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1+1 할인 좀 해달라고. 내가 바로 아바타를 두개 이상 둬야만 하는 아주 특수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걸랑."00361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본래 원칙상 팔륜성의 대기권을 통과하는 모든 비행물체는 그 종류를 막론하고 반드시 해당분기의 우주감시를 담당하는 전함의 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사흉신교 세력이 청룡문의 태상문주이자 팔륜이존중 한명이였던 노태막과 내통한 사건이 터지면서 청룡문, 주작문, 백호문, 현무문, 용린검가, 귀갑권가, 기린도가, 봉황창가가 한팀씩 경계를 섰던걸 두팀씩 페어를 짜서 이중 경계를 서게 되면서 한층 더 감시가 엄중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법. 팔륜무가 전부가 경계를 서고 있다해도 프리패스가 가능한 전함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차세대 우주감시함인 황룡선이였다. 팔륜성의 우주안보를 위해 설계된 전함이 일일히 검문을 통과해야한다면 그만큼 비효율적인 일이 없었기 때문이였다.
물론 당초의 목적과 달리 황룡선이 웬 놈팽이의 전용애마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옥사건이란 이름 세자를 팔자 당 분기의 우주경계조인 봉황창가와 주작문의 함장중 그 누구도 딴지를 걸어오지는 않았다.
정말로 나를 팔륜성을 구한 대영웅 취급해준건지 백호문의 소문주 양해청이 술먹고 꼬장을 부리다 문파의 일년치 예산을 날려버린 일화를 어디서 주워들은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나는 무법자인 블랙A를 대동하고도 산보 나가듯 팔륜성을 빠져나가 그녀가 위성에 숨겨뒀다는 구축함 블랙 시커(Black Seeker)까지 회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쉽게 우주경비전함을 따돌릴 수 있을줄이야. 지금까지 비싼 돈주고 전이술사 브로커들을 이용했던게 배가 다 아플지경이야."
"어디까지나 팔륜성 한정인데 부럽긴 뭐가 부러워. 다른 행성에 이 쓸데없이 화려한대다 덩치까지 큰걸 끌고 무단으로 입성하면 바로 전쟁이라고."
"호오 그럼 이 쓸데없이 화려하고 덩치만 큰 함선 필요없으면 나 줄래?"
"지랄 이단옆차기하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아오! 내가 쓸 아바타니까 때리지도 못하고. 어서 로그아웃한 다음에 본체로 와서 영혼역학 위상전환기 조정이나 준비해."
"알았어. 근데 정말로 새 아바타가 아니라 이 중고 아바타를 쓸 생각이야? 나야 어차피 버릴 생각이였던 더미 아바타를 재활용할 수 있어서 이득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아바타 보다 아바타 클레이 함량이 낮아서 근밀도나 골밀도가 형편없을텐데? 툭치면 억하고 부러지는 일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고."
블랙A가 섬전비룡대에게 제압 당하는 과정에서 생긴 시퍼런 멍자국까지 보여주면서 나의 구매의사를 재확인해왔다. 파는 입장에서야 물건에 하자가 있든 없든 팔아치우면 그만이였지만, 내 성격에 아바타를 사용하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우주 끝까지 블랙해커 조직을 추척할 블랙컨슈머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그 부분을 확실히 해두고 싶은 모양이였다.
내가 이미 최강의 재생력을 지닌 아바타가 있음에도 새삼스레 또 아바타를 구입하려는 이유는 륭 사부와의 특훈때문이였음으로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얼티밋 언데드 폼의 재생력이 긴장감을 저하시켜 무예단련에 방해가 되는거라면 약골 아바타쪽이 더 유용하게 쓰일 수 도 있었다.
뭐 륭 사부의 꿀밤한대에 빈사 상태가 되 중환자실로 이송되야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불편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 뜻이 확고함을 인지한 블랙A가 본체로 로그인하는 과정에서 축 늘어지는걸 받아내는 사이 함장실로 낯익은 두 사람이 허겁지겁 뛰어들어왔다.
"야 옥사건 아바타 거래상이 황룡선에 승선했다는게 사실이야?"
"사건 오빠 갑자기 말도없이 팔륜성으로 궤도진입을 하는게 어딨어. 날 다시 사부한테 팔아넘기는줄 알았잖아."
"한놈씩만 말해 이것들아.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할말만 하고 자빠졌어. 사람 귀가 두개라고 해서 따로따로 수신이 가능할것 같냐!?"
"련이 언니 먼저 말해."
세상물정 하나 모르고 산골짜기에서 연세가 최소 아흔은 넘었을 노사부와 함께 성장한 금용희였지만, 장유유서의 개념 하나만큼 확실해서 그런지 궁기련을 친언니처럼 떠받들곤 했다. 무공경지로 따지자면 아이와 어른만큼의 차이가 있었지만, 실제 서열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나 또한 기계치인 금용희보다는 사흉신교에 소속된 시절동안 그래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어본 궁기련에게 선장대리를 맡겨두고 있는 실정이였다. 물론 말이 선장대리지 실권한은 전부 내가 갖고있는터라 궁기련이 무슨 항로를 설정해두었건 버튼 하나로 황룡선을 팔륜성으로 유턴시키는게 가능했지만 말이다.
"나 지금까지 모아둔 돈으로 명이랑 광이에게 아바타를 사주고 싶어. 그러니까 그 아바타 거래상하고 연결 좀 시켜줘. 아무리 명이랑 광이가 칼밥으로 먹고 산지가 오래됐다고 해도 단전이 파괴된채로 그 무법자 천지인 뫼비우스 스테이션에서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것 같지가않아. 내가 그곳에서 생활해본적이 있기 때문에 더 잘아. 머리를 잃은 뱀을 가만히 나둘만큼 그곳의 인간군상들은 녹록치가 않다고."
"하.하.하. 우리 련이가 아바타를 두개나 구입하고 싶었했구나. 그, 그러면 하나는 내가 사주지 뭐. 서방님이 되서 그 정도는 왜줘야 하지않겠냐."
사실 지금 내 심정같아선 궁기련에게 다음과 같이 쏘아주고 싶었으나,
'이 개같은년이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끝까지 그 놈의 도올명, 도철광 타령이냐? 지금 당장 뫼비우스 스테이션으로 쫓아가서 두놈의 단전뿐만 아니라 사지까지 끊어줄까? 칼밥이 아니라 구걸밥이나 해쳐먹게?'
손바닥의 지문이 닳아없어질 정도로 참을 인(忍)자를 새겨넣은 나는 가까스로 젠틀한 모습을 유지했다. 새하얀 도화지처럼 아직 순진무구한 금용희가 바로 곁에 있어서 그런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스와레 공주가 아바타 인수를 위해 황룡선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이였다.
이제 막 염수에서 건져올린 연두부만큼이나 약한 멘탈을 지닌 스와레 공주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겁박하는 내 모습을 목격할 경우 더 이상 나와의 성교행위를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행동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디파일러 킹과의 목숨을 건 결전까지 감수해가면서 조교에 성공한 인어공주를 어찌 쉽게 놓아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때마침 섹시한 가죽 슈트를 입은 여성체로 돌아온 블랙A가 우리들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다소 상기된 하이톤의 목소리로 감탄을 해왔다.
"아바타를 사주는 서방님이라니 그것참 로맨틱한걸? 별 쓸모도 없는 다이아반지 쪼까리를 사주는 것보다 훨씬 더 실리적이지. 그건그렇고 이렇게되면 1+1이 아니라 1+3이 되는건가? 솔직히 팔륜성처럼 경호체계가 엄격한 곳으로 출장가는걸 다른 요원들이 꺼려해서 내 차례가 온건데 이거 완전 땡잡았는걸."
"아바타라는게 뭔데? 나도 사줘, 사건 오빠! 나도!!"
"오호 아바타가 뭔지도 모르는 순진한 꼬마 아가씨가 여기 있었네? 아바타란건 말이지 또 다른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난감이란다. 너도 어서 사달라고 저 돈많은 오빠한테 쪼르는게 좋을걸? 이 언니가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거든."
"애한테 헛바람 불어넣지 말고 스와레 공주의 아바타 조정부터 빨리 준비해."
"후훗, 돈도 많으면서 까칠하게 굴기는. 뭐 구매자의 행성의 특산품을 대가로 받는 블랙해커의 관례를 생각하면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런 차원에서 잠시 확인 좀 하고 넘어가도 될까? 우리 옥사건씨가 100만 VP에 해당하는 상승무공서를 가지고 있는지 말이야. 우리가 무법자라고 해서 어디서 대충 불법 다운로드한 싸구려 무공에 만족할거라 생각하면 곤란해. 무법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끔찍하게 위하는 사람들뿐이라서 오직 정품 무공만 익힌다고."
"괜한걸 다 걱정하는군. 여기 지금은 멸문한 중소문파들의 무공 데이터베이스가 있으니까 블랙A 네가 알아서 100만 VP치만큼 복사해가."
내가 VOT 단말기를 조종해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모드를 활성화시켜 팔륜대장경의 데이타베이스를 출력시키자 블랙A가 눈이 벌게져서는 각종 리스트를 탐방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이러한 나의 행동은 팔륜성에서 연쇄살인 보다 더 중한 죄로 여겨지는 연쇄 무공 유출죄에 해당하는 것이였지만 나는 조금 아랑곳 하지 않았다.
행성의 생영력 즉 스텔라 비타를 흡수해 무공의 숙련도를 올릴 수 있는 내게 무공의 저작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개념이였고 설사 들킨다고 해도 언제든지 오리발을 내밀 준비가 되있는 나였다. 팔륜학관의 인급 교사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일진데 특정 무공이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를 누가 구분할 있단 말인가?
그렇게 내가 적반하장식 사고를 하고 있는 가운데 홀로그램 화면을 훑던 블랙A의 손끝과 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리더니 하이톤을 넘어서 찢어질듯한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