='하청계약이라고...?'
털썩!
나는 정원사의 가시검(Gardener's Spineblade)을 붙잡은 손을 힘없이 내려놓으며 맥없이 중얼거렸다. 불합리한 계약이라는 것쯤은 처음으로 야미도엔의 죽음의 키스가 발동했을때 간파했다. 드래곤이라고 하는 종의 가치가 단순히 화폐로 추산할 수 없을정도로 귀중한건 사실이지만 그 대가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감내해야한다면 신체포기각서를 종용하는 사체업자와 다를게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불합리한걸 넘어서 처음부터 나를 껌처럼 씹다가 단물이 빠지면 버릴 요량의 계약이였다는게 드러나자 눈앞이 캄캄해진다. 지금까지 아크리퍼를 비롯한 다른 북두십성 유저에 관련된 온갖 찌라시를 인터넷으로 긁어모으며 혼자 모자란 머리로 전략을 짜냈던 일도 세계각지의 오지를 돌아다니며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일도 모두 말짱 도루묵이 되는 순간이였다.
그렇게 자괴감이 썰물처럼 밀려와 화룡(火龍), 헬라이온의 불꽃갈기 마저 놓아버리려는데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일깨웠다.
"드래곤 나이트 용사님! 저에요, 저 히야신스 4세에요. 결국 돌아오셨군요. 남극에서 왜 도망치셨는지 묻지는 않을테니까 결혼식 당일날 도망친 이유는 좀 알려주세요. 제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셨나요?"
"귀가 큰 벌레가 시끄럽게 우는군. 이번 계약과 상관없는 것들은 걸리적거리니 치우도록 하겠다. 그래도 상관없겠지, 야미도엔?"
-뭐 딱히 상관없긴한데 여기가 엔도미야 언니의 영역이라는건 기억해두라고. 지금은 자리를 비운것같지만 엄연히 이 별 담당의 여신칼날단도 있어. 그것도 꽤 성격이 고약한 놈으로다가.
"흥! 여신칼날단의 유약한 위선자놈들따위를 내가 신경쓸것 같더냐? 박멸!!!"
"히야신스 4세 조심해!"
촤라라라라라락!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해맑게 손을 흔들며 해상 플랜트의 활주로를 뛰어오는 히야신스 4세. 그리고 그런 히야신스 4세를 향해 팔을 뻗은채로 다짜고짜 드래곤의 형상을 한 기생체를 뿜어내는 바하무트란 이름의 괴한. 결국 생각치도 못한 위기상황이 다시 나의 전투감각을 자극해 불꽃갈기를 있는힘껏 잡아당기게 만들었다.
용의 형상을 한 기생체는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움직이는데다 설상가상으로 나보다 괴룡왕 바하무트란 작자가 히야신스 4세와 더 가까웠기에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허나 드래곤 나이트가 탑승중인 성체 드래곤은 '용의 인장' 스킬의 보정을 받아 순간적으로 음속을 돌파할 수 있었기에 간신히 타임 리미트를 맞출 수 있었다.
그그그그그극극!
정원사의 가시검을 가로로 잡고 드래곤 기생체의 아가리에 밀어넣은채로 안간힘을 다해 저항한 덕분에 간신히 히야신스 4세의 가슴에 등이 닿자마자 저지에 성공한 나와 헬라이온. 평소같았으면 꽤나 므흣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지만 오랜만의 싸움으로 아드레날린이 왕창 분비되는 와중이라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히야신스 4세를 이 자리에서 피신시켜야 하겠다는 생각뿐. 마침 히야신스 4세가 왔던길로 그녀의 호위기사인 튜리파가 정체불명의 헤드셋 소녀와 함께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기에 나는 히야신스 4세의 가슴을 등으로 떠밀어 밀쳐냈다. 요정국의 공주님이자 차기 후계자를 상대로 다소 무례한 행위가 아닐 수 없었지만 지금 그런걸 따지고 있을때가 아니였다.
"튜리파, 히야신스를 데리고 어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당신은... 드래곤 나이트 용사님. 늦으셨군요. 용사님이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히야신스 3세 여왕님께서 마왕 아크리퍼란 작자에게 그런 굴욕을 당하지 않으셨을텐데."
"하등한 종족놈들이 감히 괴룡왕 바하무트님의 면전에서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다니 박멸!!!"
촤라라라라라락!(x4)
나는 뭔가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를 튜리파로부터 들은것 같았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위기 때문에 뭐라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괴룡왕 바하무트가 나를 압박했던 드래곤 기생체를 다시 거둬들이더니 이번에는 사지에서 똑같은 놈들을 쏘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드래곤과 같은 초희귀의 환상종이 어떻게 기생체로 전락했는지는 몰라도 한번 녀석들과 격돌한 전력이 있는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튜리파가 아무리 히야신스 요정국 최고의 검사이자 나에게 왕국검술교본을 사사한 스승이라고 해도 헬라이온에 탑승한 내가 겨우겨우 막아낸 공격을 한번도 아니고 네번이나 막아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특단의 조취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나는 악룡(惡龍), 이자하다카의 이름을 목놓아 외쳤다.
"이자하다카 어서 다크클라우드를 깔아줘!"
"알았어, 용제오빠. 맡겨만 달라고."
캬아아아아아아악, 퉷!
주변을 선회하며 기회를 엿보던 이자하다카가 평소 깍쟁이같던 목소리와는 전혀 상반된 수십년간 담배를 피어온 꼴초 아저씨같은 모양새로 가래침을 뱉어온다. 그러자 마치 봄철 황사의 흑백 버전같은 것이 사위를 가득메웠고 나는 추가로 헬라이온을 독촉해 플레임 브레스를 내뿜게 했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파바바바방!!!
안그래도 맹렬한 기세의 시뻘건 화염이 4개의 드래곤 기생체게 쏘아지는 가운데 거무스름한 분진과 접촉하자 연쇄폭발을 일으키며 그 파괴력을 증대시켜나갔고, 그 결과 괴룡왕이란 자의 두번째 공격까지 저지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의 이름은 다크플레임 브레스(Darkflame Breath)로 헬라이온과 이자하다카의 특성을 극대화한 일종의 콤비네이션 스킬이라고 할 수 있다. 뭐 말이 콤비네이션 스킬이지 실제로는 그저 이자하다카의 호흡기관에 축적된 악의 씨앗이란 가연성 물질을 연료삼아 화력을 끌어올리는 불쇼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물론 불쇼도 불쇼 나름인지라 괴룡왕 바하무트는 새까맣게 그을린 자신의 드래곤 기생체를 전부 회수하더니 인상을 확 찌푸렸다. 방금의 공격으로 저 괴한도 어느정도는 데미지를 입은 것이리라. 문제는 호흡기관의 과부하 문제로 성체 드래곤은 하루에 3번밖에 브레스를 쓸 수 없다는 것이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목의 상처를 지지는데 플레임 브레스를 쓰는게 아니였는데. 당시엔 너무 가려움증이 극심해서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지만 지금에 와선 너무 뼈아프게 다가왔다. 어찌됐든 괴룡왕 바하무트란 자가 절대무적은 아니라는걸 알았으니 어떻게든 빈틈을 노려 마지막 1회 남은 다크플레임 브레스를 갈기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늘구멍과도 같은 가능성이지만 그곳으로 용기가 주입되자 희망이란 풍선이 부풀어오른다. 허나 바하무트가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연 순간 희망의 풍선은 바늘에 찔리고 말았다.
"너무 뜨드미지하군. 아무리 이제 막 성체가 된 화룡이라지만 이건 너무 화력이 약한것 아닌가? 가만히 있지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라, 야미도엔. 설마 짐에게 하자가 있는 드래곤을 넘기려고 했던건 아니겠지? 거래라고 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깔아야 성립하는 것. 그것은 왕간의 거래 또한 마찬가지다. 네년이 진정 나를 능멸하려 했던거라면 나는 왕대 왕으로서 너에게 전쟁을 선포하겠다!"
-아히이이잉~♥ 너무 그렇게 까칠하게 굴지 말라고. 단기간에 급성장을 이루면서 생긴 사소한 부작용같은거니까. 그리고 어차피 기생체로 흡수할게 아니라 산채로 잡아먹을 생각이면서 화력이 약한게 무슨 흠이 된다고 그래.
"물론 흠이 되지는 않겠지. 하지만 약용을 쓸 목적이라면 독사나 말벌은 독이 강할 수 록 좋듯이 드래곤도 몸보신으로 쓸 요량이라면 팔팔한 놈이 좋은 법이다. 저렇게 브레스랍시고 온천수를 끼얹는 비실비실한것들을 먹어봐야 간에 기별이나 갈지 모르겠군."
-간에 기별이 갈지 안갈지는 직접 먹어보기전엔 모르는거지. 정 그렇게 못마땅하면 한 10년정도 더 묵혔다가 잡아먹든가.
"그 제안 진지하게 고려해봐야겠군. 일단 드래곤을 제외한 이 별의 모든 종을 멸살시킨 뒤에 말이야. 보아라 이 버러지같은 놈들아! 이것의 진정한 드래곤의 브레스라는 것이다!! 박멸!!!"
부우우우우우우우웅!
마치 세계수가 공명할때와 같은 에너지 파동에 바다가 출렁이는 것도 잠시 괴룡왕 바하무트가 우리쪽으로 오른손을 내밀더니 드래곤 기생체의 입을 통해 가공할만한 에너지포를 사출한다. 그 에너지포의 스피드는 음속조차 초월해 있어 나는 뭘 어떻게 반응할새도 없이 섬광에 뒤덮인 해상플랜트를 지켜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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