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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 Oxogan The Goddess of the Moon
일찍이 에녹이 성검의 후보를 결정하기 위해 치루는 지덕체 테스트(마치 전생유적의 그것처럼)를 트리플 10점 만점으로 통과해 광휘의 치천사 세라푸스를 알현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세라푸스는 자신의 오른쪽 성령이 깃든 아발란체와 왼쪽 성령이 깃든 아슈켈론을 내밀며 한가지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에녹이 현대의 펜싱과 유사한 검술을 구사하기도 했고 이중검 아슈켈론의 성격이 워낙 말괄량이스러워서 아발란체를 선택했다고 한다.
뭐 내가 봐도 정말 필요할때가 아니면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요조숙녀 성격의 아발란체가 본래 점잖은 성격의 에녹과 어울렸다. 하지만 그때의 선택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이중검 아슈켈론이 에녹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태생부터가 성기사인 에녹에게는 이젠 마검이 되버린 아발란체나 사용자의 피를 빨아먹는 마검 블러디카나 보다 성검 아슈켈론이 확실히 어울렸다. 롬파카가 보여준 아슈켈론의 시동기가 쓸만해 보이기도 했고.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이중검 아슈켈론을 사용할 수 없어 아쉬운 상황은 아니였기에 사춘기가 온 여중생처럼 빽빽거리는 녀석을 인벤토리에 쳐넣어 버렸다.
'아무리 내가 여자가 좋다지만 저런 타입은 딱 질색이야.'
그렇게 사흉성에서 손에 넣은 전리품들을 얼추 갈무리한 나는 롬파카와 옴파카 형제의 시체를 듀리스의 초월 그림자 도약을 이용해(물론 몇백리터의 헌혈팩을 듀리스에게 상납한 대가로)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로 옮겼다. 이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신중히 결정할 차례였는데, 일단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주색잡기에 빠져있어선 안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야미도엔이 나 하나를 잡기 위해 반신타락자 서열 11위와 22위를 보내고도(사실상 네명) 실패했으니, 다음에는 분명 더 강한 자객을 보내올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였다. 사실상 사흉성에서의 대격돌도 까딱하면 아바타의 소멸로 이어질뻔한 싸움이였기에 지금의 스펙에 머물러 있다면 다음 자객이 쳐들어왔을때 나의 패배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야미도엔이라고 해서 이 넓은 우주를 다 관찰할 수 있는건 아니였기 때문에 어디 외진 곳에서 숨어 살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겠지만, 그건 모든 죽은자들의 주인이자, 왕이자, 어버이인 아크리퍼의 자존심에 제대로 스크래치질을 하는 짓이였다.
과거 내 머리에 1제타바이트의 인과율계산 정보를 강제로 주입시킨 야미도엔에게 언젠가 제대로 한방 먹이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한 나였기에, 이전에 행했던 보여주기식의 100일 폐관수련이 아니라 제대로 된 술법연구 기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강령술의 3대 괴서 네크로노미콘, 데모닉 그리모어, 귀혼강신법을 모두 손에 넣은 주제에 그 세가지를 응용해서 만든 제대로된 언데드 하수인이 없다는게 솔직히 말이 되는 일인가?
이번에는 메탈하트를 맡긴 우르사티(한때 발두인 함장밑에서 일했던 로봇공학자,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의 개발자이며 자체 개발한 슈퍼로이드 어스윔까지 가지고 있는 실력자)까지 불러들여서 제대로 한번 열정을 불태워볼 작정이였다.
'언제까지고 기존 에보니 메이든의 주민들에게 의존할 수 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그랬다고 나는 이미 만들지도 않은 언데드 하수인들을 보관할 관짝까지 여신마켓에서 구입해논 상태였다. 이름하여 크림슨 메이든(Crimson Maiden), 진홍빛색 관 모양의 공간확장 아티팩트가 없어서 전문 인챈터에게 부탁해 주문제작한 이 걸작은 넓지만 황량한 폐허밖에 없었던 에보니 메이든의 내부와는 달리 아기자기한 인형의 집처럼 내부가 꾸며져 있었다.
앞으로 소수정예의 언데드 하수인만을 키우겠다는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것. 아마 베히모스를 이 크림슨 메이든에 넣었다간 1cm도 옴짝달싹할 수 없을터였다. 아무튼 그렇게 운동을 하기전에 보충제부터 잔뜬 사두는 사람처럼 각오를 다진 나였지만 금연을 시작한 사람이 마지막 한까치만 태우고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되겠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처럼 마지막(절대 죽을때까지 여자랑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지육림 파티를 개최할 생각이였다.
아야사(크로스데일 지부장), 카멜리아(도엔버의 아내), 왕루옌(북두십성 매드독스), 쿤메이(십이지신 토끼 문신의 소유자), 샤오밍(쥐문신의 소유자), 륭 사부(밴쉬그래플러), 시스트린(아라크네일족의 재봉사), 듀리스(오리지널 뱀파이어), 연희(걸그룹 팅커벨의 멤버), 치요코(그라비아 아이돌), 바이올라(할리우드 여배우), 스칼라(북두십성 엘리멘탈 로드), 오르시나(물의 수호정령), 비비앙(전 민간군사기업 고스트의 팬텀), 릴리(아크데빌의 전 서큐버스 수하).
지금까지 나와 인연이 있던 여자들을 전부 색향천월관의 워터파크에 초대해서 아주 어썸한 수영복 파티를 여는 것이다. 상상만해도 아랫도리가 뜨거워지다 못해 타서 증발할 것같은 그레이트한 계획이지 않은가?
이미 색향천월관에서 생활중인 이들도 있었지만 아닌 이들이 훨씬 더 많았기에 나는 VOT 단말기를 이용해 아야사에게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그런데 VOT 단말기를 확인한 순간 신원미상의 존재로부터 보내진 미확인 메시지가 10통이나 쌓여있는게 아닌가? 딱히 연락을 취해올만한 상대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나는 서둘러 메시지 내용을 확인했다.
'세비앙입니다. 엔도미야님께서 찾으시니 서둘러 VOT 온라인에 접속하세요.'
'세비앙입니다. 엔도미야님께서 찾으시니 서둘러 VOT 온라인에 접속하세요.(2)'
'세비앙입니다. 엔도미야님께서 찾으시니 서둘러 VOT 온라인에 접속하세요.(3)'
...
'세비앙입니다. 엔도미야님께서 찾으시니 서둘러... 빨리 접속하지 않으면 제가 퀼레뮤츠 언니 대신 함선 텔타크론을 끌고가서 지구를 박살내버릴겁니다. 빨리 튀어오세요.'
나는 이전에 만났던 슈퍼로이드 세비앙의 정중한듯 하면서도 어딘가 띠꺼운 어투가 그대로 묻어있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수영장 파티때문에 달아올랐던 기분이 찬물을 끼얹은듯 가라앉는걸 느꼈다. 이 빌어먹을 깡통년이...!! VOT 온라인의 캐릭터는 너무 약해서 싸움을 걸 수 도 없는 노릇이였던지라 나는 속으로 울분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엔도미야도 나라는 이레귤러를 제거하기 위해 자객을 보낸적이 있었다. 그런 주제에 이제와서 나를 보겠다고 긴급 메시지를 보내? 뭐 무슨 내용인지 대충 짐작은 간다. 반신타락자 서열11위와 22위를 내가 단신으로 제거했으니 삼국지로 따지면 적장 둘의 목을 벤 장수에게 포상을 내리겠다는 거겠지.
안그래도 최근들어 이것저것 여신마켓에서 사재끼는 통에 VP가 남아나지 않는 상황이였기에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VOT 온라인에 접속하기로 했다. 일전에 3000레벨대의 보스몬스터 진시황을 공략하기 위해 접속한 이래로 방치 되어 있었던 VOT 캡슐에 안착하자 눈깜짝할 사이에 주위의 시계가 바껴버렸다.
분명 진시황릉 공략을 마치고 풍운길드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서대륙으로 서버이전을 했던것 같은데 내가 눈뜬 장소는 예의 감옥이였다. 이것들이 나도 이제 어엿한 여신칼날단의 단원인데 이런 취급을? 괜히 열이 뼏쳐서 없는 나랏님한테 신나게 욕 한사바리를 해주려고 했는데 슈퍼로이드 세비앙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나타나 홀로그램 쇠창살을 해제하는 바람에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엔도미야님께서 부르시는데 재깍재깍 나타나지 않고 뭐하는건가요?"
"메시지를 좀 늦게 확인했다. 내가 엔도미야랑 썸타는 사이도 아니고 하루종일 VOT 단말기만 붙들고 메시지 오는걸 기다려야 하냐?"
"하! 엔도미야님께서 당신처럼 벌레같은 인간과 정을 나누는 상상을 하다니 꿈도 야무지군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거지 누가 실제로 그렇대? 그것보다 용린혁 어르신은 어디갔지? 내가 기억하기로는 바로 이 앞의 감옥에 갇혀계셨던걸로 아는데."
"그 늙은이는 몸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져서 지금 링거맞고 병실에 누워있어요. 그러니까 엔도미야님께서 주신 VP로 영약이나 사다 쳐먹을 것이지 속세의 인연에 미련이 남아서 계속 퍼주다보니까 그 모양이죠."
"내 앞에 그 분을 욕보이지 마라. 실제로 무공을 배운적은 없지만 나한테는 인생의 스승님같은 분이니까. 너도 내가 네 앞에서 엔도미야를 욕하면 기분이 나쁠거 아니야? 아무리 로봇이라도 지킬건 지키면서 살자고."
"흥! 기분이 나쁜걸로 끝나지 않아요. 제 앞에서 엔도미야님을 욕보인다면 128단계 고감도 열추적 미사일 TK-7으로 당신이 가루가 될때까지 추적해주겠어요. 잠자코 따라오기나요 해요. 그 다죽어가는 늙은이 걱정일랑 접어두고."