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375화 (375/599)

나는 VOT 단말기를 통해 50초도 채 남지 않은 집결 대기시간을 확인하고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짧게 끝내고 의료실을 부랴부랴 벗어났다. 엔도미야가 그런 실수를 할거라고 생각치는 않았지만 만에 하나 집결의 대권능에 다른 누군가가 휘말린다면 곤란했기에 지금부터는 혼자있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어떤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마지막으로 멀쩡한 김여령 여사의 용안을 보고가니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00375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3, 2, 1!

내가 마치 VOT 온라인에 첫 접속했을때의 부양감을 느낀순간 주위의 시계는 이미 의료실이 아닌 연녹색을 띄는 반구형 강화유리로 둘러쌓인 콕핏트를 비추고 있었다. 분명 초신성급 전함 델타크롬에 집결하는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는 도대체 어디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자 콧핏트의 기판이 그에 응답을 하듯 점멸하더니 갑자기 콕핏트가 아랫방향으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나는 적지않은 중력의 압박을 느꼈지만 자리가 좁아 엎드리지도 못하고 선채로 모든걸 견뎌낼 수 밖에 없었다.

10시간같은 10초가 지나고 콕핏트가 목적지로 추정되는 장소에 도착했을때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콕핏트를 타고온 앙그릿사, 트렉슐, 몰, 퀼레뮤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같이 중력의 압박정도는 간지러운 수준이였다는듯 의연한 모습이였기에 나는 토악질이 올라오려는걸 간신히 참아냈다.

빌어먹을, 얼티밋 언데드 폼을 만들때 달팽이관을 강화하는 방법같은건 찾지 못했다 말이다!

"굳이 이런 B급 전대물에서나 나올법한 연출을 할 필요가 있었나? 그냥 처음부터 이 자리에 집합시켰으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을거 아니야."

"10초 절약하겠다고 10년 빨리 죽고싶나, 옥사건? 최소 몇백광년은 떨어진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전이술식이다. 0.001%의 오차만 있어도 서로의 육체가 섞이는 대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란 말이냐? 비단 육체가 섞이지는 않더라도 나는 더러운 강령술사와 피부가 접촉하는 것 조차 질색이다. 시체썩은 냄새가 옮을것 같아서 말이지."

"나도 뚝배기에 녹이쓴 깡통로봇이랑 접촉할 생각따윈 없으니까 내 반경 10m내로 접근하지 마라. 파상풍 걸릴라."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바다, 비열한 강령술사놈!"

"두분 말씀중에 죄송하지만 옥사건군과 퀼레뮤츠양은 성토전에서 하단 공격로 듀오를 가셔야할텐데 반경 10m씩이나 떨어져 있는건 힘들지 않을까요?"

"뭐라고!!" x 2

비취드래곤 앙그릿사가 특유의 비취 눈동자를 올망졸망 빛내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해왔다. 내가 퀼레뮤츠 녀석하고 콤비를 짜야한다고? 아무리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라지만 나를 암살하려다 실패해놓고 미안한 기색 하나 없는 철면피를 어찌 믿고 함께 싸운단 말인가.

상대 또한 듀오라고 해도 차라리 나 혼자서 싸우는게 100번 나으리라. 나의 경우 3명의 부하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쪽이 나을 수 도 있었다. 수적 불리함같은건 아무리 핸디캡이 있다해도 강령술사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인 것이다.

그런 판단이서서 팀의 리더인 앙그릿사에게 클레임을 걸려는데 깡통로봇년이 먼저 선수를 치고 말았다.

"남는 자리를 달랬더니 저딴 녀석하고 콤비를 짜주다니 리더의 자질이 의심되는군, 앙그릿사!"

"그건 내가 할말이다 깡통로봇. 너는 그냥 성토전이 시작하면 공격로로 오지말고 뚝배기에 기름칠이나 하고 있어."

"두분 다 경고하건대 팀의 협동성을 저해하는 말과 행동을 지금부터는 그냥 보고만 있지않겠어요. 퀼레뮤츠양이 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정도로 엔도미야님의 최측근이란걸 알고 있긴하지만, 우리팀의 리더는 엄연히 저고 제가 원하면 언제든지 엔도미야님께 요청해 임무수행에 방해되는 팀원을 대권능: 추방(Grand Power Of Words: Banishment)으로 쫓아낼 수 가 있죠. 그때는 단순히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연봉의 30%를 위약금으로 물어내야할겁니다."

"그, 그건 안된다! 나는 이번 임무의 성과연봉을 가불해 한번 파괴됐던 이 몸을 재생산했단 말이다. 이번 임무에 실패한다면 나는 그 지긋지긋한 디지털 매트릭스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 그것만은 절대..."

괴로운 기억이 떠올랐는지 뚝배기까지 감싸쥐며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퀼레뮤츠. 확실히 그녀는 서열이 9단계나 밀림에도 엔도미야와 직통라인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앙그릿사를 무시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었다. 꼴좋다, 빚쟁이 깡통로봇년!

"저도 그렇게 극단적인 카드를 함부로 꺼내들 생각은 없으니 퀼레뮤츠양은 이만 일어나세요. 퀼레뮤츠양의 이전 몸을 파괴했던 장본인이 바로 옥사건군이라는건 그의 성격이 아무리 더러워도 실력하나만큼은 인정할만한 것이라는 얘기가 되지 않겠어요? 저는 퀼레뮤츠양이 좀 더 마음을 열고 그와 화합해서 환상의 콤비를 이루기를 바래요. 반신타락자측에서 어떤 조합을 내세울지 알 수 없는 지금 믿을 수 있는건 동료의 든든한 등뿐."

"닭살 돋는 소리 작작하고 저기나 보는게 어때, 리더."

내가 우주밖 환경을 가감없이 비춰주는 테라스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앙그릿사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대꾸해왔다.

"어머나 천익성은 상상했던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별이네요. 행성을 둘러싼 두개의 고리가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느껴져요. 이런 별이 지금 산자들의 무간지옥이 되어 있다는게 잘 실감이 가질 않네요."

"그거 말고 행성 건너편에 있는 저 거대한 그림자를 보라고!!"

대기권 밖에서 바라본 천익성의 풍광에 정신이 팔려 정작 반신타락자측의 함대로 추정되는 괴생명체를 시야에서 놓친 앙그릿사가 뒤늦게 행성을 감싸는 또 하나의 고리를 확인하고 짧고 굵게 브리핑을 했다.

"초괴수급 생체전함 요르문간드로군요."

"그게 끝이야? 저딴게 있을거라고 왜 미리 언질을 해주지 않았지. 저런 말도 안돼는 사이즈의 초거대괴수가 있을줄 알았으면 나도 내 개인 전함을 끌고왔을거라고."

"이쪽에는 초신성급 위성전함 델타크롬이 있다. 뭐가 부족해서 네놈의 장난감 전함을 가져오네마네 하는것이냐. 설마 아크리퍼 네놈 요르문간드의 덩치를 보고 쫄은것이냐?"

"쫄긴 누가 쫄았다고 그래!? 제 아무리 덩치가 큰 생명체라고 해도 내부에 잠입할 수 만 있다면 그걸로 게임오버야. 군단급의 언데드를 풀어 내부 장기를 갉아먹게 하면 상대가 그

누구든 버틸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내가 따져묻고 싶은건 저딴게 생명체랍시고 성토전에 부하개념으로 참전한다면 핸디캡으로 부하를 3명만 데려온 나랑 밸런스가 맞겠냐는거야."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옥사건군. 요르문간드가 일종의 생명체인건 사실이지만 지능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부하로 인정될리가 없을테니까요. 애초에 무슨 이유에서건 전함이 여신칼날단과 반신타락자간의 싸움에 개입한다면 그건 바로 전면전으로 이어질거고 성토전같은거 유명무실해질겁니다."

"뭐 그렇다면 상관없지만서도..."

"상대측에서 먼저 교신을 신청해왔군. 일단 저쪽도 전면전을 할 생각은 없는듯하니 일단 수락해보겠다. 괜찮겠지, 앙그릿사?"

"허락합니다. 성토전과 관련된 내용은 이미 엔도미야님께서 협의를 마치셨다고 들었지만 한번쯤은 반신타락자 라인을 통해 야미도엔의 의사를 확인할 필요도 있으니까요. 엔도미야님과 달리 워낙에 변덕이 죽끓듯이 심한 자인지라."

앙그릿사의 동의를 구한 퀼레뮤츠가 손바닥을 활짝 펴 허공에 도장을 찍는듯한 제스쳐를 취하자 테라스 전면에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출력되었다. 그리고 그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선 올백 머리에 광대 분장을 한 남성이 등장해 천박한 웃음을 흘리며 인사를 건네왔다.

"오호호호호호홍! 이 몸의 지루한 인생에 큰 자극을 주기위해 이 먼길을 납셔준 여신칼날단원들에게 큰 감사인사를 드리는 바요. 이 몸은 반신타락자 서열 4위 필멸의 어릿광대, 쟈크 더 리퍼라고 하오이다."

"반갑군요. 저는 여신칼날단 서열 10위 비취드래곤 앙그릿사라고 합니다. 이미 엔도미야님께서 성토전이 수립됬음을 공포하셨습니다만 재차 확인을 위해 묻겠습니다. 야미도엔님께서 지형의 이점을 활용할 수 없음에도 성토전을 수락하신게 맞습니까?"

"오호호호호호홍!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요. 만약 성토전이 불발되었다면 우리측에서 델타크롬 함선을 보자마자 선제타격을 가하지 이렇게 느긋하게 자기소개나 하고 있을리가 없지 않겠소? 뭐 애시당초 지형의 이점이라고 해봤자 루시페르의 사주를 받은 몇몇 벌레같은 인간들이 세라푸스를 따르는 인간들 보다 더 활발하게 꿈틀거리고 있다는게 다요. 그런 것에 의존해 전면전을 벌이기 보다는 격식있는 싸움을 하는쪽이 100배는 낫지. 아무튼 루시페르와 세라푸스가 동시에 봉인되 있다는 철십자 교회로 따라오시요. 야미도엔님께서 그곳에 성토전의 무대로 향하는 문을 열어두었다고 하셨으니."

"무대는 그렇다치고 성토전의 구체적인 규칙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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