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10 Oxogan The Goddess of the Moon -->
"언데드로 만들어둔 예비육체... 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또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괴이하군. 강령술사가 라이프 베슬을 따로 두는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격의 차이를 느꼈다면 러시아가 멸망할때까지 조용히 숨어있는 편이 좋았을거라 본다만."
"격의 차이라 확실히 느꼈지. 한 이 정도였던가?"
나는 엄지와 검지로 좁쌀을 쥔듯한 제스쳐를 취해 보이는척 하면서 재빨리 주변 환경을 살폈다. 사실상 내가 의도한 것이긴 하지만 완전히 전신이 용조송에 휩싸인 육체는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은것처럼 보였다. 기야스에 탑승해 보호색 모드를 해제하고 예비전력까지 끌어와 최고속도로 날라온 고생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였다.
용조송이 마치 블랙탈론의 재질인 언옥타늄(Un Obtable Num)처럼 무한의 내구도를 지니고 있다는건 륭사부가 미리 언질을 해준적도 있었고 직접 실험도 같이 해본적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두눈으로 본체의 안위를 확인하니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내심 신이라면 어떤 기적같은 개수작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잔존해 있었던 것. 뭐 디아나 여신은 비단 러시아를 멸망시켜달라는 미하엘로프 소장의 소원뿐만 아니라 여신과 하룻밤 동침을 하고 싶다는 나의 소원 또한 이루어줘야하는 입장이였기 때문에 용조송을 뚫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고해서 함부로 나를 죽일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자신감 하나는 하늘을 찌르는군. 과연 신격결계를 잠깐이나마 무력화시킬정도의 무력이라면 인간들 사이에서는 적수가 없었겠지. 하지만 고대 제왕들 중에서도 투신에 속하는 나에겐 귀여운 재롱에 불과하다는걸 지금부터 보여주마."
'필멸자여 저자가 내가 기억하는 고고한 달의 위상, 디아나가 맞다면 그녀의 말은 절대 허세가 아닐세. 어쩌다가 저런 고위신격과 충돌하게 된건가? 염라와는 달리 그녀와 나는 아무런 접점도 없이 그저 풍문으로만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이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가 없다네.'
'사연을 말하자면 길지만 무조건 디아나 여신쪽이 잘못한거에요. 아무튼 그래요. 혹시 디아나 여신처럼 당신이 내 몸에 깃들어서 대신 싸워줄순 없어요? 아 절대 내가 싸우기가 겁나서 그러는게 아니라 오시리스 당신 오랫동안 사자의관에 봉인되어 있었으니 좀이 많이
쑤셨을거 아니에요? 그러니 제대로 몸을 풀 기회를 주겠다 이거죠.'
'필멸자여 미안하지만 나는 디아나 여신같은 투신이 아니라 죽음을 관장하던 제신이였기에 일대일 싸움에서 그녀를 어찌하진 못할걸세. 설사 저 육체가 디아나 여신의 본체가 아닌 사도의 것이라 해도 타고난 전투술의 유무는 현격한 차이를...'
'그럼 당신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게 정령견신말고 또 뭐가 있는데요! 지구에는 마력입자가 없어서 함부로 음에너지를 꼴아박을 수 도 없단 말입니다!!'
'나는 태초의 사자를 윤허한 자, 오시리스. 죽음이란 개념을 가장 최초로 고안한 제신으로서 신들중에서는 유일하게 죽은자들에게도 축복을 내릴 수 있다네. 생소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쉽게 말하자면 아크리퍼 그대가 만든 언데드에게 신의 가호를 내릴 수 있다는 말일세. 혹시 가장 최근에 만든 언데드의 이름을 말해줄...'
"감히 여신에게 먼저 싸움을 건 주제에 한눈까지 팔다니 자신감뿐만 아니라 무례함도 하늘을 찌르는구나, 아크리퍼여! 지금까지는 달의 신전을 건설한 일등공신이라 손속에 사정을 뒀지만 지금부터는 진심을 다해 그 오만함의 결집체를 쳐부셔주리라!! 이것이 바로 너의 무례함을 벌할 성창 악타이온이다!!!"
찌릿!
전신을 송곳으로 찌르는듯한 살기에 나는 황급히 용조송에 속박된 내 본체를 챙겨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디아나 여신이 성창(聖槍), 악타이온이라 지칭한 무기는 다름 아닌 나의 본체가 그녀에게 가한 마지막 일격때문에 아치형에서 일자형이 된 성궁(聖弓), 천공의 아치였다.
아니 농담하는것도 아니고 구부러진 활을 핀다고 해서 창이 된다는게 말이돼?라고 생각한 순간 악타이온의 창끝에서 뿜어져나온 번개가 수십줄기로 갈라지며 나를 덮쳐왔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겅 보고 놀란다고 무심코 시리우스, 프리우스 듀오의 하이퍼키네시스(超越能力) ~벼락소나기의 계절~을 떠올린 나는 아이언 메이든에서 고래의 견갑골 플러스 잡다한 뼈다귀를 소환해 임시 진지를 구축했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아주 옳은것이였다. 왜냐하면 성창 악타이온에서 뿜어져나온 번갯불 줄기는 솥뚜껑이 아니라 악어거북이였기 때문이였다. 순식간에 뼈다귀들이 뼛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장면을 목격한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간 유니온키네시스를 시험해보기도 전에 삼도천을 건널것 같아 사고분할(思考分轄)을 통해 바로 이중 로그인을 시도했다.
한때는 싸이클롭스 여덟마리까지 동시에 조종한 경력이 있다지만 오랜만에서 써보는 싸이킥 능력인지라 시간이 지체되는 가운데 디아나 여신이 이번에는 악타이온 자체를 직접 내게 던져왔다. 활솜씨뿐만 아니라 투창 솜씨도 올림픽 금메달 선수 아구창을 날리는 수준이라 눈깜짝할 사이에 악타이온이 내 심장을 꿰뚫었다.
콰직!
유니온키네시스(精神體化) ~데모고르곤의 너와 나~
내가 처음 칠십번대 술법 리치폼을 기반으로 얼티밋 언데드 폼을 고안할때 더미 심장을 만들어둔건 정말이지 신의 한수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사흉신교의 도올명을 필두로 수많은 적이 나의 심장을 노려왔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 나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던가?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더미심장이 터지면서 녹색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시야를 가리는 사이 나는 이중 로그인에 성공해 유니온키네시스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두개의 육체를 제어한다는게 솔직히 말해 쉬운 일은 아니였지만 다행히도 본체쪽이 거의 식물인간 상태였던게 호재로 작용했다.
커피와 우유가 절묘한 배합으로 섞여 까페라떼가 될때의 기분이란게 이런것일까? 나는 첫섹스보다 강렬한 감각이 오만 세포를 덮쳐오는걸 인내하며 갓 돌이 지난 아기처럼 걸음마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기대했던것 과는 달리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끓어오르는듯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오장육부가 끓어오르는듯한 느낌이였다.
헤비메탈슬라임의 세포를 자신의 몸에 이식한 엄마도 이와 유사한 체험을 했던것일까? 나는 헛구역질이 올아오려는걸 억지로 참으면서 심장에 박힌 성창 악타이온을 뽑아냈다. 마치 포두주의 코르크 마개를 뽑은듯 주르륵 흘러나오는 보라색 피가 발밑을 적신다. 호오 이건 듀리스가 좋아할만한 피색깔인데?
"무슨 짓을 한것이냐, 아크리퍼? 악타이온에 심장이 관통당해도 살아남은건 둘째치고 그 모습은..."
"내 모습이 뭐 어때서? 가까이서 보니까 너무 잘생겨서 반하겠나?"
"미적 기준은 개인마다 다른거라지만 그 모습은 단순히 잘생기고 못생기고의 문제가 아닌듯 한데..."
나는 전투도중 갑자기 난색을 표하는 디아나 여신의 반응을 보고 나 또한 궁금증이 생겨 근처의 웅덩이로 향했다. 본래는 눈으로 덮힌 황야였으나 성창 악타이온이 내뿜은 번갯불 줄기의 열기때문에 녹아내려 생긴듯 했다.
만년설이 녹아내려 만들어져 티 한점 없이 맑은 웅덩이 속에 비친 내 모습. 그것은 확실히 불멸자조차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기괴한 것이였다. 일단 이마에 파충류의 그것처럼 동공이 길게 쭉째진 제 3의 눈동자가 자리하고 있었고 오른쪽 가슴에는 거무튀튀한 제 2의 심장이 바깥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손에는 살가죽이 하나도 없고 블랙탈론과 연결된 손가락 뼈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마왕(魔王) 콘테스트를 연다면 일등을 할법한 외모에 나는 실소를 연발하며 콧잔등을 긁적였다. 뭐 겉으로 보이는 생김새가 무슨 대수겠는가. 중요한건 이 뼈다귀같은 손으로 디아나 여신을 때려눕히는게 가능하냐는 것이였다.
'저, 저 모습은 베, 벨제붑님? 그, 그리고 저 가운데 있는 눈은 나잖아!!'
'흐음. 과연 저 모습은 과거 유일하게 나의 좌심실, 우심방을 한계까지 사용해줬던 벨제붑의 외모와 흡사하군. 아크리퍼 제군. 그럼 어디 한번 그대에게 기대를 걸어보도록 하겠네. 나의 주인에 걸맞는 극한의 육체능력을 선보여 나를 쉴새없이 두근거리게 만들어주면 고맙겠군. 전의 무쇠턱오크 형제도 제법 에너지틱하긴 했지만 나를 만족시키기엔 2% 부족했다고나 할까.'
"이 새끼들이 지금 어디서 전주인이랑 나를 비교질하고 지랄이야! 나는 이 우주의 유일무이한 죽음의 아버지이자, 왕이자, 주인인 아크리퍼님이시다. 누구랑 닮았다는 소리는 집어치워!!!" 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