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기능이 있는 영자시가 있음에도 구태여 내 뻗친 머리카락을 가늠쇠로 삼은게 조금 거시기하긴 했지만, 이제 지구로 돌아가 히야신스 3세 여왕을 존나게 따먹는 일만 남았기에 나는 그냥 참기로 했다. 벌써부터 거시기가 불끈불끈 달아오르는게 정말 못참겠군. 으흐흐흐흐흐.00425 vol.12 Oxogan The Dragon Knight Saga ========================='청부살인 대상은 옥사건 더 디파일러야! 절대 잊지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청부살인 대상은 옥사건 더 디파일러야!'
'청부살인 대상은...'
"후웁후웁... 이젠 정말 한계야."
나는 야미도엔이 목 언저리에 새겨넣은 키스마크를 짓누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녀가 계약의 증표로 새겨넣은 이 죽음의 키스마크는 마치 암세포처럼 퍼져나가더니 성대를 넘어 어느샌가 폐까지 장악하고 말았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폐도 가려울 수 있다는 생소한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숨을 들이쉬고 내쉴때마다 극한의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당연히 처음 기획했던 또 다른 북두십성 유저와 아크리퍼간의 이이제이 전법따위는 머릿속에서 증발한지 오래였고, 이제는 전력상 밀린다는걸 알면서도 아크리퍼의 얼굴을 마주볼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어느쪽이 길고 짧은지 직접 한번 대봐야하지 않겠는가?
나 사나이 이용제 가방끈도 짧고 어느 분야에서도 재능을 보이지 못했지만 오직 끈기 하나만으로 북두십성의 일좌를 차지한 사람이였다. 지난 50년간 토구대륙에서도 마찬가지로 검술, 술법, 정령술 그 어느것에서도 재능을 보이지 못했지만 왕국검술교본과 매직 미사일 이 두가지만을 부단히 갈고 닦아 마침내 마왕 데스프로그를 처단하는 용사가 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히든클래스 드래곤 나이트의 고유 패시브스킬인 '용의 인장'이 아니였다면, 야미도엔이 해츌링(화룡 헬라이온, 악룡 이자다하카, 수룡 세류)을 선물해주지 않았다면 그리고 토구 대륙의 마력입자 농도가 숨쉬는 것 만으로 1갑자의 내공을 갖출 수 있을 정도로 높지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였지만 어찌됐든 지금의 나는 분명 강했다.
물론 각종 고위 넘버링 장비와 1000개의 스텟포인트 그리고 현룡(賢龍) 메기도로 무장한 VOT 온라인의 아바타와 비교하자면 손색이 있겠지만, 상대가 그 악명높은 아크리퍼라고 해서 손 한번 못써보고 당할정도는 아니리라. 어차피 VOT 온라인의 장비와 스텟을 쓸 수 없는건 아크리퍼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헬라이온 결전의 때가 온것 같다. 목의 상처를 플레임 브레스로 좀 지져주겠니?"
"정말 괜찮겠어, 용제형? 아무리 용의 인장때문에 화염 저항력이 있다지만 고통까지 경감시켜주진 않을텐데..."
"괜찮아. 그게 고통스러워봤자 야미도엔의 죽음의 키스만큼 고통스럽겠어."
"용제형... 혹시 우리들 입양한거 후회하고 있어? 나 너무 어렸을때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를 입양하는 대가로 그 이상한 여자랑 뭔가 불합리한 계약을 했잖아."
"그렇지않아, 헬라이온. 그저 게임 폐인에 불과했던 내가 만인의 우러름을 받는 용사 드래곤 나이트가 될 수 있었던건 모두 너희들 덕분이였어. 이제와서 후회하는건 스스로가 최저의 인간이라는걸 증명하는거나 다름없는 행동이지. 그저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현룡 메기도의 조언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랄까. 헬라이온에게 VOT 온라인과 관련된 사정까지 밝히고 싶지않았던 나는 속으로 뒷말을 삼켰다. 남극에서 한번,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또 한번 야미도엔의 죽음의 키스가 발동했을때 나는 염치불구하고 다시 VOT 온라인에 접속해 메기도의 조언을 구하려 했었다.
하지만 VOT 온라인 접속 캡슐 제조 공장에서 새제품까지 탈취해가며 도달한 결론은,-해당 사용자는 불법프로그램 사용으로 VOT 온라인 접속이 999년동안 제한됩니다. 위와 같은 메시지로 그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이 초월적인 게임 시스템은 자신과 야미도엔간의 계약을 불법프로그램으로 치부하고 아예 캐릭터 접속을 원천차단해 버린 것이다. 자고, 먹고, 싸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키운 캐릭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상실감도 상실감이였지만 메기도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게 실로 뼈아프게 다가왔다.
내심 그를 다시 만날 수 만 있다면 현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을 받을 수 있을거라 기대하고 있었던걸지도. 후우... 나는 저 멀리서 정찰을 떠난 이자하다카가 돌아오는걸 감지하고 머릿속의 상념들을 애써 지워나갔다. 앞서 말했듯이 이제와서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든것은 초심을 잊지말라는 메기도의 말을 무시하고 욕심을 낸 내 잘못인것을.
'하지만 헬라이온, 이자하다카, 세류에게는 잘못이 없어. 그러니 이번 싸움 내가 지는 한이 있더라도 녀석들은 토구대륙으로 돌려보내야해.'
"용제 오빠 그 아리수란 단체의 본부란곳에 가봤는데 세류 언니는 없었어. 대신 히야신스 4세랑 튜리파가 있던데 아크리퍼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 둘이라도 구하는게 어떨까?"
"좋아. 어차피 토구대륙에서 지구로 넘어온 목적이랑 아크리퍼의 행방도 캐물어야 될 참이였으니까 지금 바로 출발하자."
나는 헬라이온의 등위로 올라탄 다음 불꽃갈기를 움켜쥐었다. 히야신스 모녀로부터 그렇게 도망을 치다 이젠 다시 그들을 추적해야하는 신세라니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옛 약혼자를 다시 만난다는 생각에 기분이 설렌 나는 불꽃갈기를 있는 힘껏 잡아당겨 헬라이온과 함께 하늘위로 솟구쳤다.
성체 드래곤이 마음만 먹는다면 최신형 전투기를 능가하는건 일도 아니였기에 앗차하는 사이에 벌써 저 멀리 해상 플랜트의 실루엣이 아른거린다. 가급적 전투상황을 피하고 히야신스 4세와 튜리파의 신병만 확보할 요량으로 서서히 속도를 줄여나가는데 갑자기 해상 플랜트 옆 세계수가 사이한 암운을 뿌리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부웅,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아니 이게 무슨!? 설마 아크리퍼가 다른 세계로 향했다가 돌아오는 중인건가? 앗차 싶어 헬라이온의 비행 방향을 다시 선회하려는데 당초의 목적을 떠올린 나는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박을 수 밖에 없었다. 애시당초 히야신스 4세와 튜리파를 구하려는 목적중에 아크리퍼의 위치파익이 포함되어 있는데 지금 여기서 도망치면 어쩌자는건가.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다는걸 깨달은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옛 약혼자가 근처에 있다는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여기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승부를 봐야만 했다. 그리하여 히야신스 3세가 하사한 정원사의 가시검(Gardener's Spineblade)를 뽑아든 나는 언제든지 돌격할 수 있게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야미도엔 얘기가 틀리지 않은가. 너는 분명 내게 천신 토벌의 대가로 성체급의 드래곤 3마리를 선사해주겠다고 했을텐데. 내 눈에 보이는건 2마리 뿐이로군."
하지만 세계수의 공명이 멎고 암운이 걷힌뒤 드러난 자는 단언컨대 아크리퍼하고는 하등의 관계도 없어보이는 자였다. 용의 얼굴과 꼬리에 인간의 몸을 한 짙은 회색의 용인(龍人), 회색망토를 흩날리며 팔짱을 낀채로 절제된 무장의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그는 언데드라기엔 다소 과도할정도로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비늘과 근육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비늘만큼이나 번쩍이고 있는 손거울 하나. 용맹스러운 용장에게 어울리는 물건은 아니였으나 용인의 주변을 마치 위성처럼 멤도는걸 보면 그의 소지품임이 분명했다. 그러다 궤도를 벗어나 마치 마술처럼 아무런 지지대도 없이 이리저리 기웃하더니 익숙한 목소리를 토해내는 손거울.
-으헤에에에엥? 그러게. 한 마리가 어디갔지.
"감히 나 반신타락자 서열 5위 괴룡왕, 바하무트 더 미르베로스와의 약속을 어길셈이냐, 야미도엔! 우리들의 관계가 절대 군신관계 아님을 내가 누차 말했을텐데. 왕은 왕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다. 오직 거래를 할 수 있을뿐. 네가 정당한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든지 너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지어다."
-분명 내가 지구출신 드래곤 나이트한테 새끼용을 세마리 분양했었는데... 거기 용오빠 설마 한마리 죽은거 아니지? 내가 잘기르라고 토구 대륙까지 보내줬는데 좀 소중히 다뤘어야하는거 아니야?
"너, 너는 설마 야미도엔?"
정원사의 가시검의 검끝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린다. 이런 상태에서 헬라이온과 함께 돌격을 해봤자 제대로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껏 나를 괴롭혀온 악몽의 그 목소리가 육성으로 들려오자 도저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그래 나야, 나. 혼돈의 주인, 야미도엔. 나머지 드래곤 한마리가 어디있는지 빨리 말해. 만약 용오빠 실수로 죽은거면 아주 혼구멍을 내줄줄 알아.
"무, 무슨 소리를 하는것이냐? 헬라이온, 세류, 이자하다카는 네가 아크리퍼를 암살하는 대가로 나에게 선물한 해츌링들이 아니었더냐?"
-으흠? 크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뭐 용오빠가 옥사건 더 디파일러를 암살하는데 성공했어? 성공 못했으니까 당연히 보수는 반납하는게 맞는거지.
"야미도엔 네 이년! 감히 괴룡왕의 이름으로 이중계약을 한것이냐?"
-그런거 아니니까 좀 닥쳐! 일처리는 개떡같이하고 보상만 밝히는 욕심쟁이 도마뱀 새끼야! 전 우주를 뒤져봐도 해츌링급의 드래곤밖에 없어서 잠시 대리육성을 맡긴것 뿐이야. 드래곤이란 종은 마나라는 먹이가 풍부할 수 록 그리고 드래곤 나이트라는 사육사가 곁에서 성심껏 돌봐줄수록 급성장을 이룰 수 있으니까. 물론 명목상으로는 여신칼날단원의 암살의뢰계약처럼 꾸미긴 했지만 그저 운좋게 용의 인장을 영혼에 새겨넣은 벌레따위가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리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