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01화 (401/599)

그것만이 대사신으로서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였으니까.00401 vol.12 Oxogan The Dragon Knight Saga =========================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에서 가장 강한 1000인의 랭커들을 사람들은 하늘위에 하늘이란 의미로 천외천이라고 칭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능력치 점수 + 아이템 점수 + 스킬셋 점수를 합산해 줄세우기를 한거지만, 그게 그거고 진짜 중요한건 천외천 유저들중에서도 단순히 점수 놀이로 평가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였다.

하늘 위의 하늘 그러니까 우주에서 유달리 빛나는 별같은 존재, 그 이름하여 북두십성. 무한의 현질을 한다한들 도달할 수 없고 극한의 재능층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명예의 전당. 그 중 한자리에 내가 있다는건 어찌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노재능충의 전형적인 표본중 한명이였기 때문이였다.

잠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어렸을때 반에서 중간시험 꼴지를 하고 부모님께 크게 꾸지람을 들은 뒤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집을 뛰쳐나온 이후 FPS, 격투게임, AOS, 전략시뮬레이션등 건들여보지 않은 게임장르가 없었다.

하지만 피지컬이 중요한 게임분야에서는 플레이 타임이 1000시간을 넘어가도 양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기 일수였고 심지어 MMORPG도 레이드에 세심한 컨트롤이 필요하면 아주 곤죽을 쒔다. 그렇게 정처없이 PC방을 떠돌다 정착한 곳이 고전게임 작업장.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루종일 폐인처럼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몬스터를 뚜드려 패는건 잘해서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배를 곪지않게 되자 다시 떠오른 프로게이머의 꿈, 마침 오픈 일주일만에 전세계를 히트한 증강현실게임 VOT 온라인.

'그때는 진짜 하늘이 나에게 프로게이머를 하라는 운명을 점지해준지 알았지.'

하지만 막상 VOT 온라인을 시작했을때 나는 다른 게임장르와는 다른 절망적인 벽을 마주봐야만 했다. 아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 벽이 위로 편하게 올라가기 위한 계단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십대에 박사 학위를 획득한 사람이라던가 올리핌 양궁 금메달리스트라던가 하는 극한의 재능충들의 표본.

즉 VOT 온라인은 세세한 컨트롤을 뛰어넘어서 세세한 스펙을 요구하는 게임이였던 것이다. 재능이라면 재능인 사당오락(4시간만 자고 20시간 동안 노가다만하는 메타) 정신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1000레벨을 찍었지만 MMORPG가 으레 그렇듯 VOT 온라인도 만렙이 스타트 라인인 게임이였고 나는 출발신호를 듣자마자 엎어지고 말았다.

당시 컨트롤의 부재를 매꾸기 위해 라이더 클래스를 고른 내가 만렙을 찍은 보상으로 받은 와이번, 야생의 와이번도 아니고 라이더 길드에서 훈련된 순한녀석이였는데 내가 거기에 올라타서 비행은 커녕 부유하는 것조차 실패했던 것이다.

만렙 이전에도 멀미때문에 라이더들의 국민펫인 늑대를 버리고 들소를 탔던 나였는데 날개달린 짐승은 어련할까. 그나마 환상종 페가수스가 멀미가 덜하다곤 하지만 현금으로 수십억원 하는 탈것을 작업장 출신의 흙수저인 내가 넘보는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냔 말이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드래곤을 타고 다니고 있지만서도.'

절망에 빠진 내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깡소주 10병을 까고 로그인하자마자 와이번에 올라탄건 지금 생각해봐도 신의 한수가 아닐 수 없었다. 주인을 얻었다는 기쁨에 와이번이 마음껏 고공비행을 하다 나를 이름 모를 절벽에 떨궈버린 것이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와이번이 나를 떨군게 아니라 내가 안장 손잡이를 놓아버린거지만. 인간이란 참 무의식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쪽으로 기억을 왜곡하는 습성이 있는것 같군. 어찌됐든 그때 천운으로 절벽의 한 드래곤 레어로 떨어진 나는 오랜기간 동안 동면 상태에 빠져있던 성체 드래곤과 조우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시작된 히든 클래스 '드래곤 라이더(Dragon Rider)' 전직 퀘스트. 그 후로 드래곤들 사이에서는 너무 평범해서 이명조차 없는 녀석의 잔심부름을 99개나 수행하고 전직에 성공한 나는 다시 1레벨로 초기화 되고 말았다. 하지만 전력만 놓고 본다면 1000레벨때 보다 훨씬 우위였으니 아무리 평범해도 드래곤은 드래곤이였기 때문이였다.

하물며 드래곤에 탑승하면 능력치를 대폭 상승시켜주는 패시브 스킬 '용의 인장'까지 더해지니 1000개의 스텟 포인트가 날아간게 전혀 아쉽지않았다. 뿐만 아니라 용의 인장 스킬이 나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였던 멀미까지 해결해주었기에 1레벨이였던 내가 만렙을 넘어 천외천의 문턱을 넘기까지는 반년도채 걸리지 않았다.

'그때는 진짜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기저귀까지 차가면서 게임 했었는데.'

사실 천외천 유저쯤 되면 프로리그에 나가지 않는다 뿐이지 프로게이머나 다름없는 명예와 부를 누릴 수 있는 자리였기에 나는 꿈을 이룬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렸을때 이후 연락이 끊긴 부모님도 찾아뵙고 용돈을 드리기까지 했으니 이만하면 노재능충치고는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 싶었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법.

군장성처럼 계급이 깡패라 앞에서 굽신거리는게 아니라 모두가 자발적으로 우러러 보는 별, 북두십성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드래곤 라이더로 전직하면서부터 이미 내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두십성의 지위는 고작 드래곤 한마리를 부릴 수 있다고 해서 올라갈 수 있는 자리는 아니였다.

북두십성 유저쯤 되면 성체 드래곤쯤은 단신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수준이였기에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을 필요로 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압도적인 재능이 될 수 도 있었고 구십번대의 무구나 마도서가 될 수 도 있었다. 모두 나와는 인연이 없는것들이였기에 내가 선택한건 만년의 지혜를 쌓아올린자, 현룡(賢龍) 메기도의 계약자가 되는 것.

럭키라면 럭키랄까 나의 이름없는 파트너 드래곤이 현룡 메기도의 증손자뻘이였기에 그의 레어를 방문할 수 있게된 나는 9개의 대시련을 통해 힘과 지혜를 시험받아야만 했고, 하나하나가 파트너 드래곤의 99가지 심부름을 합한것보다 난이도 높은 퀘스트를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수년에 걸쳐 클리어한 후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북두십성 유저가 될 수 있었다.

'계약자 아니 드래곤 나이트여 그대의 집념은 실로 무섭구나. 증손자의 부탁으로 역량이 되지 않는자에게 9개의 대시련을 내리긴 했지만 단 하나도 극복할 수 없을줄 알았거늘. 모래알을 옮겨 바다를 넓히는 그대의 해법이 나의 사고의 틀까지 넓혀주었으니 앞으로 그대의 생이 이어지는동안 무구한 세월동안 쌓아올린 나의 아낌없이 지혜를 빌려주리라.'

현룡의 힘 아니 지혜를 등에 업은 나는 그야말로 날개를 단 호랑이처럼 날아올랐다. 대형길드 서넛이 알력싸움을 하는 지역에서 소위 사냥터 장악도 해보고 유명한 악질 PK 유저모임인 활피단을 브레스 한방으로 날려버린적도 있었다.

인생을 롤러코스터로 따지면 최고점에서 전성기를 누리는때였기에 나는 여기서 내려갈 순 있어도 더 올라갈 수 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또 다른 북두십성 유저 아크데빌이 주동한 인페르노 테러 작전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와 동급의 북두십성 유저(실제로 싸워본적은 없긴 하지만 질거라고 생각해본적은 없다)가 현실에서 그 힘을 발휘하는 모습은 실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이것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컬쳐쇼크에 가까웠다. 하와이에서의 중계 영상이 끊기자 마자 바로 현룡 메기도에게 달려간 나는 이를 따져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대가 패시브 스킬이라고 알고 있는 용의 인장은 사실 초대 드래곤 나이트가 그의 파트너 드래곤인 용제에게 부탁해 만든 용언의 표식의 일종이기에 그대의 세계에서 쓰지못할 것도 없지. 물론 그대의 세계에 드래곤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서 말이야.'

'하지만 그 아크데빌이라는 북두십성 유저는 자유자제로 이 세계에서 계약한 악마들을 소환할 수 있었던것 같은데요.'

'흐음. 짐작가는게 없지는 않네. 일단 내가 알기로도 이명을 받은 드래곤들중 독룡 팔타로스와 마룡 쉐도우스틸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지. 어렸을땐 참으로 귀여웠던 것들인데 커서는 어찌나 말썽을 피우던지 단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을정도였네만 요즘은 정기 문안인사도 안오는걸 보면 뭔가 사단이 나긴 한 모양이야. 마룡녀석은 한 인간에게 당하고 난 후부터 리젠이 안된다는 소문이 있으니 그 인간을 수소문해보는게 빠르겠고, 독룡녀석은 사라지기전 내게 3대 강령술 마도서중 하나인 데모닉 그리모어의 해석을 부탁한걸 보면 영혼기생의 방식으로 탈옥을 감행한 모양이더군."

'그렇다면 현룡 메기도 당신도 그 영혼기생의 방식으로 VOT 온라인의 세계에서 탈옥하면 되는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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