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10 Oxogan The Goddess of the Moon -->
아까는 경황이 없어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엘리멘탈 로드의 눈동자가 무지개색으로 번쩍이는데다가 목소리까지 어른스러워진 상태였다. 사실 내가 원한건 엘리멘탈 로드의 비상식적으로 높은 4대 자연속성(불, 물, 바람, 땅) 친화력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일뿐,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를 데려온건 아니였기에 나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이전에도 비슷한 부탁을 한 여신이 있었지. 디아나 그 빌어먹을 년이 아크엔젤을 잘 부탁한다고 해놓고 녀석이 자살해버리자 사태를 이지경까지 끌고왔다고. 아니 씨발 지가 지 목구멍에 화살을 겨눠서 뒤져버린걸 나보고 어떻게 살려내라는거야. 그런고로 댁의 부탁은 거절하겠어. 뭐 그렇다고 대놓고 엘리멘탈 로드를 죽음의 구렁텅이에 내몰겠다는건 아니지만 무슨 신생아 돌보듯 쫄쫄 쫓아다니면서 과잉보호하는 일은 절대 없을거야."
"그, 그정도면 충분하다... 콜록콜록. 그대도 부디 의회의 인간들을 조심하도록. 녀석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을 수집해 자신들의 컬렉션으로 만들려 하고 있어. 인간은 물론 심지어 신조차도. 그들에게 박제당하고 싶지않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만하네."
"어설픈 설교는 집어치워. 내 앞을 가로막는 녀석들이 있다면 얼티밋 판게아의 의회녀석들이건 대통령이건 이 손으로 찢어발겨서 내 자서전의 책갈피로 써주겠어. 물론 디아나 여신도 마찬가지야.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물러나지만 아스트랄계란 곳에서 본체와 만나게 된다면 자신이 소중히 여겨온 신도에게 죽음을 당하는 고통을 맛볼것이야."
"...디아나 여신을 너무 미워하진 말게. 그녀는 진실로 자신의 신도들을 사랑하기에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벌린것 뿐이니까. 자네의 말마따라 정말로 신앙 네크워크를 비지니스라고 생각한 신들이였다면 자신의 유일한 사도가 죽은 시점에서 뒤도 돌아보지않고 이 행성을 두고 떠났을걸세."
"차라리 그편이 낫지. 남의 행성에서 이게 무슨 민폐냐고 씨바아아아아아알!!! 색향천월관 제 2기 멤버로 점찍어둔 러시아 잡지모델 아나스타샤, 영국 인기밴드 보컬 엘리자베스, 중국 리듬체조 국가대표 스니엔 다 어쩔건데!!!"
"콜록콜록! 진정하고 목소리를 낮추시게. 이 몸으로는 떨어지는 낙옆에도 베일것 같군. 그대의 지인들은 물론 지구에 있는 생명체라면 지렁이 한마리조차 죽지않게 해줄테니 마지막으로 내 충고 하나만 기억해주게. 이 넓은 우주에서 그 누구도 믿지말것. 그대가 몸담고 있는 여신칼날단의 수장 엔도미야조차도 말이야. 만년전 있었던 얼티밋 판게아의 자폭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나도 많아. 아무리 반신타락자를 섬멸하기 위해서라지만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겠나?"
신의 권능: 세계수(Power Words: World Tree)
거기까지 말한 엘리멘탈 로드가 나를 살포시 밀어내더니 지구를 향해 섰다. 포토샵으로 원근법을 조정한듯한 지구의 모습은 지극히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론 지극히 공포스러운 것이였다. 행성이 내게 돌진(실은 달이 지구에 꼴아박으려하는 형국이였지만)해온다는건 아슈켈론과 아발란체로 무장한 움파카, 롬파카 오크 형제가 내게 돌진해 오는것보다 압박이 심한 일이였다.
항거할 수 없는 자연 아니 우주의 힘이란게 이런것일까? 허나 다음 내가 목격한 장면으로 말하자면 달의 궤도변화보다 한술 더 뜨는 것이였다. 여기서 육안으로 보일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고 있었다. 우리들이 흔히 우스갯소리로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보인다는 얘기를 하지만 실제로 그건 얼통당토 않은 이야기였다.
억리장성이 있다한들 우주밖에서 그게 보일리가 있을까. 점하나의 크기라고 한들 우주밖에서 육안으로 보일정도라면 그건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그런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나무는 서서히 크기를 늘려나가더니 종국에는 달까지 나뭇가지를 뻫칠정도로 성장하고 말았다.
말이 나뭇가지지 천년묵은 고목보다 몸통이 두터워 괴랄하기 그지없었다.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마법의 나무도 이정도는 아니였으리라.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모래시계 모양(두 신전이 위아래로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모양)의 달의 선전도 나무줄기가 뒤덮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과연 이게 신과 신의 대결인것인가...'
이건 딱히 뭐라 할말이 없었다. 내가 처음 디아나 여신과 충돌했을때 건물 한채정도는 우습게 날려버릴 수 있는 일권일각이 수도없이 난무했지만 지금 이 대결에 비하면 소꿉장난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무를 자라게해 달과 지구의 충돌을 막아낸다는 그 누구도 상상해본적 없을 기적으로 대재앙을 막아낸 엘리멘탈 로드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지고한 대지의 어머니, 테라라고 했던가? 언제 또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명은 둘째치고 이름 두자정도는 기억해두기로한 나는 엘리멘탈 로드를 부축해서 색향천월관으로 즉시 복귀했다.
외벽에 새겨진 각종 문양이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던 달의 신전도 나무줄기가 점령한 뒤로는 깜깜무소식이였기 때문에 디아나 여신을 추가로 견제할 필요는 없을것 같았다. 그렇게 색향천월관으로 돌아와 바이올라에게 엘리멘탈 로드를 다시 인도한 나는 14명의 여자들에게 멸망으로의 카운트다운이 멈췄음을 일방적으로 고지했다.
뜬금없이 지구가 멸망한다고 했다가 이제는 아니라고 하니 궁금한게 많은듯한 표정들이었으나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 있었기에 나는 일언반구없이 개인 공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는 거의 완성단계에 돌입해 세부적인 육체조정만 남은 트롤왕 리쿤다룬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으나 나는 기분이 좋지않아 설렁설렁 손을 흔드는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여어 아크리퍼 마침 잘왔네. 그대 행성의 현대무기를 응용한 신박한 신무기의 프로토타입이 마침 완성됐는데 잠깐 보고가겠는가? 으흠. 뭔가 바깥사정이 심상치않더니 일이 잘 안풀린 모양이로군. 나중에 얘기함세.'
리쿤다룬도 그런 내 언짢은 기색을 눈치챘는지 조용히 다시 자신의 연구에 매진했다.
"아크엔젤, 앱솔루트 모나크 이 두년놈들에게 어떤 벌을 내려야 또 다른 북두십성 유저 세놈들이 나에게 감히 깝치지 않을까?"
내 개인 공방에서도 비교적 철저한 보안을 자랑하는 언데드 실험실 U-3에 도착한 나는 일단 아이언 메이든에 보관된 두개의 시체를 꺼내놓고 진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달의 신전 사태에서는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의 개입으로 인해 욕을봐도 단단히 욕을 보고 말았다.
솔직히 아바타도 아니고 본체가 있는 지구에서 이런 고욕을 치루리라곤 꿈에서조차 생각치 못했었다. 태초의 마수 레비아탄조차 한방에 으깨버린 내가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 당장은 이 분노를 신들에게 풀 수 없었기에 나는 달의 신전 계획의 주동자 두명에게 염라 회장을 대신해서 재판과 형집행을 동시에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미하엘로프 소장 너는 그냥 씨발 일일히 죄를 언급할것도 없이 개좆같으니까 아이언 메이든 1000년형이야 임마. 내가 까먹으면 그보다 형이 늘어날 수 도 있고. 어디한번 피고인 입장에서 변론할게 있으면 변론해봐."
'다 내가 잘못했네. 부, 부디 자비를 베풀어 나에게 완전한 죽음을 선사해주게. 아이언 메이든이란 곳은 너무나 춥고 고독한 장소야. 차라리 지옥에 가는게 나을정도...'
"미하엘로프 소장 넌 너무 말이 많아! 시끄럽고 빨리 쳐들어가!!"
뻥!
나는 굳이 그럴필요가 없음에도 미하엘로프 소장의 머리에 싸커킥을 날려 아이언 메이든속으로 쳐넣었다. 이럴거면 굳이 불러낼 필요없이 계속해서 아이언 메이든에 쳐박아 두면 됐을 일이었으나 내 나름의 재판 형식을 갖추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다음으로 하희빈 너!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변론은 힘들겠지? 어쨌든 따지고 보면 니가 더 나쁜년이야!! 얼굴이랑 몸매만 예쁘지 성격은 개차반인 신을 모셔서 내가 개고생을 했잖아!! 너는 아이언 메이든 1000년형 가지고는 안돼겠어. 밴쉬 아쳐로 부활시켜서 언젠가 직접 네손으로 디아나 여신의 대갈통을 꿰뚫게 만들어주마. 그건 디아나 여신에게도 너에게 있어서도 크나큰 비극일테니 일타일피의 복수가 완성될 수 있겠지."
본래는 우버리퍼 더 블라인드의 소유였던 독배 세잔중 마지막 한잔. 이미 밴쉬 세이지 누시아, 밴쉬 그래플러 륭 사부에게 사용한 전력이 있었기에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영혼과 링크된 독배를 소환해 하희빈의 시체위에 부어버렸다.
마지막 독배인만큼 신중하게 상대의 역량과 성향을 검증해서 쓸 필요가 있었으나 지금의 나는 그런걸 따지고 있을만큼 머리가 냉정하지 못했다. 그래, 유다에게 배신당해 독이든 잔을 마셨던 예수처럼 디아나 네년도 독배로 타락한 아크엔젤의 화살을 맞고 절망을 울부짖는거다!!! 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