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02화 (402/599)

'그건 절대 안될말일세, 드래곤 나이트여. 본디 인간의 몸으론 드래곤의 영혼을 감당할 수 없을뿐더러 이명을 받은 드래곤의 잇다른 행방불명으로 이곳의 관리자가 굉장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태라네. 결계를 쳐두긴 했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의 대화도 도청당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연자여 그대의 세계에서도 드래곤 라이더의 힘을 발휘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너무 큰 욕심은 파멸을 불러올 뿐이라네. 그대가 처음 나를 찾아왔을때의 겸허한 초심을 부디 잊지말게나.'00402 vol.12 Oxogan The Dragon Knight Saga ========================= 길고 긴 회상의 끝은 역시나 현룡(賢龍), 메기도의 진심어린 충고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시 21세기에 악마가 살아서 날아다니는데 나 혼자 맨몸으로 다닐 수 는 없잖아!'

"어느정도 마음의 결정을 내린 모양이네, 용오빠. 그래서 내 제안을 받아들일거야?"

"정말 청부살인 하나만 해주면 드래곤 세마리를 분양해 줄꺼야?"

"내가 몇번을 말해, 용오빠. 선입금에다가 상대는 죽어도 싼놈이야. 유부녀를 간음하길 즐기고 적들의 시체는 씹어먹는 악질중의 악질이지. 십계명에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나와있긴 하지만 이녀석을 죽이면 하느님은 아주 크게 기뻐할걸? 단 한 사람을 죽임으로서 다가올 크나큰 죄악을 면할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드래곤 나이트에게 어울리는 크나큰 선업이 아니겠어?"

C자형 팬티를 입은 미소녀가 내 뺨을 어루만지며 교태로운 목소리를 속삭여오자 나는 어쩔줄을 몰랐다. 눈이야 감으면 그만이라지만 중요한 교섭을 하고있는 와중에 두귀까지 막을 수 는 없는 노릇이였기에 나는 서둘러 어느쪽이든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렇지않을 경우 나도 모르게 그녀를 덮쳐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였으니까.

사실 처음 평소처럼 14시간 사냥을 끝낸 직후 이 상황 자체를 목도했을때는 꿈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럴뻔 했었다. 제 아무리 자제심이 뛰어난 스님이라도 꿈에서까지 체면을 차릴 필요는 없는법.

허나 점점 C자형 팬티를 입은 미소녀(이런 칭호로 부르는게 스스로도 낯간지럽긴 하지만 아직 이름을 모른다)와 대화를 나눌 수 록 기묘한 현실감이 느껴져 그럴 수 가 없었다. 종국엔 애완용 이구아나도 아니고 드래곤을 분양해준다는 제안에 더더욱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었고, 올바른 결정을 위해 나의 총체적인 삶을 되새기는 지경에 이른것이다.

사실 자퇴생이 북두십성 유저가 된것만 해도 개천에서 용이 난것이나 다름없었다. 북두십성 유저의 사회적 지위는 최소 튼실한 중소기업 사장이였고 루팅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수입을 올린 경우도 적지않았다.

세금 탈세를 위해 게임 머니를 이더넷 코인으로 환전하느라 통계상에 포함된적은 없지만 한국 100대 그룹의 말석정도는 차지할 수 있지는 않을까하는게 내 추측이였다. 허나 말석이 됐든 수석이 됐든 현실에서 드래곤을 부릴 수 있게 된다면 모든게 무의미한 줄세우기가 될뿐.

대기업 회장이라고 해서 늙지 않는게 아니였고 총을 살살맞으면 덜 아픈게 아니였다. 하지만 패시브스킬 '용의 인장'을 활성화시킨 드래곤 라이더는 수명이 10배로 늘어날뿐만 아니라 왠만한 총알에는 흠집도 나지않는 육체를 갖게 된다. 그말인즉슨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종의 지위가 향상된 신인류가 될 수 있다는 말이였다.

생각을 거듭하면 할 수 록 유혹의 향기는 진해지고, 메기도의 초심을 찾으라는 충고는 희미해져간다. 나는, 나는...

"네 제안을 받아들이겠어. 그러니까 C자형 아니 그 뭐야 이름이 뭐지?"

"야미도엔. 혼돈의 주인, 야미도엔. 그게 내 이름이야. 만약 용오빠가 임무에 성공한다면 우린 다시 만나게 될거야. 그전에 계약서에 서명부터 해볼까? 예전에 선물부터 줬다가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어서."

"계약서? 하지만 여기엔 종이랑 펜 둘다 없... 흡!"

스스로를 야미도엔이라 밝힌 미소녀가 갑자기 훅다가와 쇄골쪽에 키스를 하자 나는 놀라자빠질 수 밖에 없었다. 북두십성의 일좌를 차지하고 난 후에도 하루 왠종일 사냥만하다보니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저항력이 약했던 나는 그녀가 키스마크가 새겨진 곳을 손톱으로 피가 날정도로 긁는데도 마냥 방치할 수 밖에 없었다.

"요, 요새는 계약서 서명을 이런식으로 하는게 유행인건가?"

"후후훗. 유행이라기 보다는 종이쪼가리에 새겨진 잉크 찌꺼기 따위가 신뢰를 증명해줄 수 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고보니 용오빠의 용의 인장도 이쯤에 있지않아?"

야미도엔이 마사지하듯 쇄골쪽의 손가락을 미끄러트려 심장을 어루만지자 나는 뜨끔했다. 현실에서는 활성화시켜본적 없지만 실제로 용의 인장의 문양이 심장 부근에 새겨져 있는 것은 사실이였기 때문이였다. 더더욱 이 상황이 꿈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 나는 다급히 선입금해준다던 드래곤의 행방을 캐물었다.

"용의 인장의 위치같은건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용이 없다면 그야말로 보통의 문신이나 다름없는거니까. 그보다 내게 준다던 드래곤 세마리는 어디 있지?"

"물론 바로 분양해갈 수 있게 케이지안에 넣어가지고 왔지. 어디보자 여기쯤이였나."

"보통 케이지가지곤 안될텐데..."

내가 말끝을 흐리며 우려했던 바를 표출했지만 야미도엔은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자신의 등뒤에 자리한 거울안쪽을 뒤적거리기 바빴다. 그렇게 나온 3개의 케이지는 대형견을 넣는다면 모를까 드래곤을 넣기엔 턱없이 작은 크기였는데, 용의 인장이 새겨진 심장쪽에서 살갗이 타는듯한 뜨거움이 느껴지는걸 보면 진짜 드래곤이 맞긴 한 모양이였다.

"그 케이지가 공간확장 아티팩트라도 되는건가?"

"공간확장 아티팩트? 그런건 귀찮아서 준비안했는데. 헬라이온, 세류 그리고 이지다하카 어서 나와보렴. 네 새 주인님이 여기서 너희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단다."

"그르르릉! 여긴 너무 좁아서 더워."

"캬르르릉! 여긴 너무 통풍이 잘돼서 추워."

"아아아앙! 여긴 너무 어두워서 무서워."

"이, 이게 도대체 뭐야!?"

"뭐긴, 뭐야. 용오빠가 그토록 찾아헤메던 드래곤 삼남매지. 설마 너무 어려서 실망한거야? 하지만 드래곤이란 종이 워낙 우주 전체적으로 품귀 현상이 심해서 말이야. 얘들도 진짜 고생고생해서 구해온거라고. 너무 실망한 표정만하지 말고 그런 내 정성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나의 비명과도 같은 질문에 능글맞은 목소리로 기다렸다는듯이 답해오는 야미도엔. 확실히 드래곤이 일반적인 애완동물도 아니고 우주 단위로 무대를 넓힌다한들 구하기 쉬울리가 없었다.

오히려 해츌링이기에 길들이기 편하다는 장점까지 고려하면 내가 사기를 당했다고 표현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가 찝찝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데에는 해츌링들의 상태가 하나같이 이상했기 때문이였다.

"혹시 이 해츌링들 병같은게 있는건 아니지?"

"병이라니 애들도 눈과 귀가 있는데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하면 섭섭하지. 그렇지 애들아? 화룡, 헬라이온은 더위를 많이 타는것뿐이고, 수룡, 세류는 추위를 많이 타는것 뿐이야. 악룡, 이자다하카는 눈물이 조금 많긴한데 애들이 울보인건 어찌보면 당연한거 아니겠어? 이런걸로 무슨 하자가 있네없네하면 이 귀여운 애들이 나중에 커서 트라우마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용의 인장까지 갖고 있으면서 섬세하질 못하네."

"그런거라면 확실히 내가 부주의 했다는걸 인정할 수 밖에 없겠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문제는 있어. 지구에는 마력입자가 없다는거 알고 있어? 해츌링때는 한창 드래곤하트가 자라나는중이라 영양공급보다도 마력호흡을 잘 해줘야하는데 이대로 내가 애들을 지구에 데려가면 없던 병도 생길거라고."

"아아, 그랬어? 나도 실제로 지구를 본적은 없어서 그런 사정이 있는줄은 몰랐네. 그럼 어쩔 수 없지. 어디보자 내 관리하고 있는 행성중에 그나마 마력입자 농도가 괜찮은쪽이 어디였더라. 천익성은 성토전이 열릴 예정이라 안되고 수왕성도 사리카야가 여신칼날단이랑 싸우고 있어서 안되고 남은건... 토구정도인가?"

천익성, 수왕성 그리고 토구(地球).

생전 듣도보도 못한 행성 이름의 나열에 내가 정신이 없어 얼을 타고 있는 사이 어느샌가 해츌링 삼남매들이 내 발밑으로 모여들었다. 아마도 '용의 인장' 패시브 스킬때문에 자연스러운 이끌림을 받은거겠지. 아직 부모에게서 독립할 나이때가 아닌 그들이였기에 더더욱 나에게 의존하고 싶은 무의식적 충동에 휩쓸렸으리라.

나 또한 꼬물꼬물한게 강아지 못지않게 귀여운 녀석들을 보며 돌봐주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 삼시세끼를 1++ 등급 한우 꽃등심으로 먹일 수 있다고 해도 마력입자가 없으면 드래곤들은 제대로 성장할 수 가 없었다.

뿐만아니라 그들이 그 커다란 덩치로 하늘을 날아오른다거나 긴 동면에 빠질 수 있는건 어디까지나 유기호흡이 아닌 마나호흡 덕분이였기 때문에, 성체가 된다고 해도 지구는 좋은 서식지가 될 수 없었다.

어쨌든 드래곤은 드래곤이였기 때문에 병에 걸렸든 미성숙 상태든 용의 인장을 활성화하는데는 지장이 없다지만, 내 욕심때문에 이 아이들의 유년기를 망치고 싶지않았던 나는 공주병에 걸린것마냥 계속해서 거울을 만지작거리는 야미도엔의 결정을 기다렸다.

마침내 야미도엔이 정체불명의 거울에서 손을 떼고 내 앞으로 거울을 들이민 순간 나는 판타지 영화의 한장면같은 거울너머의 이국적인 풍경에 넋을 놓고 구경 삼매경에 빠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야미도엔이 내 등을 떠밀은탓에 나는 아예 거울너머의 세계로 퐁당하고 빠져버리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급전개에 내가 뭐라 항의를 하려는 찰나 이제는 점이 되버린 거울의 입구에서 아련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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