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374화 (374/599)

"죽음의 왕의 기사서약식 다음은 죽음의 신의 세례가 있을지어니 한방울도 남기지 말고 다쳐먹어라 이 갈보년아!"00374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갈기갈기 찢겨진 책이 사방을 나뒹구는 이곳은 내가 술법 공부에만 집중 할 수 있게 특별히 공방 한켠을 개조해 만든 일종의 고시룸이였다. 3대 강령술 마도서 네크로노미콘, 데모닉 그리모어, 귀혼강신법의 난해한 글귀들을 다소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석권하기 위해 만든 이 고시룸은 몸을 누일 자리조차 없어 24시간 가부좌 자세를 하고 않아 있어야 했다.

수능을 100일 앞둔 고3 시절에도 이렇게까지 공부를 한적이 없건만 나는 그런 자세로 염소마냥 마도서의 복사본을 한장 한장 씹어먹으며 통채로 암기를 하고 있는 중이였다.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여자랑 자고 싶은게 사람의 본능인지라 나는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금까지 술법 공부를 해온 것이다.

하물며 주경야독도 아니고 오전 타임에는 륭 사부의 훈련을 받고 오후 타임에 술법 공부를 하는것인지라 그 육체적, 정신적 피로함이란 이루말할 수 없는 것이였다. 물론 피로도 피로지만 진짜 문제는 흡현자가 금연을 할때 담배 한까치가 간절한것처럼 나 또한 오입질 한번이 너무나 간절하다는 것이였다.

지난 두달 동안 맡아본 여자 보지냄새라곤 기사서약식을 명목으로 하드코어 플레이를 강요한 하희빈이 유일했다. 밴쉬의 몸은 앵간해서는 상처를 입지 않았기에 나는 그야말로 상상만 하던 플레이를 모두 다 시험해 보았다. 일차적으로는 내 뒤틀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였지만 지금까지 아크엔젤이 나와 반목해온 것에 대한 징벌적 성격도 담겨있었다.

'그런데 그 하희빈 독한년 단 한번도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지.'

누가 독배의 독기를 견뎌낸 여자 아니랄까봐 자지는 보짓구녕을 검지와 중지는 엉덩이 구멍을 듀얼코어로 쑤셔되는데도 이를 악물고 버티는데 영 씹질할 맛이 나지 않았다. 그 콧대높은 매드독스 왕루옌도도 살랑살랑 배꼽이랑 젖통을 만져주면 그녀답지않은 귀여운 신음 소리를 토해내며 얼굴을 붉히는데 지깟게 뭐라고 목석처럼 구는지.

어쩌면 그게 바로 하희빈이 노리는 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 옥사건 고작 한번 득음에 실패했다고 해서 움츠러들 남자가 아니였다. 한번으로 안돼면 열번의 도끼질을 해서라도 그녀의 허리가 꺾이게 만드리라. 내가 그런 각오를 다지며 또 한번 정독을 마친 마도서의 일부를 씹어 삼키는데 VOT 단말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빛을 뿜기 시작했다.

삑! 삑! 삑! 삑!

-세비앙입니다. 엔도미야님께서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59분 59초 후에 대권능: 집결(Grand Power Of Words: Gathering)을 사용하실 예정이니 Ex랭크 임무 천익성 수복작전에 동원될 예정인 여신칼날단 대원분들께서는 속히 준비를 마치시고 대기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이 날이 오고야 말았군.'

나는 원래 수능 당일날 벼락치기를 하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였기에 집합 메시지를 받자마자 반쯤 찢겨진 마도서의 복사본을 방구석으로 내팽겨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미 성토전에 데려갈 멤버인 밴쉬아쳐 하희빈, 슈퍼로이드 프랑케네트(초월 그림자도약으로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에서 데려옴), 트롤왕 리쿤다룬은 크림슨 메이든의 저택안에 밀어넣은 상태였기에 따로 준비할만한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 단칸방에서 아무런 소일거리도 하지 않고 대기하는것도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였기에 나는 김여령 여사의 병문안을 가보기로 했다. 갑자기 토악질을 하며 쓰러진 그녀는 현재 색향천월관의 의료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 어떠한 치료행위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였다.

이유는 말할것도 없이 헤미메탈 슬라임의 세포를 이식한 이후 몸 전체의 DNA가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이 되었기 때문이였다. 어떻게든 염기서열을 분석해 치료법을 찾으려 해도 시시각각 온 몸의 세포가 분열과 재구성을 반복하고 있는터라 그것마저 여의치 않은 상태였다.

최악의 경우 김여령 여사의 영혼만을 추출해 언데드로 부활시켜야 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의 연속. 아무리 그녀가 자초한 일이라지만 자식으로서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빌어먹을! 자식이 독감에 걸렸을때도 그냥 방치했던 엄마를 내가 왜 챙겨야하는지 모르겠군.

'막판에 의사처방도 받지않은 알약하나를 주고 가긴 했지만...'

그때 그 알약을 먹자마자 열이 내리고 통증이 완화됐던 기억이 떠오르자 의료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빨라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드넓은 우주에서 나와 혈연관계를 지니고 있는건 김여령 여사가 유일했다.

프랑케네트가 이름을 받은 뒤로 나를 살갑게 아버지라 부르며 고분고분 굴긴했지만 거기서 어떤 끈끈한 유대를 느끼기란 쉽지않은 일이였다. 프랑케네트가 로봇이여서가 아니라 가족이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였다. 탯줄처럼 끊을 순 있어도 다시 연결할 순 없는 불가역적 관계.

'빌어먹을 천하의 아크리퍼가 이따위 감정에 휘둘려야 하다니...'

"무, 물 좀..."

내가 걸음을 우뚝 멈춰선 다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얼마남지 않은 의료실에서 발걸음 소리를 죽이지 않았다면 듣지못했을만큼 실낱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빠른 걸음이 아니라 아예 전력질주로 의료실 안까지 골인해 들어갔다. 김여령 여사가 미약하나마 손끝을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 모습을 포착한건 나만이 아니였는지 의료실을 지키고 있던 메디컬로이드중 하나가 물컵에 물을 따라 환자에게 건네려는걸 가로챈 나는 조심스럽게 김여령 여사의 입가에 물을 흘려넣었다. 그런데 그녀가 조금씩 목을 축이는 것 같더니 입을 크게 벌려 물을 마시는게

아니라 물컵을 통채로 집어삼키는게 아닌가?

우적우적.

그걸로도 모자라서 금속재질의 물컵을 무슨 곡식가루로 만든 아이스크림 콘마냥 씹어먹는 김여령 여사. 내가 기겁해서 뒷걸음질을 치는데 그녀가 환자답지 않은 날렵한 손놀림으로

내 손목을 붙잡더니 재차 갈증을 호소했다.

"거, 거기 있는거 아들이야? 나 물 좀 더..."

"그래요 나에요. 당신의 둘도없는 자식인 김사건이란 말입니다. 물이 먹고 싶다고요? 물컵이 먹고싶은건 아니고요?"

"몰라 아무튼 물이 됐든 물컵이 됐뜬 어서 빨리..."

"그 정도야 메디컬로이드를 시켜서 얼마든지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만 배가 고프다고해서 로봇까지 먹어치우지는 마세요. 이거야 원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함선까지 먹어치울까 두렵네요. 이제 곧 자리를 비워야하는데 나 원 참!"

"자, 자리를 비워야한다고? 그냥 여기 있으면 안돼?"

"예, 안됍니다. 아픈 모친의 곁을 지키는게 자식의 도리라면 아픈 자식의 곁을 지키는것도 모친의 도리지요. 당신이 먼저 모친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는데 제가 자식의 도리를 지키길 바라는건 전형적인 내로남불 아닙니까? 불효자라고 욕하실려면 욕하십쇼. 어차피 저도 뒤에선 계모같다고 한두번 욕한게 아니니까."

"하하하... 살아있다는게 좋긴 한건가 보군. 이렇게 자식에게 대놓고 홀대를 당하는데 웃음이 나오는걸 보면 말이야."

"고작 그 정도로 웃음을 흘리시다니 색향천월관에 밖에 자라난 마법의 콩나무를 보시면 아주 박장대소를 하시겠군요. 뭐 당신이 기대한 세계수와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연구할만한 가치는 충분한 괴식물체가 지금 달과 지구 사이를 잇고 있으니 어느정도 몸을 추스리시면 확인해 보시고 연구결과는 저한테 고스란히 바치시길."

"우주 엘리베이터도 아니고 식물체가 지구와 달을 잇고 있다고?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감이 안잡히는군. 아무튼 그전에 헤비메탈 슬라임의 세포에 관해서 할말이 있어. 혹시나 그런일은 없겠지만 너도 불사의 몸을 얻겠다고 이 세포를 네 몸에 이식하는 미친짓거리는 절대 하지마. 애초에 내가 지금 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것 자체가 기적이니까."

김여령 여사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것마냥 나에게 경고를 해왔다. 하지만 미확인 생명체의 줄기세포를 철저한 분석없이 자신의 몸에 이식하면 안된다는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당연한 얘기였다. 물론 나 또한 리쿤다룬의 골수세포로 그와 비슷한 일을 한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 캐릭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귀중한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애초에 헤비메탈 슬라임의 세포를 이식할 생각도 없었지만, 김여령 박사께서 자기 한몸 불살라서 모르모트가 되주셨으니 더더욱 하지 말아야겠네요."

"난 지금 진지해. 처음 내가 헤비메탈 슬라임의 상피세포를 피부에 이식했을때 나는 그 어떠한 세포변이가 일어나도 피부에 그칠거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오장육부는 물론 뇌까지 세포변이가 일어나고 말았어. 헤비메탈 슬라임의 세포 전이율은 암세포의 전이율을 아득히 초월해 있다고!"

"그런데 어떻게 엄마가 지금 저랑 멀쩡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거죠? 엄마의 말대로라면 김여령 여사는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어야 했을텐데."

"이건 단순히 내 추측일뿐이지만 스스로를 아크데빌이라 밝힌 남자가 내 악마의 문신에 뭔가 장치를 해둔 탓인듯해. 뚜렷한 물증이 있는건 아니지만 솔직히 그것말곤 짐작가는게 없어. 그가 나에게 건 세뇌를 더욱 견고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추가적으로 피문신을 새긴적이 있는데 그게 일종의 정신방화벽 역활을 한게 아닌가..."

"잠깐, 잠깐만요. 엄마의 그 문신론 분명 심도있게 논의해볼만한 가치가 있는것 같기는 한데 아까 말했다시피 제가 잠시 자리를 좀 비워야하거든요. 메디컬로이드를 시켜서 지속적으로 수분과 철분을 공급해 드릴테니까 그 얘기는 나중에 갔다와서 합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