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빌어먹을 자식이! 그래, 네 말이 다 맞다고 치자. 그 대신 나한테 한대만 쳐맞아라!!"00412 vol.12 Oxogan The Dragon Knight Saga ========================= 황삼과 말싸움을 하다 도저히 결착이 날것 같지않자 들어올린 여장부의 주먹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살벌한 뇌전의 기류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왕루옌이 내앞에서나 얌전한 고양이처럼 굴지 한때 십만 양아치들을 자신의 발아래 무릎 꿇게만든 호랑이같은 성격이 어디 갈리가 없었다.
나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박힌 돌과 굴러온 돌의 싸움에 숨을 죽이고 구경모드에 들어갔다. 중간에 끼어들어 싸움을 말린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고려대상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단순 전투력 계산으로 따지면 아무리 귀혼강신법으로 강화된 육체라고 한들 황삼이 강신술을 발동한 왕루옌을 이길 수 있을리가 없었지만 황삼의 여유만만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저 영악한 녀석이 아무런 믿는 구석도 없이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도발할리가 없으니 뭔가 비장의 카드가 숨겨져 있다는 거겠지. 물론 알고보니 뻥카였다고 해도 나는 황삼을 도와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지구생활 적응을 유독 잘해 아리수 본부에 주둔중인 황월방도의 지휘를 맡기긴 했다만, 결국 황삼도 내 본체에 적용될 천년귀혼강시의 완성을 위한 1000개의 실험체중 하나일뿐이였다. 귀혼강신법이라는 것 자체가 무공의 절세고수가 명을 달리했을때 살아생전의 무력을 200% 재현하는데 그 의의가 있는 술법이라 나름 희소가치가 있는 실험체인건 사실이지만...
'굳이 애지중지해가며 연구할 필요까지는 없겠지. 아직 금의위 강시가 900여기 넘게 남은데다가 여차하면 흑월파 조직원에게 무공을 익히게 한다음 죽였다가 다시 좀비로 되살리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내가 초등학생들이 직접 채집한 곤충들끼리 싸움을 붙일때의 심정으로 공장 앞마당을 지켜보는데 황삼이 난데없이 내가 있는 지붕쪽을 가리키며 박장대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순간 내 위치를 들킨건가 싶어 움찔했는데 녀석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들어보니 제 3의 밤손님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하하하하하하! 왕루옌 대장의 그 고유한 무공은 과연 패도적이기 이를데 없군요. 황일 장군이나 황천 그 정박아가 아니면 황월방도중에 왕 대장을 당해낼 이가 없을듯 합니다. 하지만 황실 수호는 단순히 무공이 쌔다고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기감을 넓게 퍼트려 시야가 닿지 않은곳까지 감지하지 못하면 간큰 쥐새끼들이 황실의 보물을 노리는걸 눈뜨고 방치할 수 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거냐? 나는 태어난 이래로 집지키는 개 역할같은건 해본적이 없다. 애시당초 뒤지기전의 유언치고는 너무 궁색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흐으음. 아무리 무공의 파괴력을 향상시키는 수련에 중점을 뒀다고 해도 이 거리까지 들어온 적을 눈치채지 못하는건 좀 심각한데. 왕루옌 대장, 혹시 제대로된 스승밑에서 사사받은게 아니라 야매로 무공을 배운거 아닙니까?"
"야매? 지구의 단어를 배워도 거지같은것만 골라 배워서는. 그래 어디 한번 그 야매 무공에 뼛속까지 털려봐라."
십이신장류 진(辰)시의 청천벽력(靑天霹靂) 연계기 발(拔)
질풍광마권(疾風狂魔拳) 제 1초식 도가니 쪼개기
왕루옌의 궤도가 살짝 뒤틀린 정권이 황삼의 무릎을 아작내기 바로 직전, 내 주변의 공장 지붕위로 정체불명의 요원들이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을 풀고 우루루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정밀 사격용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어 대판 총격전이 일어날줄 알았건만 놈들은 사격대신 이마에서 반투명한 푸른 연기같은걸 쏘아내는게 아닌가.
한 몇십년된 고물 선풍기에 달린 종이 장식처럼 느릿느릿한 공격에 왕루옌이 서둘러 살초를 거두고 흑월파 조직원들과 함께 진형 갖추기 시작했다. 어디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요원들인줄은 모르겠으나 절호의 습격 기회를 괴상한 기술로 날려버린건 큰 실수였다.
본디 강시 출신인 황월방도들과 달리 흑월파 조직원들은 변변한 삼류무공조차 익히지 못한 무뢰배들이였다. 총알을 살살맞든 쌔게맞든 최소 전투불능 상태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놈들을 왕루옌이 숫자를 맞추겠답시고 억지로 끌고온 것.
그나마 조장급은 화이트 팬텀 슈트 리퍼제품(미하엘로프 소장 사건때 회수해 수리한것들)을 입고있어 사정이 나았지만, 내가 일부러 새것이나 다름없는 것들은 창고에 보관하고 손상이 심한 폐급들만 배포를 했기 때문에 나중에 또 어떤 기능 이상을 일으킬지 몰랐다.
누가 보면 내가 심보가 참 고약한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황월방도에겐 실험체라는 나름의 쓸모라도 있지 흑월파는 진짜 일회용 젖가락이랑 다를바가 없는 놈들이였다. 왕루옌은 십이지천회 회주시절의 기억때문에 나름 애지중지 흑월파놈들을 육성하는 모양이였지만 내 생각에 검은머리 산짐승을 거둬 길들이는건 이래저래 헛짓거리에 불과했다.
"흑월파 전원 흑월진 대형으로 적습에 대비한다. 기준점이 되는 조장들은 1호장부터 구호를 외..."
"우워어어어어어!"
"왕루옌 대장! 흑월파 조직원들의 상태가 하나같이 이상합니다. 어서 황월진 중앙쪽으로 오세요!!"
"이것들이 처음 겪는 실전도 아닌데 어리버리까기는! 돌아가면 네놈들 전부 지옥훈련으로 대대적 정신개조를 시켜주마!!"
정체불명의 요원들이 등장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원진을 갖춘 황월방도들과 달리 흑월파 조직원들이 좀비처럼 허우적거리자 대노한 왕루옌이 불호령을 내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사령안이 없어 정확한 분석은 아니지만서도) 흑월파 조직원들은 단순히 총기로 무장한 상대가 기습을 해서가 아니라 마치 귀신에 홀린듯 이지가 흐려진 모습이였다.
아무래도 정체불명의 요원들이 이마에서 뿜어낸 반투명한 푸른색 연기가 그 원인인듯 한데, 그 능력의 연원이 어찌됐던간에 이미 공장 지붕의 꼭대기에 자리한 나라면 단 일수만에 모든 요원들을 도륙내고 흑월파 조직원들을 정상화 시킬 수 있었지만 묵묵히 스텔스 모드를 유지했다.
앞서 말했듯이 땅에 떨어진 일회용 젖가락이 더러워졌다고 씻을 필요는 없는데다가 VOT 온라인에서 최상위급 필드 몬스터에 해당하는 금의위들이 지구에선 어떤식으로 싸울지 심히 궁금해졌기 때문이였다.
총성 하나 없는 무언의 조직간 신경전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가운데 균형을 깨트린건 술취한 주정뱅이처럼 비틀 거리다 황월진의 검격범위에 들어간 흑월파 조장이였다. 황삼이 명시적으로 명령을 내린것도 아니것만 공격범위에 들어온 적을 찌르고, 베고, 뭉게서 화이트 팬텀 슈트를 완전히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린 황월방도들.
돌격소총도 저지가 가능한 방탄 슈트가 그 지경일진데 그 안에 든 사람이야 말할것도 없었다. 잘게 썰려진 고기 육편이 붉은 소스를 흩뿌리며 비산하는 와중에 왕루옌이 묵묵히 자리를 지킨데에는 나의 기다림과는 전혀 다른 초인적 인내심을 필요로 했으리라. 한번 균형이 깨지자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난 황월방과 흑월파간의 충돌.
'이미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이건 뭐 거의 정예기병의 양민학살 수준이로군.'
귀혼강시인 황삼은 칼을 뽑지도 않았는데 흑월파는 조장이나 말단 조직원 가릴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쓸려나간다. 말이 흑월진이고 황월진이지 전자는 그냥 국민체조할때 기준별로 사람들이 집합하는 수준이고, 후자는 황실에서 반란군의 침입에 대비해 극강의 실전주의를 녹여낸 검진의 정수였던 것이다.
막상 흑월파와 황월방간의 극단적인 실력차를 직접 두눈으로 목격하자 나는 화이트 팬텀 슈트 리퍼제품을 조장급에게 배포한것조차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왕루옌이 흑월파 조직원들에게 무공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자 전력이 너무 딸린다며 하도 성화를 부려서 넘겨준건데 결국 별로 재미도 못보고 넝마 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흑월파 조직원들에게 무공을 가르쳤으면 결과가 달랐을까? 나는 그 또한 회의적이였다. 이미 이십대를 넘기고 삼십대 후반을 바라보는 조직원들도 심심치않게 있는 마당에 삼류무공을 전수해봤자 강해지면 얼마나 더 강해지겠는가. 저딴 근본없는 놈들에게 특급 풍수지나 마력석을 제공할 수 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지.
뭐 사실 그거야 내 입장에서 내린 결론일 뿐이고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스카웃과 훈련을 직접 실시한 왕루옌 입장에서는 또 생각이 다를 것이다. 어디한번 그녀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볼까. 이번엔 전신에 뇌전의 기류를 집약시키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흑월파의 여두목.
"크으으으으윽!!! 황삼 지금부터 한식경 동안 너를 포함해서 황월방도 전원에게 대기 명령을 내려라."
"저를 원없이 뚜드려 패실 생각입니까? 부하들을 한꺼번에 잃은신 상심이 크다는걸 압니다. 그걸로 화가 풀리신다면 좋을대로 하십쇼. 하지만 제게는 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는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따거에게 지상에 파견된 황월방도들의 지휘권을 위임받은바 단 한기도 허투로 잃을 수 없는게 제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