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적에게 등을지고 정확히 일곱걸음을 걸었을때쯤 나는 달팽이관이 아닌 척추가 마비되는듯한 감각을 느끼며 땅바닥과 키스를 해야만 했다.00381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과연 옥사건군이로군요. 777마리의 코끼리도 죽일 수 있는 뱀독을 혈관내에 직접 주사했는데도 7걸음이나 걸을 수 있다니. 심지어 완전히 죽지도 않는다라 본신의 능력이 10분지 1로 줄어드는 핸디캡이 없었다면 아예 독 자체가 듣지않았을 수 도. 아니 그럴 수 도 있는게 아니라 분명 그랬겠죠."
"우어워어우어(스고우 니 놈도 그 핸디캡을 받고 있잖아)!"
"저 또한 그 핸디캡을 갖고 있지 않냐고요? 예, 맞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777마리의 코끼리밖에 죽일 수 없다고. 원래는 한방울로 7777마리도 너끈하거든요."
"야우으라아으(그건그렇고 사리카야년의 시다바리나 하고 있어야할 녀석이 왜 여깄는거냐)!"
"흐으음. 이게 사정이 좀 복잡한데 옥사건군이라면 그냥 말해줘도 상관없겠네요. 그런데 저랑 이렇게 느긋하게 얘기하고 있어도 되는겁니까? 제쪽이야 세레브씨가 허무하게 리타이어해서 상관없습니다만 여신칼난단측은 두명이나 눈을 시퍼렇게 뜨고있는데."
스고우의 지적을 받고나서야 깡통로봇 퀼레뮤츠년이 멀쩡히 살아있다는걸 깨달은 나는 안그래도 움직이기 힘들었던 아랫턱을 그냥 꾹 다물어버렸다. 내가 야미도엔으로부터 디파일러(Defiler)의 미들네임을 받은것도 알려져서 좋을바가 없는 기밀 사항이였지만 디파일러 퀸을 도와 디파일러 킹을 무찔렀다는 일화도 소문나봐야 좋을게 없었다.
자칫 이야기가 잘못 와전되 긴고를 쓰러트린건 누락되고 사리카야와 동맹한 부분만 부각될 경우, 디파일러들과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는 여신칼날단원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아니 잠깐 그런데 반신타락자측도 진생 더 와일드란 괴상한 이름의 식물인간이 남아있지않았나?
뱀독때문인 뻣뻣해진 목을 가까스로 기울여 수풀쪽을 살피자 진생 더 와일드가 들릴듯 말듯 '시부러어얼 하아단 고옹겨억로 노오다압이네. 3:2르을 지이다니이 다아시는 안오올거어야아...' 라고 중얼거리며 땅밑으로 깊게 뿌리(그러니까 녀석한테는 하반신)를 내리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과연 저런식으로 우리 시야 밖에서 침투해 들어올 수 있었던건가.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쪽 나그네인 대지의 수호정령, 몰이 제 몫을 했다 말하기는 어려웠다. 땅의 정령이면 땅의 정령답게 땅의 울림을 감지하자마자 바로 지원을 와야하는게 아닌가.
물의 수호정령 오르시나가 수어지교 능력으로 물길을 탈 수 있는것처럼 몰도 분명 그 비스무리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게 분명할텐데 말이다. 그런 내 생각을 텔레파시로 읽기라도 했는지 퀼레뮤츠가 다분한 설명조로 말했다.
"앙그릿사로부터의 전언이다. 장승배기에 의존해 상대방 나그네의 초반 압박을 버티고 우리쪽 나그네는 죽림의 문지기들을 잡아 레벨을 키워 후반을 볼 생각이였다만, 예상했던것 보다 문지기들의 힘이 훨씬 강해서 지원이 필요하다는군. 숫자가 한명이라도 많은편이 장승배기를 지키기 수월할테니 네가 여기서 CP를 챙기고 있어라. 하나를 놓칠때마다 네놈의 고간에 총알 한발을 꽂아넣어주마."
"으리으라으러러(구해주기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해라 이 빌어먹을 깡통로봇놈아)!"
"뭐라고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가 없다만 정황상 네놈이 원하는거야 뻔하지."
퀼레뮤츠가 손바닥 밀치기 게임이라도 하려는지 양손을 앞으로 쭉내밀더니 그대로 허공을 강타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녀의 양손이 팔에서 분리되 로켓 부스터를 분사하며 앞으로 돌진하는게 아닌가? 순식간에 내가 쓰러진곳으로 도달한 로켓 추진형 주먹이 내 멱살을 틀어쥐더니 아군측 장승배기쪽으로 끌어당긴다.
아직도 온몸의 근육에 감각이 없는 와중에 구사일생이라고 볼 수 도 있겠지만 허공에 완전히 뜬것도 아니고 무릎이 지면에 닿은 상태로 질질 끌려가는게 여간 굴욕적인게 아니였다. 아아 퀼레뮤츠 이 개자식, 성토전만 끝나봐라 또 한번 고철덩어리로 만들어주마!
"그러면 나는 이만가보겠다. 언제 또 앙그릿사가 전략을 수정할지 모르니 VOT 단말기를 주시하고 있어라. 가끔씩 땅바닥을 보는것도 잊지말고. 몰이 아까처럼 경고 메시지를 전해올 수 도 있고, 진생 더 와일드란 녀석이 또 습격해올지도..."
"알았으니까 잔소리는 작작하고 어서 썩 꺼져, 이 대가리에 기름칠을 하다말아서 녹이슨 깡통로봇 자식아!!"
"그 잠깐 사이에 회복된건가. 여전히 몸 하나는 튼튼한 녀석이로군. 마지막으로 잔소리를 하나 하고 진짜 떠날테니 뼈에 새겨들어라. 장승배기는 엔드 디파일러 폰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어마어마한 CP 보상을 준다. 그러니 네 쓸데없이 질긴 몸뚱어리를 희생해서라도 반드시 지켜내도록. 내가 돌아왔을때 장승배기가 하나라도 쓰러져 있다면 그때는 총구에서 갓나온 뜨끈뜨끈한 총알밥을 친히 네녀석의 아구창에 쑤셔넣어주마."
"덕담 한번 기가막히게 찰지게 하는군. 알아들었으니까 니 감자주먹나 회수해가라. 옷핀도 아니고 언제까지 남의 멱살을 붙잡고 있을셈이냐."
스고우의 뱀독의 치명성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어도 경시할 수 없는 수준이듯, 얼티밋 언데드 폼의 재생력 또한 10분 1로 줄어들었어도 웬만한 트롤들은 가볍게 씹어먹을 수 있는 수준이기에 나는 어느샌가 무릎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덕분에 죽림쪽으로 향하는 퀼레뮤츠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인사까지 해줄 수 있었고, 익히 예상했겠지만 그녀가 대나무에 가려 안보일때쯤에는 주먹감자를 날려 마무리 인사를 해주었다. 오케이,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어떻게 CP(Corruption Point)를 챙겨볼까나.
십만 이매망량 군단이 있었다면 모를까 무기랍시고 거대하고 둔탁한 낫만을 사용할 수 있는 지금 세세하게 CP를 챙기기란 쉽지않은 일이였다. 그렇다고 내가 스고우처럼 독무를 소환하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디파일러 폰따위를 클리어 하겠답시고 쉐도우 브레스를 사용했다간 얼마안가서 마력이 바닥나고 말터.
결국 믿을건 밴쉬아쳐 하희빈뿐인가. 나는 고작 천공의 아치 2발째를 쏘았을 뿐인데 알코올 중독자처럼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밴쉬아쳐의 모습을 확인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도 전략의 수정이 조금 필요해 보이는군.
"하희빈 지금부터 천공의 아치는 등에 메고 다트 석궁으로 CP를 챙겨라."
"CP? 그렇게 말해도 나는 그게 뭔지 모른다."
"음 그러니까 저기 있는 돌연변이 개미놈들을 잡으면 주는 점수같은거야. 물론 막타를 친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지. 너도 VOT 온라인을 해봤으니까 알거아니야 필드 보스의 막타를 선수쳐서 아이템을 스틸하는 행위를."
"나를 그런 비매너 유저와 동일선상에 놓지마라. 아크엔젤은 스틸따위는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북두십성 유저였다."
"이 육시랄것이 주인님이 명령하는데 꼬박꼬박 말대꾸야! 닥치고 CP나 챙기라고. 저기 엔트 디파일러 폰 한놈이 죽을랑 말랑하잖아!!"
진즉에 종류별(폰에서 킹까지)로 디파일러를 사냥해 VP(Vaccine Point)를 획득한 전력이 있는 나와 달리 밴쉬아쳐 하희빈에게는 디파일러란 존재 자체가 생소한 모양이였다. 그러나 어차피 별의 생명력을 흡수할 수 있는 최상위종인 디파일러 퀸이나 킹이 아니면 그냥 조금 재생력이 뛰어난 몬스터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였다.
딱히 상성의 우위같은게 있지는 않더라도 스톰 핀드를 때려잡았을때처럼 때려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명령을 수리한 하희빈이 왼손의 건틀릿에 수납된 다트 석궁을 꺼내 퀼레뮤츠 못지않은 정밀사격을 보여주었다.
일종의 보조무기 개념으로 만든 저 다트석궁은 천공의 아치와 마찬가지로 포카튼 해머 랑페이의 작품이였다. 크기도 작고 다트를 투사체로 사용하는지라 위력자체는 형편없었지만 휴대가 편리하고 연발로 싸재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다양한 종류의 술법이 인챈트된 다트를 상황에 따라 입맛에 맞게 교체해 사용할 수 있다는건 천공의 아치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도 없는 기교였다. 그렇게 내가 따로 지시한것도 아니건만 하희빈이 실피만 남은 엔트 디파일러 폰을 사살하는 바람에 하단 공격로의 전선은 고착화 되었다.
피용! 피용! 피용!
-디파일러 폰을 헤치웠습니다(+1 CP).
-디파일러 폰을 헤치웠습니다(+1 CP).
-디파일러 폰을 헤치웠습니다(+1 CP).
그말인즉슨 장승배기의 공격범위밖에서 상대방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
나는 막타 치기에 여념이 없는 하희빈을 대신해서 스고우의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동료가
있든 없든간에 CP를 챙겨야 하는건 스고우도 마찬가지인 상황. 그는 또 다시 검지로 만(卍)를 그려 독무를 소환하는가 싶더니 소매에서 황동방울이 주렁주렁 달린 지팡이를 꺼내 땅을 내려찍었다.
짜르릉.
卍천도진토술 제 2식 봉즉사(棒卽蛇)
지팡이는 길어, 길면 뱀이지.
나무로 만든 지팡이가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더니 종국에는 방울뱀의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 말할것도 없이 스고우가 나에게 전수해준 진토술 ~뱀의 형상편~과 유사한 계열의 술법임이 분명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방울뱀의 크기가 매개체인 지팡이를 훨씬 웃돌고 허리부분에 손이 달려있다는 점이랄까.
그 손이 문자 그대로 거추장스러운 사족(蛇足)이 될지 유용한 도구가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였지만 스고우의 진토술 실력이 나보다 한수위임은 분명해 보였다. 다음으로 스고우는 내 목덜미를 무는것으로 소임을 다한 화려한 무늬의 뱀을 다시 불러들여 또 한번 진토술을 시전했다.
卍천도진토술 제 2식 사즉창(蛇卽槍)
뱀은 길어, 길면 창이지.
그 결과 무기였던 뱀이 뱀이였던 무기를 손에 쥐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보는 입장에서는 흥미롭다만 구태여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고 뱀은 창으로 바꿔서 무장시키는건 좀 오바아니야? 무슨 생쇼하는 것도 아니고."
"바로보셨습니다, 옥사건군. 이건 야미도엔님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생쇼 그 자체. 솔직히 말하자면 안면식이 있는 옥사건군과 너무 진지하게 싸우고 싶지는 않아서요. 피차 CP를 챙기는건 부하들에게 맡겨두고 저희는 이걸로 승부를 보는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스고우가 또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려하자 한껏 긴장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잡았다. 스고우의 마음처럼 그 속을 알 수 없는 저 소매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 방심은 금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