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남은건 륭 사부라고 하는 기인에게서 배운 에테르 웨폰뿐. 의지를 형상화시키는 이 무기야말로 어쩌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나의 정의가 심판대에 오른 지금 이 순간 사용하기 가장 적합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세라푸스님 그리고... 누시아님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승리해보이리라!00398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아수라붕권(阿修羅崩拳),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가슴 깊이 새겨넣었던 각오가 무색하게 나는 공간을 타격하는 트렉슐의 권격을 얻아맞고 돌벽에 쳐박히고 말았다.
"왜 그러지? 성검 아발란체에게 선택받아 마왕 바포베트를 격살한 성기사의 힘이 고작 이정도였나?"
"후욱, 후욱. 마, 많이 강해지셨군요, 트렉슐."
"크크킄. 그래 맞아. 그게 정답이다, 에녹. 네가 약해진게 아니라 내가 너무 강해진거지. 지난 100년간 나는 VP라는 화폐로 우주 각지의 무예를 구해 익혀왔다. 물론 가끔은 사람을 죽여 빼앗아 익히기도 했지 여신칼날단에서는 면죄부라고 하는 아주 휼륭한 물건을 팔고 있거든. 재미있지않나? 세라푸스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던 죄를 엔도미야는 돈 몇푼받고 용서해준다고. 이게 내가 세라푸스에서 엔도미야로 갈아탄 이유. 그리고 이건 엔도미야에서 루시페르로 갈아탄 이유다!!"
트렉슐의 얼굴이 기이한 문양의 문신이 피어오르더니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그와 동시에 그의 뒷편에 등장한 다소 이국적인 디자인의 무사갑옷을 입은 사내. 트렉슐의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까지 따라하는 제 2의 그림자같은 느낌에 나는 다시 한번 펜싱 더 에테르의 자세를 고쳐잡았다.
기합으로 어찌할 수 있는 상대란건 진즉에 파악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러기엔 이 두 어깨에 짊어진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100년전처럼 최선을 다했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같은 변명따위는 한번이면 족했다. 거기에 조금만 더 버티면 주인님이 돌아올거라는 믿음이 내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
그 분이라면 트렉슐은 말할것도 없고 지금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판데모니엄의 악마군대 또한 처리해주시겠지. 이런 말을 그분 앞에서 해서는 안돼겠지만 주인님은 악마들보다 독한 노ㅁ... 아니 사람이였다.
"후후후."
"뭐가 웃기지? 보기엔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이쪽은 생전에 수천명을 살해하고 지옥에 떨어진 고대의 무사다. 그의 힘과 지식을 빌려 지금까지 쌓아올린 무예를 집약시킨게 바로 아수라붕권. 너 또한 그 위력을 똑똑히 보았을텐데?"
"혹시 기분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제가 웃은건 이런 극한 상황에 세라푸스님이 아닌 아크리퍼님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 또한 당신과 다를바없는 변절자인걸지도 모르겠군요."
"부끄러워할것 없다, 에녹. 살아남을 수 만 있다면, 더 강해질 수 만 있다면 그 누구의 밑에 들어간다고 해도 상관없는거다. 자존심은 잠시 접어두고 실리를 챙기는거지. 물론 다 죽어가는 신을 지키는건 조금의 실속도 없는 행위다, 마왕격살자여!"
나는 트렉슐이 타겟을 바꿔 세라푸스님을 공격하려하자 서둘러 포지션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결계를 쳐두었다지만 누시아님의 그것과 비교하면 조악하기 그지없는 유리방패에 불과했기에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만 했다.
다행히도 결계의 매개체인 이중검 아슈켈론에 트렉슐의 주먹이 닫기직전 펜싱 더 에테르가 선수를 쳤다. 하지만 오로지 빨리 검을 내뻗는것에만 치중해 사량발천근의 묘리를 담지 못했던지라 여차하면 주인님의 손목이 꺾여나갈 수 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펜싱 더 에테르에 닿은 트렉슐의 솥뚜껑같은 주먹에선 어떠한 힘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량발천근의 묘리를 전력으로 발휘했다고 해도 넉냥의 반동은 느껴져야 하는것인데 이건 무슨 공기를 찌른듯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펜싱 더 에테르.
"에녹, 싸움이 장난이라고 생각하나?"
"아뇨. 저는 맹세코 이 펜싱검 포일을 든 이래로 싸움을 장난이라고 생각해본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신앙링크를 잃고 평범한 인간보다도 못해진 신을 지키기위해 그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돌진해오는거지? 내가 방금 마음만 먹었다면 네녀석의 명치에 풀파워 아수라붕권을 꽃아넣을 수 도 있었단 말이다. 혹시 그게 아니라면 내 주먹이 두번째를 기약할 수 있을정도로 만만해 보이더냐?"
"그것도 아닙니다. 저는 단지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것일뿐. 왜냐하면 누군가를 쓰러트리는게 아니라 지키는 싸움을 할때 저는 풀파워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주인님이 저를 이 몸에 봉인한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겠지요."
"크크킄. 그런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그런 안일한 싸움을 했던거로군. 그런데 그 사실은 알고 있나 모르겠어. 네 주인의 몸에 100년산 타천사의 염상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걸 말이야. 근데 이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루시페르는 지난 100년간 봉인되어 있었을터인데 어째서 천익성과 전혀 무관한 네 새주인의 몸에 그런게 자라고 있는걸까. 답은 하나야. 교황부터 시작해서 12명의 추기경과 크고 작은 왕국의 72명의 왕 그리고 성녀에게 뿌려진 타천사의 염상중 꽃을 피우지 못한 경우는 딱 하나."
"서, 설마..."
"그래. 에녹 네가 죽고 못사는 성녀 누시아의 것이 네 주인에게 옮겨간것이다. 내것도 10년을 못가서 꽃을 피웠거늘 100년이나 묵은 타천사의 염상이 얼마나 화려하게 꽃을 피울지 생각만해도 짜릿하군. 미안하지만 에녹 네 주인이 깨어났을때 그건 절대 네가 알고 있던 주인이 아닐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동료가 될지도 모르겠군. 물론 그전에 누가 더 위인지 자웅을 가려야하겠지만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가겠다, 에녹!"
"내 마, 마스터께서 그럴리가 없어."
트렉슐이 또 한번 세라푸스님을 노리고 필살의 정권을 일발 장전한다. 아마 이번에는 허초를 날린다거나 하는 자비를 베풀지 않겠지. 또 한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 나는 트렉슐의 말마따라 보통의 인간 여자보다 쇠약해지신 세라푸스님을 일견한 뒤 펜싱 더 에테르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 이 순간 타천사의 염상이 주인님을 어떤식으로 변화시킬지 예단하는것은 어리석은 짓이였다. 지금은 그저 젖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트렉슐의 대포주먹에 대항할 방법을 찾는게 우선이였다.
"최후의 최후까지 한눈을 팔다니 결국 네놈은 거기까지였다는거다! 네놈의 어줍잖은 정의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져라, 에녹!!"
진아수라붕권(眞阿修羅崩拳),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트렉슐이 주먹이 10배로 확대된듯한 착시현상도 잠시 나는 주먹이 닿기도 전에 온몸의 세포가 사멸하는듯한 감각을 맛보며 끝내 펜성 더 에테르를 놓치고 말았다. 나 자신이 일종의 탄환처럼 튕겨져나가 결계의 매개체가 되어준 이중검 아슈켈론과 충돌하니 그녀가 최대한 충격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결계를 구부려주는게 느껴진다.
문득 100년 전 아슈켈론과 아발란체중 하나의 성검을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했던 아슈켈론 대신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아발란체를 골랐던 일이 떠올라 미안해진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트렉슐의 정권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지금은 이를 악물고 유지할만한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에녹 오빠 내가 랑페이 언니한테 받은 신기술을 쓸거니까 내가 신호하면 잠시 고개를 살짝 돌려줘.'
그와중에 세라푸스님의 왼쪽 성령이 깃든 아슈켈론이 밀어를 속삭여왔찌만 역시나 대답할 기운이 없었던 나는 백치처럼 뜻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걸 알아들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는지 아슈켈론이 이중검날 사이의의 비어있는 공간에서 비수를 쏘아냈다.
푝!
그러한 소통의 엇갈림때문에 비수가 주인님의 목젖을 꿰뚫게 되었지만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겪은 트렉슐도 목젖을 꿰뚫고 비수가 날라올지는 몰랐는지 기습을 허용하고 말았다. 주인님의 것으로도 모자라 트렉슐의 목젖까지 꿰뚫을뻔한 아슈켈론의 비수. 하지만 트렉슐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던 무사갑옷의 사내의 개입으로 공격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크크크크크크킄. 항상 정의로운척은 다하더니 이런 개수작을 준비해두고 있었을줄이야. 아, 오해는 하지말라고 나는 이런 종류의 더티 플레이를 아주 리스펙트하는 편이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야만하는게 리얼 월드의 실상이지. 에녹 네가 꿈꾸는 유토피아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말이야."
"아으어우어(당신 말이 맞습니다. 소중한걸 지키기 위해선...)."
"뭐라는건지 알아들을 수 가 없군. 죽을때가 되니 유언이라도 남기고 싶어졌나?"
"아으이이으(때론 추잡한 짓 또한 해야만 한다는걸. 내가 마스터께 받은건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였죠)."
펜싱 더 에테르(Fencing The Aether) 격(擊)
템플 스워드맨쉽 BB(Black Belt). 제 3 절 헌드레드 쓰러스트
푝!(x100)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이였지만 의지만은 충만했다. 그리고 그 의지가 아까 놓쳐버린 펜싱 더 에테르에 전해지자 마치 유령검이라도 되는것 마냥 스스로 움직여 트렉슐의 등짝에 칼침을 놓기 시작했다. 검이 스스로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이미지했던 동작이 그대로 재생되고 있는 중이였다.
륭 사부라고 하는 기인에게 이론상으로만 전수받고 실전에서 쓰는건 처음인 에테르 더 마샬아츠의 정수중 하나인 격(擊). 그것이 트렉슐의 바위같은 근육을 뚫고 각종 급소를 유린하기를 100여번. 절대 쓸어지지 않을것 같았던 마인(魔人) 무투가가 결국엔 무릎을 꿇었다.
인간의 사각중 하나인 후방에서의 뒷치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는 트렉슐이였지만, 무사갑옷을 입은 사내를 너무 신뢰한 나머지 아예 그런 종류의 공격을 머릿속에서 배제해 버린 것이다. 제 아무리 수천명을 살해한 지옥의 무사라고 해도 십만명의 원귀가 달라붙으면 꼼짝도 할 수 없는것인데 말이다.
나는 주인님의 이매망량 부대를 지휘하는 군단장 레가투스 레기오니스 약칭 레레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건넸다. 그가 타이밍에 맞추어 지옥무사를 막아준 덕분에 이번 뒷치기가 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허나 내가 눈인사를 건네든 말든 묵묵히 주인의 옆자리를 지키는 레레.
안과 밖에서 마스터를 지키기 위해 암약하는 호위무사인 둘이였지만 굳이 친해질 필요까지는 없다는 거겠지. 이제 남은건 루시페르의 악마 군단 뿐인가. 나는 호수 너머에서 점점 그 세를 불려나가고 있는 악마들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원거리에서 펜싱 더 에테르를 유지하느라 의지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였다.
이 상태라면 고블린과 호형호제하는 최하급 악마 임프조차도 쓰러트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악마 군단에게 출격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장본인인 루시페르는 현재 내면세계에서 마스터와 격돌중.
'만에 하나라도 마스터가 타천사의 염상에 감염된다면 천익성의 미래는...'
"어, 어째서 내가 진 것이냐, 에녹? 말해봐라 어서! 쿨럭쿨럭. 지난 100년간 변절자라는 오명까지 감수해가며 단 한시도 수련을 멈춘적이 없는 내가 다른 이의 몸에 기생해 살아가는 너따위에게 패배한다는게 말이나 되는 것이냔 말이닷!! 우에에에에엑!"
"급소를 그렇게나 찔렀는데 아직 말을 할 기운이 남아있다니 트렉슐 당신도 참 독종은 독종이로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당신은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펜싱검 포일을 휘둘러보기도 전에 당신의 주먹에서 퍼져나가는 힘의 파동에 휩쓸려 심장을 비롯해서 오장육부와 전신의 근육이 모두 파괴당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앉아서 말을 할 수 있을정도로 재생이 되었군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 얘기 나, 나는 용납할 수 없다! 내가 그 몸을 차치해 최강이 될... 쿠어억!"
서겅!
한쪽 무릎을 꿇고 미동도않고 사태를 지켜보던 이매망량 군단장 레레가 이쪽으로 기어오려한 트렉슐의 목을 단칼에 두동강 내버렸다. 그 또한 생전에 솜씨가 뛰어난 무장이였는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검격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