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정해두었던대로 슈퍼로이드 퀼레뮤츠와 하단 라인에 서게된 나는 낯선 환경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야구 전광판처럼 아군과 적군의 CP 획득 내역이 나와 있는 홀로그램 화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상대는 사두용미(蛇頭龍尾) 스고우와 마신 벨제붑의 전두엽, 세레브?00379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야 요슈아 임마, 저 세레브라는 녀석 이명이 대놓고 마신 벨제붑의 전두엽인데 니 친구냐?'
'네? 세, 세레브요? 잠시만 안대를 벗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직접 확인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하도 오랫동안 갓 들어온 이등병마냥 굴려대니 무척이나 공손해진 요슈아의 태도에 흡족해하며 왼쪽눈의 안대를 살짝 벗겨주었다. 아직 야미도엔이 말한 디파일러(내가 아는 그 디파일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가 공격로에 도착하지 않았기에 이런식으로 상대방을 탐색하는것도 나쁘지않은 전략적 선택이였다.
스고우쪽이야 그에게서 받은 진토술 ~뱀의 형상편~과 황룡거사와의 싸움을 머릿속에서 리플레이 해보면 어느정도 파악이 가능할... 뭐 꼭 그런것도 아닌가. 우주에서 제일 사나운 강아지 사리카야의 집사인 스고우는 솔직히 말해서 여러모로 종잡을 수 없는 사내였다.
그가 사신성에서 황룡거사로부터 사리카야를 지켜낸건 아직 미성숙한 상태인 디파일러 퀸을 보호하기 위한 야미도엔의 안배일 수 도 있겠지만, 그 이후에도 힘만쌘 왈가닥의 책사를 자처하며 다방면에서 편의를 봐주는 행위는 명백한 과잉보호였다.
모르긴 몰라도 스텔라 비타, 육체초월(Phoenix Mode)을 각성한 사리카야는 움파카, 롬파카 형제에게도 꿇리지 않는 수준의 무투가로 활약할 수 있었다. 하물며 그녀의 뒷배에는 디파일러 로열나이트 쿠자르를 필두로한 디파일러 군단이 떡하니 버티고 있을지언대 감히 어느 누가 VP획득을 목적으로 디파일러 퀸을 사냥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에 잠겨있는것도 잠시 요슈아가 호들갑을 떨며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올듯 삿대질(?)을 해댔다.
'저, 저 주름 형태를 보니 저 녀석 제가 아는 그 놈이 맞는것 같습니다. 근데 저 세레브 자식 벨제붑님의 두번째 심장 불칸보다 질이 나쁜놈입니다. 불칸 그 놈이야 그냥 뇌까지 근육으로 되있어서 그렇지 근본이 나쁜 녀석은 아닌데, 세레브 저 놈은 근육까지 뇌세포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가 온갖 권모술수란 술수는 다부리고 다닌다고요. 벨제붑님이 한창 잘나갈때 머리꼭대기에서 사사건건 쪼잘쪼잘 거리는게 어찌나 아니꼽던지. 부디 주인님께서 저한테 그랬던것처럼 참교육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권.모.술.수? 그건 요슈아 네 특기 아니였냐? 첫만남 기억안나?"
'아이고 참 주인님도 언제적 얘기를. 그래도 지금은 주인님 앞에만 서면 착한 양이 되지 않습니까? 혹시나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세레브 저녀석을 슬하에 두려하지 마십시요. 보시다시피 기생체인 저와 불칸과 달리 저 놈은 적합한 생명유지창치만 있으면 독립보행이 가능합니다. 주인님이 잠든 사이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고요.'
'독립보행이라 내가 보기엔 독립부유에 가까운것 같다만.'
아닌게 아니라 스고우의 곁을 일정주기로 배회하고 있는 세레브의 하반신에는 다리 비스무리한 건덕지조차 없었다. 실시간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험관속에 반쯤 잠긴 우동사리와 시험관을 망토처럼 두르고 있는 판초우의를 닯은 거적대기. 저런 꼴로도 혼자 움직일 수 만 있다면 기생체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
내가 쉽사리 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어디선가 불칸(현재 아바타가 아닌 본체에 기생중)을 닮은 우락부락한 실루엣의 근육쟁이들이 흙먼지를 뽀얗게 피우며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양측 공격로를 타고 동일한 숫자의 병력이 똑같은 자세로 절도있게 몰려오자 정말로 내가 다른 게임 속에 들어온 기분이였다.
"16배율 광학렌즈로 살펴본 결과 상대는 개미과의 곤충을 본뜬 디파일러 폰으로 보이는군. 이 성토전에서 CP를 획득하기 위해선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소위 막타라는 행위가 필요한듯 하니 정밀사격이 가능한 내가 CP를 독식하겠다. 너는 상대 반신타락자들이 CP를 못먹게 견제하도록."
"하아? 그게 무슨 개소리야! 디파일러 폰따위 그냥 진짜 개미처럼 밟아 죽이면 그만이잖아. 정밀사격같은게 왜 필요한데?"
"이 금붕어 자식이 성토전의 참가자에겐 본신의 능력이 10분지 1로 줄어드는 핸디캡이 주어진다는 얘기를 듣지못한거냐!! 게다가 내 추측이 맞다면 디파일러 폰에겐 역으로 능력을 증감시키는 어드밴티지가 부여됐을 확률이 높다. 장승배기에게 막타를 뺐기고 싶지않다면 가능한한 빠르게 디파일러들을 클리어할 필요가 있단 말이다."
"뭐, 뭐 장승배기가 어쩌고 저째?"
"이 버러지만도 못한 강령술사 녀석이 앙그릿사가 보낸 VOT 단말기를 통해 보낸 성토전 메뉴얼을 제대로 읽지 않은것이냐! 그런 기본적인 정보도 모르고 있는걸 보니 더더욱 내가 CP를 독식해야겠군. 자꾸 두리번 거리지 말고 어서 적을 견제하면서 반신타락자쪽의 나그네가 오는지 살펴라!!"
퀼레뮤츠의 호통에도 계속해서 주위를 살피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장승 보다는 모아이 석상에 가까운 목조 조형물이 우리쪽 공격로 양 길가에 설치되 있는걸 확인하고 실소를 머금을 수 밖에 없었다.
나그네 포지션, 장승배기, 개미의 형태를 한 디파일러, 세라프스와 루시페르. 누가 혼돈의 주인 아니랄까봐 야미도엔이 주최한 이 성토전은 그야말로 개판 오분전 아니 오초전이였다. 어찌됐든 이기면 장땡이였기에 나는 퀼레뮤츠의 역할분담에 동조하기로 했다.
그녀의 말마따라 지금의 나는 성토전과 관련해서 정보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였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일단 지금은 닥치고 눈팅이나 하는게 맞으리라. 그런 생각으로 크림슨 메이든에서 부하 세명을 소환하려는데 띵!하는 소리와 함께 경고음이 울려퍼진다.
-레벨 1인 상태에서는 부하를 한명밖에 소환하실 수 없습니다.
이런 씨부럴!
나는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걸 간신히 참아내고 밴쉬아쳐 하희빈을 선택적으로 소환했다. 손이 4개에 다리가 2개인 근육질 개미들이 코앞에 이르렀기에 불평불만을 쏟아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예의 페널티는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는지 세레브가 스톰 핀드(Storm Fiend)를 소환하는데 그쳤다는 것이였다.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머리의 커다란 두 뿔을 피뢰침처럼 활용해 뇌전의 힘을 집약 및 분사할 수 있는 녀석은 VOT 온라인에서도 꽤나 악명높은 최상위급 악마형 몬스터중 하나였지만 과연 천공의 아치를 든 하희빈이 출동하면 어떻게 될까?
"밴쉬아쳐 저기 해로운 악마다. 해치워라."
"여기는 도대체 어디냐? 정말이지 갑자기 소환해서는 밑도 끝도 없이 명령질이라니 아크리퍼 너다운 짓이긴 하다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둬라. 세상에 해롭지않은 악마는 없으니 해로운이란 수식어구는 악마앞에 필요없다는걸!"
역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밴쉬아쳐라 그런지 갑작스런 환경변화에도 얼타지 않고 침착하게 성궁(聖弓), 천공의 아치의 시위를 당겼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천공의 아치의 사이즈가 커졌기에 온몸을 비틀어 활시위를 당기는 포즈가 불안불안해 보였지만 올림픽 양궁 개인전 3연속 금메달리스트에 빛나는 그녀의 조준 실력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쒜에에에에엑!
그렇게 머리에 각각 흰띠와 검은띠를 맨 엔트 디파일러 폰들이 격돌한 순간 하희빈의 손에서도 영력 입자로 이루어진 화살이 쏘아졌다. 지 주인과 마찬가지로 정신사납게 이리저리 떠다니던 스톰 핀드였지만 정확히 그 타이밍까지 계산해서 쏘아진 성궁의 일격에 정확히 눈알이 꿰뚫리고 말았다.
푸욱!!
-이런이런 곤란해, 곤란해. 아수라몽크를 피해서 하단 공격로로 왔더니 상성이 좋지못한 상대가 있다니, 있다니. 스고우, 스고우 나 좀 도와줘, 도와줘.
"흐음. 그렇다면 세레브씨의 부하가 리스폰될때까지 잠시 장승배기쪽으로 물러나서 얌전히
CP를 챙기는게 좋겠네요. 죄송하지만 제 기술의 특성상 CP는 제가 독식해야할것 같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성토전에서 이길 수 있게만 해줘, 해줘. 새로운 타입의 생명유지장치의 필요성을 격하게 느끼는중, 느끼는중. 이 몸 너무 불편해, 불편해.
"그건 장담할 수 없겠네요. 최선을 다하겠지만 인명은 재천인것처럼 승패도 하늘에 달려있는건인지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