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10 Oxogan The Goddess of the Moon -->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표정중에서 가장 교활한 표정을 지어보인 다음 미하엘로프 소장 아니 좀비를 짐짝처럼 들쳐엎고 예배당을 벗어나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가 대기중인 색향천월관의 격납고로 향했다.
본체는 아바타와 달리 마룡(魔龍) 쉐도우 스틸의 시체, 영혼, 뼈다구가 있어도 아크네메시스 모드로 변신하는게 불가능(마력기관의 성질과 출력이 서로 상이함)했기 때문에, 디아나 여신처럼 맨몸으로 달에서 지구까지 날아가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기야스에 탑승한 나는 미하엘로프 좀비의 부식이 시작되자 아케인 슈트를 더럽히기 싫어 비비앙에게 부탁해 의무실의 붕대를 가져오게 했다. 그 붕대로 미하엘로프 소장의 임시 개목줄을 만든 나는 지구에 도착할때까지 녀석을 질질 끌고 다닌채로 뻉뻉이를 쳤다.
이미 뒤져서 좀비가 된 놈이라 고통을 느끼진 못하겠지만 나름의 소소한 복수였다. 러시아의 멸망을 막아 놈의 계획을 무산시키는건 둘째치고 이렇게라도 하지않으면 지금까지 별 같잖은 이유로 뺑뺑이를 치면서 차오른 분노게이지를 누그러트릴 수 없을것 같았다.
'으으으으. 그, 그만...'
-함장님 지금 막 지구의 대기권을 돌파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를 설정해주시길 바랍니다.
미하엘로프 소장의 형태가 도저히 원래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정도로 넝마가 되었을때쯤 기야스가 지구에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나는 러시아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바로 기야스밖으로 뛰쳐나가기 위해 격납고의 셔터를 미리 올려버렸다.
칼날 바람이 아케인 슈트를 스쳐지나가는 가운데 저 멀리 보이는 시베리아 대륙위에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기야스의 어마무시한 비행속도 덕분에 눈깜짝할 사이에 먹구름의 진상을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베리아 대륙에 죽음의 소나기가 몰아치는 중이였다. 대기오염물질이 수증기와 만나 황산과 질산으로 변하면서 생기는 산성비를 뜻하는게 아니였다. 물론 산성비 또한 대리석 동상을 녹이고 머리카락을 빠지게 만들긴 했지만, 이 죽음의 소나기는 아예 대리석 동상과 두개골을 꿰뚫어버릴 수 도 있는 일종의 화살이였다.
즉 이 소나기는 산성비가 아닌 화살비였고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무기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타겟이 늘어날때마다 그 타겟수에 맞춰 무한의 화살을 동시다발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성궁(聖弓), 천공의 아치. 십만 이매망량이 있으면 십만발의 화살도 일제히 발사할 수 있는 이 사기적인 무기가 러시아 대륙을 덮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 기세라면 러시아 연방군이 총집합해 화이트 팬텀 슈트를 입고 전면전을 펼친다고 해도 승산이 없었다. 붉은 불개미가 수천, 수만마리가 모이면 어찌어찌 사자를 잡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태양앞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듯이, 초월적인 힘앞에선 국방력이 1위건, 2위건 모든게 무용지물이였다.
'역시 신은 신이라는건가. VOT 온라인속에서 풀템을 착용하고 풀도핑까지한 하희빈보다 화력이 쌘것 같은데.'
'바, 방금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하게 디아나 여신을 막겠다고한 사람치곤 너무 오래 멍을 때리고 있는것 같은데? 이러다간 러시아는 커녕 색향천월관도 지키지 못하는것 아닌가? 그녀는 누가뭐라해도 달의 여신이니 달을 자신의 영역 아래 두려할지도 모르지. 크로스데일 한국지부에서 빼돌린 다이나마이트를 기폭시킬 작정이였으면 진즉에... 우아어어어!'
"죽어서도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버릇은 못고치는구나. 언령술사중에서는 다 이렇게 약해빠진 주제에 새치혀를 놀리지 못해서 안달난 놈들밖에 없는건가? 앙!?"
빠악!
데구르르르르르.
나는 앱솔루트 모나크가 살살 내 신경을 건드려오는통에 화를 참지못하고 녀석의 대갈통을 사커킥으로 날려버렸다. 듀라한도 아니고 시체의 몸과 머리과 분리되 차가운 눈밭위를 굴러다니는 모습은 호러영화의 한장면 보다 소름끼치는 것이였지만, 트윈헤드듀라한을 제작중인 강령술사의 입장에서는 그저 동네꼬마들이 골목에서 공놀이를 하는것과 크게 다르지않은 풍경이였다.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디아나 여신을 요리하는지 VIP석에서 보여줄테니까 따라오기나해, 임마!"
'어지러우니 이제 그만... 아으어어억!'
나는 몸과 머리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풀린 붕대 개목줄을 이번엔 미하엘로프 소장의 머리에 감싼뒤 마치 수박처럼 들고 먹구름의 진원지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녀석의 말마따라 조금만 시간을 지체해도 러시아가 반토막이날 가능성이 다분했기에 조금은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표홀신법과 아케인 슈트의 부스터모듈을 동시에 전개해 이동하길 십여분. 마침내 먹구름이 마치 토네이도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언덕에 도착한 나는 디아나 여신이 무척이나 성의없는 동작으로 화살을 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나 성의가 없게 느껴졌나면 차라리 동네꼬마들이 고무줄 새총으로 참새를 잡을때가 더 집중력있게 보일 정도였다. 내가 근처에 왔다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천공의 아치의 은빛시위를 거문고 튕기듯 깔짝거리길 반복하던 그녀는 숨결이 닿을정도로 가까운 거리가 되서야 무심한 목소리로 대꾸를 해왔다.
"그대의 소원이 뒤로 미뤄진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아크리퍼. 허나 율법의 서와 언령의 힘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면서 나로 하여금 앱솔루트 모나크의 소원을 먼저 들어줄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다네."
"앱솔루트 모나크는 죽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죽지도, 살지도 못한 몸이 되어 버렸다고 해야하나?"
"꽤나 악취미로군."
디아나 여신이 내 손아귀의 붕대와 연결된 모종의 사람머리를 확인하고 짦막하게 평가를 내렸다. 불멸자인 신에게 섹스란 개념이 무의미하듯 죽음이란 개념도 그닥 대수롭지않은 문제인듯 했다. 진짜 저승문을 인간들의 비상구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러시아 토벌을 끝내면 그자에게 신벌을 내린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먼저 선수를 쳐서 이걸 어쩌죠. 사실은 저도 이 녀석에게 원한이 쬐끔 있었거든요."
"상관없다. 처음에는 인간따위에게 능멸을 당했다는 생각에 혹독한 신벌을 내릴 생각이었으나 지금와서는 신앙에너지를 그딴 일에 쓰는것조차 아깝다고 판단내렸으니. 오히려 나를 대신에서 그자에게 큰 굴욕을 선사했으니 아크리퍼 그대에게 감사를 표해야겠지."
"호오 그러셨군요. 큭큭큭큭큭."
마샬아츠 더 레프트훅(Lefthook) 용린정권 권묘결 일축(年蓄)
나는 화이트 탈론의 출력을 최대로 올린다음 마샬아츠 더 비타까지 사용해 디아나 여신을 기습했다. 고장난 라이터처럼 빔샤벨 손톱이 치솟아 천공의 아치를 관통했지만 흠집조차 나는 일이 없었다.
화이트 탈론도 전생유적에서 발견한 육십번대 무기 폰 글라디우스를 가공해 만든 뛰어난 아티팩트였지만, 신물이라 불리우는 구십번대의 무기 앞에서는 역시 손색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헌데 디아나 여신을 직접 공격한건 아니지만 천공의 아치를 파괴하려한 행동에도 그녀는 여전히 무심히 무한의 화살비를 쏘아 보냈다. 와 이건 좀 자존심 상하는데.
"그런데 말야 나는 그쪽이랑 달리 원한을 쉽게 잊는 타입이 아니라 이정도로 복수를 끝낼 수 는 없단 말이지. 러시아 토벌 이쯤에서 멈춰줘야겠어. 러시아가 어떻게되든 내 알바는
아니지만 앱솔루트 모나크의 계획대로 일이 흘러가는건 심히 아니꼽다고."
"그건 여신칼난단의 일원으로서 지구를 수호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그저 아까 말했듯이 개인적인 복수에 불과한 것인가?"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율법의 서가 지구에 강림하기 전부터 여신칼날단과의 충돌로 인한 변수를 경고해왔으니까. 어떤식으로든 만들어진 신을 모시는 신도들이 표면상으로 드러나리라 짐작은 했다. 설마하니 그 신도가 직접적으로 나의 강림을 돕고 소원권을 받아갈줄은 몰랐지만. 엔도미야가 나의 지구진출을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막으라고 지시하던가?"
"뭔 개소리야? 그런 지시는 없었고 설사 그런 지시가 있었다고해도 애시당초 나는 하희빈처럼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기세로 엔도미야를 모시고 있는것도 아니라고."
"그거야 그렇겠지. 제 아무리 신과 같은 힘을 부린다고 해도 결국엔 만들어진 신이니까. 그대신 뭔가 대가를 받기로 되어 있는것 아닌가?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거라. 신이 신도들을 사랑하지 않고 신도들 또한 신을 사랑하지 않는 거짓 신앙때문에 결국 얼티밋 판게아가 멸망하지 않았더냐? 인간들의 어리석음엔 예나 지금이나 치가 떨리는군."
"씨발 그냥 개인적인 복수 겸 새로운 힘을 시험해보려는 것일뿐이니까 그쪽 얘기는 꺼내지도마. 그냥 닥치고 덤벼! 어차피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해도 이기는 놈의 말이 진리다!!" 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