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서로 몸까지 섞은적도 있는데 못알아보다니 너무한거아니야? 뭐 이런 모습이니까 어쩔 수 없는거긴 하지만서도. 억양이나 말버릇으로 알아보... 기엔 또 그렇게 깊은 사이도 아니였으니 이번 일은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솔직히 말해서 생이빨로 모자라서 생손톱도 뽑혔으면 나 아바타 클레이로 자폭했을지도."00360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아바타 클레이라고 하는 단어가 떠오른 순간 나는 이매망량 1000기를 총동원해 도플갱어 세작 그러니까 블랙A를 중심으로 방벽을 세웠다. 아바타를 담금성의 상아탑에 입학시켜 빙결술법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이솔다 공주라면 모를까 일반인과 다름없는 전투력을 지닌 스와레 공주의 경우 아바타 클레이의 폭발에 휘말렸을때 살아남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블랙A는 일전에도 아바타 클레이의 폭발을 저지한 전력이 있는 유령 부대가 자신을 빼곡히 둘러싼 모습을 목격하곤 껄껄 웃으며 손사례를 치기 시작했다. 나와 점 하나 틀리지않고 똑같은 모습을 한 아바타가 저런 여승스런 행동을 하다니 전신에 닭살이 돋는 기분이로군.
"너무 그렇게 과민반응하진마. 말이 그렇다는거지 나도 지금까지 투자한게 아까워서라도 함부로 계약을 파토내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참고로 수왕성때와는 달리 팔륜성에 잠입하느라 쓴 비용 40만 VP는 우리 고객님께서 따로 부담해주셔야겠어. 레이더에 감지되지 않는 캡슐 낙하산이란게 생각보다 좀 비싸거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꼴이라지만 요새 팔륜성에서 한창 잘나가는 머메이드 아쿠아리움의 스타라면 그 정도는 지불할 수 있겠지?
아 물론 실제로는 VP가 아닌 팔륜성의 무공비급을 대가로 받겠지만서도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지? 블랙A 널 팔륜성으로 불러들인건 이솔다 공주가 아니였나?"
"응, 맞아. 우리 블랙해커 입장에서도 한번 거래를 텄던 고객과 일을 진행시키기가 편하니까 그녀가 아바타에 새겨진 AS 생체코드를 통해 재구매 의사를 밝혀왔을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달음에 달려왔지. 하지만 구매요청은 이솔다 공주님쪽이 보냈지만 실구매자는 스와레 공주님쪽이였다는 말씀. 애시당초 이미 아바타가 있는 이솔다 공주가 또 아바타를 구매한다는건 이상하잖아.
아바타를 두개 이상 두는건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선 돈낭비에 불과하다고."
쌍둥이 공주도 아닐지언대 블랙A가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일일히 짚어주며 설명을 겻들이자 이해가 잘되기는 개뿔! 본디 내가 머메이드 아쿠아리움을 찾은 이유가 바로 블랙A와 접선해서 아바타를 받아내는 것이긴 했지만(중간에 조금 다른길로 새긴했어도), 감히 우주에서 제일 잘생긴(?) 내 얼굴을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사용했으니 초상권 침해죄로 엄벌에 처하는게 먼저였다.
"그런데 캡슐 낙화산값은 스와레 공주가 지불한다치고 이 몸의 아바타를 사용한 대가는 어떻게 지불할 셈이지? 이 몸은 무조건 현물주의라서 말이야. 무공비급이나 싱싱한 해산물을 대가로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흥! 네녀석이 그딴식으로 나올줄 알았지. 확실히 내가 팔륜성을 구한 대영웅 나리의 아바타 생체코드를 해킹해서 무단으로 사용한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성가시게구는 문지기들을 뚫기위함이였을뿐 사사로운 이득을 취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네녀석이 부득불 대가를 취하려고 한다면 나로선 아바타 클레이로 자폭을 한 다음 이솔다 공주와의 거래를 영원히 끝는 수 밖에.
늘 말하지만 무법자의 삶은 항상 배수진을 치고 싸우는 것과 같으니 어줍잖은 협박질에 쪼그라들 내가 아니야."
평소처럼 꼬투리를 잡아 뭐라도 뜯어낼 작정이였던 나는 상대가 대놓고 배째라식으로 나오자 김이 빠지고 말았다. 어쩌면 백신마켓에서 아바타가 금지품목으로 설정된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족속들은 지금의 삶을 보너스 목숨이라고 생각한 순간 상상을 초월할정도의 막장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였다. VOT 온라인을 플레이할 당시의 나 또한 그런 마인드로 사기, 사냥터 독점 그리고 무한 PK(Player Kill)까지 꺼리낌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니 여기서 필요이상으로 블랙A를 압박해봐야 부질없는 짓이였다.
차라리 블랙A를 잘 구슬려서 싼값에 더미 아바타(나의 아바타와 생김새는 같으나 얼티밋 언데드 폼의 효능은 단 하나도 없는)를 구입하는쪽이 이득이겠지. 더군다나 구매자가 판매자를 고르는게 아니라 판매자가 구매자를 고르는 블랙해커 조직의 거래방식을 생각했을때 지금의 아바타 거래 기회를 놓칠순 없는 노릇이였다.
엔도미야가 부여한 Ex랭크의 의뢰모집 마감일까지 약 육십여일, 시간은 지금 이 순간도 시나브로 내 허리띠를 조여오고 있었다.
"스와레 공주님 실례지만 갑자기 아바타를 구입하시게된 연유를 알 수 있을까요? 스와레 공주님은 이솔다 공주님처럼 모험심이 투철한 타입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말이죠."
"저, 저도 이솔다처럼 담금성의 상아탑이란 곳에가서 정식으로 파, 파도 술식을 배우고 싶어서요."
"파도 술식이요?"
"동해용궁에 오래전부터 빙결술식이 전해져 내려오는것처럼 북해용궁에도 북해용궁만의 비전술식이 왕가에 전승되고 있어요. 스와레가 말하는 파도술식은 바로 그걸 뜻하는거죠. 나이 많은 인어족 어르신들께 언뜻 듣기론 북해지역에는 유달리 너울성 파도가 심해서 그걸 잠재우기 위해 파도술식이 발전했다는 설이 있는데 정확한건 아닙니다."
파도술식(波浪術式),
그 네글자가 귀로 들어온 순간 나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디파일러 킹 긴고와의 결전을 회상할 수 밖에 없었다. 얼티밋 언데드 폼 제 2형 괴력난신 모드를 카피(물론 그 대가로 긴고의 식사한끼가 되고 말았지만)해 나를 궁지로 몰고간 디파일러 아크비숍 스쿠하라가 사용한 또 다른 카피술법중 하나가 바로 파도술식이였기 때문이였다.
북해용왕으로부터 훔쳐 배웠을것으로 여겨지는 그 파도술식은 어떤면에선 빙결술식보다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고난이도의 술법이였다. 그말인즉슨 십자수나 뜨개질도 아니고 아녀자가 취미로 배울법한 종류의 학문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였다.
스와레 공주에게는 스와레 공주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전후사정을 알고나자 궁금증이 도진 나는 야구로 따지자면 몸쪽 꽉찬 직구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
"남녀노소 불구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칭찬받아 마땅한거라 생각합니다만, 굳이 비싼 아바타 구매비용이랑 상아탑의 등록금까지 지불해가며 파도술식을 배울 필요가 있는겁니까?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스와레 공주님의 아버지에게 파도술식을 배우면 되지 않느냐하는 얘깁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스와레 공주님의 성격을 고려하면 그 편이 나을 수 도 있을것 같습니다만."
"그 이유는 얘기하기가 조금..."
"괜찮아, 이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옥사건 준위니까 나 속시원히 털어놓고싶어. 저의 부친이자 한때는 북해용왕이였던 룰루흐 윈드서퍼는 제가 수중 아크로바틱 공연을 하는걸 결사 반대하고 계세요. 이해는 해요. 소중한 딸이 동물원의 원숭이마냥 구경거리가 되는걸 좋아할 부모는 없겠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나마 북해용궁의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파도술식도 북해용궁의 전통기예인
윈드서핑을 공연에 추가하고 싶어서 배우려는거고요."
"이것참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기구한 사연이로구만. 그런데 여기 하루벌어 하루사는 무법자의 사정도 조금은 생각해줬으면 좋겠는데. 팔륜성의 위성뒤에 숨겨둔 내 구축함 블랙 시커(Black Seeker)가 팔륜함대의 정기순찰에 발견되기 전에 최소한 거래를 할지, 말지 정도는 결정해주면 안될가?"
블랙A가 몹시 비위가 상한듯 한껏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로 거래를 재촉해왔다. 사실 나 또한 이런 부녀갈등에 관한 새드 스토리가 체질상 맞지 않았기에 겉으로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으으, 이야기가 조금만 더 길어졌으면 혓바늘이 돋았을지도.
어찌됐든 스와레 공주가 사정정취를 하는동안 블랙A에게 넘겨줘도 탈이없을만한 팔륜대장경의 무공비급의 물색을 끝낸 나는 아바타 구매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블랙A에게 서서히 접근했다. 그녀는 내가 혹시 또 고문을 가할줄 알고 움찔하더니 금새 의연한 모습을 되찾았다. 겉으론 강한척해도 생이빨이 뽑히는 경험이 꽤 강렬하긴 했던 모양이군.
"이봐 블랙A."
"여기서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너랑 나랑 헷갈릴 사람없으니까 그냥 용건만 간단히 말해. 그리고 누차말하지만 네 아바타 생체코드를 해킹한 일로 독박 쓸 생각은 요만큼도 없으니까 거래를 할지 말지나 결정하라고. 아무래도 저기 있는 두명의 공주님 보다는 네 발언권이 훨씬 더 큰 모양이니까."
"독박이 안된다면 쌍피는 어때?"
"갑자기 뭔 헛소리야? 알아듣게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