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05화 (405/599)

"정복왕과도 조금 다릅니다. 굳이 용어를 만들어내자면 암왕이 맞겠군요. 그림자 속에서 절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지구를 마치 장난감처럼 주무르는 암왕 말입니다. 그리고 아마 그 아크리퍼가 이곳에 있었다면... 당신들 또한 출신성분을 막론하고 장난감처럼 주무르려 했겠지요."00405 vol.12 Oxogan The Dragon Knight Saga ========================= 나는 구태여 아크리퍼가 상상을 초월한 변태성욕자임을 히야신스 3세에게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장난감처럼 주무른다는게 비유적 표현이 아닌 실제라는걸 눈치챌테고 왕가에서 곱게 자란 그녀가 패닉상태에 빠질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용사를 찾으러왔다 마왕의 소굴로 기어들어온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

"히야신스 여왕님, 설마 용사 드래곤 나이트 단 한명때문에 이 세계가 정의로운 사람들로 가득차 있을거란 희망사항을 갖고 이 세계로 넘어오신건 아니겠죠?"

"그, 그건 아닙니다만 안일한 생각으로 세계수와 접촉한건 맞는것 같군요. 토구 대륙이 그야말로 풍전등화 상태에 놓였던지라 드래곤 나이트님의 얼굴말고는 떠오르는게 없었습니다. 수백년동안 쌓아올린 연륜으로 짜낸 지혜가 고작 이정도라니 나이를 헛먹은건 히야신스 4세가 아니라 저였던 모양입니다."

"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자신의 세계가 멸망할 위기에 쳐했을때 침착하게 앞뒤 상황따져가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않습니다. 오히려 왕가 출신임에도 위혐을 무릎쓰고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칭찬받아야 마땅하겠지요. 그리고 용사 드래곤 나이트의 행방 수색하는동안 제가 최대한 마왕 아크리퍼의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려드릴테니 안심하세요."

"하, 하지만 하 협회장님도 그 아크리퍼라는 마왕의 수하라고 하지않으셨습니까? 어째서 저희를 도와주시려는거죠?"

"몸은 굴복했어도 아직 마음은 항복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보다도 이 해상 플랜트에는 저 말고도 보는 눈이 많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일단 이 귀걸이를 받으시지요."

월광이환(月光耳环),

그건 본래 디아나 여신님의 축복을 받아 착용자의 미색을 몰라볼정도로 아름답게 만들어줄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감도를 크게 증폭시키는 신물이였다. 하지만 아크리퍼가 독배라고 하는 기물로 나를 중독시킨 이후에는 그 효과가 반전되어 착용자를 박색으로 만듬과 동시에 혐오감까지 일으키게 만드는 흉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미 외부경계를 맡고 있는 황월방 대원 몇몇이 요정족 3인방과 수룡 세류를 목격한 이상 완전히 이들의 존재를 숨기는것은 요원한 일이였다. 차라리 내 손으로 직접 보고를 하되 요정족의 뛰어난 미모를 가린다면 아크리퍼쪽에서 자발적으로 떨어져 나갈터. 드래곤 나이트의 처후에 관해서는 그 이후에 생각해봐도 늦지않았다.

"이 귀걸이는...?"

"일단은 존재감을 떨어트리는 은신장비쯤으로 생각해주세요. 여기 나머지 두쌍이 있으니 히야신스 4세 공주님과 튜리파란 이름의 호위기사에게 건네주시면 됩니다."

똑똑.

히야신스 여왕이 조심스럽게 묵빛 귀걸이 2쌍을 받아들기 무섭게 익숙한 리듬의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빛으로 히야신스 3세에게 월광이환을 숨길것을 주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전자 도어락을 해제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능글맞은 표정의 황삼이 노크소리의 주인공이였고 바로 옆에는 시무룩한 표정의 히야신스 4세와 무표정의 튜리파가 있었다.

"네 할일이나 잘 하라고 했을텐데, 황삼. 누구 허락을 받고 이곳까지 내려온거지?"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하 협회장님. 도대체 누구 허락을 받고 이 귀 큰 아가씨들이 정화조 시설로 진입하려한겁니까? 정화조 시설에는 특수한 형태의 정화필터가 있어서 심지어 하 협회장님조차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다는걸 잘 아실텐데요. 이지가 제압된 황이오와 황육칠과 싸움이 날뻔한걸 제가 간신히 말려서 오는길입니다. 이번 한번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따거에게 보고 하겠습니다. 고자질쟁이라고 욕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정화조 시설을 침입하는 외부인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사살해도 좋다는 따거의 명령이 있었다는 것만은 기억해 주십쇼."

"죄송합니다. 그 방에서 마나의 향기가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뛰쳐갔어요. 마나를 쓸 수 있게 되면 드래곤 나이트님을 찾는데 도움이 될거 같아서... 저 그런데 혹시 뭐 먹을것 좀 없나요? 토구 대륙에서 넘어올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배가 등가죽에 붙을것 같아요. 더러운 악마놈들 죄없는 열매나무들까지 말라죽일건 뭐람."

"계속해서 사과할 일만 생겨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히야신스 4세여 내가 공주로서의 체통을 지키라고 그리 말했거늘 어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냐? 이곳은 요정왕국의 궁전이 아니란 말이다!"

"괜찮습니다, 히야신스 여왕님. 그러고보니 손님을 세분이나 받았는데 아직 차 한잔 대접하지 못했군요. 사람을 시켜 곧 식사를 준비할테니 혹시 가리시는 음식이 있으면 지금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혹시 수룡 세류도 식사를 해야한다면 뭘 먹여야 하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송구스럽습니다, 하 협회장님. 저희 요정족은 육류를 제외하면 크게 가리는 음식은 없습니다만 세류는 비린내가 나는 등푸른생선이 아니면 잘 먹지를 않습니다. 만약 지구 대륙에 마나가 있었다면 마나호흡으로 영양공급을 대체할 수 도 있었겠습니다만..."

"그렇군요. 그럼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저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아마 안내인이 대기하고 있을테니 그를 따라 식당으로 가시면 됩니다. 황삼은 잠깐 남아서 나랑 얘기 좀 하지."

나는 드레스까지 들어올리며 정중히 인사를 하는 히야신스 3세를 가볍게 눈인사로 배웅한 다음 황삼을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그럼에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 녀석. 실력행사가 필요한 시점이란걸 깨달은 나는 일부러 감정을 격발시켜 머리카락을 뱀으로 바꾼 다음 전방으로 돌진 시켰다.

개중에 유달리 몸통이 두꺼운 뱀은 마창(魔槍) 악타이온이 변이 된것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들어 황삼의 몸통을 휘감았기에 나머지 뱀들은 손쉽게 사지를 포박했다. 그야말로 손가락, 발가락 하나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몸이 됐지면 여전히 눈빛에 여유가 넘쳐보이는 황삼. 그래 그 여유만만한 태도가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

"부하사랑이 좀 격한것 아닙니까, 하 협회장님? 이런 종류의 속박 플레이를 싫어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너무 쌔게 조이신것 같은데."

"닥치고 내가 묻는 말에나 답해. 내가 지시한 서류정리는 어쩌고 정화조 근처에 있었던거지? 스스로의 직분이 비서라는걸 너무 자무 망각하는것 아닌가?"

"저는 하 협회장님의 비서기도 하지만 이곳 아리수 본부에 상주중인 황월방도들의 분타주이기도 하지요. 이지가 없는 것들이 혹시나 실수는 하지않을까 순찰을 돈게 그리도 잘못이란 말입니까?"

"글쎄. 네 말대로라면 그렇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찌이이이이이이익!

마창(魔槍) 악타이온의 매끈한 비늘 사이로 삐져나온 황삼의 상의를 찢어발기자 배꼽에서 삼치밑 유달리 도드라진 혈자리가 드러났다. 내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에 손가락을 들이밀자 강시의 몸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뜨거운 열기가 용솟음치는게 느껴졌다. 이러고 있으려니 내가 마치 아크리퍼라도 된것 같군.

"부하를 성추행 할 생각은 없었다만 이건 누가봐도 빼도박도 못할 증거아닌가? 황삼 네가 정화조에서 남몰래 단전에 내공을 축적하고 있었다는 증거말이야."

"내공이 없는 무사는 시체나 다름없습니다. 무사가 내공을 쌓는게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너 시체 맞잖아. 아니 강시라고 불러야하나. 이마에 부적이 없으니까 자기가 산사람이라도 된것 같아? 아 비꼬려는 의도는 없었으니까 너무 상심하진마. 어차피 나도 이미 한번 죽은 몸이거든."

"내공을 쌓아 제가 강해지면 따거에게도 이득입니다. 귀혼강신법으로 만들어진 육체가 그 자체로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내공이 없으면 앙꼬없는 찐빵이란 말입니다."

"그새 그런 표현도 배우다니 역시 눈치가 빠른녀석이야. 근데 그렇게 눈치가 빠른녀석이 아크리퍼가 어떤 인간인지 아직도 파악 못했나? 녀석이 왜 황월방도들의 이름을 황일, 황이, 황삼처럼 성의 없이 지었을까? 귀찮아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실험체들을 편리하게 관리하기 위해서지. 일련번호가 붙어 있으면 어떤 실험체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보보였을때 바로바로 손쉽게 제거할 수 있지 않겠어?"

"워, 원하는게 뭡니까? 하 협회장님의 발바닥이라도 햛으라면 햛겠습니다."

"그딴건 필요없으니까 오늘 네가 세계수 공명 사건에서 보고 들은걸 있는 그대로 말해봐."

"제가 하 협회장님이랑 사소한 말다툼을 하는 사이 정체 불명의 공간의 파동이 몰아닥쳤죠. 아마 사자후의 절대고수가 있어도 그런 일은 못했을겁니다. 아무튼 그 사단이 나서 밖으로 나가보니 왠 용 한마리랑 아인종 3명이 난데없이 등장했는데 귀가 큰 점만 빼면 경국지색의 미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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