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341화 (341/599)

<-- vol.10 Oxogan The Goddess of the Moon -->

-도시형전함 색향천월관에서 함장님께 알립니다. 현재 주둔중인 위성의 궤도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능한 빠른 시간안에 탈출명령을 내릴 것을 권고합니다. 다시 한번 반복해서 알려드립니다. 달의 위성궤도가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나 이대로라면 03:12:33초가 경과한 이후 지구와 충돌하게 됩니다. 안전 프로토콜에 따라 충돌 예상 시간이 30분 남았을때까지 아무런 명령이 내려오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지근거리의 외계행성으로 이주를 강행합니다.

"이런 씨부랄!"

띠리링!

디아나 여신이 불같이 화를 내고난 뒤에도 한동안 적만만이 가득했던 설원. 나는 뒤늦게 도시형전함 색향천월관의 긴급메시지를 받고나서야 디아나 여신의 분노가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대재앙을 불러일으켰다는걸 깨달았다. 이제는 비단 러시아가 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의 운명이 도마위에 오르고 만 것이다.

신경질적으로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의 홀로그램 화면을 꺼버린 나는 하희빈의 시체와 미하엘로프 소장의 대가리를 아이언 메이든에 쳐넣은 다음 그림자 주머니(Shadow Pocket)를 오픈했다. 이제는 멋모르고 듀리스의 엉덩이를 더듬다가 싸대기를 쳐맞든, 피를 빨리든 그런게 문제가 아니였다.

지구 멸망까지의 카운트다운이 이제 3시간 조금 넘게 남은 상황에서 체면같은걸 따질세가 어디 있겠는가. 달의 크기의 10분의 1밖에 되지않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도 인류의 존폐가 바람앞의 촛불처럼 흔들릴텐데 달이 직접 지구와 접촉사고를 낸다면? 계산기를 두드려볼 필요도 없이 보험처리 합의금으로 60억 인구를 전부 희생시켜야할 가능성이 99.9%였다.

말캉말캉.

뭔가 저번에 만졌던 엉덩이보다 더 부드러운 느낌의 살덩이가 느껴지는 가운데, 나는 월영공(月影公) 듀리스가 곤히 자고 있을 가능성까지 고려해서 있는힘껏 살덩이를 주물렀다. 그러자 보이지않는 가녀린 손길이 내 손목을 부여잡고 나를 그림자 주머니안쪽으로 끌어당기는게 아닌가?

우당탕탕!

가녀린 손에서 나왔다고는 생각되지않는 억센 완력탓에 나는 엔티크한 분위기의 티룸 까펫위로 나뒹굴게됐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밀가루 반죽마냥 주물렀던게 듀리스의 젖가슴이란걸 알게된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궁색한 변명을 털어놓았다.

"아이구야 급한 사정이 있어서 볼을 꼬집어 깨우려고 했는데 가슴인줄은 미처 몰랐네. 어이쿠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김집사, 불멸자랑 싸우다가 머리라도 다쳤어? 내가 젖살도 안빠진 코흘리개도 아니고 이거랑 볼을 착각한다는게 말이나돼? 이럴줄 알았으면 쉐도우 포켓을 열어주지않는거였는데. 내가 얼마나 꿀잠을 자고 있었는지 알기는해? 어머어머 자다 깨서 피부 칙칙해진것 좀 봐. 한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얄짤없이 바로 쉐도우 포켓 닫아버릴테니까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 미리 대체할 다른 이공간 아티팩트나 알아봐."

출렁출렁.

듀리스가 반투명한 실크슬립위로 유려한 곡선을 드러낸 풍만한 젖가슴을 과시하며 내게 따져물었다. 나는 그 보기좋은 광경에 잠시 넋을 잃고 보일락말락하는 유두의 흔적을 쫓다가 내가 왜 듀리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급히 이곳에 당도했는지를 떠올리곤 허겁지겁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지금 그런게 문제가 아니야. 나랑 싸우던 불멸자가 지금 미친척하고 달과 지구를 충돌시키려 하고 있다고. 듀리스, 네 심상세계 능력으로 어떻게 커버가 안되겠어?"

"김집사 지금 뭐라고 했어? 지구랑 달이 충돌하려고 하고 있다고!?"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달쪽에서 일방적으로 지구쪽에 접근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느쪽이든 스치기만해도 인류는 멸망이야. 지구 역사상 가장 난폭한 어깨빵이 시작되기까지 이제 3시간도 채 안남았어."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VOT 단말기에 저장된 도시형전함 색향천월관의 메시지까지 들먹이자 듀리스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속옷차림으로 창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지구멸망의 D-day라기엔 너무나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조금도 게의치않는 모습이였다.

원래 오리지널 뱀파이어들은 달이 뜨면 버프를 받을뿐 해가 뜬다고 해서 디버프를 받지는 않았다. 재봉사 시스트린이야 1세대가 아닌 2세대 흡혈귀였기 때문에 사정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영상매체에서 흔히 나오는것처럼 햇살이 닿자마자 재가 되어 사라질 일은 없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듀리스가 저 말도 안돼는 재앙덩어리를 막아설 힘이 있는가, 없는가였다. 툭까놓고 말해서 그 잘난 오리지널 뱀파이어라고 해도 행성끼리의 충돌을 막아낼 힘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월영공이라고 하는 이명에 걸맞는 달의 권능을 지니고 있는 그녀였기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였다.

그러나 잠시 뒤 고개를 절레저레 저으며 뒤로 물러난 듀리스의 발언은 꽤 비관적인 것이였다.

"무리무리. 김집사, 미안하지만 저건 오리지널 뱀파이어 선조님들이라면 모를까 나같은 꼬꼬마가 어떻게 해볼 문제가 아니야. 달 전체에 신격결계까지 형성되어 있어서 김집사의 애마 황금장수풍뎅이의 퉁퉁포로도 어찌하지 못할걸? 그건그렇고 김집사랑 충돌을 일으켰다는 불멸자 꽤 고위신격이였던 모양이네. 신의 권능: 유성을 별똥별 찌끄레기도 아니고 달에 적용시켜버리다니."

"뭐, 뭐라고 신의 권능: 유성? 그게 도대체 뭔데 월영공이 달의 지배권을 포기해야할 정도냐고!!"

"말그대로 신의 권능이지. 세상의 법칙에 반하는 가짜세상 즉 심상세계를 만들어내는 나와 달리 불멸자들은 진짜세상의 법칙을 직접적으로 주무를 수 있는 힘이 있거든. 어느쪽이 우위에 있는지 내가 입아프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뭐 그래도 달이 지구로 접근하는 시간을 늦추는 정도는 가능할테니 그 사이 이민 준비라도 해두는게 어때?"

"지구가 멸망하게 생겼는데 이민을 가긴 어디로 이민을 가라는거야!?"

"그거야 이 우주 어딘가의 지성체가 존재하는 또 다른 별이지. 설마 김집사 지금 지구가 모행성이라고 해서 떠나고 싶지않다던가 뭐 그런거야? 그런 애착이 강한 성격인줄은 몰랐는데. 하루에도 대여섯번씩 여자를 갈아치우면서 주둔 행성은 못바꾸겠다는거야? 뭐 하긴 나도 고향별 적혈성이 멸망할때는 아스트랄계로 도망치자던 할머니말도 무시하고 객기를 부리다 지금 이 꼴이 나고 말았지."

조로로로로륵.

듀리스가 애상에 젖은 표정으로 주전자에 담긴 홍차를 찻잔에 옮겨담더니 주절주절 과거 이야기를 거론했다. 항상 당차고 우아했던 그녀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였기에 나는 궁금한걸 캐묻기 보다는 묵묵히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그러니까 김집사는 나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말고 새 둥지를 찾아떠나. 우주는 넓고 여자는 많아. 김집사가 좋아하는 계집질, 다른 별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아니 뭐 그건그렇긴 한데..."

나는 말끝을 흐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사실 지금 이 순간 나도 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범우주적인 위기에 없던 정의감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는건 아니였다. 0이란 숫자에 그 어떤 숫자를 곱해도 0이 되듯 정의란 개념자체가 없는 내가 빌런에서 히어로로 전향하는건 절대 무리였다.

문제는 빌런이라고 해도 자신의 행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멸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이였다. 인류가 단 한명도 남지않은 상황에서 연쇄살인마나 쏘시오패스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누구를 납치 하고, 누구에게 협박 메시지를 전하고, 누구의 재산을 강탈하느냔 말이다.

악당이란 직업은 의외로 선량한 시민들이 있어야만 빛을 보는(?) 부류였다. 풀 한포기 남지않은 죽음의 별에서는 선과 악의 개념도 모호해진채 오로지 무(無)만이 존재할 뿐. 허나 그렇다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나서자니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막대한 손해를 입을게 분명했다.

그냥 여기선 여신칼날단의 연봉삭감을 감수하고 듀리스의 말마따라 다른 별을 찾아보는게...

"아, 맞다!"

"뭐, 뭐야 듀리스. 뭔가 이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수라도 생각해낸거야?"

"이 홍차 김집사가 출전할때 끊인건데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네. 차가 식기전에 불멸자랑 담판을 짓고 오겠다는 약속 진짜였구나. 그냥 해본말인줄 알았더니."

"에라이씨! 지금 이 상황에서 홍차가 식득, 말든 뭔상관이야. 당장 짐이나 챙겨. 색향천월관쪽으로 대피하게."

"후후. 잘 생각했어, 김집사. 지금이야 지구가 고아원에 버려둔 자식마냥 마음에 밟히겠지만 나중엔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못할걸."

"시덥잖은 소리는 그만하고 헌혈팩이나 잘 챙겨. 지구가 멸망하면 네가 좋아한다는 B형 혈액도 쉽게 구하기 어려워질테니까."

"예이, 예이. 정말이지 누가 주인이고 집산지 모르겠다니까."

"그건 내가 할말이야, 이 못말리는 흡혈귀년아!"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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