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예이. 어련하시겠어요."00363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누가 상단 아니랄까봐 실용적이기 그지없는 비스트코인의 클래식 함선들과 달리 온갖 화려한 금빛 치장으로 무장한 전함이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우주정거장에 도킹을 시도하자 수많은 수인족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개중에는 보는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는지 두툼하게 튀어나온 주먹코를 씰룩거리며 서류를 검토중인 돼지 수인족 삼형제가 있었다. 우주에서도 손꼽히는 물류중심지답게 마약이나 폭발물같은 물건들의 감시를 위해 존재하는 전문 감시관인 모양인데 휘르 행수의 전자인증서가 있는 내게는 그리 무서운 상대가 아니였다.
"킁킁! 함장명은 옥사건님, 함선의 크기는 전함급 그리고 함선이 건조된 장소는 팔륜성이로군요."
"꾸익꾸익!! 아무리 유명인이라고 해도 미리 관제탑에 통보도 하지않고 이런 커다란 함선을 끌고 오시면 정밀 후각 검사를 하지않을 수 가 없습니다."
"오잉크!!! 맞습니다. 안그래도 요즘들어 아바타 클레이같은 불법품목의 거래가 음지에서 성행하는터라 저희가 후각 검시를 끝낼때까지 이 검색대에서 기다려주셔야겠습..."
"시끄럽고 이거나 먹고 떨어져. 돼, 돼게 성실한 공무원 놈들아!"
주저리주저리, 블라블라 적혀진 약관내용과 함께 휘르행수의 은빛인장이 박힌 전자인증서를 들이밀며 '돼지 새끼들아.'라고 덧붙이려던 나는 진짜 돼지한테 돼지라고 욕하는건 좀 아닌듯해 말을 아꼈다.
그리고 내가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지 않아도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은 중세시대의 계급체계에 먹이사슬의 프레임까지 더해진 곳인지라 돼지 수인족 삼형제는 인장에 각인된 휘르 행수의 발톱모양을 확인하곤 혼비백산해져 검색대의 출입문을 부랴부랴 오픈했다.
내가 그 출입문을 지나치는 순간 블랙A가 잽싸게 내 팔짱까지 껴가며 따라붙자 달리 태클을 걸어오는 수인족은 아무도 없었다. 우주 최고의 물류중심지로 손꼽히는 우주정거장치곤 보안이 허술한게 아닌가 싶었지만 블랙A의 생각은 또 다른 모양이였다.
"운이 좋았네. 방금 만난 돼지 수인족들 함선 감시관들 중에서도 코가 좋기로 유명한 친구들이야.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천리밖의 마약도 어떤 종류인지 분간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다행히도 아바타 클레이는 이렇다할 고유의 냄새는 없으니까."
"그러면 굳이 황룡선에 더부살이할 필요없이 블랙시커만 따로 도킹하는편이 더 눈에 안띄는거 아니야? 저기 황금 외장재에 눈돌아간 수인족들 좀 보라고."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야. VOT 단말기가 없으면 관제탑이랑 소통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무법자들은 이런 공영 우주 정거장에선 유령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면 이만 여기서 헤어지도록 할까? 덕분에 쉽게 왔어, 대영웅 옥사건씨. 쪽!"
블랙A가 검지와 중지를 겹쳐 손키스를 날리더니 진짜 유령처럼 우주정거장의 골목한켠 사이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전 인사 대신 엉덩이라도 주물럭거리고 싶었으나 뒤늦게 뻗은 손은 허공만 가를뿐이였다.
빌어먹을년 일말의 떡정이라도 남아있다면 가기전에 손키스가 아니라 딥키스를 해주고 가야하는거 아니야? 이래서 무법자년놈들하고는 상종을 하기가 싫다니까. 그러나 나는 비스트코인 우주정거장의 도심지로 향하면서 꿀꿀했던 기분을 가볍게 떨쳐내고 금새 하이텐션이 되어 쫑쫑 걸음을 이어나갔다.
블랙A가 비스트코인 우주정거장에 들여보내달라고 제안을 한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않았던 인물, 휘르 행수를 지금부터 만나러갈 계획이였기 때문이였다. 겸사겸사 우르사티가 메탈하트를 연구해서 이뤄낸 성과도 확인할 생각이였지만 우선순위로 따지자면 휘르 행수가 당연히 위일 수 밖에 없었다.
메탈하트의 잠재력을 무시하는건 아니였지만 슈퍼로이드는 생명체도 아니고 언데드는 더더욱 아니였기 때문에 오시리스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었을뿐더러, 말그대로 로봇이였기 때문에 기계공학과 관련한 지식이 전무한 내가 손을 댈 껀덕지가 없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리고 위의 두가지 결점을 전부 다 씹어먹는 슈퍼로이드의 진짜 단점 오브 단점은 바로 영혼의 표식(Reaper's Mark)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한때 혼돈의 주인, 야미도엔이 내게 영혼의 표식과 비슷한 종류의 주박을 걸려다 실패하자 나를 죽이려든것처럼 나 또한 제어가 불가능한 하수인은 아무리 강해도 꺼려하는 타입이였다.
그나마 영혼의 표식이란 최후의 보험이 있으니까 나를 철천지 원수처럼 여기는 우버리퍼 더 블라인드나 대놓고 집사취급을 하는 월영공 듀리스를 안고 가는거지 그마저도 없었으면... 아마 에보니 메이든의 주민은 지금 반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휘르 행수의 집무실에 도착한 나는 슈퍼로이드따위는 새까맣게 잊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방문을 두드렸다.
"휘르 행수 저에요."
"왜 비스트코인 우주정거장에 돌아오자마자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의 방을 먼저 방문하려고 하고 있는거죠?"
섬뜩!
그런데 기품과 야성이 절묘하게 섞인 휘르 행수의 목소리가 들려올줄 알았던 나는 육성과 기계음이 섞인듯한 묘한 목소리가 들려와 우뚝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방문을 재차 두드릴 생각도 못하고 양철로봇마냥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보니 휘르 행수의 집무실과 연결된 복도 너머에 벽을 방패삼아 얼굴을 반쯤 가린 묘령의 소녀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에선 짐승의 귀와 꼬리를 지니지않은 사람을 만나는게 더 드문 일이긴 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핸드폰 안테나가 달린 이어클립이라는 유난히 눈에 띄는 악세사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쌩뚱맞은 등장인물이 과연 무슨 목적으로 날 찾아왔을지 골똘히 생각하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않아 소녀에게 되물었다.
"너 지금 나한테 말건거냐?"
"예. 애초에 지금 이 공간의 반경 10m내에 아버지말고 다른 생명체는 없어요. 관제탑의 함선출입기록을 분석한 결과 7,776,000초 만에 비스트코인 우주정거장에 돌아오신걸로 나오는데 어머니를 먼저 만나뵙지 않는다는건 이상해요. 방금 각종 커뮤니티에 설문조사를 돌린 결과 아버지의 행동은 높은 확률로 불륜일 가능성이 93.7%라고 나오고 있어요. 혹시 불륜때문에 제가 태어난 이후에도 어머니를 찾아오지 않았던건가요?"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도 정도가 있지 누가 어머니고 누가 아버지라는거야?"
"어머니의 이름은 우르사티, 아버지의 이름은 옥사건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딸인 저는 아직 이름이 없죠. 지금까지 사랑 한점 받지 못하고 자라온건 둘째치고 이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정말, 정말로 아버지와의 만남을 고대해왔는데..."
"우르사티? 설마 너 우르사티가 메탈하트를 가지고 만든 슈퍼로이드냐? 아니 만약 그렇다면 그딴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안돼지. 슈퍼로이드한테 아빠, 엄마가 어딨어. 슈퍼로이드를 만든 로봇공학박사와 그 투자자가 있을뿐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투자자니까 넌 내 명령에 따를 의무가 있어. 그러니 지금 당장 날 우르사티에게 안내해. 그렇게 사정사정해서
메탈하트를 연구하게 해줬더니 그 결과물이 이런 사춘기 반항아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메탈하트부터 시작해서 네 몸을 구성하고 있는 노블 메탈들은 전부 내가 투자한 돈으로 만들어졌다는걸 잊지말라고."
"크흐윽! 아, 아버지가 미워욧!!!"
우르사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슈퍼로이드가 내가 생각하는 충실한 로봇부하의 이미지와는 사뭇 거리가 느껴지자 나는 묵직한 팩트폭격으로 응수했다. 안그래도 밴쉬 아쳐(Banshee Archer) 하희빈의 합류로 말잘듣는 언데드 부하의 비율보다 말안듣는 언데드 부하의 비율이 높아진 마당에 저런 깍쟁이를 크림슨 메이든에 들일 수 는 없는 노릇이였다.
그런데 무명의 슈퍼로이드는 나의 팩트폭격을 받자마자 진짜 사춘기 학생처럼 격하게 분노를 쏟아냈다. 위이이이잉! 그녀의 양팔에서 라라펠이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초진동 빔샤벨이 솟아나더니 나를 향해 무차별로 그 살인병기를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부웅, 부웅!
보통의 사춘기 반항아가 부모에게 틱틱거려봤자 방문을 좀 쌔게 닫는게 전부라면 슈퍼로이드는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초진동 빔샤벨로 아예 방문 자체를 오이마냥 채썰어버렸던 것이다. 아니 이놈의 슈퍼로이드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같은건 국을 끓여 드셨나 다짜고짜 공격질이야.
그나마 다행인건 자신을 나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슈퍼로이드가 말했듯이 때마침 주변에는 수인족들이 단 한명도 없어 애먼 칼질에 유혈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점이였다. 이대로 슈퍼로이드가 날뛰게 방치했다간 터무니없는 덤터기를 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나는 이매망량들을 총집결시켰다.
수어지교의 권능으로 팔륜성에 도착한 후 급히 끌어모은터라 십만은 커녕 만마리에도 못미치는 숫자였지만, 깡통로봇을 상대로 했을때 유령 하수인들의 효율이 좋다는건 이미 슈퍼로이드 퀼체뮤츠전에서 검증된 바. 나는 자신 있게 이매망량을 산개시켜 무명의 슈퍼로이드를 완전 포위했다.
"오냐, 네가 정 그렇게 날 아버지라 부르고 싶다면 허락해주지. 하지만 그 대신 나 또한 투자자가 아닌 아버지의 입장에서 성질 고약한 딸년의 버르장머리를 제대로 고쳐주마!!"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아버지가 알기나해요! 내가 태어난 곳은 어딘지, 나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태어난 이유는 뭔지. 하루에 수억번씩 연산해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니 아버지가 설명해보세요. 제 존재는 그 자체로 오류인건가요? 저는 본래 존재해서는 안되는 NULL값 같은거였나요?"
"개똥철학에 똥파리 꼬이는 소리는 작작하고 그냥 좆이나 까잡수세요. 격투기 하는 집안에서는 사춘기가 자동스킵이라는 얘기 혹시 들어봤냐? 인간이건 로봇이건 사춘기에는 매가 약이야!!"
이매망량(魑魅魍魎) 제 3형 백귀야행(Crew Of Elite Specter)
무명의 슈퍼로이드 곁에 흩어져 있던 1만기가 조금 안되는 이매망량들이 서로 뭉치기 시작하더니 10명의 천인대장이 그 흉흉한 도깨비 얼굴을 드러냈다. 이매망량 군단장 레레나 소소처럼 독자적인 행동이 가능한 수준의 지성체는 아니였지만 내가 공격명령을 내리자 어설프게나마 전방위에 걸쳐 협공을 시도하는 천인대장들.
세상에서 제일 성능이 좋은 레이더도 유령을 감지할 순 없는 노릇이기에 무명의 슈퍼로이드는 유효타를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평범한 캐쥬얼 복인줄 알았던 흰색 스웨터에 천인대장의 도깨비 방망이가 닿는 순간 반투명한 육각비늘이 번쩍이더니 모든 물리력을 튕겨내는게 아닌가?
다행히도 모든 천인대장들이 다시 유체화 상태로 돌아가 제풀에 데미지를 입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실로 아찔한 순간이였다. 근처에 공동묘지(우주에 진출하기 전만해도 약육강식의 원리대로 살아온 수인족에게는 매장문화가 없다)가 있는것도 아니고 이매망량을 충당할만한 수단이 지금으로선 전무했기 때문에 천인대장 하나하나를 신중히 다뤄야만 했다.
그런데 세상에 무한한 내구도를 지닌 에너지 쉴드란 존재치 않는다는 판단하에 내가 이매망량 천인대장들의 포지션을 가다듬고 재차 공격을 시도하려하자, 무명의 슈퍼로이드가 이번에는 캔버스 화에서 청염의 부스터를 내뿜더니 지붕을 뚫고 하늘위로 치솟아 올랐다.
이매망량을 레이더로 감지할 순 없지만 뭔가가 있다는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자신에게 유리한 싸움환경을 점하기 위해 날아오른 것이다. 그리고 공중에 부유한 상태에서 정체불명의 골프공으로 지상을 폭격하기 시작한 그녀. 아무리 일반 로봇과 달리 고등사고가 가능한 슈퍼로이드라지만 진짜 똑소리 나는 전법이였다.
'씨발 저거 리쿤다룬의 황린탄처럼 부식성 액체를 주변에 끼얹는건 아니겠지?'
"아버지 이게 바로 제가 지금까지 흘린 눈물의 개수입니다!"
-입실론(E) 사출 준비중(6/100)
-입실론(E) 사출 준비중(23/100)
-입실론(E) 사출 준비중(51/100)
-입실론(E) 사출 준비중(88/100)
-입실론(E) 사출 완료(10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