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356화 (356/599)

"용린환 부대주, 그런 진상 고객들까지 일일히 응대해줄 필요없다. 지금쯤이면 인어족들도 전부 의상을 갈아 입었을테니 철수준비나 해라."00356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역시 용린환은 타고난 새가슴인지라 아무리 미친년이라도 연배가 있어보이니 함부로 하지못했지만, 섬전비룡대의 대주를 맡고있는 용린군이란 소년은 용린환보다도 어린 즉 약관도 채 안되는 나이임에도 단호하게 일처리를 진행시켰다. 과연 용린은리 사저라는 거목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사라지자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이 파릇파릇 자라나는 모양새였다.

모르긴 몰라도 용린환과 용성군쪽의 실력을 비교했을때 무공의 성취 자체는 같다고 가정해도 실전에 들어가면 최소 세 수에서 최대 다섯 수까지 차이날 확률이 높았다. 나야 그런 경우가 없어 잘 모르겠지만 적을 베는데 있어 0.001%의 망설임만 있어도 생사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였다(륭 사부가 늘상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

그런데 용린군의 지시하에 섬전비룡대의 대원 두명이 꽃대신 비녀를 꽃은 미친년을 끌어내려고 하자, 새치녀가 이동거리가 길어질 수 록 허공답보보다도 상승보법으로 쳐주는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돌연 용린군의 뒷편에서 등장하는게 아닌가?

거기까지만 놓고보면 새치녀가 알고보니 실력을 숨긴 은거기인이였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곧이어 새치녀가 용린군을 뒤에서 껴안고 볼따구를 낼름낼름 햝기시작한 순간 단순한 변태기인으로 치부할 수 밖에 없었다.

"헤에 이제보니 네녀석 나이가 어린 쿨한 성격의 미소년이라니 이 몸의 취향을 아주 제대로 저격하고 있구만. 인어족 남자들은 됐으니 네가 나의 술시중을 들어주련?"

"이, 이 자식 죽인다!!"

챙!

출신성분을 막론하고 가차없이 칼을 뽑아드는 성격의 용린군이였기에 새치녀의 모욕적인 행동과 언사를 두고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뒤를 잡힌 상황에서 빼어난 허리 유연성으로 뒤돌려베기를 시전한 용린군. 허나 새치녀의 보라색 매니큐어 손톱에 검날이 가로막혀 아무런 힘도 쓰지못하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언옥타늄(Unobtanum)으로 이루어진 나의 블랙탈론도 아니고 어찌 저렇게 간단히 검기가 실린 검격을 막아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 자세히 살피니 보라색 매니큐어 손톱 위로 투명한 얼음결정이 뒤덮혀 일종의 코팅막 역활을 하고 있었다.

아니 씨발 근데 이쪽이 더 말이 안돼잖아. 얼음결정 따위로 검기를 가로 막다니 요새 네일아트샾에서는 저런 서비스도 해주나? 용린군은 양손으로 검을 쥐고 전력을 다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반면 새치녀는 손가락 하나로 여유있게 대치를 하고 있는 구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 그대로 둬선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섬전비룡대원들이 검집을 매만지며 참전의지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엔 이 싸움, 단순히 몇수의 실력차가 난다고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의 격차가 아니라 머리숫자로 밀어붙여봤자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게 분명했지만(하물며 용린군이 이 중에서 최고수임을 고려하면) 저치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였다.

그렇게 처음에는 더운 날씨에 살짝 맛이간 여자 관람객의 꼬장인줄 알았던 사건이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지려는 찰나, 용린군이 눈으로는 검끝을 쫓으면서 입으로는 섬전비룡대원들을 호되게 야단쳤다.

"누가 대주의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함부로 검을 뽑으려 하는것이냐!! 네놈들도 내가 나이가 어리다하여 무시하는 것이냐!!!"

"아, 아니 용린군 대주 그런것이 아니옵고..."

"닥치거라! 녹린검의 명예를 더럽힌 이 여자는 반드시 내 손으로 끝장낼테니 너희들은 지금부터 용린환 부대주의 지시를 받아 본래 일정대로 인어족들을 숙소까지 호위하도록."

"존명! 대주의 명을 받듭니다." x 30

"히히히. 린검(鱗劒)의 칭호를 받은 용린검수 출신들은 원래 이렇게 하나같이 승부욕이 넘치다 못해 흘려내려 자기 발밑을 적시는줄도 모르는건가? 뭐 너처럼 어리고 쿨한 미소년과 어울리는건 나쁘지않은 일이긴 하지만 아까 한 말 지킬 수 있겠어? 나보다 약한자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는건 바꿔말하면 나보다 강한자의 명령은 듣는다는거잖아. 나는 정도라는걸 몰라서 술시중같은 시시한 명령으로 끝나지않을텐데 말이야. 으흐흐."

"문답무용! 네녀석도 무사라면 시덥잖은 잡담은 그만두고 검으로 말해라!!"

"으흐음, 검같은건 성가셔서 안들고 다니는데... 뭐 이걸로 승부를 볼까. 으흐흐."

새치녀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당고머리를 간신히 고정하고 있던 비녀를 뽑더니 그 자리에서 얼음결정을 검처럼 형상화해 뚝딱 무기를 만들었다. 사실 검이라기 보다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짚고다닐때 쓰는 지팡이나 다름없는 모양새였지만, 이미 새치녀의 무위를 맛보기로나마 견식한 탓일까 용린군은 빈틈없는 기수식을 취하며 선제공격에 나섰다.

챙! 챙! 챙!

아까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뒤를 잡힌 것이 못내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냈는지 똑같이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새치녀의 뒤를 점한 용린군. 허나 새치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깔끔하게

비녀검으로 검격을 막아냈으니 비녀가 없어 이리저리 흩날리는 머리카락중 단 한올도 끊기는 일이 없었다.

서로 검격을 교환하는 횟수가 늘어날때마다 새치녀의 무위수준에 대한 평가가 시시각각 갱신되는 가운데, 이형환위의 수법이 연거푸 반복돼다 보니 어느샌가 둘의 싸움은 머메이드 아쿠아리움의 관객석을 한바퀴 빙 돌더니 완전히 외부영역으로 벗어나고 말았다.

잠시 점이 되어 사라지는 그 둘의 행방을 지켜보던 나는 저 싸움에 끼어들 명분도 실이득도 없다는걸 깨닫고 바로 인어족들의 대기실로 향했다. 용린군에게 꾸지람을 들은지 얼마되지 않은터라 한껏 긴장된 자세로 경비에 임하고 있는 섬전비룡대였지만 나는 무력을 동반하기 보다는 세치혀로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아내리기로 했다.

"아이고 이 더운날 고생들 하십니다. 내가 누군지 다들 아시죠?"

"다, 당신은 설마 옥사건 준위?"

"아니 이게 누구야 용린환군 아니야? 수왕성에 있을때도 공수부대 부중대장이더니 여기서도 섬전비룡대의 부대주 맞고 있는걸 보면 용린환군은 큰 인물이 되긴 글렀어... 가 아니라 아이코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와버렸네. 내 말 너무 신경쓰지는 마. 어딜가서도 2등이면 충분히 잘한거지 뭐."

"치, 칭찬인지 꾸중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새겨듣겠습니다. 그런데 옥사건 준위가 여기엔 갑자기 어쩐 일로?"

"이솔다 공주하고 긴밀하게 사업상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야. 여기 머메이드 아쿠아리움에 내 돈도 조금 들어간거 알려나 모를려나. 황룡선으로 무료 옥외광고도 한적 있고 말이야."

머메이드 아쿠라이룸이 사업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을무렵 이솔다 공주와 어린세랑의 수영경기를 빌미로 아주 제대로 쓰리썸을 즐긴적이 있던 나는 딱히 베갯머리 송사가 아니라 나 혼자서 흥이 넘쳐서 소폭 지원을 약속한 적이 있었다.

아바타 거래같은 비밀스런 이야기를 용린환에게 할 수 는 없었기에 그때의 일을 핑계로 대기로 한 것이다. 투자금액건이야 둘째치고 '축! 머메이드 아쿠아리움 오픈'이란 글귀가 대문작만하게 적힌 깃발과 각종 애드벌룬을 단채로 팔륜성을 일주한 황룡선을 보지못한 팔륜성 주민은 없을테니 딴지를 걸만한 여지는 없을터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인어족 대기실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나 성격은 소심한 주제에 쓸데없이 신중한 타입의 용린환은 그런 내 발길을 가로막고서 재차 확인을 해왔다.

"확실히 옥사건 준위가 이 머메이드 아쿠아리움 사업에 어느정도 투자지분을 가지고 있다는건 저도 어린세랑 행정관에게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옥사건 준위가 진짜 옥사건 준위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인피면구를 착용한 세작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용린군 대주로부터 섬전비룡대의 지휘권한을 위임받은 저로선 간단히 보내드릴 순 없을것 같습니다."

빠직!

순간 나는 평화롭게 대화로 풀어나가려 했던 계획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백호문의 섬전맹호대에게 그랬던것처럼 섬전비룡대 또한 이매망량으로 빈대떡을 만들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씨발 그렇게 인피면구가 의심스러우면 대기실앞에 X-ray 보안 검색대라도 설치하던가.

하지만 작금의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건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블랙해커들과 접촉해 제 3의 아바타를 받고 륭 사부의 특훈을 받는것이였기에, 나는 손바닥에 참을인자 세 개 아니 여섯 개를 새기고 침착하게 용린환의 입장을 이해하려 애썼다.

"정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여기 VOT 단말기에 어린세랑 행정관과의 VP 거래내역이 있으니까 와서 확인해봐."

"이건... 이솔다 공주님과의 송금내역도 있는걸보니 의심할 여자가 없는 진짜로군요. 검문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옥사건 준위."

"허나 용린환 부대주, 용린군 대주께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개미새끼 한마리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셨는데..."

"모든 책임은 제가 질테니 그냥 들여보내드립시다. 옥사건 준위는 이솔다 공주뿐만 아니라 심지어 스와레 공주하고도 인연이 있으신 분입니다. 크게 문제될 일은 없을것입니다."

'너희들이 날 막아선다면 되려 큰 문제가 생기겠지만 말이야.'

팔륜성을 구한 영웅이라는 타이틀 뒤에 가려진 나의 성격이 얼마나 개차반인지 모르지 않는 용린환은 언뜻 보면 평온해 보이지만 압력밥솥처럼 화를 꾹꾹 눌러담고 있는 나의 얼굴표정을 읽어냈는지 서둘러 나를 통과시켜버렸다.

지금 이 타이밍에 용린군이 돌아와(물론 용린군이 새치녀를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치는 않지만) 백학루의 치배인에게 그랬던것처럼 나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경우 내 의지와 상관없이 화가 폭발할지도 모르는 일이였기에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인어족 대기실은 비교적 구조가 단순했기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보였다. 심지어 일반 인어족과 스와레 공주의 대기실이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원큐에 목적지로 찾아들어갈 수 있었다.

"스와레 오늘도 정말 고생했어. 무대뒷편에서도 관객들의 호응소리가 장난 아니던데?"

"고생은 무슨... 내가 부족해서 동해용궁과 북해용궁을 모두 이끌고 있는 네가 훨씬 더 힘들텐데."

"물론 리더의 자리가 쉽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한때는 나와 같은 공주였던 널 무대에 내보낸다는게 목에 가시처럼 마음에 걸려."

"아냐아냐. 나는 이런식으로 라도 북해용궁의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 꺄아아아아악!"

"우쭈주. 우리 이쁜이 인어공주님들 마음씨가 어쩌면 이렇게 착한지 몰라. 가슴이 이렇게 넓어서 그런가?"

물컹물컹.

노크라도 하고 대기실에 들어가야하나 고민하던 나는 이솔다 공주와 스와레 공주가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자 이매망량의 물결을 타고 커튼위를 넘어 대기실로 잠입해 들어갔다. 이미 한번 배꼽을 맞춘 사이라지만 엿보기가 선사하는 아찔한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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