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350화 (350/599)

<--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뭐라는거야 저 말광량이 성검년이.'

내가 리쿤다룬에게 '도구가 주인을 선택하는게 아니야. 주인이 자기가 쓸 도구를 고를뿐이지.'라고 말한지 10분도 채 안되는 시점에서 위의 명제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존재가 등장하자 나는 뒷목을 부여잡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에고소드라도 그렇지 주인을 대놓고 악의 축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어디있단 말인가? 아니 애시당초 이중검(Double Sword) 아슈켈론은 나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광휘의 치천사, 세라푸스에게 정식으로 인정받은 성기사 에녹에게조차 자신이 아닌 아발란체를 고른 일로 삐져있는 년인데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마음같아선 당장 리쿤다룬을 불러 아슈켈론을 지옥의 유황온천에 하루쯤 푹 담가서 그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 아슈케론을 쓸 수 있게 된다고 해서 전력이 급상승(설사 내가 아닌 에녹이 아슈켈론을 사용한다고한들)하는것도 아니였고 더 시급한 조련대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랑페이의 망치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방금 전 화로속으로 들어갔을때는 온세상이 떠나갈듯 비명을 질렀던 년이 시뻘건 쇳물이 검신을 따라 줄줄 흘러내리는데도 일언반구 하나 없는걸 보면 엄살도 보통 엄살이 아니였다. 그런데 쇳물이 부어진 뒤 찬물이 부어지고, 망치질이 이어지고 또 쇳물이 부어지니 이건 뭐 땜질을 하는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검을 만들 기세였던지라 결국 조급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랑페이 한창 작업중에 방해해서 미안한데 여기에도 달궈진 모루안으로 들어가길 고대하고 있는 마검이 하나 있거든.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무기인지라 애정이 가는건 알겠지만 이쪽도 좀 살펴주지 않겠어?"

"저, 저기 아크리퍼 미안한데 그 마검 오늘 하루만 다른 모루에다가 맡기면 안될까? 이곳색향천월관의 주민들과 전부 안면을 튼건 아니지만 하나같이 어디가서 다 한가닥할법한 미인들이던데 말이야."

"갑자기 왜 그래, 랑페이? 먼저 유혹한건 너였잖아."

"아슈켈론의 상태가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더 심각해서 그래. 인간의 영혼에게 육체라는 그릇이 있듯 성령에게는 검이라는 그릇이 있어 현계에 존재할 수 있지. 그런데 지금 아슈켈론의 그릇이 되는 이중검은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검날이 상해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아슈켈론이 온전한 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것 자체가 세라푸스님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야. 아무런 축복도 받지못한 평범한 검이였다면 검날이 부러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버렸을걸?"

"그래서 수리하는데 얼마나 걸릴것 같은데?"

"글쎄... 지금 단계에선 섣불리 예측할 수 없을것 같아. 항상 아버지 슈피코만을 뛰어넘기 위해서 불철주야 망치질을 해왔지만 막상 아버지의 작품을 목전에 두니 내가 지금껏 어줍잖은 실력으로 여기저기 잘난체를 하고 다닌걸 뼈저리게 반성하게 되는군. 일단 오늘 안으론 당연히 불가능한거고 앞으로 열흘이 걸리지, 한달이 걸릴지 아니면 일년이 걸릴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계실거라 생각해."

"흐음. 그래? 그럼 일단 나는 천공의 아치를 들고 먼저 가보도록 하지."

랑페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한건 둘째치고 아까부터 새벽녘 암탉마냥 목소리를 높이던 아슈켈론이 단 한마디도 하지않는걸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나는 성궁(聖弓), 천공의 아치를 인벤토리(무게는 깃털처럼 가볍다해도 부피는 충분히 거슬릴만한 수준이였던지라)에 넣고 대장간을 빠져나갔다.

그냥 복도로 나왔을뿐인데도 시원한 공기가 얼굴을 식혀 대장간안이 얼마나 더웠는지를 방증하고 있었다. 랑페이와 으쌰으쌰를 하지 못한게 조금 아쉽긴하지만 그녀의 말마따라 이 색향천월관에는 웬만해선 어디가서 꿀리지않을 정도의 미녀들이 24시간 상시 대기중이였다. 이른바 옥사건님 전용 기쁨조랄까.

허나 지금부터 내가 찾아갈 여자는 미인은 커녕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횡방향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색향천월관에서도 비교적 외진곳에 존재하는 위험 외계 생명체 격리실에 도착한 나는 또 한명의 이매망량 군단장 레레의 경례를 대충 눈인사로 받고 '그녀'의 근황을 물었다.

"죽음의 주인님을 뵙습니다."

"밴쉬아쳐의 상태는 어때, 레레?"

"그게... 이전과 크게 다를바 없는 모습입니다. 제가 애써 말려보려 했습니다만 역으로 화를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지금은 반쯤 포기한 상황입니다. 어차피 육체란 껍질을 탈피한 그녀가 자력으로 자살할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가 않으니까요."

"그거야 뭐 그렇겠지. 혹시 누군가 그녀를 만나러 이 방에 찾아오지는 않았고?"

"제가 이 방을 24시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더군요. 물론 그렇다고해서 주인님의 명령을 소흘히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사실 다른 누군가로부터 밴쉬아쳐를 지킨다기 보다는 밴쉬아쳐가 다른 누군가에게 해꼬지를 할까봐 문앞을 지키게 한거다만 교체할때가 온것 같군. 소소 지금부터는 네가 이 문앞을 지켜라. 레레는 나를 따라 들어오고."

"죽음의 주인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레레가 부복까지 하며 내 명령을 복명복창하는것과 달리 소소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스르륵 문앞까지 이동해 대기했다. 레레는 그런 소소의 모습에 약간 위화감을 느끼는듯 했으나 구태여 그 행동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같은 이매망량 군단장이라고 해도 500개체가 하나로 뭉쳐서 만들어진 레레와 1000개체가 뭉쳐서 만들어진 소소에게는 분명 힘의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였다.

물론 내 영력이 강해질 수 록 그 격차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았지만 처음부터 큰 눈덩어리를 굴리기 시작한 쪽이 떠 빠르게 눈사람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건 어린애들조차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 나 또한 인위적인 서열정리로 그 둘간의 관계를 정립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바로 격리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이익!

그곳에는 마치 공포 영화의 한장면처럼 봉두난발을 한 웬 여인네가 밧줄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내가 전등을 키고 자세히 주변을 살피자 과연 밴쉬아쳐가 별의별 수단으로 자살을 하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역력했다. 벽에다가 이마를 박다가 크랙이 생겼다든가 접시물에 코를 박다가 접시가 깨져나갔다든가.

종국에는 밧줄에 목까지 매달은 모양이지만 밴쉬아쳐가 그런 시시콜콜한 자살방법으로 죽을리가 없었다. 나는 인기척을 분명 느꼈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전 아크엔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레레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레레는 밧줄을 창으로 냉큼 끊어버리더니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려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세웠다.

"아크엔젤 아니 이제는 밴쉬아쳐라는 이명에 익숙해져야할 하희빈양 언제까지 그렇게 폐인처럼 지낼 심산이지? 설마 에디슨도 아니고 1000번의 자살방법을 시도하다보면 언젠가 한번쯤은 성공할거라 생각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주, 죽여줘. 나를 제발 죽여줘... 그냥 죽여달라고!!!!!"

쒸이이이익!

고고한 달의 위상, 디아나 여신의 축복을 받아 유려한 은빛 머리카락을 자랑하던 하희빈. 허나 지금 그녀의 머리카락은 거무죽죽한걸로 모자라서 그녀의 분노와 반응해 뱀처럼 살아움직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내게 독니를 들이미는 수백, 수천마리의 머리카락 뱀들을 보고도 내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는 사이 레레가 창을 고속회전시켜 뱀떼을 일수에 낚아채 버렸다.

멀리서보면 마치 아줌마들이 파마를 하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였지만 가까이에서 이리저리 꿈틀거리는 뱀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희빈이 괴물에 반열에 들어섰음을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독배가 선사하는 지옥의 고통을 견뎌내면서 그녀의 내면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음이 분명했다.

생각해보면 독배에 몸을 담구고도 순수한 무투가로서의 정신과 형상을 잃지않은 륭 사부야말로 실로 대단한 위인이였다. 과연 엔도미야가 구십번대의 유물에 그녀를 봉인해둔건 문자 그대로 신의 한수라고 봐도 좋겠지.

"왜 죽고싶은건데? 머리카락이 그렇게 되버려서? 그래도 얼굴은 그럭저럭 봐줄만하잖아. 앞으로 머리 안감아도 되서 좋겠구만 뭐."

"섣부른 행동으로 디아나님의 위상에 먹칠을 했으니 더 이상 살아갈 의지도 명분도 없다. 빨리 나를 죽여라. 내게 네놈이 눈에 가시였듯이 너 또한 내가 눈에 가시지 않았더냐!?"

"헛소리도 아주 귀엽게 하는군. 눈에 가시? 너같은건 눈에 티끝만도 못한 존재였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날개를 떼고 비틀어 죽일 수 있는 잠자리와 동격이랄가? 어쨌든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건 내가 널 살리기 위해 아주아주 귀한 소모성 아티팩트를 써버렸다는거야. 네년 마음대로 죽게 내버려둘거 같아? 뭐 한 천년쯤 부려먹고 난 뒤에는 해방시켜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절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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